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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농민소설의 변모 양상
김종성
1. 서 론
김시태가 엮어낸 『잊혀진 작가와 작품들 1』(깊은샘, 1988)에 이근영의 단편소설 「고향사람들」이 실려 있다. 유항림, 최명익, 구연묵, 박노갑, 이선희, 현덕 등과 함께 잊혀진 작가로 분류된 이근영은 백철의 『신문학사조사』에 다음과 같은 언급을 제외하고는 남한에서 출간된 문학사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이근영은 남한 문단과 학계에서 잊혀진 작가였다.
李根榮도 取材面으로 보면 農村物과 함께 都市와 小市民에 取材한 작품들 ≪금송아지≫(1935년), ≪菓子箱子≫(1936년), ≪理髮師≫(1939년), ≪適任者≫(1939년), ≪日曜日≫(1939년), ≪少年≫(1942년) 등이 있고, 그 중엔 , ≪理髮師≫ 같은 佳作도 있지만, 그러나 이 작가의 작품도 그 역량이 확증된 것은 그런 小市民物보다는 농민에 取材한 작품들이다. 초기의 작품으로선 ≪農牛≫(1935년)가 이 작가의 작품의 대표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堂山祭≫(1939년 1월 ≪批判≫)와 ≪고향사람들≫(1942년 2월 ≪文章≫) 등이 모두 이 작자가 역량을 기울인 重量 있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이 傾向的인 데까지 나가지는 않았으나 그 대신 농민의 實生活을 이해하고 농민의 감정을 진실하게 파악해서 堅實한 作風을 보였다.
-백철, 『신문학사조사』, 신구문화사, 1980, p. 506.
백철은 이근영(李根榮)을 중량감 있는 농민소설을 발표한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이근영은 해방 직후에도 농민과 농촌에 대해 작가적 관심을 기울여 「고구마」 같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월북 후 북한에서도 농촌과 농민에서 취재하여 1953년 장편소설 『청천강』, 1955년 단편소설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 1956년 중편소설 「첫수확」 등을 발표하였다.
이근영[이근영의 생애는 전흥남(「이근영의 문학적 변모와 삶」,『문학과 논리 ․2』, 1992), 이연주(「이근영 소설연구」, 연세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3), 최성윤(「이근영연구」, 고려대 대학원 석사논문, 1999) 등을 참조하여 정리했다.]은 1909년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지금은 군산시로 편입됨)에서 이집찬(李集瓚)과 고성녀(高性女)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던 아버지가 일찍 죽자, 가정 형편이 더욱 어려워졌다. 옥구에서 함라소학교를 마친 이근영은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이주했다. 중동중학교를 거쳐 1931년 보성전문학교(지금의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이근영은 1934년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해 그는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사회부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1935년 「동아일보」의 자매지인 『신가정』에 단편소설 「금송아지」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40년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춘추』 편집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8․15 직후에는 고향인 옥구에 머물다가 서울로 올라가 조선통신사, 서울신문사 등에도 잠시 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근영은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의 농민문학위원회의 사무장을 맡아 문학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근영의 월북 시기는 대체로 1947년 겨울에서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사이로 보이지만 1948년 말에서 1949년 초 또는 6·25전쟁 중에 월북했을 가능성(전홍남, 최성윤의 앞의 논문 참조.)도 배제할 수 없다.
본고는 이근영의 작품 가운데 논의 대상을 농민과 농촌에서 취재한 소설로 한정하여 그 변모 양상에 대해 해방 전 작품인 「고향 사람들」, 해방공간의 작품인「고구마」, 그리고 북한에서 발표한「그들은 굴하지 않았다」와 「첫수확」을 중심으로 리얼리즘적 관점에서 논의를 펼쳐나가고자 한다.
