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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열도의 지붕을 가다
<알펜루트의 지붕 다테야마(立山) 준령 맨 꼭대기 오난지야마(大汝山·해발 3015m)는 등반객들의 목적지다. 아래 보이는 연못이 미쿠리가池.>
北알프스에는 봄이 없다. 6월이 돼야 눈이 녹는다. 그러면 파란 신록이 속살을 드러낸다. 여름도 짧다. 9월 하순이면 첫눈이 내린다. 붉은
단풍들이 흰옷을 입는다. 눈은 쌓이기만 할 뿐 녹지 않는다. 11월 말,
알프스는 문을 잠근다. 만년설을 품은 채 이듬해 4월까지 동면에 들어간다
李 健 實
1946년 부산 출생. 고려大 불문과 졸업. 조선일보 체육부 차장, 스포츠조선 체육부장·부국장 역임. 스포츠조선에 「SC골프칼럼」 280회
연재.
李健實 스포트 라이터 (spocho@orgio.net)
2박3일간의 일본 여행
도야마, 北알프스, 알펜루트….
요즘 신문광고에 자주 나오는 일본의 여행상품이다. 도쿄와 규슈, 오사카-나라-교토, 홋카이도 등지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봤다. 도야마(富山)는 일본의 40번째 縣(현)으로 인구 120만 명의 농업도시. 봄에는 튤립이 피고 여름에는 폭포가,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눈이 많단다. 일본 땅 한 가운데에 위치해 동해를 내다보고 있으며 5년 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長野)와는 붙어 있다.
北알프스는 설명이 좀 길다.
나가노와 도야마, 니가타(新瀉), 기후(岐阜)의 4개 縣에 걸쳐 있는 히다(飛彈)산맥과 기소(木曾)산맥 그리고 아카이시(赤石)산맥 가운데
히다산맥을 일컫는 것으로 일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3190m)를 정상으로 해발 3000m 이상 高峰(고봉) 20여 개를 거느리고있다.
그리고 알펜루트(Alpine Route).
北알프스 連峰(연봉)의 허리를 개미굴처럼 뚫어 만든 편도 37.6km의
두더지 코스로, 트롤리 버스-케이블카-로프웨이-지하 케이블카-고원버스, 그리고 댐 위를 걷는 것까지 모두 7차례나 교통수단을 바꾸면서
통과하는 여정이다.
8월15일은 일본이 패망한 날이고 그 날부터 마침 금-토-일요일로 이어지는 연휴라 내친 김에 나섰다. 첫날은 나고야(名古屋)에서 1박했다. 다카야마(高山)의 온천장에서 묵고 싶었으나 마침 일본도 연휴라,
빈 방이 없단다.
공짜 술에 얼큰해지는 산노마치
이튿날 北알프스의 현관이라는 카미코지(上高地)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 다카야마시(高山市)의 산노마치(三町)에 들렀다. 에도(江戶)시대(1603∼1867)의 옛 마을을 재현, 「작은 교토(京東)」로 불리는 이
곳은 3개의 골목에 술도가와 醬(장)공장, 단팥죽 가게, 그릇점, 기념품
가게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술도가에는 試飮酒(시음주)가 푸짐했다. 한 바퀴만 돌아도 공짜 술에
얼큰해진다. 골목은 3개를 합쳐 500m가 넘어 대충 둘러보는 데도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카미코지로 올라가는 길은 좁으면서 커브와 경사가 심했다. 왕복 1차선이라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한쪽 귀퉁이에 붙어
서서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도로에는 승용차가 안 보였다. 사람들이 너무 몰리다 보니 교통체증은 물론이고 매연으로 인한 환경오염도
극심해 1975년 「마이카 금지령」을 내렸다 한다.
한참을 올라가니 왼쪽에 큰 호수가 나타났다. 대정연못(大正池)이다.
대정 4년(1915년) 6월에 소다케(燒岳 해발 2455m)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하구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생긴 것으로 당시 연호를 따 이름을 정했다 한다. 호수 뒤쪽에 버티고 있는 다갈색의 소다케는 아직도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다. 살아 있다는 증거다. 1962년 6월에도 폭발했는데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고 한다.
