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머무는 동네
주중 내가 머무는 곳은 거제 연초면 연사리다. 고현에서 옥포로 가는 중간 지점인 삼거리가 연초면 면소재지다. 거기서 5호선 국도가 거제 북부에 해당하는 하청면과 장목면으로 이어진다. 낯선 거제로 떠밀려 와 보내면서 유배가 아닌 휴양지로 여겨 연초면 일대를 샅샅이 누볐다. 거제 전체를 두루 다니기도 했다. 이제 웬만한 현지인 못지않을 만큼 거제의 자연 지리에 밝은 편이다.
연초면은 바닷가를 접한 오비리와 한내리가 있다만 내륙 지역이 대부분이다. 오비와 한내도 어촌 포구가 아닌 조선업체 배후 공단이다. 맞은편 고현만의 삼성중공업 조선소 협력업체들이 들어서 있다. 그 밖 내륙은 산지와 농경지가 대부분이다. 농경지는 밭이 적고 대부분 논이다. 다른 지역에선 벼농사 뒷그루로 비닐하우스 수박농사를 비롯한 특용작물을 가꾸는데 여기는 일모작이다.
연초면 면소재지는 죽토리이고 송정리와 천곡리가 옥포와 인접했다. 이목리에서 대금산이 흘러내린 명동리 일대는 규모가 제법 큰 연초호 담수댐이 있어 거제 시민 생활용수와 조선소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하청면으로 가는 국도 따라 다공리와 덕치리가 있다. 앵산이 높고 면사무소 뒤 남여산과 효촌마을 뒤 와야봉과 약수봉이 봉긋하게 솟았다. 연초천이 고현만으로 흘러든다.
다른 농어촌 면지역은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1개도 명맥을 잇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연초면은 그런 곳들과 사정이 달랐다. 오래 전부터 있어온 관내 4개 초등학교 가운데 1개만 문을 닫았고 나머지 3개 초등학교는 살아남아 있다. 연초초등학교와 오비초등학교와 송정초등학교다. 연초댐 상류에 위치한 명동초등학교는 폐교된 터에 은퇴한 교육자가 민속박물관으로 운영하였다.
중학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1개교다만 근년에 고등학교가 새로 생겼다. 물론 연초면 출신 학생만 수용하진 않지만 교통이 편리한 지역 특성을 고려해 신설된 고등학교다. 고현과 옥포에서 중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거기 고등학교서 수용을 못다 해 연초에 고등학교를 세워야 할 처지였다. 조선소가 활황일 때 근로자들이 대거 유입되어 초중고 학령기 아이들도 함께 늘었던 까닭이다.
연초면에서 거제 유력한 토박이 성 씨 셋이 있다. 죽토리엔 의령 옥 씨가 터를 잡았다. 연초초등학교를 돌아가는 산자락에 입향조 선산이 잘 조성되어 있고 별사위공파 관암 문중회관도 빌딩으로 세워져 있다. 다공리에는 칠원 윤 씨 집성촌이었다. 출향 인사로 관계나 재계에 알려진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임진왜란 때 왜구와 맞서 장열하게 순절한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내가 머무는 연사리엔 영산 신 씨가 대성으로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원룸이 빼곡해져 외지인 더 많아졌으나 예전엔 신 씨 집성촌이었던 모양이었다. 마을 가운데 ‘공영사(恭靈祠)’라는 덩그런 재실도 들어서 있다. 매년 사월 첫 토요일 후손들이 향사를 올리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행정실 주무관도 영산 신 씨로 연사리 원주민이다. 매사 빈틈없고 성실한 분이다.
거제에는 알려진 절이 없는 게 특징이다. 같은 섬이지만 남해는 보리암이나 망운사와 같은 유서 깊은 사찰이 있는데 거제는 그렇지 못했다. 고작 연초초등학교 뒤 관음정사라는 암자와 다공리 부처골에 불곡사가 있었다. 대신 마을 곳곳에 교회는 손가락으로 못다 헤아릴 정도로 많았다. 어쩌다 야간 산책을 나가 주변을 살피면 뾰족한 십자가 선홍색 불빛이 새벽까지 밝게 비추었다
연사리 도로변 식당이 두 곳 있는데 난 아직 한 번도 들려보지 않았다. 닭도리탕이나 생선구이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편의점은 두 군데인데 생탁을 구하느라 가끔 들린 적 있다. 면소재지는 중심지답게 여러 업종 가게들이 많았다. 돼지국밥집을 한 곳 알아 동병상련 이웃 학교 친구와 소주잔을 같이 들기도 했다. 그 맞은편 농협 마트에서는 두부나 풋고추를 사 와 찌개를 끓였다. 1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