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明)나라 말기의 환초도인(還初道人) 홍자성의 어록인《채근담(菜根譚)》은 인생의 처세를 주로 다루었으며 인간이 자연의 변화에 순응할 것과 세상만사에는 반드시 인과가 따른다는 것을 이르는 인생의 지침서이자 하나의 인격수양서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제호인 ‘채근(菜根)’은 맛없고 거칠고 보잘것없는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이는 풀뿌리로 연명해야 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생활할 수 있다면 세상에 두려운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뜻의 송나라 왕신민이 지은《소학(小學)》의 ‘인상능교채근즉백사가성(人常能咬菜根卽百事可成)’에서 따온 것이다.
전체적인 글의 구성은 총 2권으로 전집의 225장은 주로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마음가짐과 도덕적인 훈계를 내용으로 담고 있고, 후집 134장은 대체로 은퇴 후의 악월담풍(握月擔風)하는 즐거움을 말하였다. 전체 359장이 일종의 격언과 같은 단문으로 이루어진 어록형식의 금언집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출처진퇴(出處進退)ㆍ처세훈(處世訓)ㆍ인간행락(人間行樂) 등을 유교를 중핵으로 도교 및 불교의 가르침을 도입ㆍ융합하여 만들었다.
《채근담》의 제사(題詞)를 써준 홍자성의 벗 우공겸(于孔兼)은 자신의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저자가 청렴한 생활을 하면서 인격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인생의 온갖 고생을 맛본 체험에서 우러난 주옥같은 지언(至言)”이라고 했다.
또한 홍자성이 처음에 책을 만들어와 우공겸에게 제사를 부탁했을 때, 우공겸은 내용을 읽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은 이미 성현의 경지에 이르렀고, 부귀와 공명을 티끌처럼 보았으니 그 식견과 기상이 높고 깊으며, 붓끝으로 써내려간 글은 진리가 아닌 것이 없고, 그 표현은 모두 자연의 법칙 그대로이다. 그가 털어놓은 말은 세상에 약이 되고 사람을 깨우쳐주는 소중한 것들뿐이어서 귀로 들은 것을 금방 입을 통해 나올 만큼 가벼운 지식이 아니다.”
《채근담》은 한마디로 동양적 인간학을 말한 것인데, 인간의 최대 관심사인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즐기며, 무엇을 찾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인생의 절실한 질문을 제재(題材)로 한 책이다.
이런 내용을 다룬 서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 무수히 많다. 부지기수의 명저들 가운데서도 어찌 보면 가장 알기 쉬우면서 의미심장하고, 누구나 겪고 있고 알고 있는 일상생활의 평범한 사실을 문제로 삼으면서도 일찍이 깨닫지 못했던 어찌 보면 인생의 참된 뜻과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교시해 주는 책이 바로 채근담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채근담의 여러 번역본들이 있는데, 특히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17년 《정선강의 채근담(精選講義 菜根譚)》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채근담에 자신의 풀이를 덧붙여 저술·출간하여 일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폐쇄된 시대를 살다 간 선비로서의 고뇌를 들려주었다. 또한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유명한 시인 조지훈이 1959년에 《번역서 채근담》을 내놓기도 했다.
채근담 중 후집 제 128장의 내용을 하나 이록(移錄)해 보면, 『 [제128장] - 이로운 일이 있으면 해로운 일도 생긴다.
/ 일사기즉일해생 고 천하상이무사위복(一事起則一害生 故 天下常以無事爲福) - 한 가지 이로운 일이 일어나면 곧 한 가지 해로운 일이 생긴다. 그러므로 천하는 언제나 무사한 것으로 복을 삼는다.
// 독전인시 운 권군막화봉후사 일장공성만골고(讀前人詩 云 勸君莫話封侯事 一將功成萬骨枯) - 옛사람의 시를 읽어보니 이르기를 그대에게 권하노니 제후에 봉해지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한 장수가 공을 이룸에는 만 사람의 뼈가 마른다고 하였고,
/// 우운 천하상령만사평 갑중불석천년사(又云 天下常令萬事平 匣中不惜千年死) - 또 이르기를, 천하가 항상 태평하기만 한다면 칼은 천 년을 갑 속에서 썩어도 아깝지 않으리 라고 하였다.
//// 수유웅심맹기 불각화위빙선의(雖有雄心猛氣 不覺化爲氷霰矣) - 비록 웅장한 마음과 용맹한 기상이 있을지라도 모르는 사이에 얼음과 눈이 되어 사라지리라. 』
후집 128장의 두 번째 줄의 옛사람의 시를 읽어보니...에서 옛사람이란 당나라의 시인 조송(曺松)을 말하는 것이고, 조송은 그의 시 기해세(己亥歲)에서 마지막 구절을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 즉, 한 장수가 공을 이루려면 만 명의 뼈가 마른다.’고 마무리 하였다.
택국강산입전도 / 澤國江山入戰圖 / 수향의 이 강산이 전쟁에 빠져드니 생민하계락초소 / 生民何計樂樵蘇 / 백성이 어찌 나무를 하고 풀 뜯는 것을 즐기랴 빙군막화봉후사 / 憑君莫話封侯事 / 그대에게 부탁하노니 후를 봉하는 일을 말하지 말라 일장공성만골고 / 一將功成萬骨枯 / 한 장수가 공을 이루려면 만 명의 뼈가 마른다.
이루어 놓은 공적이 크면 클수록 존경과 상찬과 함께 질투와 선망이 집중된다. 이것은 인지상정이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적이란 자기 혼자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숱한 사람들의 덕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명심해야한다. 이런 것을 잊고 함부로 으스대다가는 뜻하지 않은 봉변으로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채근담》은 짧은 어록의 묶음으로 되어 있으면서 그 하나하나는 시적 표현과 대구법을 활용하고 있어 하나하나가 명언이요, 격언이며, 또 읽기에 멋이 있다. 또한 그 소재는 극히 굉부(宏富)하며, 그 내용은 구체적인 인간 생활의 여러 가지 상황과 사실, 인간 심리와 인심세태를 총망라한다. 그 성격은 누가 언제 어디서도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고 음미하는 데 매우 적합하게 되어 있다 하겠다.
2차 세계대전당시 히틀러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자행했던 대학살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의 석유와 금융, 언론, 영화 등 주요산업의 여러 분야에서 당당한 지배세력으로 살아남아 유대민족 우수 국민성을 세계만방에 입증하고 있음은 아마도 분명 그들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5000년 역사의 사회 전반의 모든 사상(事象)에 대한 지혜서인 《탈무드(Talmud)》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눈앞에 도래한 태평양의 새 시대에 위기의 거세(擧世)를 이끌어야할 동양의 삼국 중 명실공이 가장 우수한 민족성을 가진 우리 대한의 국민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 서게 될 새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데 반드시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
- 글쓴이 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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