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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났습니다. 나에게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추석 연휴였습니다. 나와 남편은 맞벌이 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신혼부부구요.
추석이 다가오면서 각종 포탈사이트와 뉴스 등은 "명절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댓글에는 남자, 여자 편을 갈라서 싸움질에 한창이었구요. 시댁에서 처음 명절을 지내려 가는 "새댁"이라는 입장에서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글을 열심히 읽고는 했습니다.
그때 나는 과장이 많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친정집은 며느리만 일하는 그런 집이 아닌지라, 친정집에서 명절이면 서너시간씩 전을 부치는 일은 모두 내 몫이었습니다. 떡도 주문하지 않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송편을 빚기도 했지요. 그래서 겨우 일년에 두, 세번인데 그정도 일하는 걸 가지고 무슨 일이 많다고 이렇게 심하게 투덜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친정은 기독교라서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식을 하지 않는건 아닙니다. 명절이면 손님들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아침에 음식을 차려놓고 간단히 예배를 드리는지라, 명절음식은 빠지지 않고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비록 제사를 지내본 적은 없지만, 음식을 하는 것이 그다지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은 외아들입니다. 시댁은 대구입니다. 그래도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설겆이를 잘하는 데다가, 본인이 직접 "우리집에서 설겆이는 아버지랑 내가 다해"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으니까요. 또 우리 시아버님은 무척 자상하시기도 하고요.
한가지 걸리는 것은 남편이 유통업계에 근무하는 지라 추석휴일이 딱 이틀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시간 밖에 걸리지 않지만(어머님은 광주에 사시지만, 본가는 합천이라서 명절엔 합천으로 가십니다), 친정 식구들이 모이는 합천에 다녀올 시간이 애매하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기 전에도 친척 어른들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한동안 명절에 합천은 잘 가지 않았던 터라 그다지 크게 걱정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다음주에 광주에 내려가서 어머님만 뵙고 오면 될테니까요.
그래도 남편에게는 대구에 도착하기 전 기차에서까지 계속 합천에 다녀오면 안되겠느냐고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시간이 안된다고 하더군요. 조금 서운했지만, 참았습니다.
첫날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일단은 온 집안 식구 - 시부모님, 남편, 나-는 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간식을 먹고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님은 새아기가 처음 맞는 명절이라고 특.별.히. 그동안은 떡집에서 주문하던 송편을 집에서 만들기로 했다고 하십니다. 이미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갈아 오셨더군요. 경상도 쪽은 달리 송편피에 색을 내거나, 속을 따로 만들거나 하지 않습니다. 합천쪽도 그랬구요. 그래서 준비된 것은 제대로 갈리지 않아서 덩어리가 진 쌀가루와 삶은 팥뿐이었습니다.
일단 시어머님과 함께 나물 삶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님께서 계속 투덜거리시더군요. 어느 집은 사돈 댁에서 뭘 보내줬다고 자랑한다고. (친정 어머니께서 추석을 앞두고 시댁에 뭘 보낼까 하고 연락을 받았었지만, 그만 두시라고 했습니다. 시댁에서 친정으로 보낸것도 없는데, 괜히 오버하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냥 못들은 척 했습니다.
제가 별 반응이 없자, 그 다음에는 다른 집은 며느리가 음식 다해서 가지고 오더라고 투덜거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럼 다음부터는 제가 서울에서 다 해가지고 내려올까요?"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부터는 투덜대지 않으시더군요.
나물 삶을 준비를 끝내고 송편때문에 남편과 함께 다시 장을 보러나갔습니다. 그러나 치자가루도 신선초가루도 구할 수 없더군요. 결국 계피가루와 녹차가루로 색을 내기로 결정하고 두 가지만 사서 돌아왔습니다.
송편 속은 집에 있던 고구마와 팥과 꿀, 그리고 깨와 계피가루를 이용해서 만들었습니다. 송편 피를 반죽하는 것은 시아버님과 남편이 맡았습니다.
시부모님도 제가 만든 소를 먹어보시고 맛있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ㅅ^V
송편 빚을 준비를 마치고 나서 전을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님은 나물을 삶으셨구요. 남편은 별로 할일이 없으니 심심하다며 딩굴거리다가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더군요.
