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생님을 떠나보낸 후 우리들은 한동안 무기력 증에 시달렸지만 기말고사가 다가오자 차츰
현실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들은 시험기간이 되면 한데 모여 벼락치기
로 공부하곤 했는데 그 날도 어김없이 남망산 공원 입구에 있던 친구 집에 모여 공부하고 있
는 중이었습니다.
제 친구 말로는 자기 집에서 당대 최고의 여배우 중 한 명인 정윤희씨가 태어났다고 자랑 질
을 하는데 참말인지 거짓인지 아직도 긴가민가합니다.
이 친구와는 추억이 참 많은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공부하다가 출출해지면 방 안에서
한 쪽 벽면을 골대 삼고 베개를 축구공 삼아 패널티킥으로 승부를 가려 ‘라면 끓여오기’내기
를 하기도 하고, 마당에서 그 당시 유명했던 권투선수들의 흉내를 내며 시합을 한 것 등등인
데,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친구네 집이 목욕탕을 해서 간혹 쉬는 날이 되면 친구를
도와 탕 안 청소를 했는데 여탕도 남탕에 비해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자장면을 시켜 먹었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었고, 먹고 나면 드디어 남들
은 해 보지 못 했을 것 같은 - 우리들만 해 봤음직한 - 운동을 했는데 그게 어떤 거냐 하면,
사물함 이쪽 편과 저쪽 편 위에다 바구니를 배치한 후 비치 공을 가지고 2대2로 농구시합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에게는 형님이 세 분 계셨는데 다들 성품도 괜찮으시고 위트도 있으셔서 우리
들을 잘 대해 주셨는데 그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지라 항상 조심스러웠습니다. 지금 제가
얘기하려고 하는 건 그 중 바로 이 큰 형님과의 사이에 있었던 재밌었던 일입니다.
아 참! 그 이전에 이 집안의 내력에 대해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군요. 이 친구는 어머니가
두 분이었는데 옛날에는 부인이 아이를 못 낳으면 후처를 들였지 않습니까? 이 친구네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큰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시고, 낳아주신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 일을
하셨는데 강도가 들어 그만 두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졸지에 큰 형님-우리보다 열 두
세 살 쯤 많은-이 가장이 되셨고 길러주신 어머니와 한 집-전형적인 기와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얘기를 되돌려 그 날, 우리가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함께 모여 있던 바로 그 날에 이 큰 형
님이 술에 좀 취하셔서 묘령의 여성 한 분과 함께 집에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
리는 놀래서 서로 눈짓으로 집에 가자는 신호를 보냈는데, 바로 그 순간 우리들이 공부하고
있던 방문을 여시며 “너거들 뭐하노? 공부하나?” 하시길래 “예. 시험공부 하고 있심다” 하니
퉁명스럽게 “그래. 웬만큼 하고 일찍 자라.” 하십니다.
그리고는 곧장 형님 방으로 돌아가셨는데 가시자마자 그 방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었습니다. 우리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친구에게 “아무래도 우리 그만 가는 게
낫겠다.”고 하며 일어서려 하자 친구가 “야! 괜찮다니까?”하며 극구 못 가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방문이 다시 열리며 이번에는 형님이 직접 들어오시는데 그 모습을 본 순간 너
무 웃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 글쎄 바지를 거꾸로 입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는 그
상태로 우리에게 몇 마디 더 하시고 나가셨는데 무슨 말을 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니 날 리가 있겠습니까?
형님이 나가시자마자 말 빠르고 능글맞은 친구 녀석 하나가 익살스런 표정으로 “형님 저러다
날 밤 새시겠다”며 “빨리 짐 싸서 나가자!”고 해 친구까지 데리고 서둘러 집 밖으로 나와 서
로를 번갈아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마음껏 웃어젖히며 이번에는 우리 집을 향해 바쁘게 걸
음을 재촉했습니다.
그 때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이 우리들 가슴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
았는데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첫댓글 ㅎㅎ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