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은 혁명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거짓말도 자주 하면 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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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승만' '살인자' '플레이보이'... 한 인물에 가해진 집단테러
거짓말은 혁명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거짓말도 자주 하면 진실이 된다
영화 '건국전쟁' 제작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다. 돌이켜 보면 지난 3년의 세월은 '이승만'이란 존재, 혹은 개념에 온전히 몰두해 있었던 시간이었다.
영화 제작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이승만'에 따라붙는 관련 수식어를 정리한 적이 있었다. 거의 대부분 부정적 묘사들이었다. 마치 무슨 주홍글씨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뒤부터 지금 2023년 현재까지 '이승만'이란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어였고,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한 인간에게 가한 잔인한 조리돌림이었다.
'독재자', '미국의 앞잡이', '친일파', 한국전쟁 때 한강 다리를 부수고 먼저 도망쳤다는 '런승만', '양민학살의 주범', '하와이 망명설', '막대한 비자금 조성설', 심지어 가장 이성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민족문제연구소라는 학술 단체가 만든 다큐에서는 '플레이보이', '살인자'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게 사실이었을까? 3년 동안 이승만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내린 결론은 '아니오'다. 하지만 이승만이 살인자요, 플레이보이라고 주장하는 다큐를 본 사람들이 260만 명에 달한다. 유명 좌파 연예인까지 내레이터로 등장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인간에게 이렇게 잔인하고 무자비한 언어적 폭력들이 가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건국전쟁'을 시작했던 이유는 바로 이 질문이었다.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 관계와 자료, 나의 경우엔 영화를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시각적 자료 확보가 최우선 과제였다. 그리고 그 결과 소위 '이승만 죽이기', '이승만 지우기'라 불린 이 공작의 출발이 북한에 있었고, 그를 추종하는 친북 주사파 세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화 '건국전쟁'에도 등장하지만, 1995년 북한을 방문했던 한 목사는 평양 거리 한복판에 세워져 있던 플래카드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플래카드에 새겨진 '이승만 괴뢰 도당을 타도하자!'라는 선명한 구호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북한은 해방이 된 지 60년이 지났어도 '이승만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괴뢰'라는 북한 식 표현은 지난해 아시안 게임 때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괴뢰'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북한의 '이승만 죽이기'는 자신들이 한반도에서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한 정치 세력이라는 근거 없는 우월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1980년대 소위 '386 운동권' 세력들이 그에 동조했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남한의 운동권들은 투쟁의 세부적 지침까지 북한으로부터 받았다. 북한에 대해선 비판조차 허락되지 않는 맹목적 추종이었다. 대한민국 건국이 미제의 앞잡이들과 친일파 세력들이 주도했다는 뒤틀린 역사관은 곧바로 '북한이야말로 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한 정치 집단'이라는 망상과 거짓 이데올로기가 퍼질 수 있는 토양이었다.
그 바탕 위에서 '이승만 죽이기'의 역사가 반복됐다. 북한이나 남한의 친북 주사파 세력들이나 '이승만'을 죽이지 않고서는 자신들이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승만의 역사를 지워야만 자신들의 정치 이념을 대중들에게 쉽게 전파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서 저들이 빌어 쓴 것은 거짓말과 사실에 대한 왜곡이었다. 그 수준은 거의 광적인 수준에 가까울 정도다.
거짓말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공산주의 이론을 창시한 레닌부터 히틀러, 그리고 그의 오른팔이었던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까지 인류 문명의 빌런(악당)들이 스스로 자주 인용했던 말이기도 하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나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혁명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괜찮다. 거짓말은 혁명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거짓말도 자주 하면 진실이 된다." (블라디미르 일치니 레닌)
바로 그것이 '이승만 죽이기'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된 이유였다. 그렇게 해마다 6.25 한국전쟁 때가 되면 방송에선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친 런승만'이란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1950년 6월 27일 서울중앙방송으로 발표된 이승만의 담화문 어디에도 시민들에게 서울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전사 어디에도 800명이나 되는 양민들이 한강 다리 폭파로 사망했다는 자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근거 없는 거짓말들이다.
