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에서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라고 간략하고 단순하며, 마치 별 일이 아닌 양 무심해 보이게 증거되어 있지만..
사실 조금만 통찰해 봐도 그 시간들은 사도 바울에 있어서는 가장 길 수 있고 복잡할 수 있으며, 심히 무겁고 버거울 수 있는 시기들일 수 있는 것으로 실제로 그때 당시 바울은 아무 잘못도 없이 대적들의 모함과 불확실한 증인과 거짓 증언들 등과 함께 선동이 된 무리들에 의해 심히 부당하고도 억울하며 말로 안 되게 몰매를 맞았고, 힘 있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갇히고 고소당한 채 재판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들, 심지어는 그런 중에서도 암살의 위험들까지 끊임없었던 상황들이 계속 되었던 것이며, 바로 그러한 시간들이 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 세상적, 상식적인 관점에서는 그러한 시기가 단지 억울하고 원망스러울 수 있으며, 조금도 의미가 없어 보이고 공연한 고초들 같아 보이며, 전적으로 시간만 낭비한 것 같고 고통들만 가중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신실한 믿음과 함께 정반대인 경우일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그 2년간은 바울에 있어서 천금 같은 시간이었던 것으로 하나님 안에서 더 놀라운 뜻과 계획과 섭리들을 위해 더더욱 소중하게 훈련 받고 준비되어 지며 연단되고 단련이 된 때였던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며, 게다가 그렇게 짧아 보이지 않았던 하루하루들, 순간순간들에 있어서 그간의 바울로 봐서는 날마다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마치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의 가사처럼 어떤 식으로든 능히 감당하고 이기며 나름의 감사와 찬미의 제목을 찾으면서 더욱 더 치열하게 기도하고 말씀대로의 신앙으로 몸부림침과 함께 갈수록 더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더욱 깊어지고 강렬하며 풍성케 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게 십자가 붙잡는 믿음이야 말로 생각 이상의 고난과 핍박과 환란들 중에서라도 오히려 더 단련되고 연단되며 성숙되고 준비되어 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러한 시간과 과정들로 인해 아래 본문 이후에 계속해서 살펴보면 그렇게 속절없어 보이는 2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하나님의 더더욱 놀랍고 강력하며 복된 일들, 실상 상상도 못할 일들이 이어지고 예비되어 있는 것을 여러 가지 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특히 그렇게까지 준비되어진 바울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생생하게 역사하시면서 당시 그 지역의 분봉왕과 총독, 고위직들 등 세상적으로 온갖 권력과 영향력들이 있는 자들을 위시해서 구원이 필요한 다양하고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자신에게 나타났던 구원의 일, 복음의 역사에 대해 비록 공판이라는 형식이었긴 했지만 마음껏, 상세하게 간증할 수 있게 하신 것을 볼 수 있고, 게다가 그러한 시간과 과정들을 통해 결국 당시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로마에서 2년간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게 되는 기회와 통로가 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으며, 특히 그때 그 로마에서 2년간 증거했던 복음은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을 통해 2년간 온전히 증거했던 복음과 내용적으로 그리 다를 바 없을 것이기에 그와 함께 어느 정도까지의 은혜와 능력들, 역사와 열매들이 있었을 지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바울은 그런 과정들 속에서 당시에 아주 큰 비용이 필요했을 로마행을 무료로 가게 된 것이며, 더군다나 백부장 율리오의 특별한 호의와 호위 가운데 갈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유라굴로라는 광풍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드러내며 구체적, 체험적으로 증거하고 함께 누릴 수 있었던 것이며, 특히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멜리데 섬과 관련해서 다양하고도 기적적인 은혜와 능력들이 생생하고 강렬하며 풍성했고, 또한 중간 중간 여러 모양의 동역자들을 통해 힘을 얻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로마에서의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대적들, 소지들이 이미 막히고 제거되어 있는 등과 같은 하나님으로 인한 은혜와 역사들, 쓰임과 열매들 등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쳤던 것임을 발견할 수 있 것입니다..
사실상 오늘날의 우리들에 있어서도 그러한 이치와 원리들, 실제와 역사들은 근본적으로는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으로 오늘 이 시간에도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신실한 믿음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더디고 헛되게 보이며, 힘겹고 버거우며, 때로는 억울하고 막막한 시간들을 감당해야 될 때도 있을 수 있는 것인데..
그렇지만 바로 그러한 때는 하나님으로 인한 더 크고 강력한 은혜와 영광의 시간이 예비되어 있고, 무엇보다 더욱 더 큰 그릇과 영성으로 단련되고 연단되면서 준비되는 시간일 가능성 큰 것이자 실상은 생각 이상으로 분명하고도 확실한 것으로 바로 그러한 때에는, 아니 그러한 때에야 말로 실상 한 가지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곧, 바로 그때에야 말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더욱 더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 염려와 두려움들, 불평과 원망들, 연약과 한계들 등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가가면서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가면 갈수록 더 생생해 지고 강렬해 지며 풍성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실상 조금만 찾아 봐도 모세야 말로 40년간이나 그러한 연단과 준비의 시간들이 있었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요셉도 아무 잘못도 없이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에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러했고, 다윗도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그러했으며, 실상 하나님께 귀하게 쓰이고 크게 사용되며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풍성한 열매들로 넘치게 된 믿음의 선배들 중 크고 작은 시련과 박해들, 그로 인한 더욱 치열하고 절실했던 믿음의 몸부림과 경주들, 그러면서 그로 인해 그 속에서의 하나님으로 인한 더욱 더 크고 놀라운 손길과 결실들이 없었던 이들을 잘 찾기가 힘들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사도행전24:25~2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7월 2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