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리포트-무자본 갭투자 철퇴]②보증금 제때 못 받을까… 세입자도 '전전긍긍'
[편집자주]매매가가 전세보증금보다 낮거나 차이가 거의 없는 이른바 '깡통전세' 문제가 빌라사기꾼(속칭 빌라왕) 사망 사건 이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세 기피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매매가 낙폭에 비해 전셋값 하락 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하락하면서 적은 자본금으로 집을 사들이는 갭투자도 쉽지 않게 됐다. 갭투자의 위험성이 부각되며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는 더욱 커졌다. 전세 기피와 월세 상승이 맞물려 임대차시장의 불안요소로 떠올라 정부가 전세지원뿐 아니라 월세지원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6일 찾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 아파트 모습. 디에이치자이개포 단지가
보인다. /사진=신유진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강남·목동도 '반값 전세'… 매매가 10억 아파트 전세 '4억원대'
(2) [르포] 고가 월세시대… "100만원 넘어도 잘 나가요"
(3) [르포] 강남도 못 피한 '역전세난'… 2년 새 전세 21억→13억원
매매가 급락과 함께 전세 기피에 따른 전셋값 하락이 동반하면서 당분간 '역전세난'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그만큼 전세 재계약 시점에서 집주인이 세입자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해 분쟁까지 발생하는 상황도 늘어날 공산이 크다.
서울 강남권도 역전세난 여파를 피하지 못한 모양새다. 특히 신축 대규모 입주를 앞둔 강남구에선 준공된 지 만 2년으로 올해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둔 단지에서 매물이 쏟아질 경우 최근 몇 년 간 경험하지 못했던 역전세난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만큼 임대시장의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올 한해 강남구 입주 물량은 4646가구로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아파트 매매 대비 전세가 비율)은 10년 만에 50%선 붕괴 조짐도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1.2%로 지난해 11월(53.9%) 이후 3개월 연속 하락했다. 평균 전셋값은 5억9297만원. 서울시내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5억원대로 내려앉은 것은 2021년 2월(5억9828만원) 이후 2년 만이다.
━
'디에이치자이개포' 103㎡ 전셋값, 2년 새 21억원→13억원
━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개포4차현대아파트. /사진=신유진 기자
지난 3월6일 찾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 개포공무원아파트 8단지를 재건축, 2021년 7월 입주한 1996가구(81~226㎡, 이하 전용면적) 규모의 '디에이치자이개포' 103㎡는 올 2월1일 13억원에 전세 계약됐다. 입주 첫 해인 2021년 12월 같은 주택형 전세가가 19억~21억원(총 3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6억~8억원가량 빠진 셈이다. 이 아파트의 경우 거래된 전세 물건 대다수의 보증금이 수억원씩 떨어졌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보이는 '개포자이프레지던스'도 3월부터 입주가 시작되면서 이삿짐 차량들로 단지가 어수선했다. 개포주공4단지를 재건축한 이 아파트의 경우 59~243㎡ 3375가구로 구성됐다. 아직 공식적으로 신고된 거래 물건이 없어 정확한 가격은 알 수 없지만 네이버 부동산 등에 올라온 매물을 기준으로 전세가율은 60% 안팎 수준이다.
인근에서 재건축을 기다리는 구축 단지 역시 전세가 하락은 피할 수 없다. 1987년 지어진 개포현대4차 84㎡는 지난 7일 6억4000만원에 전세 계약됐다. 지난해 12월 계약이 체결된 전세가격(9억8000만원)보다 3억4000만원 떨어졌다. 일원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건축을 앞둔 단지는 전셋값이 2억~3억원 정도 떨어졌지만 신축 아파트의 경우 가격 변동성이 거의 없고 매물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강남에선 재건축 추진 단지를 중심으로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더러 급매물도 나오는 분위기다. 일부의 경우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지만 전셋값 하락으로 신규 세입자를 받기도 힘든 상황이다.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84㎡는 지난해 6월 16억원에 전세 계약됐지만 올 1월엔 절반 값인 8억원에 거래됐다.
올해 3월 입주를 시작한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사진=신유진 기자
시세보다 싸게 나온 매물 대부분은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 물건으로 보고 있다. 리얼투데이 관계자는 "개포동은 학군지 수요가 큰 데다 대단지인 개포자이프레지던스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하락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올 하반기와 내년에도 입주를 앞둔 단지들(래미안 원베일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도 있어 금리가 확 떨어지지 않는 이상 하락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올 초 규제 지역 해제에도 전세가 약세 때문에 갭투자 환경은 더욱 나빠졌다"며 "다만 경기 화성시(동탄)나 인천 연수구(송도) 등 집값이 많이 떨어진 곳들은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적어 소액 투자가 가능한 만큼 갭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셋값 하락에 집주인뿐 아니라 세입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기존 세입자들은 집주인으로부터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전세로 거주하는 세입자 A씨는 계약 만료 3개월을 앞두고 요즘 집주인 눈치를 보고 있다. 2년 전 계약한 전세 보증금은 9억원. 현재 이 아파트의 전셋값은 5억원으로, 2년 새 4억원 하락했다. A씨는 "신규 세입자에게 돈을 받아 기존 세입자에게 돈을 주는 것이 보편적인 전세 구조인데, 전셋값이 급락해 집주인한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매매가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에 분양권 거래는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월 서울에서 거래된 분양권은 총 16건. 이 중 10건(63%)은 강남구에서 거래됐다. 업계에선 입주 물량 증가와 아파트값 하락으로 강남권 분양권의 프리미엄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신유진 기자 yujinS@mt.co.kr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