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푼다는 것, 김경호
옷장을 정리하며
상자에 담긴 색색의 또아리들
삼십 여년, 전표철처럼 다소곳하게
너를 매고 긴장하며
고개 숙여 밥을 구하고 가끔은
굴욕의 나날 견디었느니
내 면목을 위해
나보다 더 힘겨웠을 넥타이여
이제야 놓아주노니
가거라,
이렇게 많은 색색의 비단뱀 또아리를 매고
내 덫인 줄 모르고
소잔등 같은 먼 산 보며
머리숱이 희어지고 등골 휘며
퇴근길마다 헛구역질 하였구나
잘 가라,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의 강물이여
내려놓아 풀고 나서야
비로소 가벼워지는 것
그래야 더 먼 숲길 보이고
먼 길 가다 만난 시 한 구절도
풀어놓아야
핏빛 노래가 되는 것을
-푼다는 것. 全文
... 옷 또는 넥타이, 나를 대신하는 것들에 대한 한 생각
누가 내 목의 단추 좀 풀어주시오.
모든 것을 잃고 쓰러진 리어왕이 죽음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다. 왕이라는 역할 때문에 평생 꽉 조이는 어의를 입고 살아야 했던 그는 결국 사랑하는 딸 코델리아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의 옷까지 벗어버리려는 것. 그러나 그는 스스로 옷을 벗을 수 없다. 옷은 그의 권위와 인격 습관 아니 왕 자체이기 때문. 죽어가는 리어왕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글로스터 백작이 단추를 풀어주자 리어왕은 고개를 젖히며 말한다. 이제 좀 숨을 쉴 수 있겠군.
사람은 옷을 입는다.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가지만 살아있을 때는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그가 입는 옷으로 대체된다. 옷은 단순히 추위나 치부를 가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신분과 인격으로 대체된다. 김경호 시인이 목을 꽉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푸는 것은 단추를 풀어달라고 하는 리어왕의 모습과 비유된다. 리어왕이 자신의 목을 조이는 단추를 스스로 풀 수 없듯이 시인 역시 자신의 넥타이를 풀 수 없다. 넥타이는 ‘회사원 김경호’의 대용물이며 그를 대신하는 페르소나이고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넥타이를 푼다는 것은 사회라는 거대한 매카니즘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의 부품, 톱니바퀴의 일개 톱날로 전락해 버린 인간이 스스로 바퀴를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가 그의 소용을 다했다는 의미?
아마도 그럴 것이다.
30여 년간 화이트칼라로 살아온 회사원 김씨가 넥타이를 풀며, 그것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비단뱀이었다는 고백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넥타이가 단지 비단뱀일 뿐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주는 사육사이며, 나를 삶에 연연하게 만드는 밥그릇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밤부터 내린 눈이 계속 쏟아진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는 뉴스가 날아든다. 16층 인텔리젼트 창문에서 바라보는 눈덮인 들판은 다만 평온해 보일 뿐이다. 불현 듯 넥타이를 풀고, 목단추를 풀고 옷을 벗고 저 설원을 달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첫댓글 리어왕의 죽음을 내려다보며 글러스터 백작이 말하지요
놀라운 것은 그가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살아서 삶을 견뎠다는 것이다.
오늘도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아침입니다.
선생님
시 고맙습니다
이번 정모때 못 뵈어서 허전했습니다 ^^
이번 정모는
정말 정말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넘
아쉬웠어요. 젊을 때는 까짓거 다
무시하고 무조건 하고싶은걸 했는데
왜 이리 어깨가 무거워졌는지... ㅠ.ㅠ
또 다른 맛을 안겨 주셔서 고맙소.
옙, 선생님
늘 거기에 선생님이 계셔서
저도 시를 붙들고 사는 듯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