2. 농민소설과 비판적 리얼리즘
이근영의 농민소설은 크게 해방 전과 해방공간 그리고 월북 이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해방 전에 이근영이 쓴 농민소설의 경향을 황폐화된 농촌사회와 이산의 정조로 본다면, 해방공간의 경향은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보다 의식이 첨예해진 경향 즉 농민의 주체적 삶에 보다 중심을 두고(이명재 편, 『북한문학사전』, 국학자료원, 1995, p. 365.) 있다. 월북 후 이근영은 여러 편의 농민소설을 발표한다. 그 가운데 1950년대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미군과 국군에 대항하여 싸우는 남한 농민들의 모습을 그린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박종원·류만, 『조선문학개관․Ⅱ』 ,사회과학출판사, 1986(인동 영인본, 1988), pp. 203〜204.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조선문학통사: 현대편』, 사회과학출판사,1959(인동 영인본, 1988), pp. 350〜351.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조선문학사: 1945〜1958』,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8, p. 369.)와 농업협동조합사업을 화두로 하여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북한농민들의 모습을 그린 「첫수확」(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위의 책, p.323.)에 북한 문학사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해방 전에 이근영은 농촌 공동체의 해체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편의 농민 소설을 발표했다. 「농우」,「당산제」,「고향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농우」는 지주와 소작농민의 대립 구조를 얼개로 하여 착취당하는 궁핍한 처지에서도 끝까지 양심을 지키고 분연히 단결하는 농민들의 저항을 통해 사회구조적 변혁의 갈망을 그리고 있다. 「당산제」는 가난하나 성실하게 살아가는 덕봉이 일가를 중심으로 지주인 윤 참판의 착취와 점점 자본주의화되어 가며 공동체 의식과 도덕성 등이 해체되어가는 1930년대 한국 농촌의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고향사람들」은 일본 오사카(大板)의 조선술집으로 팔려간 화선이를 만나기 위해 궤짝 속에 숨어 밀항하였던 점쇠가 밀항에 실패하자 결국에는 생계를 위해 홋가이도(北海道) 탄광에 가게 되는 이야기다. 「최고집 선생」은 일제말기 궁핍한 현실에서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이주해 가게 되는 농민의 슬픔을 그리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작품은 「고향 사람들」로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어가는 과정과 이농(離農)의 아픔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신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잔치까지 하여 주시니 참말로 고맙습니다. 저만은 한 몸둥입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부모형제와 처자를 두고 떠나기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노상히 말하면 누구를 물론하고 고향을 떠나 낯선 대로 품 팔러 가는 것은 참말이지 슬픈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돈을 벌러 갑니다. 힘껏 일을 하여서 돈을 잔뜩 벌어 가지고 와서 잘 살겠습니다. 하누님이 무심치 않으니 꼭 그리 될 것입니다. 여기 오신 여러 어른네들은 저들이 올 때까지 부데 평안히 계시고 농사를 잘 지십시오. 멀리 타향에 있는 우리들은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여 달라고 항시 축원하겠습니다. 더 말씀 드리고 싶지만 목이 메는 것 같아서 구만 두겠습니다.
-이근영, 「고향사람들」, 김시태 편, 『잊혀진 작가와 작품들 1』, 깊은샘, 1988, p.133.
보통학교를 졸업한 진수라는 농민이 답사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 보니 누구나 울상을 하고 있다. 논밭을 갈던 농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일본 홋가이도 탄광으로 돈을 벌러 가는 과정의 이면에는 농촌의 궁핍화 현상이 숨어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근원적으로 파헤쳐 보여주고 있다(김시태 편, 위의 책, p. 133.)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방 전에 발표한 이근영의 농민소설들은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고 개인적 삶의 의미를 묻는 비판적 리얼리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농우」의 서 생원, 「당산제」의 덕봉, 그리고 「고향사람들」의 점쇠까지 모두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하는 불합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대응방식을 택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이근영이 해방공간에 발표한 작품 가운데 농민소설로 주목되는 작품은 「고구마」이다. 전형적인 소작인 박 노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해방 직후 농촌에서 가장 쟁점이 되었던 토지개혁 문제를 다루고 있는 「고구마」는 해방공간의 농촌 현실과 변화 과정을 지주인 강 주사와 그의 땅을 빌려 고구마를 재배하는 박 노인과의 대립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근영은 해방 이전의 작품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농민, 지주와 소작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의 얼개를 짜 나갔던 것에 비해 「고구마」에서 토지개혁 문제로까지 주제의식을 심화 확대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박 노인으로도 이즘 얼마동안 자기의 형편을 한탄한 나머지 경작하는 땅을 자기가 가져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었다. 자기 소유의 땅이거나 말거나 소작료로 뺏기는 것만은 면하여야 옳고 이번 나라를 찾었으니까 고생한 자기들의 생활부터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것만은 굳게 믿었다.
-이근영, 「고구마」, 신덕룡 엮음, 『해방공간의 농민소설선집: 농민의 땅』, 시인사, 1989, p. 119.
지주인 강 주사로부터 소작농인 박 노인이 당하는 횡포는 일방적인 도조(賭租)의 결정에서 잘 드러난다.
“올 밭 도조는 미리 작정하지.”
