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알게 된 인생에 관한 이야기 중에 사람 사는 이야기로 기록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오늘은 "개무시"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볼까 한다.
살다보면 자신을 혹은 타인을 종종 무시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점이다. 우리 유교 문화가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의 근본이 된 일본에도 무시 문화가 존재한다. 에도시대 "빠가야로!"라는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된 언어다.
조선시대 안동지방에서 상대 무시 언어는 나름 여러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사용되었다. 등신같은 놈, 순맨자구, 바보, 모지래기, 쑥맥이, 맨자구, 덜띠기, 팔푼이, 쪼다, 쪼데기... 다양한데, 나름 뜻이 조금씩 다르다.
일본 말에도 개무시는, "이누무시"라고 하는 말이 있다.
무시와 개무시는 비슷한 말로 이해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무시는 업수이여김을 말하고, 개무시는 그냥 무심한 척 고개를 돌리거나 먼산을 보는 마음 자세로 본다.
상대를 업수이여기는 무시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많다는 것이다. 세계 일류 강국 사람들을 일컬을 때 끝말을 전부 놈으로 호칭하는 것도 일종의 상대방 무시 언어다.
필자가 젊은 시절 오랜 세월 살았던 캐나다, 미국, 벨기에, 프랑스에서는 단 한번도 무시당해 본 적이 없다. 즉 개는 많이 보았지만 인간 입으로 혹은 눈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문화는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다.
귀국 후 무선 rf제품 혹은 안테나를 개발해서 일본 박람회를 들락거리면서 서울보다 수십 배 많은 일본인들을 접했지만 단 한번도 나를 무시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우리가 인식해 왔던 조선인 차별도 단 한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박람회장까지 직접 오밴또(도시락)를 싸서 갖다 준 사람, 아침 일찍 맥주 요리를 튀겨서 갖다 준 노인도 있었을 정도로, 나는 나름 무시 받지 않고 일본서 개발품을 팔아왔다. 즉 나는 대학을 나오거나 크게 배운 것도 없고 학문적으로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캐나다인들이나 유럽인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도 무시를 받지 않았던 사람인데, 정작 개발품을 들고 대구, 부산, 전주, 광주 돌아다니면서 길바닥 난전 장사를 할 때, 같은 한국인들에게서 개무시를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길바닥에 물건을 펼쳐 놓고 파는 일종의 난전 장사치 수준이라서 그런지 때로는 감정조절이 안 될 정도로 개무시를 직접 당해도 본 사람이다.
그런 어느 날 경북 구미에 fm 안테나를 설치하러 내려갔는데, 마침 조식시간이라서 아침을 끓여 먹으려고 캠핑카를 몰고 도심지 뒤쪽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밥을 먹더라도 사람보다 산이 주는 학문봉 기분을 더 느끼고 싶어서다.
산골짜기로 들어가는데 마침 하이얀 참깨꽃이 가득 핀 밭 아래쪽 둑에 된장콩이 무성하게 자라는 곳을 보고 그 밭두렁 섶에 차를 세웠다.
궁핍했던 70년대는 밭둑이나 논둑에도 한뼘 땅조각이라도 틈이 있으면 일일이 손으로 콩을 심었는데 그걸 밭둑콩 혹은 논둑콩이라고 했었다. 즉 한뼘의 빈 땅에도 곡식을 심어서 가을 소출하여 메주를 써서 한겨울 안방 실겅 위에 매달아서 메주를 띄웠다.
경제 폭발로 너도 나도 잘 살게 된 이후에는 논두렁 밭두렁 콩을 보기 힘들어졌는데, 그러니 그날 발견된 밭두렁콩이 자라는 길섶에서 아침을 끓여 먹고 있는데, 고기 냄새를 맡았는지 웬 흰둥이 견공이 슬금슬금 다가와서는 거리를 조금 두고 나를 쳐다보더니 견공만이 하는 행동? 못 본 척 먼데 산을 보았다.
그래서, "이보시오, 주사는 누구 집 견공이신고?“ 하고 물었더니, 못 들은 척 다시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시내 쪽 아파트를 쳐다보았다. 내가 말을 걸었지만 철저하게 무시하고 못들은 척했다. 행동거지가 영국 신사급이다.
그래서 쏘시지 하나를 주었더니 널름 받아서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그러고는 또 다시 말을 걸어도 나를 철저히 무시하고 먼산을 바라보았다.
그날 견공의 태도를 본 이후 나는 복잡한 서울 생활에 한결 마음의 평온심을 유지하면서 산다.
