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첫 동네 통리.
태백은 화전민이 살던 한적한 시골이었다가 1936년에 일본은 삼척개발주식회사를 만들어 탄을 캐기 시작했다.
탄광촌이 되어서 석탄산업으로써 한국 산업화의 한 축을 담담했다.
탄광마을 두문동을 재현해서 당시의 허름한 집을 지어 옛문화를 지킨단다.
아직도 탄을 캐는 이곳은 2020년에 문을 닫는단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가는 태백시 통리재.
오늘은 2017. 11. 11. 토요일.
경향신문 17쪽에는 '시계 멈춘 탄광촌, 굴곡진 통리재'라는 제목으로 강원도 태백시 통리재에 관한 글과 사진이 올랐다.
화가 황재형씨가 현지에서 35년째 그림 그리며, 70인과의 동행에 현지를 안내하며 설명했다는 내용이다.
통리재.
오래 기억하고 싶은 곳이다.
내 마음에는 미지의 통리재, 통리협곡, 만인폭포, 통리초등학교로 간다.
이곳 산골짜기에는 아홉 살 종지기 소녀가 언제나 있기에.
한국의 알프스 소녀가 있기에.
종지기 소녀가 엄마와 단 둘이서 살기에.
그 소녀는 커서 김정미 선생님이 되어서 아름다운 산문을 쓴다.
베리꽃이 되어서...
2017. 11. 11. 토요일.
첫댓글 즐감합니다
예, 산행하는 분들의 뒷모습으로도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해 보입니다.
자꾸만 추워지는 늦가을인데도 일상을 훌훌 털어내고는 등산화 끈을 졸라맨 산행인들이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댓글 사진으로도 저도 즐거워 합니다.
곰내님. 무척 오랫만입니다.
지금 횔동하고 있는. 베리꽃님. 애긴가요?
같은 고향분인지 알송달송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태백 통리마을의 아홉 살 종지기 소녀가 뭐라고 정답을 주실 것 같습니다.
무척이나 부자인 선녀네에 자주 놀러간 작고 깜직하고, 예쁜 계집아이가 정답을 알겠지요.
어릴적 감성이 고스란히 젖어든
선생님의 산문...
하늘 아래 첫 동네 통리
참 정겨운 곳이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베리꽃님이나 현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는 통리재이지요.
한국에 알프스 소녀 베리꽃 ~아 동화를 읽는 듯
종치기 소녀가 이 삶방에서 마음에 종를 또 치고 있군요
잘 읽고 갑니다~^^
예, 베리꽃이 살았던 옛 산골마을이지요.
언제나 이름만 들어도 환상처럼 다가오는 감성이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통리역
그 옛날 한시간에 한대씩 오가던 기차.
이젠 오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 귀엔
기적소리가 들립니다.
이제는 기적소리가 들리지 않는군요.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산 모퉁이를 돌 때마다 빼엑, 빼에엑 하던 기적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님의 마음 속에 살아 있겠네요.
통리역 역명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네요.
사진 고맙습니다.
멀리 교회 종탑이 보입니다.
아홉살 종지기 소녀가 떠나고
교회도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 옛날 교회가 있던 곳은
황성 옛터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손수 만든 성탄카드를 들고
하루에도 수없이 드나들던
우체국입니다.
저 산을 넘어
학교를 다녔습니다.
동행하는 친구도 없이
혼자서 6년을 걸어다녔습니다.
지금은 저렇게 재를 허물고
아스팔트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렇게 재를 허물어서 아스팔드 길이 되었어도
그 옛날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겠군요.
서해안 저한테도 그런 아픔이 있지요.
바로 앞산... 산길을 타고 이모네에 걸어갔지요.
어느날 서해안고속도로로 재를 무너뜨리고, 또 지난해부터는 그 일대 모두를 깎기 시작해서 공단지역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갈 수도 없는 곳이 되었지요. 바로 코앞에 있는 앞산, 앞뜰이지요.
베리꽃님의 통리 마을에 대한 글이 정말로 꿈처럼 고마웠지요.
마지막 사진, 떵 뚤린 통리재가... 또 많은 그리움을 남겨주겠지요.
이번에는 여행자들이...
기억하고 지켜 봐 준다는 것...
감사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예.
베리꽃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태백시 통리는 우리 모두가 기억할 겁니다.
하늘만 보이는 곳, 마을은 세 평 반이나 될 만큼 아주 작은데도 아홉 살 종지기가 늙은 아버지를 여의고는 엄니와 둘 이서 살았지요.
선녀네도 있었고... 산길을 혼자서 무섭게 걸으면서 그 먼길 너머로 중학교에도 다니고요.
베리꽃님이 올렸던 글을 검색했더니만 많이도 사라졌대요.
정말로 글이 살아서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더라고요.
님의 댓글 고맙습니다.
아마도 태백은 잊지못할
고운 추억이 담긴곳인가봐요
저도 어릴쩍 놀던 그 골목길
작은 예배당이 있던 고개길
아직도 잊지않고 가끔은 그곳에 가보고 싶어요
곰내님에 추억속에 태백도 ㅎㅎ
댓글 고맙습니다.
가시장미님의 글도 읽었지요.'
장미님의 모친은 정정하시대요.
하루라도 더 가까이 모셔야겠지요.
노인네들이란 알 수 없는 날씨 같아서...
궁금허다. ㅋㅋ
곰내님과 베리꽃님의 그 관계가. ^^
통리가는 기찻길은 지그재그로 가지 않던가요?
상상이 더 재미납니다.
님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치질까요?
저도 더 궁금합니다. 님의 상상력을 기다립니다.
그 옛날 60년대 초에 지금은 동해시인 묵호에서 서울을 가는 방법은 철로로 도계까지

전에서 걸어서 통리재를 올라 열차를 갈아타고 20시간이 넘어 서울청량리에

전에서 통리를 걸어 오르며 날아갈 뻔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가서
도착하면서 강풍에
그랬군요.
도계읍.
예전 대학교 시절 한 집에서 4년간 하숙생이었지요.
쌍둥이 두 형제가... 그 하숙집 안주인은 도계에서 온 사람.
그분네 가족들, 사촌자매들과 함께 살았지요.
정말로 순박한 사람들이었기에...그 하숙집에는 제 고교 선후배가 연이어서 하생숙이 되었지요.
택리시에서 동해안쪽으로 택리재가 이어지는 곳...
댓글에 고맙습니다.
통리, 나한정, 스위치백 기찻길...... 국민학교 사회책 에서나 듣던.
생경하면서도 정이 드는 단어들 입니다.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