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칭찬도 아냐, 욕도 아냐
'편하고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소개팅녀에게 이런 말을 듣고 돌아와 귀에 걸린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 다며 구강장애를 호소하던 솔로남.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희망적인 그녀의 한마디는 내일이라도 그를 솔로라는 지하골방에서 해방시켜 커플 스위트룸으로 데려다 줄 것만 같았다는 군요. 그러나 소개팅 이후 짧아진 그녀의 카톡. 등심이 끝내주는 맛집에 갔었다는 그의 말에 '네, 맛있겠네요'라는 썰렁한 대답뿐. (고기 먹었다고 자랑하는 그런 남자 된 거야? 그런 거야?) 아니, '언제 한 번 같이 가요' 혹은 '저도 가보고 싶어요'가 아니고?
그렇게 나오기를 당연히 예상했던 솔로남은 혹시 소개팅녀가 소고기 알러지라도 있는 건 아닌지, 코펜하겐 기후변화 협약에 크게 동감하는 채식주의자는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그가 마음에 안 드는 거? 하지만 솔로남은 소개팅 당시 들었던 칭찬을 다시 꺼내 씹으며 그럴 리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단물 다 빠질 때까지 씹고도 책상 밑에 붙여둔 껌처럼, 찝찔한 그 느낌은 무시한 채.
'칭찬 좀 해줘봐, 춤 좀 추게!'
소개팅 상대에게 칭찬이란?
그러나 소개팅 상대를 칭찬하는 속마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살짝 다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 남성의 30.5%는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해 비행기를 태우고. 여성의 35.3%는 서먹한 분위기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할 거 같아서 진행용 칭찬멘트를 날린다는 거~ 그러니 솔로남의 그녀는 아마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동안 우리가 너무 믿었어. 너무 순진했어.
그렇다고 모든 칭찬에 눈 흘기며 '할 말 없어서 괜히 그러는 거 알아요.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그럴 수는 없는 거죠. 진심으로 칭찬하는 말들은 고맙게 받아주고, 완곡한 거절의 말은 눈치 빠르게 캐치하여 망신살은 면해보자 이거예요.
칭찬사전 A to Z
▶ 무조건 '감사합니다' 배꼽인사로 갚아야 하는 경우!
- 매력 있으세요 (선호도 35) : 이것이야말로 끓는 피, 청춘남녀 사이에 오갈 수 있는 최고의 칭찬. 매력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므로 '내가 당신에게 흥미를 느껴요'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절대 오버가 아니다. 두 사람만의 교감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매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는 그의 매력을 콕콕 집어 구체적으로 칭찬해주는 것이 좋다.
- 센스 있으세요 (선호도 10) : 너 정말 멋지다 따위의 노골적인 칭찬에 손발 연골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녹아 없어질 듯한 오글거림을 느끼는 이에게 적합한 칭찬. 외모에 관한 칭찬이 대부분 듣는 이의 얼굴을 황토팩화 시키는 반면, 센스를 칭찬하는 말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상대는 아마도 센스 있다는 칭찬을 떠올리며 자다가도 피식, 변기 위에 앉아서도 피식거릴 것. 자고로 센스란, 취향, 안목, 교양, 스타일, 감각, 순발력, 재치 등을 아우르는 말이므로 이는 칭찬의 종합선물 세트격.
- 잘생기셨어요 (선호도 11) & 예쁘세요 (선호도 28) : 특히 얼굴 예쁘다는데 불쾌해할 여자 없다. 소개팅에서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상대의 외모. 따라서 가장 쉽고 빠른 판단으로 내뱉을 수 있는 칭찬. 그렇기에 가벼워 보이기도 하니 조심할 것. (남자에게 예쁘다거나, 여자에게 잘생겼다고 말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은 입만 아플 것 같다) 이와 같은 칭찬에 상대는 잠시 머쓱해할 지 모른다. 그러나 며칠 뒤, 상대의 사이좋은 홈페이지에는 뿌잉뿌잉스러운 셀카가 업데이트될 것이다. 보라, 외모 자신감 급상승한 저 표정을.
- 스타일이 좋네요 (선호도 3) : 스타일이 좋다는 칭찬은 센스가 좋다는 칭찬의 세부 카테고리. 그러나 칭찬하는 이의 스타일에 따라 듣는 이가 황당해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모럴 해저드 룩으로 홍대 한복판을 찐하게 스캔 했던 전설의 형돈에게 '너 스타일 좀 괜찮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을 테니. 그러나 집 앞 슈퍼마켓에 나갈 때에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잇템을 장착하고 나가야만 하는 패션피플이 제법 많으니, 꽤 긍정적인 칭찬.
▶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눈치코치 뜻풀이!
