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오장환(吳章煥)
시인 (1918~?)
안성보통학교 졸업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1933년 『조선문학』으로 등단
1918년 5월 15일 충북 보은 태생. 경기도 안성으로 이주하여 1930년 안성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휘문고보를 중퇴한 후 일본에 잠시 유학차 다녀왔다. 1933년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 『낭만』,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였으며, 이듬해 『자오선』 동인으로 참여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48년 2월경 월북하였으나, 남로당계로 분류되어 숙청되었다. 그의 초기시는 서자라는 신분적 제약과 도시에서의 타향살이, 그에 따른 감상적인 정서와 관념성이 시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1936년 『조선일보』, 『낭만』 등에 발표한 「성씨보」, 「향수」, 「성벽」, 「수부」 등이 이런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37년에 시집 『성벽』, 1939년에 『헌사』를 간행하였다. 1940년 『인문평론』에 「신생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초기시의 경향을 극복하고, 당대 현실을 직시하는 시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광복 후에는 일제 말까지 썼던 시를 모은 『나 사는 곳』 (1947)과 해방된 조국의 현실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시들을 묶어 『병든 서울』(1946)을 간행하였다. 198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오장환전집』을 간행하였다. 오장환의 시 세계는 연대순으로 묶인 시집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시들은 경향상, 1936~1939년의 『성벽』과 『헌사』, 1939~1945년의 『나 사는 곳』, 그리고 광복 이후의 『병든 서울』로 대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별은 편의를 위한 것일 뿐 그의 시 이해에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시작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장환에게 있어 그리움은, 때로 유교적 전통과 관습을 부정하면서도 도시와 항구의 신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비판 정신으로 변주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향과 육친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그 자체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광복 정국의 격동기에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조국 건설에 대한 지향으로 변모되기도 한다. 먼저 「성씨보」에서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고 하여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유교적 관습과 전통을 부정한다. 이런 부정을 바탕으로 「해항도」, 「선부의 노래」, 「온천지」와 같은 시에서는, 신문물이 들어오는 항구나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나, 그곳도 역시 ‘병든 시인 오장환’(「불길한 노래」)이 ‘병든 비애의 역사’(「The Last Train」)를 만나는, 고향 아닌 장소일 뿐이었다. 일제 말의 시들은 초기시의 경향과는 다른 시 세계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어머니나 애인, 또는 고향에 대한 직접적인 그리움의 노래로 나타난다. 그러나 「향수」, 「나 사는 곳」 등에서 나타난 바처럼, 강이 가까운 산골의 고향 마을과 그 고향에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은 “고향 가차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고향 앞에서」)라고 하는 미완의 귀향 노래에 머물러 있거니와, 이는 그 자신이 바라는 고향에 아직 가 닿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그가 바라는 귀향은 육체적 고향으로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광복까지를 염두에 둔 그것임을 알 수 있다. 광복 후 오장환의 그리움은, 현실의 새로운 상황에 대한 예찬과 부패한 무리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 나타났다가, 「병든 서울」이나 「승리의 날」과 같은 시들에서는 새로운 조국 건설이라는 민중의 간절한 열망으로 구체화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광복된 조국의 현실적 과제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행사시와 이념시를 통하여 또 다른 고향 찾기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