강 주사는 미닫이만 열고 박노인을 뜰에 세운 채 이렇게 말하였다.
“어떻게 미리 작정한단 말입니까”
박 노인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낯빛을 흐려가지고 물었다.
“이 근방에서는 박노인 감자가 아조 일등이야. 두 마지기마자 감자를 심믄다니 일곱 마 지기에 오백 가마니만 잡고 도조 백 가마니만 가져와. 한 관에 오 원 치면 한 가마니에 백 원 될게 아냐? 뭘 작고 생각하는거야?”
박 노인은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명령이라 강 주사의 얼굴만 애원하듯 마주보다가 시선을 떨어뜨리고 속으로 한숨을 지었다.
-신덕룡 엮음, 앞의 책, pp. 107〜108.
풍년을 예상해서 강 주사가 미리 일방적으로 결정해 놓은 도조는 농사의 결과에 관계없이 갚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온 식구가 매달려 고구마 농사를 지었는데, 도둑까지 맞게 되었다. 박 노인은 소용 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고구마 파 간 자리를 넋놓고 보고만 있었다.
“ 아인게 아니라 신기한 노릇일세. 그럼 우리 조선도 나라를 차젓단 말이지?”
“그럿구 말구 우리 조선도 땅덩어리 차저 가지구 나라님도 들어 안는단 말이네”
“땅덩어리를 차즈면 자네나 나나 땅 한 평이라도 차지할상 부른가”
“그런 속이야 내 아나? 이 사람아”
“허긴 독립이된다니까 반갑긴 하네. 허지만 자네나 나나 비렁뱅이 면하는 게 제일이야. 님금님들어 안는다고 우리를 먹여 살려 줄줄 아는가”
박 노인은 우선 고구마 도적맞은 것이라도 찾는 것이 급한 문제였다. 이대로 가난과 분한 속에서 살 바에는 독립이라는 것도 별나게 기쁜 것도 아니였다.
-신덕룡 엮음, 앞의 책, p. 113.
그러한 박 노인에게 해방을 실감나게 해준 것은 고구마 시세가 폭락한 것을 알고부터였다. 고구마 시세의 폭락은 박 노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해방이 오히려 박 노인에게 생존에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강 주사네의 횡포는 해방 전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해방축하회’ 행사 뒤에 강 주네집을 농민들이 습격했다. 이 사건으로 박 노인은 미군에게 체포되어 압송된다. 박 노인이 탄 자동차가 군산에 이르렀을 때 수천 명의 농민들이 삽과 괭이와 낫을 들고 고함 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조선 독립 만세!”
“노동자 농민 해방 만세!”
이 두 말은 박 노인이 귀에 싫증이 나도록 들어 왔건만 이날 이때처럼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농군들도 저렇게 합하면 훌륭하고 무서운 것이고나”
박 노인은 옆에 앉은 사람에게 감탄하듯 말하였다.
“농민조합이 돼서 지금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래? 우리 동리도 빨리 만들어야지”
"벌써 됐을 것인데 강 주사란 놈이 방해해서 그렇소?”
“참 그래. 암만 방해해도 되기야 할 테지만 이왕이면 다른 데보다 먼저 만들어야”
“ 우리가 나가기 전에 될른지도 모르죠.”
“ 난 오늘 죽어도 좋네. 좋은 세상 된 것을 알었으면 그만이지 꼭 내가 맛을 보야만 하나. 자네들이 맛 보면 그만이지.”
-신덕룡 엮음, 앞의 책, p. 123.
