정유년(丁酉年)의 기(氣)를 받기 위해 우리는 올해 첫 번째 산행을 하는 날이다. 아침의 맑은 공기를 가르며 집결지인 잠실 새내역을 향해 출발했다. 새해 들어 처음 만나는 회원들의 근황이 궁금했다. 남자 회원들은 얼마나 건강한 모습일까? 또 여자회원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예뻐졌을까? 이런저런 생각과 상상을 하며 걸었다. 약간의 안개로 시야가 흐렸지만 상쾌한 기분이다. 까치가 나를 보고 반가운 듯 가볍게 이나무 저 나무를 뛰어다니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무엇인가 조잘댄다. 아마도 잘 다녀오라는 인사인 것 같다.
새내역에 도착하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회원들의 반가운 목소리와 생글생글 웃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남선녀들 같다. 모두 건강한 모습이라 더욱 반가웠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서로의 덕담이 오고 간다. 버스에 올라 배낭을 선반 위에 얹고 좌석에 앉았다. 마침 송광 김문환 선생과 자리를 함께했다. 송광 선생은 산에 대해선 우리나라 국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가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그러자 송광 선생은 감악산에 대한 이야기를 일사천리로 나에게 들려줘 감명 깊게 들었다.
차창밖을 보려니 차량의 실내외 온도차로 창문에 하얗게 김이 서리어 밖을 볼수없었다. 이를 닦고 내다보니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시야가 우중충하게 보였지만, 나무들은 추위를 견디느라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겨울은 깊었는데도 눈이 내리지 않아 겨울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자연의 시계는 겨울이라고 초목이 웅크리고 동면하는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연은 순리에 의해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닭소리와 함께 밝아온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다. 새해 황금 햇살이 대지 위에 쏟아져 내린 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잠시 후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따사로운 햇살은 온 누리에 봉사를 시작한다. 차가운 추위를 이겨내려고 동면하고 있는 초목들은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아름답게 꾸며보겠다고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 초목들을 해님은 어루만지며 사랑을 준다. 봄이 되면 으레 싹이 트고 꽃이 피지만 올해는 더욱 아름답게 대지를 장식해 우리를 기쁘게 해주려는 모양이다. 힘차게 싹이 돋아나고 나뭇잎과 꽃은 아름답고 건강하게 탄생하라는 듯 빛이라는 최고의 자양분을 하늘에서 퍼부어 댄다.
드디어 버스는 한참을 달리더니 감악산(紺岳山) 주차장에 멈췄다. 오늘도 역시 정상헌 부회장이 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산에 오르기 전에 가벼운 맨손체조로 몸을 풀어준다. 모두 기쁜 마음으로 따라 한다. 그러곤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좀 걷다 보니 범륜사(梵輪寺)란 조그마한 절이 보인다. 범륜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에 속한다. 원래 감악산에는 감악사, 운계사, 범륜사, 운림사 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의 범륜사는 1970년에 옛 운계사터에 재창건되었다. 중앙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머 타전과 동양 최대의 백옥 11면 관세음보살상과 전면에는 9층 석탑과 자연석으로 세운 세계평화의 비가 있다. 나는 세계평화의 비를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전 세계인이 누구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산골짜기에 그 간절한 소망을 담아 세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 입구에는 해탈교라고 하는 작은 다리와 경내에는 하얀 불상이 우뚝 서 있고 절 뒤편으로는 산신각이 있는데 그 안에서 시원한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절 바로 밑에는 높이 20여m의 운계폭포가 있으며, 감악산 등산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등산은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절에서 은은하게 목탁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다. 들려오는 목탁 소리가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잠재워 준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잠시나마 마음을 신비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웬일일까? 목탁 소리가 가물가물하게 들릴 때까지 리듬에 맞춰 힘든지도 모르고 걸었다. 좀 더 올라가니 길 위에 큼직큼직한 바윗돌이 울퉁불퉁하게 깔려 걷기가 매우 불편했다. 게다가 깔딱고개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을 뜰 수 없게 한다. 비록 흐르는 땀 때문에 힘은 들었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것 같았다.
