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늙어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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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를 읽은 것은 열여섯 고등학교 학생일 때, 애틋한 연애시로 읽혔다. 알고 보니 승려 스님의 시. 더구나 시인은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가운데 한 분. 가장 선명한 독립운동가요 불교사상가.
표면적으로는 연애시지만 스승과 제자의 도리를 담고 있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에도 지치고 시들할 때는 이런 시를 읽으면서 마음을 달래고 위로를 받을 일이다.
이처럼 좋은 시는 적용 범위가 넓다. 자유롭고 평화롭고 향기까지 품고 있다. 저 인내를 보라. 저 지극한 기다림과 희생을 보라. 마음이 저절로 넓어지리라. 이 시는 내 평생의 날들을 안내하는 스승이 되고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