해방이 몰고 온 고구마 시세 폭락으로 해방을 생존에의 위협으로 받아들였던 박 노인이 ‘농군들의 합쳐진 힘’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고, 농민조합 건설이 그를 비롯한 농민들에게 당면 과제라는 주체적인 자각을 보여주고 있다. 박 노인이 의식의 각성을 보이는데까지 이르렀으나 실천적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것이 「고구마」가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지향점에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비판적 리얼리즘에 머무르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실천적 행동이 잘못된 환경을 개조함으로써 올바른 역사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3. 봉건잔재의 청산과 사회주의 이상향 건설
1955년 『조선문학』 8월호에 발표된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는 북한 문학사에 등장하는 이근영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물 만술은 고향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토지 개혁 후 자신의 논을 소유하게 되었으나 좀처럼 생활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았었다. 그러한 형편은 만술이뿐만 아니라 마을의 다 농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지주 김태호만이 계속 재산을 불려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농민들에게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미군이 국군 예비사단의 훈련장을 만들기 위해 마을의 토지를 강제로 징발하려는 계획이 드러났다. 이 훈련장 건설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선 김태호는 일제강점기에 도청을 출입하던 친일파이며 해방 후에는 관청, 미군과 관계를 맺고 있다. 지주 김태호는 자신의 땅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훈련장을 역전으로 옮기자는 운동을 앞장서서 한다. 이것은 결국 다른 마을에 피해를 주는 것이며 본질을 은폐하는 것이었다. 이 운동에 동참하지 않은 만술은 농토에 대한 애착과 긍정적 성격을 지닌 인물로 생계를 위하여 강 바닥에 감추어 두었던 벼가마니를 지고 오다 순경과 민병대원에게 발각되어 빼앗긴다. 미군과 국군이 마을에 들어오고 마을 사람들은 농토를 빼앗기게 된다. 결국 김태호도 그들과 한통속이었음이 밝혀진다. 자신들의 농토를 눈 앞에서 빼앗기게 된 마을사람들은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나 박 영감의 죽음을 기화로 불붙게 된다. 만술을 중심으로 단결한 마을 사람들은 미군의 총탄 앞에서도 끝내 굴하지 않는다. 만술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깨닫고 끝까지 고향을 버리지 않고 싸울 것을 다짐한다.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는 6·25전쟁 후 남한의 현실과 농민들의 투쟁을 형상화해 보인 작품으로 토지개혁 이후에도 변함없이 궁핍한 남한 농민들의 생활상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6·25전쟁 후 미군과 결탁한 매판 지주가 어떻게 순박한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하는 하는가를 군사 훈련장 건설이라는 사건을 통해 작가는 그려 보이고 있다. 북한 체제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이근영이 농민들의 집단적 저항을 작품 속에 형상화 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판적 리얼리즘 단계에 머물러 있던 이근영의 소설이 응집된 집단과 공동체적인 신념에 초점을 둔 사회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이상적 사회의 건설로 매진하는 인물들의 행동을 형상화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지향점에 와 닿은 것이다. 북한에서 나온 문학사들도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의 남반부 인민들에 대한 식민지 략탈 정책 밑에서 신음하는 남반부 농민들의 처참한 생활처지와 이러한 생활처지에 덥쳐 농민들의 토지를 새로 생긴 <국군> 예비사단 훈련장으로 만들려는 원쑤들의 기도를 항거하여 일어선 농민들의 투쟁을 묘사하였다. 토지를 빼앗긴다는 사실 자체가 남반부 농민들에게 더 없는 비극이라면, 그것이 3년 동안 조선 사람들의 피를 그처럼 많이 흘리게 한 침략전쟁을 또 다시 도발하기 의하여 빼앗는 것이라 할 때 농민들은 그저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보통 농민인 만술이와 그의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하여 군사훈련장 용지로 강점당한 자기들의 토지를 버티고 서서 물러나지 않았다. 원쑤 앞에서 일보도 물러나지 않은 농민들의 항거는 그들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였다. 작자는 만술이와 그 동료들이 이와 같이 자기 토지의 군사화를 반대하고 끝까지 완강하게 항거하도록 고무한 것은 조국통일에 대한 리염에의 자각이었다는 것을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통해 강조하였다.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조선문학통사: 현대문학편』, 사회과학출판사, 1959(인동 영인, 1988), pp.350〜351.
단편소설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는 순박한 한 농민의 형상을 통하여 농토를 빼앗아 군사훈련장을 만들면서 새 전쟁 준비에 미쳐 날뛰는 미제와 그 앞잡이놈들의 반인민적 책동을 폭로하였으며 놈들을 반대하여 분연히 일떠선 남조선농민들의 투쟁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품은 주인공 만술의 성격을 형상하는데 있어서 가정적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소박하고 온순한 그가 어떻게 놈들을 반대하는 투쟁 대렬의 앞장에 서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식민지 략탈정책에 의하여 빈궁과 도탄 속에 빠져들어간 주인공 만술일가를 비롯한 마을 농민들은 미국놈 때문에 얼마 안 되는 농토를 빼앗기는 기막힌 처지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그들은 미국놈과의 “교제비”를 긁어모음으로써 자기 리속을 채우려는 주지 김태호놈의 교활한 술책에 걸려들어 더욱 막다른 처지에 빠지게 된다.
작품은 계급의식이 미약하고 순박하기만하던 만술이가 자신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그리고 선진적 로동자들의 영향을 받아 미제 침략자들의 반동적 본질을 인식하게 되며 놈들의 악랄한 회유와 기만을 물리치고 마을 농민들과 함께 자기들의 농토를 고수하기 위하여 굴함없이 싸우는 과정을 진실하게 그려내였다.