성격 좋으시네요 (선호도 2 기피도 5) : 소개팅을 마치고 돌아와 어땠어 어땠어? 연발하는 주선자에게 '응, 성격은 좋더라' 대답하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처럼 지줄대는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면 이 소개팅의 성사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성격'은' 좋다와 성격'도' 좋다는 판이하게 다르므로. 따라서 다른 칭찬에 별책부록쯤으로 따라와 '성격도 좋다'라고 했다면 희망적일 수 있다. 하지만 소개팅 당시 이러한 말을 들었다면 잠깐 숨을 고르고 생각해 볼 것. 혹시 지금 오지랖을 떨고 있진 않았는지, 지나친 쇼맨십으로 상대방을 얼떨떨하게 만들고 있진 않은지. 상대는 '니가 성격이라도 좋지 않으면 어쩌겠니'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려 보여요 (선호도 6 기피도 7) : 동안 얼굴이 대세. 여자 나이를 맞출 때, 당연히 예상나이에서 3~5살을 빼고 대답해야 하듯, 어려 보인다는 말은 여자에게 칭찬이다. 어제 바르고 잔 콜라겐 크림을 장바구니에 더 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하며, 역시 링클케어에는 레티놀이야! 뿌듯한 마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남자에게 어려 보인다는 말은 반갑지 않다. 남성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 (여자가 노안미녀라면 더욱) 남동생 같은 남자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 백화점 점원에게, '어머, 누나하고 남동생이 참 다정하네요!' 이런 말은 듣고 싶지 않을 터.
귀여우세요 (선호도 5 기피도 10) : 귀엽다는 말은 칭찬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상대가 특별히 예쁘지 않을 때 적당히 눙치고 넘어가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남자에게 귀엽다는 칭찬은 연인 사이가 아니라면 더욱 곤란해진다. 이유는 어려 보인다는 말이 남자에게 칭찬이 될 수 없는 것과 동일.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에게 귀엽다는 칭찬을 할 만큼 용감한 여성도 드물거니와.
인기가 많아 보여요 (선호도 9 기피도 7) : 이 또한 남성과 여성의 받아들이는 입장이 전혀 다른 칭찬 중 하나. 인기가 많아 보인다는 말은 그 속뜻이 어찌되었던 이성에게 어필할만한 장점을 갖추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 이 같은 말은 여자들의 자부심에 불을 확 지펴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초조해 할 지도 모른다. 혹시 상대의 눈에 자신의 바람기가 들통난 것은 아닐까, 나 바람둥이 아닌데! 발을 동동 구르며.
▶ 경계경보, '차라리 욕을 해!'
건강해 보이세요 (기피도 20) : 이 말이 어째서 욕보다 더 나쁜지 모르겠다면 당신은 모태솔로. 건강해 보인다는 말에 여자들은 십중팔구, 자신의 체지방과 셀룰라이트에 대한 걱정을 시작한다. 그녀는 소개팅이 끝나자마자 레몬 디톡스 따위의 다이어트 관련 검색어를 마인드맵하며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누가 봐도 마른 체형의 여자일 지라도, 건강해 보인다는 말 앞에서는 '내가 후덕해 보이는 구나!' 걱정되기 마련. 그러니 상대방이 아무리 무병천수를 누릴 것 같다고 하더라도 처음 만난 상대의 주치의 노릇은 그만 두기를. 그것이 오장육부의 안녕에 관한 말이라고 생각할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으니.
성숙해 보이세요 (기피도 17) : 제 나이보다 앳된 얼굴을 위해 양 뺨에 보형물을 집어넣는 것이 여자의 속성임을 잘 알면서 왜 꼭 이런 말을 하려 하는가. 정색하는 여자에게, '그런 얼굴이 또 평생 유지된다고 하던데…' 따위를 위로랍시고 남길 생각은 꿈에도 말라. 성숙해 보인다는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이나 성품의 완성도를 이르지 않는다, 적어도 소개팅에서는. 그저 나이 들어 보인다, 늙어 보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참 편하세요 (기피도 12) : 소개팅은 불편한 것이 맞다. 처음 만난 사람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상황은 마냥 편하면 안 되는 거다. 그러니 사건의 솔로남이 들었던 이 말은 어쩌면 칭찬이 아니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이성이, 주말마다 목욕탕에서 바나나우유를 나눠 마셨던 소꿉친구 같을 수, 흘린 코를 소맷부리로 닦아주던 친오빠 같을 수 없는 거니까. 솔로남이 참~ 편하다는 그녀는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행동을 조심하는 긴장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성적인 떨림이 없다는, 남자 혹은 여자로 의식되지 않는 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 위 칭찬사전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과 절대적으로 무관합니다. 언어의 기표(기호 자체)와 기의(말의 의미)는 항상 일치하지 않습니다. '개 같다'는 말이 '개처럼 귀엽다'가 될 수도, '개차반이다'가 될 수도 있다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표정과 느낌, 목소리의 높낮이, 말투 등에 따라 기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