뭐, 여기까진 괜찮았습니다. 물론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나도 피곤하긴 했지만 전을 부치는 건 친정에서도 항상 혼자하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다르더군요. 친정집에서 퍼질러 앉아서 전을 부치던 것과, 시집에서 옷도 제대로 갖춰입고 얌전히 앉아서 전을 부치는 것은 피로도가 상당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평소라면 3-4시간이 걸렸을 텐데, 그만 4-5시간이나 걸려버렸습니다. 물론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면서 했는데도요. 그렇게 전을 다 부치고, 청소하고, 설겆이까지 하는 동안, 방에 들어가서 자던 남편은 깨지 않았습니다. (전에 인터넷에서 시댁에 도착하면 부인들이 음식준비 하고 일하는 동안 남편들은 놀러 나가거나 퍼질러 잔다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설마 이런 남편이 어디있을까 했습니다. 제 남편이 그러더군요.)
나이 많으신 시부모님이 움직이시는데 젊은 남편이 들어가서 잔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깨우려고 했더니 시부모님이 말리셨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할텐데 그냥 자게 냅둬라."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아침에 같은 시간에 일어났는데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리고 시부모님들 모르게 방에 들어가서 옆구리를 힘껏 꼬집어서 깨웠습니다. -ㅅ-++
저녁을 먹고 나서 송편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우리 친정집처럼 온 가족이 둘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송편을 빚는 장면을 떠올렸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손님이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네명이 앉아서 빚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나 혼자 앉아서 송편을 빚고 있었습니다. -ㅅ-;;;; 어머님은 송편을 빚는대로 찌고 계셨고, 아버님과 남편은 손님이랑 담소를 나누느라...
손님이 돌아가실 때쯤 송편 빚기가 끝났습니다. 시아버님께서 친정 어머님께 전화를 하시더군요. 나는 낮에 이미 어머니와 통화를 했던지라 그냥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더 힘든것을 이상하게 여기면서요.
시아버님께서 통화 중에 그러시더군요.
"저야 아들, 며느리 다 옆에 앉혀놓고 있어서 좋지만, 사부인께 미안해서 어쩝니까?"라고요.
물론 악의는 없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내가 그렇게나 엄마가 보고 싶어질 줄 미쳐 몰랐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6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대구에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합천에 계실 어머니가 너무 보고싶어지더군요. 물론 내 동생이나 동생의 부인과 조카들도 있고 할머님도 계실테지만, 딸과 사위를 보고 싶어하실 우리 어머니 심정이 갑자기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한동안을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방에 몰래 숨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지요. 코가 막혔다고 감기걸렸느냐고 걱정하시더군요. ㅠ.ㅠ
밤 12시가 되어서야 일이 모두 끝났습니다. 아침에 새벽기차를 타려고 일찍 일어난 데다 하루 종일 피곤했고 울기까지 해서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추석날 당일.
우리 시댁은 시아버님 형제분들 댁을 돌아다니면서 제사를 네 번을 지낸다고 하더군요. 그때 여자들도 물론 같이가서 여자들은 부엌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전에는 아홉 번을 지내던 것이 많이 줄어서 네 번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제사 지낼 집으로 가는 길. 친정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 많으니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씀.
"너네집은 쌍것이네."
욱하더군요. -ㅅ-++ 그래서 친정 집안 족보에 있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어르신들 성함을 주르륵 불러드렸습니다. (위인전에 나오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 집안의 족보를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__))
그리고 나서 "어머님 집안은 어떠세요?"라고 말씀드리려다... 참았습니다. 남편 집안 족보도 대충 알고 있었고, 어머님 집안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친정 집안은 모두 기독교입니다. 나는 교회에 다니라고 강요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거든요. 그러나 제사를 지내고 안지내고는 각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도 싫지만, 제사를 지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강요하거나, 절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절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싫습니다.
더욱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 집안을 욕하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약간 속이 뒤틀린 상태로 첫 번째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거실에서 손님들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고, 여자들은 주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네 집안의 며느리가 다 모이자 7명이 되더군요.
