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홀한 설움 -김광석 거리에서 >
박수원
지상에도 없는 그가 지금 이 지상을 뚜벅뚜벅 걷고를 있다
옛날의 그 시장거리 아닌
바야흐로,
고향 아닌 사람도 그의 노래에 취해 섧도록 동무 삼아 흥얼거리며
어깨 위 방천둑길 걸머지고 나란히 걸어가는 곳
담배 한 갑, 두부 한 모 사려
쪼르르 모여 소일하던 그곳 아닌 이곳은 이제 그의 거리
바야흐로 하늘 구름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의 거리이다
어린 시절 어깨 내린 채로
혼자 걷던 그 거리 아닌 이제 나의 거리라고 장악하며 흐르는
그의 노래, 그의 말은 그래서 황홀한 설움이다
오직 노래만이 나였다던 그가
걷는다고 다 나의 거리 되는 것 아닌 이곳에 우뚝 서서
욕심내지 않아도 얻는 선물 있다며
쓸쓸히 부르짖듯 또 속삭이듯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아프더라도 사랑하라며
비로소 아프더라도 추억하라며
그의 거리를 온통 장악한, 그의 노래를 빨간 우체통에 부치고 있다
빨갛게 물든 그 노랠 부치고 있다
기타를 치면서, 하모니카를 불면서, 멋쩍은 웃음을 보내면서
지금 지상에도 없는 그가 이 지상을 뚜벅뚜벅 걷고를 있다
*1994년 류근 시에 김광석이 작곡해 부른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