'미제의 앞잡이, 친일파 세력들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라는 논리 역시 단골로 등장하는 이승만 비판이다. 그것은 이승만을 죽이고 김구를 띄워야 했던 이유와 연결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인영은 '우리의 국부는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다'라면서 국회에 나와 증언했다. 평생 '이승만 죽이기'에 앞장선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문제는 그의 거짓말에 있다. 대표적인 친북 주사파 운동권이었던 그는 '주사파는 없다'라고 증언했다. 정말 그걸 믿을 사람이 있을까? 이인영 같은 친북 주사파가 한 나라의 통일부 장관을 하고, '주사파는 없다'면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나라, 그것이 불과 3,4년 전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영화 '건국전쟁'의 제작 과정은 그런 근거 없는 거짓말과의 싸움이었다. 그걸 밝혀내지 못하면 대중들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독재자', '살인마' 이승만이란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오로지 사실만이 진실로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걸 위해서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여러 나라들을 돌며 이승만 행적 찾기에 주목했다. 다행히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와 기록필름들이 발굴되었다. 괴벨스 말에 비유하자면, 친북 좌파 세력들의 '이승만 죽이기'를 반박할 수 있는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확보된 셈이다.
그런 수고스러운 작업이 없이 거짓과 선전 선동과 맞설 수 없다는 각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다행히 10여 가지 넘는 이승만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객관적 증거들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걸 뒷받침하는 전문가들의 증언도 인터뷰를 통해 얻어낼 수 있었다. 거듭 강조하지만 그것 없이 영화를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끝으로 나는 이 영화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던 한 '386 세대'의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하고 싶다. 솔직히 대학을 다니던 시절, 내가 대학에서 배운 이승만은 부정과 모순의 종합선물 세트와 같았다. 그걸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살아왔던 삶에 대한 부끄러움도 한몫을 했다. 더 이상 거짓 이데올로기로 한평생 대한민국만을 생각했던 '이승만'이란 한 노인을 죽이는 일은 멈춰야 한다.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진정한 바람이기도 하다.
영화의 극장 개봉을 준비하면서 다섯 차례나 비공개 기술 시사회를 했다. 혹시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검증을 받기 위함이었다. 며칠 전 한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어느 중학생이 마이크를 잡더니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제가 이승만에 대해서 안 좋게 보고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학교에서도 교육을 그렇게 하고... 이승만에 대해서 ‘개만도 못한 *이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렇게 학교에서 배웠으니까…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까요. 이승만이란 대통령이란 분께서 초대 대통령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여러 일을 하시고, 여기 있는 분들이 일상을 사는 것도 다 이승만이란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돼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무척 기뻤다. 어린 학생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영화를 통해 이승만에 대한 올바른 생각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제 70여 년 넘게 지속되어 왔던 '이승만 죽이기', '이승만 지우기'의 역사가 끝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단서였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행복과 번영의 출발은 어디였을까? 물론 우리 모두가 열심히 노력했고 땀 흘려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만으로 한 국가가 가난의 끝에서 선진국까지 도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기적에 놀라고 부러워한다. 세상에 열심히 땀 흘리고 노력하는 사람이 어디 대한민국 사람들뿐이겠는가. 과연 도대체 우리의 번영을 가능케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우리를 이 젖과 꿀이 흐르는 행복의 나라로 인도했을까? 그리고 이제 그 질문에 앞에서 우리가 겸허하게 바라봐야 할 한 사람이 있다.
시사회에 참석했던 어린 학생은 친절하게도 어른들을 대신해서 이렇게 말을 맺는다.
"앞으로도 이승만이란 대통령이 주신 저의 일상생활을 가치있게 보내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감사했고, 기뻤다. 누군가 내 영화를 보고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그것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나의 마음 역시 그 학생과 같다. 나는 그걸 'The Birth of Korea', '대한민국의 탄생'이라고 이름 붙였다. 대한민국은 '태어 나지 말아야 했던 나라'가 아니라, 내겐 너무 감사하고 소중한 나라다. 그 중심에 한 노인이 있다.
김덕영 영화 '건국전쟁'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