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것들...(1)
Series 1 화신 앞으로 오세요
지난 가을께 몇 년 만에 친구와 연락이 되어 친구가 자기차를 내게 보내 주기로 했다.
친구차 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기 종각 앞인데요? 어디 계셔요?"
"종각 건너편 화신 앞에 있어요." 우리는 친구들과 여전히 화신백화점 앞이라 부르고 있다.
"화신 앞이요? 거기가 어딘데요?"
앗뿔사
화신 앞? 그렇지 화신네거리 화신백화점이 없어진지가 20년이 넘었는데...
Series 2 "로마의 휴일"이 상영된 수도극장(首都劇場 ; 스카라 극장)
스포티한 헤어 스타일의 오드리 햅범의 포스타-만 나오면 의례 저동(苧洞)의 수도극장을 떠 올린다.
수임 명화 개봉극장의 대명사...
데이트 코-스에 수도극장이 포함되면 가히 일류 데이트의 메뉴에 속한다.
시골 촌놈 출신 서울 유학생이 시골 부모가 논팔아 소팔아 보내준 학비 하숙비~
송금 되 오면 예산집행 1순위가 가슴 떨리는 개봉극장인 수도극장 아니면 단성사에서 상영하는
헐리욷 영화...
시에서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로 예고했지만~
"왜들이래? 이게 누구건데?"
작년에 흔적없이 철거해버렸다.
이리하여 서울에 있던 10대 현대식 극장은 수도극장(스칼라)을 마지막으로 깔끔히 정리해 없애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Series 3 다시는 못 살아 날 숭례문(崇禮門 ; 남대문)
덕수궁이나 경복궁에만 가도 수 십여개의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중화전 ; 저~ 건너 일본놈들이 임진란때 와서 불질러 없앤 것을 아무개 왕때 복원했다.
x x 전 ; 몽고인지 만주인지 중국 뙤놈들이 침공했을 때 소실 된것을 복원했다.
o o 각 ; 6 25때 중공군이 와서 태웠던것을 복원했다.
묘하게도 조선것들이 잘못하여 태웠단 말은 하나도 볼 수가 없는데
광명천지에 수도 한복판의 숭례문을 태워버리고도 떳떳하고 의젓한 민족인데 그럴 리가 없음인가?
Series 4 진고개에서 바라 본 뾰죽당을 아시남요?
성북동이나 정릉에서 봐도 똑바로 바라다 보이든 건물...
웬만한 농무(濃霧)에도 쉽게 볼수 있었던 명동 앞 산(그때는 이것도 山이라했다) 에 있는 천주교당.
중앙우체국에서충무로를 거쳐 명동성당(뾰족당)가는 길은 게다짝이나 고무신 아니면 질척거려
걷기 힘든 진창길 진고개였다.
진고개 넘어 명동성당 가는 진창길이 아스팔트깔리기 전까지는 애시 당초 살곳 못된 고장이었지만
100여 년 전에 세워진 뾰족당과 수녀원 그리고 여학교가 생기면서 지금의 충무로(진고개)와 명동이
번창하게 된 것,
625 후 한참 뾰족당이라 부르던 명동 성당~
그 별명을 서울토박이 60~70대 말고는 지금은 거의 모른다.
첫댓글 추억이 살아나네....
그날이 좋은때가 아니었던가 그리워 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