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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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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고구려가 존재하던 시기 대중상의 지위는?
聖君 仁宗大王 추천 0 조회 455 09.08.29 12:15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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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8.29 12:22

    첫댓글 사극정도의 직위에서 시작했을 것이라 봅니다. 최소한 그정도 위치가 아니고서는 조직리더로서 그것도 고구려인 전체 대표를 맡는다는건 어렵죠.

  • 작성자 09.08.29 18:16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발해의 인구 대부분이 말갈이었다면 부흥운동에 참여한 사람의 대부분도 말갈인가요? 지배층이 고구려인이라고 하던데..

  • 09.08.29 20:20

    그 말갈이 바로 고구려에 속해 있는 고구려인들로 압니다. 말갈 따로 고구려인 따로는 나중에 작성된 신당서나 구당서의 기록의 인식이 아닐까 합니다. 그때는 고려인따로 말갈인따로 봤잖습니까?

  • 09.08.29 22:18

    고구려 패망 시기만 해도, 아마, '민족은 달라도 우리는 태왕의 신하로써 같은 고구려인'이라는 개념이 모든 고구려 인들에게 있었을 겁니다. 또한 대걸(걸)중상의 위치가 적어도 사극 이상은 되어야 '후고구려'로써의 국가 부흥운동을 이끌 수 있습니다. 훨씬 지위가 높았을 터인 대형 검모잠도 한성에서 부흥운동을 했으니까요.

  • 09.08.30 10:55

    글쎄요. 대조영은 고구려의 옛 장수라곤 하지만, 걸걸중상은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오히려 유민을 이끌던 리더에 대해선 대조영에게 집중해서 살펴보는게 낫지 않나 싶네요.

  • 09.08.30 14:26

    걸걸중상이 죽은 뒤 그 리더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이 아들 대조영입니다. 그러니까 걸걸중상 역시도 그 지위가 어느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지요.

  • 작성자 09.08.30 15:29

    당에서 걸걸중상을 진국공 걸사비우를 허국공에 봉했다는 기록이 있지요..걸걸중상이 존재감이 없었다면 당에서 그를 공에 봉할 이유가 없지요..대조영은 기록상으로도 걸걸중상이 죽은 후 대업을 계승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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