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남녀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자주 눈에 띈다. 짧은 시간 안에 서로의 조건과 취향을 가늠하는 모습이 마치 면접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이 먼저 나왔다. 얼마 전에는 명품 핸드백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가방의 브랜드로 상대의 취향과 삶의 태도를 가늠해 보려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을 보는 내내 마음이 짠해졌다.
그때 문득 오래전 아들이 사다 준 명품 핸드백이 떠올랐다. 막내아들은 대학 시절 휴학을 하고 미국으로 인턴을 떠났다. 세상을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말 뒤에는,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연초에 출국해 낯선 땅에서 일을 시작했다. 추수감사절 세일 무렵, 엄마 선물을 하나 샀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귀국하던 날 아들은 큼직한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엄마는 늘 큰 가방이 필요하잖아요." A4 용지가 넉넉히 들어가는 명품백이었다. 부드러운 가죽에 단정한 로고가 박혀 있었고, 손에 쥐는 순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기쁨보다 먼저 마음이 울컥했다. 그 가방 안에는 아들이 보낸 시간과 수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식의 노고를 덜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을 준 것 같아 마음 한쪽이 불편해졌다.
그 가방을 들 때마다. 아들의 미국 생활 일부가 종종 떠올랐다. 어느 날 우연히 아들이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인턴 생활 초반, 급여가 밀려 저녁을 거의 굶다시피 한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허겁지집 밥을 먹는 아들을 보고 동료가 물었다고 한다. "왜 그렇게 빨리 먹어요?" "요즘은 저녁을 거의 못 먹어서요."아들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 날 동료는 아들을 집으로 초대히 맥주와 볶음밥을 대접해 주었다고 했다. ' 볶음밥 맛은 생각도 안 나는데, 그날 진짜 많이 먹었어요." 낮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자신을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견뎠을 아들, 그래도 따뜻한 동료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그 말을 아들은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가슴이 먹먹했었다
가방은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안쪽의 지퍼 포켓과 보조 포켓은 실용적이었고. 가죽의 결은 시간이 지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만 가운데를 여미는 장치가 똑딱이 단추뿐이라 늘 불안했다. 몇 번 중요한 자리에서 가방 속 물건들이 쏟아져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생겼다. 결국 텔레비전에서 봤던 명품 수선집을 찾아갔다. "안이 보이지 않게 지퍼를 달아주시고, 안쪽에 '싱'을 넣어 가방 형태도 서 있게 해주세요." 수선비는 만만치 않았다 가벼웠던 가방이 묵직해졌으나, 모양은 각이 잡혀 가방이 세워졌다.단정했지만 조금은 투박해진 모습이었다.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말했다. "엄마, 그러면 그 보증서 못 써요.' 가끔 생각한다. 그때 수선집에 서 "그냥 쓰세요"라고 말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물론 장사하는 입장에서 그럴 리 없겠지만. 아들이 낯선 미국에서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사다 준 가방을 내가 망쳐버린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늘 미안했다. 아들 등골을 빼먹은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행용 캐리어 하나를 잃어버렸다. 인천공항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다렸으나 끝내 내 캐리어가 나오지 않았다. 분실신고를 하였더니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행 비행기로 갈아탈 때, 나의 여행 가방이 실리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며칠이 지나서 가방이 택배로 도착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개봉 영상을 찍으라 해서, 준비하고 조심스럽게 가방 지퍼를 열었다. 안에는 옷과 선물, 여행지에서 고른 엽서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가방이 고마웠다. 이름도, 값도 내세울 것 없는 여행 가방이, 주인 없는 시간을 견디며 내 물건들을 묵묵히 지켜주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 일을 겪고 나서 가방이 새롭게 보였다. 가방은 결국 가방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름과 값으로 물건을 판단하게 되었을까?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더 오래 남는 것을. 아들이 사준 명품 가방은 지금도 내 곁에 있다. 전보다 무거워졌고 조금은 투박해졌지만, 그 무게만큼 아들의 시간과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요즘 나는 물건을 고를 때 이름을 먼저 보지 않는다. 대신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온기를 더해줄지를 생각한다. 가방 하나를 통해 배운 것은 결국 삶의 방식이었다. 사랑은 늘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장 무겁게 남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