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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희 펠릭스 (광주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 단장) |
지금부터 7년 전 10월을 잊을 수가 없다. 회사에서 한 달간 포상휴가를 받고, 국내 여행이나 해볼까 하며 마냥 좋아서 싱글벙글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휴대전화가 울렸고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누구네 아들이 맞느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했더니 앞뒤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지금 아버지가 위독해 병원 구급차로 전남대병원으로 이송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아버지가 사는 동네 병원장이었다.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일단 알겠다고 말하고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이미 검사를 마치고 중환자실에 계신 상태였다. 한참 동안 병원 입원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나서야 중환자실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중환자실은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어 아버지를 뵐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상황은 이랬다. 아버지께선 시골 장날, 장터에서 송아지를 팔고 난 뒤 사촌 형님과 만나 약주 한 잔을 하셨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깜빡 잠이 드셨는데, 의자에 앉아 계시다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많아 급히 동네 병원으로 옮겨지셨지만, 머리를 심하게 다쳐 전남대병원까지 오신 것이다.
병원에선 머리에 금이 가고 뇌출혈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걱정이 앞섰다.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면회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밤새 묵주기도를 바쳤다.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제발 내일 CT촬영을 할 때까지 만이라도 아버지가 살아 계시도록 해달라고 성모님께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밤새 묵주를 붙들고 성모님께 기도를 바치는 내내 머릿속에는 '걱정하지 마라, 아버지는 살 것이다'란 말이 맴돌았다. 차츰 마음이 안정되면서 힘이 났다.
아침이 되고, 아버지 상태를 확인한 의사가 아버지께서 깨어나셨다고 했다. 그리고 CT 촬영을 했는데 의사는 어찌 된 일인지 뇌출혈이 멈췄고 피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중환자 대기실로 돌아온 나는 계속해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의지할 곳은 하느님뿐이기 때문이었다. 내 기도가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전달된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면회 시간이 되자 의사는 조심스럽게 수술을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대부분 이처럼 뇌출혈을 일으킨 환자라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출혈이 멈췄고 피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광주 세나뚜스 단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이번에 세나뚜스 서기가 공석이 됐는데, 서기를 맡아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예"하고 말했다.
그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목회장을 비롯해 여러 봉사직을 맡아 활동했지만 참 하느님과 성모님을 만나 뵙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통해 나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하느님께선 당신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알려주셨다. 하느님을 만난 것은 축복이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 일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도록 기회를 주셨다. 또 세나뚜스 일을 맡아 더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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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아멘 !!!
저도 아멘!
아멘.
아멘!
아멘^^
기적은 저절로 생기는것이 아니라 기도위 위력 , 바로 힘 입니다 ~~
아..감사합니다..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