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7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제1독서
<세상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13,1-9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5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6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또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는 가운데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7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8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9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교구청에 갈 일이 있을 때, 또 장례로 병원에 갈 때,
그밖에 송도를 떠나 도심지로 갈 때 자주 지나가는 동네가 있습니다.
바로 옛날에 그러니까 거의 50년 전에 살았던 동네입니다.
함께 차를 타고 있는 분에게 이 동네를 가리키면서,
“이 동네가 예전에 자그마한 동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넓은 공터가 있기도 했지요.”라고 말하면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동산이나 공터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거든요.
이 동네에서 제가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은 전혀 없습니다.
동산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섰습니다.
갈대밭이 있었던 공터는 지금 많은 빌딩과 상가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당시에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어머니 친구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는 절대로 개발되지 않을 거야.”
이사 가자마자 곧바로 터미널이 생기는 등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와 친구분의 예상은 불과 몇 년 만에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 뒤 그곳이 계속 발전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예상도 틀렸습니다.
터미널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이제는 개발이 멈춰진 완전 옛날 동네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늘 틀렸습니다.
그런데 자기 예상은 꼭 맞을 것처럼 생각하고 또 그렇게 기대합니다.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만이 틀림 없이 올바른 길로 가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틀린 주장을 맞는 것처럼 우기고 있던 우리가 아닐까요?
따라서 주님의 뜻만을 찾아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도 겸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우리 역시 겸손의 모습으로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 때,
사람들은 대홍수가 날 것을 알았을까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과연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모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종말을 준비하는 모습이 꼭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인간적인 기준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주님의 기준을 따르면서, 주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종말도 언젠가는 반드시 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노아 시대의 사람들,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뜻이 아닌, 주님 뜻에 집중할 때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용서하지 않는 사람의 내적 고통처럼 큰 고통은 없다.
그것은 평안을 거부한다.
그것은 치유를 거부한다. 그것은 망각을 거부한다(찰스 스윈돌)
사진설명: 헝가리의 수도자 엘리사벳 수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