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의 죄악들에 있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이키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하며 심지어는 갈수록 더 심각하게 범하는 죄악들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잘 모르시거나 아무렇지 않게 여기시거나 조금이라도 용인하시거나 별 상관없이 생각하시는 분이 결코 아닌 것이고, 오히려 완전히 정반대이신 분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아래 본문에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오래 참으시는 것이고, 깊이 인내하고 계시는 것이며, 최대한 빨리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고,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러나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와 빈도들 등에 따라 더 이상 참으시지 않는 때가 분명히 있는 것이고, 실상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간이 하나님의 진노의 때일 수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상상도 못할 고통과 참혹들이 불현 듯 그 당사자와 온 지경을 뒤덮을 정도로 닥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래 본문에서도 포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세세하게 쓰이던 시기에, 특히 남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때에 어느 정도로 무섭고 비참한 심판들이 임했는지에 대해 예레미야 애가 등에서 잘 증거되어 있는 것으로 실제로 예레미야 애가 4장, 5장에 보면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대적들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읍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라고 까지 기록된 내용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사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일제 시대 때에 물론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키시며 순교하신 분들도 있었고, 신사참배 거부로 큰 박해를 당한 교단들, 기독학교들, 선교사들, 목회자들 등도 적지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처음에는 강하게 불응하다가 핍박으로 인해 점점 더 나약해 짐과 함께 결국에는 공식적으로 신사참배 결의를 했던 장로교는 물론이거니와 거의 대부분의 교단들에서, 사실상 이 땅의 전 교계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자행하게 되면서 참으로 해방 후에는 그와 결코 별개일 수 없는 전쟁으로 인해 이 나라 전체가 얼마나 끔찍하게 되었고 비참하게 되었으며 피폐하게 되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가장 대표적인 결의를 했던 지역인 평양이 있었던 북한 땅은 아직도, 오늘 지금 이 시간까지도 공산주의자들, 유물론자들에 의해 온갖 만행과 학대와 굶주림과 박해들 등으로 말로는 다 표현 못할 고통과 처참과 탄식과 눈물들이 마를 날이 없음을 잘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심각한 죄악들이 쌓이고 또 쌓임으로 인해 곧바로 무서운 심판들로 진멸되듯 하기보다는 그 전에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게 하시곤 하고, 또한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방황하게 되게도 하시곤 하는데..
그러나 아래 본문과 같은 시대에서처럼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각성하며 자백하고 회개하며 참회하면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모든 시대들에 있어서, 특히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도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와 빈도들에 따라, 또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시간과 계획과 통치와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들의 다양한 상황과 영성과 준비와 그릇들 등에 따라 하나님으로 인한 진노와 심판과 결과들에 있어서의 이치와 원리와 법칙은 결코 다르거나 형평에 어긋날 수 있는 자체가 안 되는 것입니다..
반면 그 어떠한 죄악들에 있어서도, 참으로 아무리 심각하고 엄청나며 더 나아가 있을 수 없어 보이고 심지어는 상상도 못할 죄악들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라도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자복하고 뉘우치며 돌이킨다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고 기회가 있으며, 실제로 생각 이상의, 예상도 못할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이 가능함은..
바로 그러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이 그 정도로, 아니 그 이상으로 강력한 것이기에,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이 그러한 모든 죄악들, 그 어떤 심각하고 무서운 죄악들보다도 더 크고 강력한 것이기에, 게다가 그와 같은 구원을 위해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과 역사들, 사랑과 은혜들 또한 그렇듯 크고 강력한 것이기에,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실질적인 힘과 실제와 누림들 또한 그렇듯 크고 강력한 것이기에,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그렇게까지, 그 이상으로 강력한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렇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며 범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바로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또다시 시작하고 새롭게 실행하면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최우선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까지 치게 될 수 있다면 가면 갈수록 얼마든지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과 함께 온갖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응답과 승리와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차고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인데 원론적으로 그 최대의 정도와 분량과 역사는 잘 통찰해 보면 마찬가지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계획과 약속만큼,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 생생함과 강렬함만큼,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 만큼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러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
(예레미야44:22~2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7월 1일(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