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지금도 목이 쉬어 있습니다. 중계를 하는 그날, 여자 친구와 텔레비젼을 보면서, 축구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는 여자친구, 그리고 특히 전반 시작하고 5분 동안의 긴장감은 소름이 끼친다고 하는 그 표현이 오히려 자주 경기를 보던 저 보다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랬었더랬지요.
이탈리아와 프랑스. 광고에도 수도 없이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즐비한 선수들과 대적할 우리나라 선수들. 일단 유명세와 팀이 지명도. 어느 것에도 한국은 밀려 보입니다. 그리고 경기 내도록 우리 선수들 이탈리아식? 축구에 고생 많았습니다.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탈리아 완전히 보내 버렸지요.
이번에도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TF1 홈페이지에 있는 경기 내용 정리를 보낼까 하다가 언론 야그로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소식을 인터넷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심판 판정에 대해서 경기가 떳떳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그러더군요. 외국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가서 사과?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지요.
이런 상태에서 묘하게 고민을 하게 되더군요. 어떻게 프랑스 언론을 제대로 전해서 안심들 하시라, 한국은 잘 한다... 하고 해야 할까. 아니, 이렇게 하는 게 꼭 해야 하는 일일까. 아니, 더 말할 거 머 있습니까? 경기 보면 모르십니까.
그 더럽게, 치사하게 경기하던 이탈리아 애들에 비해서 정말 열심히 뛰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우리 선수들에게 이제 세계 무대에서 빛이 나는 우리 모두들에게 수고 했다고, 축하한다고, 다음 경기도 후회 없이 해보자고 한마음으로 기뻐하고 그러는데 어째서 즐기기는커녕 찜찜해하고 그러십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딴지 일보 총수님이 쓴 "우리는 강팀이다" 시리즈가 고마운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게 눈치 보는 분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한국. 그렇게 눈치 봐야 할 만큼 잘못한 거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번 월드컵 최고의 시합이라고 찬사를 받는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한국이 이럴 수 있다고 여기 누구도 저 포함해서 예상한 사람 없었습니다.
현지 소식 전할 순서인 지금, 한마디만 하게씀다. 여기 사람들도 인정하니까 안심하라! 라는 말 하려구 바빠 죽겠는데 새벽 5시까지 잠도 못자면서 이 글 쓰는 거 아닙니다. 그렇게 눈치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 쓰는 거 정말 아닙니다. 같이 기뻐하는 사람들. 그리고 누구보다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했던 분들이 더 기뻐하셨으면 좋겠고, 여기 멀리서 한국을 목놓아 부르면서 목이 쉬고 눈물이 나는 우리들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쓰는 글입니다. 그럼 지금 날라감다.
중계방송은 언제나 그렇듯 TF 1 이 맡아서 했습니다. 하지만 수다스러운 중계를 하던 티에리 홀랑이나 유상철 선수의 골수 팬인 장 미셸 라케 라는 해설자는 16강 리그 부터는 일본으로 넘어가 버려서 한국 중계를 결승전^^ 까진 안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중계를 맡더군요.
하지만 이 사람들이라고 다르겠습니까. 한국 축구 팬들은 이제 프랑스 전체에 엄청 있습니다. 이날 이 사람들이 한 이야기 중에 기억나는 이야기.
차두리 등장 때
해설자: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들어온 샤두리(이렇게 발음 합니다-.-)에 관한 이야기지요. 자주 말해왔지만, 이 샤두리 선수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외국 선수로 기억되는 한국의 축구 영웅 샤붐의 아들입니다. (샤붐에 대한 이야기 이것저것 자료를 가지고 설명) 이 샤붐은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때 한국 대표팀의 감독이었지요.
하지만 샤붐 감독은 네덜란드를 만난 2차전에서 5 : 0이라는 큰 점수차로 패하고 경질 됩니다. 그때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은 지금 한국팀을 맞아 16강에 진출시킨 거스 히딩크지요.
아나운서: 아하. 그렇군요.
해설자 : 샤붐의 경질 이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한국팀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 히딩크에게 감독을 맞깁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아이러니. 이번에는 히딩크가 샤붐의 아들, 샤두리를 자기가 직접 뽑아서 가르치고, 이렇게 월드컵 무대에 세우게 됩니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월드컵입니다.
어떻든 지금 한국은 주요 수비수를 모두 공격수로 바꿨습니다. 대단합니다. 프랑스 팀으로 치자면 리자라쥐와 드사이를 빼고 윌토드와 시세를 투입하는 건데, 앙리, 트레제게, 뒤가리와 함께 5명이 공격을 하는 진영이 되는 거죠. 히딩크 감독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동점골 때
(아무 것도 못 들었습니다. 소리 지르느라고. 나중에 들으니 이런 이야기 하더군요)
무너집니다! 수비에 치중하던 이탈리아. 한국의 공격에 드디어 무너집니다.
후반 종료 직전 송종국의 센터링 때
주목 하십시오 (거의 소리 지름) 연장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 아깝습니다. 빗나갑니다. (시합 내내 거의 한국 편이었던 프랑스.. 여기선 아주 노골적이었습니다)
연장전 : 토티 반칙 장면
시뮬레이션이었네요. 규정에 따라 옐로우 카드가 나갑니다. 퇴장이지요. 이탈리아 점점 더 몰립니다. 심판에 항의를 하는 군요. 기분은 이해됩니다만, 반칙 맞습니다.