그곳에서 5분쯤 더 올라가면 널찍한 고원이 나온다. 해발 1500m인 카미코지다. 귀가 멍하다. 일본인들이 연말연시에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눈 내리는 카미코지」란다. 연간 입장객 160만 명이다.
여기서 유명한 곳이 통나무 기둥의 갓바바시(河童橋). 1927년 소설가
아쿠타가와(芥川龍之介)가 이곳에 들렀다가 「갓바(河童)」란 소설을
지었는데 이후로 이 다리가 명물이 됐다. 갓바는 개구리 형상에, 물갈퀴를 갖고 있어 헤엄을 잘 친다는, 강에 사는 상상의 어린 동물이다.
그런데 다리 옆 관광센터에 실제 「갓바의 눈물」이 진열돼 있다. 콩알만 한 결정체들인데 설명이 웃긴다.
「강 속의 갓바가 사람들이 버린 깨진 병과 쓰레기에 못 견뎌 탄식과
함께 흘린 눈물」이란 것.
이곳에서 바라보는 호다카다케(穗高岳) 연봉은 병풍 속의 고산준령
그대로다. 봉우리는 구름 모자를 썼고 중턱은 안개 허리띠를 하고 있다. 군데군데 만년설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표고 차 1600m, 仰角(앙각) 20도. 니시호다카다케(西穗高岳·2909m)에서 마에호다카다케(前穗高岳·3090m)까지 펼쳐지는 좌우 시야도 끝이 없다.
3000m가 넘는 봉우리가 한둘이 아니다. 오쿠호다카다케를 필두로 야리가다케(3180m), 가레사와다케(3110m), 미나미다케(3033m)…. 백두산이 2774m라니 뭔가 허전해진다. 산 아래는 협곡이고 물길은 산세를
따라 직하한다. 계곡의 물은 발이 시리다. 10초를 견디기 어렵다.
안내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北알프스에는 봄이 없다. 6월이 돼야 눈이 녹는다. 그러면 파란 신록이 속살을 드러낸다. 여름도 짧다. 9월 하순이면 첫눈이 내린다. 붉은 단풍들이 흰옷을 입는다. 눈은 쌓이기만 할 뿐 녹지 않는다. 11월
말, 알프스는 문을 잠근다. 만년설을 품은 채 이듬해 4월까지 동면에
들어간다」
하느님보다 산을 더 좋아한 선교사
아즈사 강(梓川)에는 이와나(岩魚:곤들매기)가 산다. 일급수 어족인
이놈은 몸집이 30cm 가량 되는데 꼬챙이에 꽂아 구워 먹어도 좋고 회를 떠도 맛있다. 뼈를 삭혀 정종에 타 마시면 별미란다.
아즈사 강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면 낯선 외국인의 浮彫(부조)가 있다.
「일본 알프스」란 이름을 만든 영국인 선교사 월터 웨스턴. 케임브리지大를 나온 그는 스물일곱 살 때인 1888년 선교사업차 일본에 왔다. 그런데 하느님보다 산을 더 좋아한 것 같다.
일본에 오기 전, 마테호른(4478m)에 두 차례, 아이거 빙벽에 한 차례
도전한 그는 카미코지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호다카(穗高) 연봉을 차례로 정복, 1893년 1월17일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의 頂上을 밟았다. 일본에서 오쿠호다카보다 키가 큰 산은 후지산(富士山·3776m)과
南알프스의 키타호다카다케(北穗高岳·3192m)뿐이다.
1896년 귀국한 그는 「일본 알프스의 등산과 탐험」이란 책을 냈다.
이 때부터 이 연봉들은 「일본 알프스」로 불리게 됐다. 트래킹 코스는 다양하다.
다케사와(岳澤)에서 마에호다카로 직등하는 코스, 도쿠자와(德澤)에서 요코오(橫尾)를 거쳐 기타호다카로 오르는 코스, 도쿠자와에서 야리자와(槍澤)를 거쳐 야리가다케로 가는 코스….
관광센터 옆에는 등반 안내표지가 붙어 있다.
「바위의 퇴적이나 낙석, 경사가 위험하니 경험 있는 리더를 따라가십시오.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는 코스별 등반날짜는 아래와 같으니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짧은 코스가 1박2일이고 거의가 2박3일 이상이다. 산중 호텔과 산장은 34개소.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 산을 오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스케줄은 北알프스의 허리를 관통하는 알펜루트 답사다.