그때 밭두렁콩 섶에서 만난 흰둥이 견공에게 배운 이누무시 즉 개무시 생활 철학을 온몸으로 답습하게 되고부터 길거리나, 인터넷 판매 시 고객과 통화를 하거나 아님 복잡한 지하철이나 길거리서도, 개무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부터 마음이 평온해지고 일상도 한층 더 급수 높은 행복을 안고 살았다.
예를 들면,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 마지막으로 탄 사람으로 인하여 엘리베이터가 중량오버 경고음을 띠띠 울려도... 마지막으로 탄 사람이 버티면 그냥 안쪽에 서 있던 내가 스스로 내려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간다.
경우에 어긋남도 그날 밭두렁콩 옆에서 만났던 견공에게 배운 행동거지, 즉 그냥 개 먼산 쳐다보듯 개무시 하면서 사는 법을 개로부터 배운 셈이다.
개무시는 나름 안동 양반문화보다 웃질스럽다. 퇴계 선생은 생전에 임금님 하명이나 관직의 사표가 70번이 넘는다 하지만, 관직 사양도 임금님 하명을 무시하는 짓이 아니고 뒤집어 보면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행동하는 나름 큰 선비 문화 일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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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오욕으로 금강산으로 들어가다가 생긴 신라왕자 목 없는 석불이 월악산 산길에 있다는 것을 나는 철저하게 망한 신라 왕자의 인생 개무시라고 봅니다.
무시는 상대에게 쏘는 화살이라면, 개무시는 자신을 지키는 삶의 태도라고 보는 사람입니다.
이야기 선미를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나이 들어서 잘 참석하던 동창회도 안 나가게 되었습니다. 동창들 중에도 괜히 말꼬리 물고 늘어지고, 은근히 다른 동창을 무시하는 사람을 겪고 나서 안 나가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한때 미국서 전자회사로 가장 많은 리탤 스토어를 갖고 있는 Radio Shack 그 큰 본사 근무 시 회장님 아시아 텔렉스 담당을 하면서 하루에 두 번 독립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바니 회장실에 들락거린 소위 안동 경안고 출신으로 나름 출세(?)를 해 본 사람입니다.
어느 술자리서 안동농고 시험처서 떨어진 학생들이 경안고등학교로 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버릇처럼 웃었습니다. 즉 경안고 무시 발언이지만 그딴 것은 내가 자신이 있으니 그냥, "그랫닛겨!" 하고 웃고 맙니다.
우리말이 과학적이지만, 말끝마다 숨어 있는 이누무시 패러성은 당연히 미국 패러독스보다 웃질스럽습니다.
긴 글 줄입니다. 한국은 나름 착하고 선한 사람을 무시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 무시 문화에 고초를 겪은 분들은... 의외로 착한 분들이 많습니다.
나약하게 보이는 사람을 무시하는 문화가 존재하니, 무시 당하지 않으려고 태권도나 합기도 같은 것을 배우는 이면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집에 금송아지가 있다는 허풍도 가난으로 무시 받지 않으려는 짓거리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외국 살 때 무슨 무슨 대학을 나왔다는 대화는 단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우리는 ‘누구는 무슨 대학을 나왔다’라는 언급이 많은 것도 결국 상대 무시 문화가 역으로 핀 대처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서자를 들먹이고, 첩과 후처를 구분하거나, 자네 본관은 어디신고? 하는 말에도 상대방 무시 심보가 들어있습니다.
안동 김씨가 양반이라지만, "그 사람은 옳은 안동 김씨가 아니다" 단정 짓는 말씨는 서자의 자손이거나 아님 한때 머슴들이 안동김씨 족보를 선호했다는 설이나, 중리 돌고개 유씨와 물돌이마실 본동유씨와 달리 보는 면과 비슷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상대밤 무시 문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무시 공간이 싫어서 늙어서는 가능한 한 인간으로부터 일정한 간격유지를 합니다. 그 부분은 나름 무시당함을 피하는 공간 문화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무시 당하시더라도 속상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러니 하고 안 보고 살면 될 일입니다. 살면서 겪는 무시는 개무시 즉 이누무시로 지우시면 될 일입니다.
착한 사람이라고 다들 만만하게 보지만, 개무시로 조용히 지내면 새삼 그 가마떼이 같이 업수이여기던 분들이 나중에 안동선비 이상으로 새롭게 볼 날이 옵니다.
안동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마 이거 내가 가만있으니 가마떼인 줄 아나!" 즉 새 가마떼이는 마당섶에 자리 잡지만, 낡고 필요 없는 가마떼이는 통싯간 뒤쪽에 처박힙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마음이 착하거나, 등신 같거나, 순쪼데기 같거나, 아님 쑥맥이 같거나, 아님 순맨자구 같거나, 아님 쓸모없는 헌 가마떼이 갖으신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폭염과 폭우가 내리는 2026년 여름날에
조정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