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장
백두대간은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태백산에서 살짝 서쪽으로 비틀어 지리산에 이른다. 그 사이 소백산은 덕유산으로 건너가 우뚝 맺혀졌다. 지리산을 앞둔 덕유산 어름 전라북도 동북에 무주 진안 장수 고을이 있다. 같은 등줄기 지리산 동쪽엔 경상남도 거창 함양 산청 고을이 있다. 그곳 일대는 좁은 우리나라에서 남부지역에 속하지만 중부나 북부 못지않은 고원 산간지역이다.
무주와 진안과 장수를 일러 무진장(茂鎭長)이라 그런다. 거창과 함양과 산청을 일러 거함산(居咸山)이라 그런다.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은 기후 특성이 있고 사과나 산양삼이 재배되는 곳이기도 하다. 생활권이 같아 말투도 서로 비슷하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도 같은 선거구로 묶인다. 그곳 출신 고등학생이 타 지역으로 대학을 가면 ‘무진장’이나 ‘거함산’ 동문회를 갖기도 한다.
지역을 더 좁혀 마산합포구에 진동 진북 진전이 있다. 이 세 지역을 묶어 삼진(三鎭)이라 그런다. 그 가운데 진동이 중심이다. 예전 진해현 관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동리에 있는 마산항교가 그것 증명한다. 함안에는 칠원 칠북 칠서가 있다. 이 세 지역을 묶어 삼칠(三漆)이라 그런다. 여기선 칠원이 중심이다. 칠원은 예전 현이 있던 곳으로 함안과 별개로 칠원항교가 있다.
살다보니 어쩌다 거제까지 떠밀려와 한 해가 간다. 생강뿌리처럼 생긴 거제는 우리나라 섬 가운데 제주도 다음으로 크다. 기초단체 기준으로는 가장 큰 섬이다. 예전엔 통영과 통하는 거제대교만 놓여 육로 교통이 불편했다. 부산과 진해에서 카페리가 운항된 해운 교통이 활발했다. 이후 거가대교가 뚫리면서 해로는 쇠락해 지심도와 외도나 해금강으로 뜨는 유람선이 맥을 잇는다.
거제는 고현과 옥포는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중심이다. 기계나 화학 공단과는 다른 조선 고유의 특징이 있는 지역이다. 남부와 동부는 관광지로로 부상하고 있다. 곳곳의 포구마다 고기잡이와 낚시꾼이 찾는다. 겨울엔 대구가 잡히고 여름엔 장어 멸치 갈치를 잡았다. 연안에는 굴과 홍합은 물론 활어 양식이 활발했다. 그런 속에 농경지도 넓은 편이라 농업 생산량도 상당할 듯했다.
내가 주중 머무는 연초는 거제에서 북부지역이다. 거제북부는 거가대교가 놓이면서 바깥과 더 가까워졌다. 고현에서 창원으로 오가는 시외버스를 타 보면 금방 알게 된다. 거가대교로 가면 소요 시간도 짧고 요금도 싸다. 통영을 둘러 가는 신거제대교를 건너면 고성과 배둔과 진동을 거쳐 남마산에 닿으면 두 시간이 걸린다. 거기서 창원으로 가려면 시내버스로 한 시간을 더 가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교무부장은 거제가 고향으로 통영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고 들었다. 교직 생활도 거제에 오래도록 근무해 내년이면 교감 승진을 앞둔 영어교사다. 이분이 언젠가 외부에서 걸려온 통화를 엿들은 적 있다. 중3 자녀를 둔 학부모가 고입 전형과 관련된 상담을 나눈 내용인 듯했다. 그 얘기 속에 ‘연하장’이란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연초면과 하청면과 장목면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연초 학교는 개교 연륜이 십 년이 채 되지 않는다. 평준화지역이라도 면 지역 중3은 우선 배정이다. 고현과 옥포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도시가 아닌 농촌에 가까운 곳이다. 거제와 옥포 시내 고교보다 선호도가 떨어질 수도 있으나 좋은 점도 있을 듯했다. 교사들의 평균 연령이 다른 학교보다 낮은 편이다. 경험이야 적어도 순수와 열정이 넘치는 동료들이다.
하청면은 연초면과 인접한 칠천량 바다와 접했다, 거기는 한국전쟁 직후 농업학교로 개교한 역사가 오랜 전문계 고교가 있다. 조선소가 들어서기 전엔 연하장에서 중심이었지 싶다. 하청에서 달팽이 뿔처럼 쫑긋 뻗어나간 돌기가 장목면이다. 장목은 진해만과도 접하지만 거가대교 바깥은 대한해협으로 나간다. 올망졸망한 연안 포구는 농업보다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19.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