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에는 운천리라는 동네가 있다.
영북면에 속한 동네로서, 포천 북쪽 끝이자 철원의 관문에 해당하는 곳이다.
실제로 이곳에서부터 용암대지가 시작되어
서울에서 내려가다 보면 이곳을 지나고부터 시야가 급격히 넓어진다.
운천은 지리적인 특징 못지 않게 뚜렷한 인문학적인 특징이 있다.
철원의 양대 중심지인 신철원과 동송으로 갈라지는 길목이며,
기갑여단과 산정호수를 끼고 있어 안보 + 관광 쪽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이러한 특징을 두루 갖춘 덕분에 이전부터 버스터미널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운천터미널은 한때 운영 악화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지만,
기적처럼 살아남아 반세기 가까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가늘고 긴 실처럼 조용하고 꾸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운천터미널을 향해,
장장 10년 만의 반가운 만남을 이어보려 한다.
운천터미널은 운천리 마을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마을 한복판으로 지나가는 옛 43번 국도가 확장된 덕분에,
그동안 지나온 동네들에 비해 비교적 시야가 확 트여있다.
그러나 정작 버스터미널은 43번 국도변에 있지 않고 마을 사이에 쏙 숨어있다.
출입구가 43번 국도와 맞닿기는 하지만 건물이 다소 안에 숨어있어,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출입구가 1차선 골목길이라 버스와 차가 엉키기도 쉬운 단점이 있다.
운천터미널은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로도 국내 어떤 터미널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건물이 도로 한복판에 있어서, 마치 로터리처럼 차들이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구조이다.
심지어 우측통행 관행을 깨고 좌측 방향으로 회전해야 한다.
좌측통행 로터리 한복판에 버스터미널 건물이 있는 희안한 생김새는,
아마 운천터미널 말고는 전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건물을 보면 한눈에 봐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영업해온 곳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실제로 개장일 / 준공일 모두 1975년으로 되어 있다.
1975년부터 단 한차례도 리모델링 없이 이 자리에서 영업해왔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리모델링이 없다고 해서 아예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대합실로 사용했을 공간에 상점이 들어서고,
상점은 편의점으로 바뀌고, GS25가 있던 자리엔 어느덧 CU가 들어와 있었다.
다만 이외엔 이렇다 할 변화를 찾기가 어려웠다.
http://cafe.daum.net/busmania/3Cbp/81
다음 버스매니아 카페에 올렸던 글과 대조해봐도 건물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
갈색 창틀이 회색으로 바뀐 점을 제외하면 시간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10년 전에는 문을 닫았던 매표소가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는 사실이다.
2008년 10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셔터를 내리고 카드, 현금 승차만 가능했던 이곳이,
어느덧 다시 매표소가 문을 열어 지금은 표를 끊고 버스를 탈 수가 있다.
고정 승객이 꾸준하게 유지되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호소함으로서 다시금 문을 연 것이라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이다.
또한, 사진 오른쪽 위에 아주 작게 보이지만 80년대식 부동산 스티커가 붙어있다.
이런 곳에서 부동산 영업을 했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지역번호 통합 전의 전화번호가 붙어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운천터미널 시간표는 경기고속 / 강원·진흥여객 둘로 나뉘어 있다.
운천터미널 시간표는 포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에 철원-포천을 오가는 경기고속 시외버스가 모두 들리기 때문이다.
동서울행 외에는 인천(3회), 성남(4회)행이 운행을 하고 있다.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면, 철원 방면 버스를 탈 때 행선지를 잘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두 노선이 갈라지기에 버스를 잘못 타면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관인, 동송 방면으로 가려면 3001번, 3003번을,
신철원, 와수리 방면으로 가려면 3002번, 3005번을 타야 한다.
가장 횟수가 많은 3000번은 신철원까지만 운행을 한다.
다음은 강원·진흥고속 시간표이다.
강남(11회), 수원(5회), 대전(2회)행이 전부로서,
인천행의 경우 2019년부터 폐지가 되어 강원·진흥고속에서는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다.
이미 이전에 1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던 춘천행이 폐지된 전적이 있는 만큼,
서울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선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동서울행도 예전같지 않아서 배차 간격이 상당히 큰 폭으로 벌어졌는데,
사라진 매표소가 재개된 것을 보면 이곳에서는 수요가 감소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에 와서 10년 전을 돌이켜보니, 곧 문을 닫을 것 같다는 당시의 판단은 너무도 섣불렀다.
의정부까지 다니는 138-6번 버스가 있음에도 시외버스는 여전히 지분을 챙기고 있다.
