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리포트-무자본 갭투자 철퇴]①'돈' 있어야 갭투자 뛰어든다
[편집자주]매매가가 전세보증금보다 낮거나 차이가 거의 없는 이른바 '깡통전세' 문제가 빌라사기꾼(속칭 빌라왕) 사망 사건 이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세 기피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매매가 낙폭에 비해 전셋값 하락 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하락하면서 적은 자본금으로 집을 사들이는 갭투자도 쉽지 않게 됐다. 갭투자의 위험성이 부각되며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는 더욱 커졌다. 전세 기피와 월세 상승이 맞물려 임대차시장의 불안요소로 떠올라 정부가 전세지원뿐 아니라 월세지원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이 하락하면서 갭투자(매매가-
전세가 차액을 내고 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수) 임대인들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세입자를 우대하는 조건의 글을 흔히 볼 수 있게
됬다. /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강남·목동도 '반값 전세'… 매매가 10억 아파트 전세 '4억원대'
(2) [르포] 고가 월세시대… "100만원 넘어도 잘 나가요"
(3) [르포] 강남도 못 피한 '역전세난'… 2년 새 전세 21억→13억원
#. "OO을 조망할 수 있는 '래미안OO'이 전세 세입자를 긴급 구합니다. 에어컨 5대, 김치냉장고, 커튼 블라인드 설치되어 있고 이사 가능 날짜는 세입자분에게 맞춰 드립니다."
#. "현재 세입자가 2억5000만원의 보증금에 살고 있는 전셋집이 올 9월 계약이 만기됩니다. 최근 전세 시세는 8000만원 낮은 1억7000만원입니다. 현 세입자가 재계약하면서 보증금 8000만원 반환 요구에 대비해 절반인 4000만원과 현금 300만원 지급을 제안하려 합니다. 4000만원에 대한 연 이자를 4.5%로 계산할 경우 전세계약 연장기간 2년 동안 360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요. 세입자 입장에서 이사비용, 중개보수와 이사에 따른 번거로움을 감안해 이 정도 선에서 협의가 될까요?"
지난해 10월 '빌라사기꾼'(속칭 빌라왕) 사망사건 이후 전세사기 피해가 속속 드러나며 전세거래가 급속도로 줄면서 집주인과 기존 세입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세 기피현상으로 집주인들이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 경우 고액의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보증금 미반환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기존 세입자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이 하락하면서 갭투자(매매가-전세가 차액을 내고 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수) 임대인들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이 때문에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세입자를 우대하는 조건의 글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고가주택이 밀집해 현재 규제지역으로 묶인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은 전세가율이 가장 낮은 50% 미만으로 하락, 소위 '돈이 있는' 현금부자들이 아니면 전세금 반환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
대치·목동 전세 '반토막'
━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1.2%를 기록해 5개월째 하락했다. 특히 서울 양대 학군지로 알려진 대치동과 목동은 다른 지역 대비 전세가율이 더욱 낮게 나타났다. 강남구의 2월 전세가율은 전년 동기(51.23%) 대비 8.7%포인트 하락한 42.5%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낮았다.
용산구(43.2%) 송파구(45.3%) 서초구(45.9%) 양천구(49.1%) 등도 전세가율이 50% 이하로 나타났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1차' 84㎡(이하 전용면적)는 최근 13억원에 전세계약이 신고됐다. 2021년 말 같은 면적 전세거래가 21억8000만원에 체결됐던 것과 비교하면 9억원 가까이 가격이 내린 셈이다.
양천구 목동도 상황은 비슷했다. '목동신시가지3단지' 95㎡는 최근 6억5000만원에 전세 매물이 나왔지만 세입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21년 12월엔 최고 12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다. 절반 내린 가격에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3월 입학식을 앞두고 전세수요가 몰리는데 이후엔 전세 문의가 끊겼다"고 귀띔했다.
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
매매가보다 전셋값 더 빨리 내려
━
전세가율 하락 현상은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의 하락폭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통상 부동산 경기침체로 집값 하락이 예상되는 시기엔 매매 대신 전세 선호가 강해진다는 점에서 현재와 같은 전셋값 급락은 다소 이례적이란 반응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사기 사건을 계기로 전세계약의 위험성이 커지면서 거래를 기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은 2.96%, 전셋값은 5.45% 각각 내렸다. 올 들어 매매가격 하락률은 1월 -2.09%, 2월 -1.20%를 기록한 반면 전세는 각각 -3.98%, -2.63%를 보였다. 경기와 인천의 아파트 전세가율도 각각 62.2%, 64.3%로 지난해 11월(65.1%, 66.9%) 이후 3개월째 하락했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같은 기간 1.8%포인트 하락해 66.0%를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서도 주택 전세가율은 지난해 10월 63.8%에서 11월 63.7%, 12월 63.4% 등으로 하락했다. 다만 올 1월엔 63.9%로 소폭 반등했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전세 기피 현상으로 전세가율이 떨어지는 추세는 맞다"면서도 "2월 통계가 나와봐야 1월 결과치와 함께 앞으로의 추세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부동산 거래 안되는 이유 '갭투자 실종'
━
전세가율이 떨어지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는 당분간 위축될 전망이다. 고금리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전셋값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반대로 낮을 경우 투자 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15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이 허용됐음에도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을 규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이 지난해 총대출액 2억원 이상에서 올해 1억원 이상으로 강화돼 돈을 빌리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최근 정부가 부동산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등 각종 거래세를 낮춰 일부 급매물이 소진되고 있음에도 거래량이 늘지 않는 이유는 갭투자 수요의 실종이 원인이란 분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과거에 집값이 급등할 때는 대체로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상승하거나 전셋값이 더 많이 올라 갭투자가 활발했다"며 "역전세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급매 소진에 따른 실거래가 상승이 있지만 시세가 본격 반등하기엔 수요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전세 피해를 예방하고 세입자를 지원하기 위해 전세보증보험을 운영하고 연소득 1억원 이상, 주택가격 9억원 초과 1주택자도 전세대출보증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는 전세부실을 더욱 키울 것이란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나타나는 전세부실 문제를 막기 위한 정부의 조치가 어쩔 수 없지만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월세 세액공제 등 지원을 강화하는 균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