설기현의 쓸데 없는 백 패스와 이운재의 선방
한국을 구합니다. 이운재. 이 경기가 어찌 될 지 모르지만, 체력적으로 지친 선수들이 집중하지 못하는 중에도(설기현의 실수를 가르키는 듯)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탈리아는 이런 기회를 놓치는 군요.
안정환 골 장면
(여자친구와 함께, 방안을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고 끝내 울어 버렸습니다.
그래. 정환이가 했어야 돼. 그 지랄같은 패널티 킥이 한이 되서 가슴에 박히지 않게, 그렇게 했어야 돼. 눈물이 흐르는 중에 중계 방송 멘트가 나옵니다. 중계팀도 저희들 만큼이나 흥분했습니다.)
아나운서 : 무슨 이런 시나리오가 있습니까. 무슨 이런 시합이 있습니까. 경기 내내 가장 불행한 선수 였던 안정환. 바로 그가 한국을 8강에 올려 놓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뛰던 안정환 그가 이탈리아를 박살냅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한국 선수들. 이번 월드컵 최고의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해설자 : 덧붙여 최고로 멋진 시합입니다. 이제까지 우린 남미식, 유럽식 축구를 봐 왔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이게 바로 아시아식 축구입니다. 우린 새로운 축구의 형태가 탄생하는 걸 보고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런 엄청난 시합을 해낸 한국. 그들은 충분이 자격이 있습니다."
경기 후 저녁 때 월드컵 하이라이트 방송에서 한국 응원단에 대한 보도를 시작부분에 자세히 하고, 경기는 진행자들 모두, 이번 월드컵 최고의 시합으로 뽑았습니다. 진행자 중에 한 명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탈리아는 항상 한 골을 넣고 먼저 샴페인을 터트린다. 그러다가 경기는 지지. 그러면 어! 하고 다시 샴페인을 닫고 다른 사람들 욕을 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탈리아의 선수 교체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수비라니.. 그것도 가장 좋은 움직임의 델 피에로를 빼고"
그러자 또 다른 진행자가,
"심판 판정 때문에 탈락했다는 이야기가 이탈리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더라. 역시 이해가 안된다. 프랑스가 우루과이 전에서 훨씬 덜 위험한 반칙을 했던 앙리만 퇴장당한 게임을 할 때도 우린 심판 판정 때문에 시합을 잃었다고 하진 않았다. 이탈리아는 심판에게 진 게 아니다. 훨씬 더 자격이 있는 한국팀에게 진 것이다."
다음 날은 신문 가게에 가서 이 신문 저 신문 다 들여다 봤습니다. 거의 전부 1면 제목이 안정환의 골 넣는 장면과 함께 "믿을 수 없는 한국인들" 이라는 기사 였습니다.
심판 판정에 대해선.. 이탈리아가 그런 주장을 한다... 는 이야기를 하면서 "패할 줄 아는 품위"라는 등 은근하게 이탈리아를 비웃던 언론들이 오늘은 페루자가 안정환을 쫓아 냈다는 이야기를 보도 하면서 아예 노골적으로 이탈리아 제 정신 없다고 비판을 하더군요.
르 몽드도 내일자 신문에서, "도둑 맞았다고 울부짖는 이탈리아 군단 그러나 그들의 실책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라는 기사로 이탈리아의 속좁은 태도를 탓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뉴스는 안정환 방출 이야기와 구단주의 주장, 그리고 히딩크의 반박이 이어진 후에.. 히딩크의 말은 "만약 그런 말을 구단주가 정말 했다면 그건 웃기는 짓이다. 아주 유치하다"에서 인터뷰를 끊더군요.
이어서 기자는 유로 2000의 경기 장면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했지요.
"우리는 모두 유로 2000 결승전을 기억한다. 이탈리아를 맞아서 경기 막판 윌토드의 동점골로 기적적으로 연장전에 돌입한 프랑스는, 트레제게의 역전골로 이탈리아를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사실 트레제게는 이 결승 골든골 바로 직전에 공격해 들어가다 이탈리아 골기퍼 얼굴을 발로 차서 코피 터지게 만들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 트레제게는 그 해에 바로 유벤투스에 스카웃 되었고, 올해 이탈리아 득점왕이 되었다.
안정환이 이탈리아에 득점을 해서 이탈리아 축구를 망쳤다고? 히딩크가 이탈리아인들의 반응을 유치하다 한 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탈리아인들의 반응 때문이다. 경기에 패했던 그들은 이제 인종차별적이기까지 하다"
이탈리아가 얼마나 형편없는 매너에 자격없는 팀이었는지 밝혀준 한국팀 선수들이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에또.. 안정환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그가 영국이나 독일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스날 같은데서 한꺼번에 같이 뛰면서 외로움 덜 타면서 적응도 잘하고, 소집도 쉬운 프랑스 대표팀 경우처럼, 박지성같은 선수들과 같은 팀에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르몽드에 8강전 예상에 이런 대목이 있던데 오늘 읽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이었습니다.
한국 대 스페인 전 예상.
"벌써 2명의 라틴계 슈퍼 테너인 포르투칼과 이탈리아를 집으로 돌려보낸 한국이 3번째 테너 스페인까지 두렵게 만들고 있다."
이 순간 한국에 있지 못한게 얼마나 서러운지 모릅니다. 지금처럼, 그래요. 정말 지금처럼 후회없는 경기 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