그 이유는 경기도 최외곽 지역으로서 서울까지 비교적 먼 거리라는 점,
138-6번 배차가 1시간 이상으로 매우 좋지 않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운천리가 속한 영북면은 인구가 1만 명이 넘을 만큼 규모가 있는 면이다.
그래서 터미널 옆에는 이렇게 재래시장이 갖추어져 있다.
더군다나 근처의 기갑여단 및 산정호수가 추가로 붙어서,
거주민을 비롯해 외지인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운천터미널은 문을 닫지 않고 꾸준히 영업을 한다.
1975년부터 지금까지 벌써 4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추억을 싣고 날랐을 테다.
존재감은 약하지만 가늘고 긴 실처럼 많은 것을 이어주는 지금의 모습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지켜지기를 바란다.
첫댓글 이 포스트에서도 포천과 같이 오류를 남겼네요.
폐선된 인천 노선은 경기고속이 아닌데 자꾸 실수를 하시네요.
진흥고속 노선이 폐선 된 것입니다.
네,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수정했습니다.
이 게시글에서는 회사별 시간표에 대해 철저히 구분되어 있다는 점을 안내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없어서 오해의 여지가 있었네요.
이번에 다녀오신 곳들의 터미널 구조들이 제가 여태 보지 못했던, 대단히 특이한 구조들을 갖고 있어서 글을 더 재미나게 보게 됩니다. 글 서두에 언급하신 내용들도 대단히 신선합니다. 용암대지라는 말은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 듣던 말이고, 철원 위주로 내용이 나오는데 이 곳부터 그 형상이 시작된다는 부분은 저도 더 공부를 하게 만듭니다. 경기대원과 강원진흥 모두 동서울에서 포천, 철원으로 가는 노선들을 동시에 운영 중인데 구체적인 차이는 경유지 외에 무엇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재밌는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운천터미널은 개성이 뚜렷해서 모습이 잘 잊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기고속 노선은 번호 부여 / 포천시내-운천 경유 / 철원 3개읍 노선 보유라는 특징, 강원진흥은 내촌-일동 경유 / 와수리 및 사창리행 / 번호 없음 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
@Maximum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경로 차이가 꽤 있네요.
군생활을 인근 갈말읍 강포리에서 했고 외출/외박을 운천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도 항상 느꼈던게 여기 터미널은 참 특이하다
근데 여전히 그때의 그 모습 그때의 그 동선 그대로 유지중이네요
다만 달라진건 운행하는 버스회사 이름이 바뀐거 ㅎㅎ
제가 군생활 하던 시절엔 영종여객/진흥여객이였는데
의정부에서 철원까지 항상 영종여객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인지도가 대단했나 보군요 ㅎㅎ 지금은 KD로 바뀐 지 한참 됐는데, 바뀐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흘러서 이젠 전혀 어색하지가 않네요.
@Maximum 포천, 철원라인과 동두천, 연천라인에서 서울 오는 시외노선을 영종여객에서 독점운행했었죠
인지도가 상상초월이었습니다
지금은 간이 정류장으로 바뀐 수유역 정류소도 예전엔 붐볐었죠
@Maximum 지금 생각해보면 영종여객은 고작 BS105 BS106로 서울에서 철원까지 달렸던거죠 그래서 더 기억에 각인 되는거 같아요 ㅎㅎ 그러다 제가 전역할 무렵쯤 갑자기 영종여객이 차량 고급화를 시작하면서 BH115H 와 BH116을 투입하기 시작했죠 ㅎㅎ 갑자기 좋아진 차량에 어리둥절했던 그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1년전 일이 되었습니다
@그랜버드가좋아™ 옛날 사진들 보니까 어떻게 저런 차로 서울 철원을 왔다갔다 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ㅎㅎ 시내버스 차급으로 지금보다 더 안좋은 길을 다녔으니 임팩트가 셀 수밖에 없네요
와! 며칠 못 들렀더니 반가운 운천터미널이
나오네요.
94~96년 1기갑여단에서 복무했었기에
수유리 ㅡ 운천간 연두색 영종여객타고
다녔었죠.
그 후에도 가끔 버스여행갈때 한두번은
들렀었고 자가용으로 지나다닐때도
일부러 잠깐들러 터미널구경을 하곤
했었죠^^
시간내서 일동.철원등 터미널들도
자세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통 추억이 있는 곳은 항상 반갑고,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죠. ^^ 다만 군복무를 저기서 하셨음에도 반가운 마음이 드신다는게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ㅎㅎ 다른 글들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