정상을 향해 걷는다. 그때 송광 선생과 정은지 안국현이 한 조가 되어 동행했다. 하도 힘이 들어 젊은 기를 받는다고 정은지 총무 손을 꼭 잡고 한참을 걸었다. 역시 미인의 손을 잡고 걸으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드디어 남자답게 생긴 장군봉이 나타난다. 장군봉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이 신비로움에 쌓여있다.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산 아래는 안개가 깔려 바다처럼 느껴진다. 흰 안개 벌판 위로 봉긋봉긋 솟아오른 산봉우리는 마치 예쁜 아가씨의 아름다운 젖가슴을 연상케 한다. 자연이 준 이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을 어디에 비교해야 할지 내 머리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이한 풍광이다. 이 아름다운 한 폭의 산수화를 배낭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 그래서 사랑하는 부인께 드리면 얼마나 좋아할까?
우리는 또 임꺽정 봉을 향해 걸었다. 제일 먼저 감악산 임꺽정 봉이라 쓰인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해발 676.3m이다. 이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 것이다. 얼마나 값진 선물인가? 그리고 옆에 임꺽정(매봉재)이라는 알림판을 세워놓았다. 그 글귀는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임꺽정(매봉재) 감악산에 위치한 봉우리로 부도 골 북쪽에 있으며 생긴 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재 봉우리 밑에는 굴이 있으며 다섯 걸음을 들어가면 구덩이가 나오는데 컴컴하여 깊이와 넓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일명 응암봉(鷹巖峰)이라고도 하는데, 적성 현지(1842). 적성 현지(1871)에 모두 등장한다. 한편 응암봉 밑에 있는 굴에 대해서는 설인귀굴 또는 임꺽절굴 이라고 부르는데, 일설에서는 고려 말 충신 남을진 선생이 은거한 남선 굴이 바로 이 굴이라고도 전하여진다.
임꺽정 굴(설인귀 굴) 감악산 남쪽 매봉재에 위치하여 있는 굴로써 고구려를 치러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가 이곳에 진을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설인귀 굴로 알려진 이곳은 일제 초기의 문헌에서 처음 확인된다. 조선지리(朝鮮 地理, 1918)에서는 봉암사(峰巖寺)를 소개하면서 이 절이 바위로 이루어진 굴속에 있는데 설인귀가 혈거(穴居)한 곳으로 전해진다고 하였다. 한편 마을 노인들은 임꺽정 굴이라고도 하여 감악산 정상 부근 능선에 있다.
이곳은 6.25전쟁 당시 국군 1사단이 고랑포리 동남지구 전투(1950.12.31.~1951.1.1.), 영국군 설마리 방어 전투(1951.4.23.)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으로 2005~2015년까지 육군 제25사단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을 실시한 결과 호국 용사 57위 유해와 유품 6,100여 점을 발굴한 지역이다. 그래서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를 고양시키며 유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드리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나라 사랑과 호국보훈의식을 함양케 하고자 국방부. 육군 제1군단, 파주시가 함께 알림판을 설치하였다.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명예를 되찾아 드리는 것은 우리 모두의 영원한 책무임을 생각하고 마지막 한 분의 전사자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호국영령들의 영전에 삼가 고개 숙여 명복을 빕니다.
감악산은 화악산, 송악산, 관악산,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산 중 하나다. 정상에 오르면 강 건너편으로 휴전선 일대의 산과 들이 눈 앞에 펼쳐지며 맑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북한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안개가 껴 이런 곳을 마음껏 보지 못해 매우 아쉽다. 감악산은 675m로 6.25로 인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하였다는 것을 여기 와서 알았다. 더욱이 영국군이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기도 하다. 감악산 기행 수필은 1,2편으로 나눠쓰는데 1편은 여기서 마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