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는 1953년 고향은 경상남도 창녕 남지리다 금년 71살
아버지 어머니 두분 모두 학교에 다니지 못하셨고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집안 사정으로 이사를 많이 다녀서 주위에 친구가 없었다. 같은 동네에 살던 박원순도 얼굴만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공부만 했다. 그랬더니 일 등을 했다. 어디가나 가난 햇지만 공부에 흥미와 재능이 있다. 홍준표 부모님 말씀한다
도시에서 공부하겠습니다.
이미 공장에 일하고 있던 누나와 같이 불편한 동거로 당시 도시 대구 용남중학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아마 학비나 생활비도 누나가 일하는것으로 충당했다. 누님은 공부 잘하는 동생 도 잘 하라고 도시락을 싸 주었다.
그것도 형편이 안될 때는 수돗물로 배울 채우면서 공부를 했다.
영양 실조에 걸려서 몸이 많이 왜소했다. 두부모는 생계를 위해 되는 대로 노동을 하셨고 어머니는 사과를 팔았다.
하루에 4시간을 자면서 공부를 해 중학생 시절 거의 일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공부에 전념했던 이유는 이렇다. 지금 우리의 가난과 배고픔을 잊고 잊지 말고 후대에 물리지 말자
가난을 이겨내고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했지만 그는 당시 엘리트가 진학했던 경북고등학교를 가지 못했다. 영남 고등학교로 갓다. 그 이유는 역시나 돈 문제였다. 단순히 학비 지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가 꿈이었지만 접었다.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생활비나 식비가 필요 없는 육사에 진학하여라
그래서 육사에 합격했다. 어느날 장터에서 아빠가 누명을 쓰는 장면을 목격했다. 경찰과 조합장이 서로 짜고 모함했다.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많아진 홍준표는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다. 야 경찰 때려잡는 직업이 뭐냐 친구는 말했다. 검사다.
그래서 그는 학력 고려대학교 법과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집안과 누나들에게 학교와 생활비 지원을 받았지만 역시나 고된 대학생 생활이었다.
공부하고 알바 하고 가정 교사도 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 와중에 유신반대 학생 운동을 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며 유언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라
그래서 절에 들어가 사법고시 준비를 하였다.
사법고시에 매번 실패 하던 어느 날이었다. 국민은행의 방문했다가 그녀를 보고 천눈에 반 했다. 그런 그 당시에 돈도 없고 깡패였던 상태였다. 그러나 사랑은 모질어서 잠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몇 달을 꿍꿍하다가 지인의 주선으로 만났다.
그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내렸다. 나란 앞으로 살 거면 내일까지 옥상으로 올라와 운명의 장난이었지?
깡다구 있는 모습에 반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그녀가 홍준표에게 갔다. 그녀와 나이 차이 세 살 이다. 당시 20살이었다고 한다. 결혼 스트리가 아름답다. 결혼은 순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고향은 전라도였기 때문이다. 당시 만해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미래 장인 어른과의 마찰이었다 처음만나서 인사를 드리러 홍준표는 따님을 행복하게 하겠습니다. 딸을 주세요.
돈을 아버님은 안드리고 장모님만 드렷다
독후감 요약😀
간난 극복 억울한 극복 육체 힘 태귄도수련 뱃짱기름 도전
깡패도 제압 자기 하는 일만 열심히 한다. 공부 벌레 4시간잠 절에가서공부 윌급이외 청탁금거절 자유복장 부채가 무섭다
기쁘게 살아야 된다 책을 많이 보는 사람.
저녁 식사를 꼭 저녁에 아내와 같이 집 밥을 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