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현리 두루봉 흥수골에
보랏빛 국화 무더기에 쌓인
어린 영혼이 있어
어미의 젖가슴 담겨
감을 수 없는 그윽한 눈망울 있어
울먹이다 출렁거리며
빗살무늬 토기의 투박함을 기억하려는
촉촉한 그리움 있어
가는 마음, 보내는 마음
칡넝쿨처럼 수수만년 거슬러 올라
가느다랗게 맥을 이어
그 어미와 어미의 뼈와 살로
들숨 날숨 엮어 온 한 여인의 눈길이
아이의 휑한 눈 언저리에 머물러
숨이 멎는 듯 가슴이 저려와
쉬이 떼지 못하는 발걸음
돌덩이처럼 무겁다
어머니 저는 괜찮습니다
어머니 가슴에 별로 박힌 흔적
꽃으로 살겠습니다
부디 강건하고 평온하시어요
잔잔한 입매무새의 흥수아이는
면면히 숨결을 이어 오늘에 살아
태중인 듯 꿈속인 듯 콧잔등 씰룩씰룩
어미를 그리워하며
긴 어둠 속을 꼬리별처럼 유영 중이다
- 우정연, 「흥수아이」 전문 (《우리詩》2018. 4월호)
시인께서 주를 달아 밝히길 ‘흥수아이’란 국립청주박물관에 보존된 4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5~6세 아이의 화석이라고 한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충북대박물관에는 그 화석을 토대로 추정하여 실물 크기의 입상을 세워 놨다고 한다. 당초 이 동상을 ‘흥수아이’로 명명한 것은, 화석이 있는 굴을 최초 발견한 사람이 김흥수 씨여서 그 굴을 흥수굴이라 하였고, 화석의 주인공을 ‘흥수아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과연 흥수굴에서 나온 이 뼈조각이 구석기 시대의 것이 맞느냐 아니냐는 아직도 학계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대체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라는 게 정설이라 한다.
시인께서 국립청주박물관을 견학하여 홍수아이의 화석을 본 듯하다. 아니 충북대박물관에서 실물 크기의 흥수아이 동상을 보고 왔는지도 모른다. 아마 후자 쪽이 보다 구체적인 상상력을 발동시켜 여성으로서, 한 어머니로서 자식에 대한 자애심이 자신도 모르게 솟구쳤으리라.
지금부터 4만 년 전, 이 땅에 한 아이의 구체적인 죽음이 있었다. 그 죽음을 둘러싸고 한 어미의 피눈물 나는 모정이 있었다. 그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했더라면 아마 구석기 시대의 용감한 사냥꾼으로 활동하다 죽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어린 나이에 죽었든, 그의 죽음을 바라본 어미가 그 후로 몇 십 년을 더 살고 죽었든, 그것이 기나긴 세월이라는 시간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서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 자식을 떠나보내는 애통해 하는 모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 여기 4만 년 후 한 여성 시인께서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간 유장한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변하고, 새로 태어나고, 죽었는데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모정의 세월이다. 흥수아이를 가슴에 품은 두 여인의 애달파하는 슬픔을 보라, 자애로운 어머니를 보라. 그 여성됨을 보라.
제1연은 흥수아이의 실상에 대해 화자의 마음에 들끓는 애잔함을 삭이고 있는 ‘~있어’ 의 세 번 반복이 있다. 마음에 일어나는 슬픔을 꾹꾹 누르며 세 번이나 '~있어'의 참음은 시인이 얼마나 자기감정에 복바쳐 입술을 깨물고 있는지를 어조로 짐작할 수 있다. 제2연에서는 4만 년의 세월을 전후하여 두 여성이 하나로 겹치면서 어미 마음 하나로 시간의 응축을 볼 수 있다. 제3연에서 흥수아이가 죽음을 두고 이별하며 하는 말을 듣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흥수아이의 어미인가, 시인인가, 아니면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인가. “태중인 듯 꿈속인 듯 콧잔등 씰룩씰룩 /어미를 그리워하며”(여성이 아니면, 어머니가 아니면 이 부분은 절대 쓸 수 없다), 모성 안에서 영원한 자식을 꼬리별로 그리고 있다.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여성이 아니고 남성이기에 머리로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으나 삼라만상을 그러안는 화해와 따스함과 자애로움을 나는 모른다. 일찍이 노자가 도덕경 제10장에서 이르기를 “天門開闔 能爲雌乎?천문개합 능위자호”라 하였다. 이 말은 “감관을 통해 외부와 관계를 맺음에 암컷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최진석 역)라는 말로 번역된다. 시인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감각적인 것을 우리 몸의 눈, 귀, 코, 입, 피부를 가지고 받아들여 사고하고 느끼는데 그때 여성의 몸가짐(페미니즘적 사고, 생태학적 관점)을 견지할 수 있느냐고 노자는 이미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여성적 사고가 실로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이 땅의 삼라만상을 살리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4만 년의 세월을 꿰뚫은 모정의 위대함이 있다.(임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