그렇게 며느리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 지 않더군요. 주로 뒷담화였습니다. 남편에게서 사촌들 사이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제사가 끝나고 남자들은 거하게 한상 받더군요. 여자들은 제사상을 치우고, 제사 음식을 정리하고, 남자들 상을 차리고, 후식으로 과일도 깍고나서 제기를 씻어서 넣어 둔 다음에 남자들이 다 먹은 상을 치우고 설겆이를 했습니다. 그런 후에야 따로 상도 안차리고 그냥 커다란 양푼에 한가득 밥을 비벼서 국도 없이 부엌에 선 채로 나눠 먹었습니다.
물론 불공평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집으로 갔습니다. 아직 제사상이 안차려져 있었습니다. 제사상을 차리는 건 막연히 남자들이 했겠지라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아니더군요.
둘째 며느리 - 저에게는 형님이신 이분은 음식을 나르다가 시어머님께 혼이 났습니다. 제사상의 음식은 집안의 큰며느리가 날라야지 다른 사람이 나르면 부정 탄다고요. 심지어 부엌에 며느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자 제사 음식쪽으로는 숨도 쉬지 말랍니다. 여자 입김이 들어가면 부정탄다고요. -ㅅ-;;;;
다른 집안 며느리들은 본인들의 시어머님이 아닌데도 다들 무서워서 구석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더군요. 그 시어머님이 참 대단하신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거라고요. 예전엔 큰며느리의 멱살을 잡고 끌고 다니기도 하셨답니다. 0ㅅ0;;;;
이 두번째 집에서는 나와 남편을 나란히 세우시더니, 어디 나가면 큰누이랑 막내동생으로 보이겠다고 하면서 웃으시더군요. 제가 남편보다 연상이라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봅니다. 그래서 "우리 남편이 좀 많이 동안이죠? 호호호"라고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세 번째 집으로 갔습니다. 역시 그집에서도 며느리는 제사상을 차리고, 남자들은 그저 멀뚱히 서서 보기만 했습니다.
마지막은 우리 시댁이었습니다. 상황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아니, 조금 달랐습니다. 세 집이나 다니면서 제사를 지내느라 피곤하셨는지 남자분들은 아에 드러누워서 주무시더군요.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제사 준비가 끝나고 남자분들은 마지막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가 끝나고 다시 남자들은 거하게 한상을 받고, 시어머님과 저는 과일을 깍고 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상 앞에서 담소를 나누시는 동안 저는 제기를 설겆이했습니다.
솔직히 이쯤 되니 속에서 불이 나더군요. 그래서 남편을 불러서 내가 설겆이를 할테니, 당신은 옆에서 헹구세요라고 시켰습니다. 우리 남편도 미안했는지 다른 형님, 형수님들 눈치를 보면서 옆에 서서 헹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본 우리 형님들, 난리가 났습니다. 결국 남편은 다시 상 앞으로 복귀하고, 형님 한분이 제 옆에서 헹구기 시작하셨습니다. 속이 상했습니다. 우리 형님들, 하루 종일 차리고, 치우고, 설겆이하느라고 고생하셨는데 우리 집에서도 그러시는게 참 안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서 음식 드시고 쉬시라고 해도 계속 같이 설겆이를 하시더군요.
우리 집에서 우리 형님(며느리)들도 겨우 상을 받았습니다. 남자들은 네 집 다에서 한 번씩, 총 네 번을 상을 받아서 먹고 놀았지만, 며느리들은 추석날 오후 늦게서야 겨우 상 앞에 제대로 앉아 보았습니다. ㅠ.ㅠ
그러나 마음이 편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형님 한분은 아이가 하나입니다. 네 집에 제사를 지내러 다니면서, 둘째는 안 낳느냐는 이야기를 들으신게 제가 들은 것만 한 스무번은 되더군요. 낳으면 자기들이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남의집 둘째 낳는것에 참 관심도 많으시더라구요. -ㅅ-ㅋ
뭐, 사실 이쯤되니 형님들이 뒷담화를 나누시는게 이해가 되더군요. 워낙 힘드셨을테니 어떻게 해서든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한 방법이려니 여겨졌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시간에 맞춰서 시댁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폭발해 버렸습니다.
일이 힘들었냐구요? 물론 우리집에서 하는 것보다는 불편했지만, 그정도는 일년에 서너번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닙니다.