빗줄기는 갈수록 굵어졌지만 산 속의 굴을 차로 이동하는데 어떠랴
싶었다. 해발 1433m의 오기사와(扇澤)에서 트롤리 버스에 올랐다. 전기로 가는 40인승의 이 버스는 4대씩 한 세트로 움직였다. 6km의 터널 안에서 마주 오는 버스들과 교차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조처였다.
소요시간 16분. 본래 이 땅굴은 구로베 댐과 발전소 건설을 위한 기자재 수송로로 1956년 12월 착공돼 1972년 발전소 준공과 함께 개통됐다.
첫 정거장은 구로베 댐(해발 1470m).
『구로베(黑部)란 원주민 말로 「노송나무」랍니다. 후지산의 후지(富士)가 불을 의미하듯…』
폭우와 물안개의 구로베 댐
역무원이 가르쳐 준다. 굴 속의 협로를 따라 50m쯤 걸었을까. 갑자기
시야가 틔면서 빗물이 들이쳤다. 댐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높다는
186m짜리 아치형 댐. 그런데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폭우와 물안개가 뒤범벅돼 시야를 막고 있었다. 댐 위를 휘몰아치는 비바람은 우산살을 단번에 뒤집어 놓았다. 여행객들은 다투어 전망대로 뛰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구로베 댐은 실로 장관이었다. 두 곳에서 뿜어
나오는 폭포의 굉음은 주위를 흔들어 댔다. 1초당 분출량이 10t. 다테야마(立山·3015m) 연봉과 우시로(後)다테야마(2678m) 연봉 사이의 협곡을 막아 건설한 이 댐은 제방길이 492m, 제방용적 158만㎥, 저수량 2억㎥, 최대출력 33만5000kW. 댐 앞에는 「←東京 210km」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전망대 2층에는 당시의 공사 진행상황을 기록한 年表(연표)가 걸려 있다.
「1956년 간사이(關西)전력이 연인원 1000만 명을 동원해 고산협곡의
악조건과 폭설의 악천후를 극복하고 1963년에 완공한 댐으로 7년간
투입된 공사비가 513억 엔. 순직한 인부는 171명」
이 댐은 2000년 11월 서울서 개봉한 일본의 블록버스터 「화이트아웃」의 촬영현장이었다. 일본 최대의 댐을 폭파하려는 테러집단에 홀로
맞서 싸우는 주인공(오다 유지)이 댐 위에서 벌이는 액션장면이 되살아났다. 댐 위쪽으로는 유람선이 다니고 아래쪽은 푸른 산록이 물보라와 雲霧(운무)에 갇혀 있다.
알펜루트의 유일한 도보구간(1km)인 제방 위의 길을 따라 15분쯤 걸어가면 구로베 호수 역이 나온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정을 향해 5분간 올라간다. 경사각 31도. 케이블카는 탄광의 鑛車(광차)를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구로베다이라(黑部平·1828m)역은 「정거장」이라기보다는 휴게소였다. 다음 역으로 가는 로프웨이는 3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간격이
그렇게 긴 까닭은 간단했다.
전망대를 겸한 대합실에는 각종 토속주와 음식을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시간의 여유를 가진 여행객들은 자연히 이곳을 둘러보게 되고 見物生心(견물생심),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이다. 짬을 활용하는 일본인의
상술이 놀라웠다.
다이칸보(大觀峰·해발 2316m)로 가는 로프웨이는 도중에 철탑이 없었다. 연장 1702m, 표고차 500m인데도 支柱(지주)가 없다니. 로프웨이는 약간씩 출렁이는데 안내방송은 한술 더 뜬다.
『위로는 우시로다테야마의 준령이, 아래로는 구로베 호수가 보이는
여기가 바로 「움직이는 전망대」입니다. 지주가 없는 것은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이칸보역에 내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트롤리 버스로 바꿔 타고
10분쯤 올라가자 무로도(室堂·2450m)역이었다. 일본에서 「제일 높은 역」인 이곳은 北알프스의 지붕으로 가는 초입이다. 여기서 두 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다테야마(立山) 준령의 최고봉인 오난지야마(大汝山·해발 3015m)의 頂上을 밟을 수 있다.
