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월삭입니다.
연수차 서귀포에 와 있습니다.
엊그제 막내 외손주 흔들리는 이를 뺐는데
어찌나 야단을 떨었던지 글 올려 봅니다.
한달도 주님의 은혜로 평안하기기를 기도합니다.
젓니 뽑기 삼대의 이야기
내 어릴 때 부모님이 우리 자녀들 이를 빼주셨다.
주로 어머님이 우리 이를 빼 주셨는데,
외할아버님이 조선시대 의생이셨기에 눈으로 보아오신 탓으로
실로 매어 탁 채어 뽑으시는 그 위력이 대단하셨다.
이마를 뒤로 탁 쳐 제키시며
이를 묶은 실을 앞으로 당기면
턱 소리가 나고 실에 묶인 이가
원을 그리며 방바닥에 떨어진다.
그러면 어머니는
“까치야, 까치야, 헌 이빨 줄게 새이빨 다오.”하시면서
빙빙 돌려 지붕위에 던지셨다.
우리 5자매는 뻐덩니가 하나도 없이 곱게 자랐다.
나는 내 이빨을 내가 뺐다.
혀로 건등거리 이를 밀었다 당겼다를 반복했다.
이가 더 많이 흔들릴 때 손으로 끝을 잡아 내가 빼 내었고다.
그냥 그렇게 내 이빨은 내 손으로 뽑는 기술을 연마하였다.
우리 네 딸들 이는 내가 의사처럼 뽑아주었다.
아이들은 아빠를 믿는 믿음이 컸다.
입을 벌리라면 눈을 감고라도 더 크게 벌리고
이를 실로 묶어도 그냥 참아주었다.
어머니가 하시던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체 하다가
탁 당기면 신기하게 이가 빠지는 것을 경험하고는
아빠에게 전적으로 빼 달라고 부탁도 하였다.
용감한 딸들 덕에 아빠는 이 빼는 기술자가 되었다.
이제는 실로 묶지도 않고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이를 잡고 힘을 주면
아주 간단히 이가 빠져 나왔다.
그 때는 손힘이 좋았던가?
우리 외손주들이 이를 뽑을 때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잘 뽑는 할비에게 맡기지 않고 치과로 간다.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러려니 하였다.
막내 외손주도 젓니 몇 개를 그렇게 뺐다.
김장하는 날 의료원에 다니는 막내딸이 당직 근무라고
바쁜 날 보고 자기 아기 데리고 치과에 다녀와라 한다.
병원에 가니 대기실에 환자가 가득하다.
한 시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진표야 오늘 이 빼기는 어렵다.
할아버지가 빼 줄게 오늘은 그냥 가자.
오는 길에 튀김닭을 찾고 가래떡을 찾아
간신히 김장시간을 지켰다.
아내와 내가 진표를 앉혀놓고 이를 빼자고 하였다.
처음에는 순순히 응했다.
병원에서 하는 것처럼 아내가 니퍼를 들고 나온다.
이것을 본 진표가 질겁을 한다.
아니다, 실로 빼자.
입을 벌리라고 하자 겁먹은 얼굴로 입을 열지 않는다.
아내가 붙들고 내가 다리를 잡았다.
입술 닫고 악물기를 더 한다.
벌렁 드러눕고 얼굴을 방다닥을 향한다.
을르고 뺨친다고 궁둥이를 손바닥으로 한 대 친때렸다.
아내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 포기하려고 한다.
땀들이 세 이마에 송글거린다.
"진표야 그러면 네가 네 이를 묶어라."
자기 이를 자기가 묶으라고 하니 울음을 그친다.
흔들리는 이에 묶어야 하는데 옆 이를 잡는다.
거기 아니라고 하며 작은 흔들리는 이를 가리킨다.
너댓번의 실랑이 끝에 간신히 걸어지는 순간
번개같이 실을 탁 당겨버린다.
이가 툭 튀어나와 진표 손에 떨어진다.
순간적인 일이 벌어지니 진표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별 거 아니네!!!”
그제야 이가 빠진 것을 알고 안심을 한다.
빠진 이를 보며 웃으면서 이를 잡았다.
깨끗한 휴지로 감싸서 엄마에게 보여준단다.
이마에 땀이 흥건한 진표를 무릎위에 앉히고 꼭 껴안아 주었다.
“진표아 안 아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진표 아프게 하겠니?”
“우리 진표를 얼마나 사랑한다고......?”
안심하는 진표를 안아 뉘었다.
우리 부부는 승리의 웃음을 웃었다.
한 시간 정도의 오랜 실랑이 힘이 빠졌는지
할머니 품에 안겨 잠들었다.
물끄러미 잠이 든 막내 외손주 녀석을
우리 부부는 바라보며 맘속으로 외친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빨 가져가고 튼튼한 새 이빨 다오!”
첫댓글 우리 세대는 집에서 실을 묶어서 빼었는데 요즘은 대부분 칫과에서 처리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병원이용이 생활화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주가 겁을 먹을 만 하지만 할아버지도 손주의 겁과 비례해 힘드셨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