남녀 불평등? 솔직히 욱하긴 했습니다. 속도 많이 상했구요. 하지만 노인분들이 언제까지 살아계시진 않을거고, 조금씩 바꾸어 나가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얼굴에 철판 깔고, 계속해서 명절때마다 우리 남편에게 설겆이를 시킬 것입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더군요. 명절증후군이란게 일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더군요.
우리 어머니, 그 깐깐한 노인들이 사는 합천에서 종교때문에 제사 안지낸다고 평생을 구박받고 사셨습니다. 이젠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시자 찾아와주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수화 통역이나 호스피스 자원봉사 등,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고, 악기도 다섯가지나 다룰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여기저기 연주회도 많이 하십니다.
하지만 시골분들에게 우리 어머니는 그저 "남편 없는 여편네"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번 추석엔 거기에 더해서 "딸내미 시집보내 놨더니, 사위고 뭐고 찾아 오지도 않는 불쌍한 여편네"까지 되셨습니다.
다르더군요. 결혼하기 전과는 너무 다르더군요. 나도 명절에 어머니 못찾아 뵙는게 이렇게나 가슴에 한이 될 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나 가슴이 아프고 이렇게나 속이 상할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리 친정이 "쌍것" 소리 들은 것이 이렇게나 마음에 깊이 남을 줄 몰랐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한마디 더 보탰습니다. "다음 부터는 기차표를 밤 늦은 걸로 끊어서 사촌형이랑 형수님들이랑 같이 놀고 오자" 라고요.
이 인간, 추석이라고 하루 종일 우리 엄마한테 전화 한통화 안했습니다. ㅠ.ㅠ
나는... 엄마한테 전화하면 또 울어버릴 것 같아서 전화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내내 집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시부모님 눈치 안봐도 되는 우리 집에서, 남편이라는 인간, 우리 엄마의 사위라는 인간 앉혀놓고 정말 미친듯이 울었습니다.
그래... 너 기차표 늦은 걸로 끊어서 니네 사촌들하고 놀 생각은 하는구나... 근데 왜 시골에서 사위안온다고 동네 사람들한테 무시당할 울 엄마한테 가볼생각은 못하니?
가는데 고작 한시간 밖에 걸리지도 않는데...
난 너랑 결혼했다는 이유로 너네 집가서 너네 부모님 위해서, 너네 조상님 위해서 너네 친척들 위해서 소화불량 걸리고, 입술에 물집잡히도록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고 허리 빠져라고 일했다.
그럼 넌 나랑 결혼했으니까 당연히 울 엄마한테도 한시간이라도 가봐야 하는거 아니니? 근데 뭐? 너네 사촌들이랑 노래방가고 놀자고? 추석이라고 우리 엄마한테 전화 한통화 안한 주제에, 다음에는 너네 사촌형, 형수님들이랑 놀고 내려오자고?
너도 어쩔수 없는 남자구나... ㅠ.ㅠ
평소에 집안일 시키는 대로 잘하던 우리 남편, 그제서야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알더군요.
처음 남편을 우리 엄마에게 소개시킬때, 대구 남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합천 남자(우리 아버지)와 결혼한 우리 어머니가 왜 그렇게 뒤집어 지셨었는지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왜 며느리들이 명절증후군을 앓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 명절때문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생기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집에 돌아온 후부터 오늘까지 계속 나한테 들들 볶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추석"때문에 들볶일 예정입니다. -ㅅ-+
시댁 분들은 자신들의 귀한 아들이 집에 돌아가서 며느리에게 이렇게 볶일 거라는 거, 정말 모르시는 걸까요? 나라면 자기 자식 생각해서라도 며느리들만 일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명절날 친정에도 보내줄텐데 말입니다. ("보내준다"라는 말도 이상한 말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 "보내주는 것"일듯 합니다.)
시댁에서는 며느리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시집간 순간부터 우리 며느리들은 하루 종일 음식 장만하고, 제사상 차리고, 남자들 상차려 주고, 치우고, 설겆이하고 저녁에는 또 시댁식구들과 놀아 주느라고 명절날 찾아갈 부모도 가족도 없어야 하는 천애고아가 되어야 하나 봅니다.
언젠가 우리 나라에도 명절증후군이라는 것이 없어지는 날이 올까요? 모두가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명절이 될 수는 없는 걸까요?
벌써부터 내년 설날이 두려워지고 있습니다.
출처,미디어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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