그런데 안개와 비바람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산행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카미코지에서 놓친 등반기회를 알펜루트에서 찾아보려 했던 꿈은 결국 빗물에 잠겨 버렸다. 대합실은 날씨 탓을 하는
등산객들의 푸념으로 시끌벅적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최근 조난사고가 난 등반로에 붉은 마크를 찍어 놓았다. 족히 20군데가 넘었다. 안내표지판을 살펴보았다. 가까운 거리에 화산호수가 있었다. 미쿠리가 호수. 둘레 630m, 수심
15m. 北알프스의 天池(천지)였다.
안개에 가려진 미쿠리가 호수
필자는 10년 전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려다가 안개 때문에 실패한
적이 있다. 꿩 대신 닭이다. 기념품 가게서 雨裝(우장)을 챙겨 혼자 나섰다. 몰아치는 비바람이 장난 아니었다. 우산은 아예 접어 지팡이로
썼다. 1분도 안 돼 온 몸이 물투성이가 됐다. 신발에선 물이 질퍽거렸다. 그래도 땅만 보고 걸었다. 10분쯤 갔을까. 달걀 썩는 냄새가 났다.
부근에 유황온천이 있나…. 더 걸었다. 내리막 계단에 안내표지가 있었다. 안경의 빗물을 닦고 들여다보니 왼쪽은 지옥곡이고 오른쪽은
미쿠리가 호수였다. 직진하면 목욕탕도 있었다.
호수는 안개에 가려 있었다. 백두산에서 겪은 실패를 재탕하기 싫어
빗물이 흥건한 벤치에 눌러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몇 차례 바람이 불면서 호수는 서서히 안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수면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의 파문들이 뚜렷이 보였다. 저쪽 언덕도 보였다.
왼쪽 언덕 위에 있는 목욕탕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추위도 피할 겸
그곳으로 갔다. 목욕탕은 다테야마 등반에 나섰던 남녀 등산객들로
만원이었다. 온천물 탓인지 빗물 탓인지 모두가 퉁퉁 불은 몸이었다.
어른 600엔, 소인 400엔, 타월 한 장 300엔. 온천물은 우유처럼 뿌옇고
매끈매끈했다.
돌아오는 걸음에 다시 본 미쿠리가 호수는 안개가 완전히 걷혀 있었다. 무로도(室堂)에서 비조다이라(美女平·977m)까지의 교통수단은
高原버스다. 한여름이라 버스는 에어컨을 켜놓고 있었다. 젖은 옷에
찬바람이 부딪치니 온 몸이 떨려왔다. 그렇다고 끄라고 할 순 없는 일이다. 체온으로 견디는 수밖에.
다음 역까지 소요시간은 무려 50분. 전신에 소름이 돋고 오한이 엄습해 왔다. 버스가 10분 정도 내려왔을까.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 일대가 알펜루트에서 최고로 눈이 많이 오는 곳입니다. 4월에 눈을 치우면 길 양쪽으로 높이 10m가 넘는 雪壁(설벽)이 형성됩니다. 파란 하늘과 하얀 눈이 극명한 조화를 이룹니다. 4월20일부터 30일까지,
5월6일부터 18일까지는 이 곳을 걸어서 지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차창 밖으로 희한한 폭포가 보였다. 물이 直下(직하)하는 게
아니고 몇 차례 바닥을 튀기면서 떨어졌다. 4단 폭포였다. 책을 펼쳤다. 소묘(秤名)폭포. 위에서부터 70m, 58m, 96m, 126m씩 차례로 떨어지는, 일본 최고의 낙차(350m)라고 소개돼 있다.
비조다이라에서는 잠깐 햇살을 만날 수 있었다. 먼 쪽 하늘에 흰구름과 파란 창공이 언뜻 보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능선은 절경이었다. 雲海(운해)에 가려 있는 신록들. 아래쪽에는 삼나무가 울창했다. 수령이 1000년 넘는 것도 있단다.
이곳에는 삼나무에 얽힌 얘기가 있다.
「옛날 이 일대는 여성 출입금지 구역이었는데 아름다운 여승이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산신령의 노여움을 사 삼나무가 됐다는 것. 그래서
지명에 비조(美女)가 붙었다」
일대는 삼나무 천지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여승들이 이 산에 들어갔다는 말인가. 이윽고 종착지인 다테야마역에 도착했다. 알펜루트의
마감이었다. 도야마로 입국한 사람들에게는 거꾸로 이곳이 알펜루트의 출발지가 될 것이다.
電源개발용으로 사용됐던 구로베 협곡철도
비는 3일째도 계속 내렸다. 이날의 여정은 구로베 협곡. 일본에서 가장 깊다는 구로베 댐 하류의 계곡을 도롯코(truck의 일본식 발음) 전차를 타고 왕복하는 여정이다.
평균시속 15km, 왕복 2시간40분, 요금 2820엔. 20.1km의 구간에는 41개의 터널과 21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그만큼 險路(험로)다. 전력회사의 기자재 수송을 위해 부설된 이 협궤철도는 1923년 9월 우나츠키(宇奈月) 온천장에서 첫 삽을 뜬 뒤 14년간의 난공사 끝에 1937년 7월
종점인 케야키다이라까지 이어졌다. 선로의 너비는 762mm로 신칸센(1435mm)의 절반이다.
이 위를 달리는 도롯코는 서울대공원의 코끼리열차와 같다. 창문도
없고 한 좌석에 4명씩 선착순으로 앉는다. 정원 30명의 객차는 13량이다.
비가 들이치면 엉덩이를 좌우로 옮겨야 했다. 커브를 틀 때마다 차 안은 좌충우돌이었다. 電源개발용으로 사용됐던 이 철도는 1953년 11월
지방철도법에 의해 영업허가를 받고 유람객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당시 차표 뒤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다.
「이 철도는 전력회사의 건설용 자재와 작업원 수송을 위해 만든 만큼 편승하는 손님들의 생명은 보장해 줄 수 없다」
그 후 1971년 7월 구로베 협곡철도로 정식 발족했다. 철길은 산 귀퉁이의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뚱뚱한 안내양은 맨 뒤칸 맨 뒷자리가 지정석이었다. 그녀는 기차의 착발 때마다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았다.
『다음 역은 쿠로나기, 쿠로나깁니다. 이곳은 온천이 유명합니다. 온도가 섭씨 98도입니다. 우나츠키 온천장도 여기서 물을 끌어다가 씁니다. 목욕하러 오신 손님들은 다음 역에 하차해 주십시오. …』
제주도 관광택시 운전사 뺨친다. 협곡이어선지 바람이 차다. 8월에도
평균 기온이 섭씨 18도란다. 철도 건너편의 산들은 모두가 수직으로
서 있다. 頂上은 비와 안개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아래 협곡에는 전날부터 내린 폭우 탓에 흙탕물이 마구 뒤집히며 내려가고 있다. 이 협곡은 8008굽이로 소개돼 있다. 길이는 86km. 끝은
동해와 맞닿아 있다. 맞은편 산에서는 길이 200m가 넘는 실 폭포가 여기저기 국수 가래처럼 흘러내린다.
『비가 많이 오니까 절로 생겨난 폭포입니다. 평소에는 저렇게 가는
물줄기가 없어요』
안내양의 설명이다. 철도연변에는 너도밤나무, 졸참나무, 삼나무, 솔송나무가 이름표를 달고 서 있다. 종점을 두 정거장 앞두고 가네츠리(鍾釣)역에서 내렸다. 돌 틈에서 온천이 나온다는 이와부로(岩風呂)를
보기 위해서였다.
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자 왼쪽 골짜기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300계단쯤 내려가니 앞서가던 여자들이 문득
발을 멈춘다. 세 평 남짓한 이와부로 안에는 어른 셋이 벌거벗고 앉아
있었다. 모두 머리에 수건을 올린 것으로 봐 남자들 같았다.
이와부로는 먼저 온 사람이 임자다. 1인당 500엔의 입장료만 내면 선착순이다. 탕 입구에는 댐 방류의 경고문이 붙어 있다.
「사이렌이 처음 150초간 울리고 10초 쉬고 또다시 60초 울리면 댐의
방류가 시작되는 것이니 빨리 대피하시오」
이와부로는 부인병, 위장병, 신경통에 효과가 있어 여자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필자는 여기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도야마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 출발시간이 오후 2시30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