작품은 마을 농민들의 투쟁모습을 통하여 그들의 투쟁이 비록 자연발생적이고 분산적이기는 하나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강력한 힘으로 더욱 장성하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조선문학사: 1945〜1958』,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8, pp. 368〜369.
그밖에 『조선문학개관 2』에서는「그들은 굴하지 않았다」를, “농토를 빼앗아 군사훈련장을 만들면서 새 전쟁 준비에 미쳐날뛰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책동을 반대하는 남조선 농민들의 투쟁을 반영한 소설”( 박종원·류만, 앞의 책, pp. 203〜 204.)로 평가하고 있다. 해방 전에는 자신의 고향마을을 무대로 하여 생동감이 넘치는 농민들을 등장시켜, 여러 편의 농민소설을 발표했던 이근영은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에서 농민을 생동감있게 창조하는 데는 실패했다. 현장감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후 이근영은 여러 해에 걸친 현지 체험을 거쳐 중편소설 「첫수확」을 발표했다. 「첫수확」은 3부작 장편소설 『청천강』과 함께 이근영이 북한에서 발표한 대표적 농민소설이다.
「첫수확」이 창작된 시기의 북한의 농촌 상황은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라는 명목으로 농업협동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해방 직후에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재분배하기는 하였지만 아직까지 개인 소유의 토지제도가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개인 소유제를 폐지하고 농업협동조합을 통해‘협동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1953년부터 시작된 농업협동화 사업은 1956년 말에는 거의 90퍼센트에 달하게 되었고, 1956년 8월에는 전체 농민이 모두 농업 협동조합에 소속되어 토지는 개인 소유가 없어지고 모두 협동조합화하게 된다.
이러한 농업 협동화를 소재로 한 소설들로는 강형구의 「출발」(1954년), 김만선의 「태봉영감」(1956년), 천세봉의 장편소설 『석개울의 새봄』(1부 1955년, 2부 1959년) 그리고 이근영의 「첫수확」(1956년) 등이 있다. 『석개울의 새봄』은 긍정적 인물인 창혁, 곽봉기, 억삼 등과 부정적 인물인 리인수, 권치도, 박병천, 서기표 등의 대립을 축으로 하여 당 위원장의 격려와 지도에 힘입은 난관 극복과 승리라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석개울의 새봄』은 사상 개조와 치열한 계급투쟁을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출발」과 「태봉령감」도 이러한 패턴과 주제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협동화운동이 심화발전되어 대중적 단계에로 넘어감에 따라 소설문학은 집단로동의 실천 속에서 사회주의적 근로자로 개변되여 가는 농민들의 사상의식 발전과정과 그들의 사이에 맺어지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밝혀내는 데로 힘을 돌리였다.
단편소설 「태봉 령감」(1956, 김만선)은 이러한 창작적 지향과 로력에 의하여 이룩된 성과작의 하나이다.
작품은 집단로동을 싫어하고 건달을 부리면서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보려고 생각하던 태봉령감이 조합일군들의 인내성 있는 교향과 해설 설복에 의하여 자기의 낡은 사상적 병집을 고치고 개조되여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종원·류만, 앞의 책, pp. 239〜240.
농업 협동화를 통해 북한 농촌의 사회체제가 점차 변모해 갔다. 이에 따라 이제까지의 개인 노동이 아닌 집단 노동 속에서 북한 농민들은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개조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근영의 「첫수확」도 이와 같이 북한 농민들의 의식 개조를 주제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입대하기 전에 고향마을에서 이 서기장으로 일했으며, 제대 후에는 협동조합을 결성한 고향 사람들에 의해 조합 관리위원장으로 뽑힌 상진이는 사업 수완을 갖춘 유능한 농촌 일꾼이었다. 상진이가 조합을 이끌어가는데 난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조합의 경제적 토대가 약했고, 영농을 위한 축우문제는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소를 가진 일부 조합원들은 마을의 부농 안경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동요했다. 안경하는 상진의 외삼촌이었다. 호경 영감은 조합을 탈퇴했다. 씨름쟁이 영감도 조합을 탈퇴하기 위해 청원했다.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 가운데는 아직도 조합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소를 함부로 다루고, 곡괭이 자루를 하루에 두 개나 분지르고, 비싼 마차 기름을 개인농에게 나누어 주는 조합원도 있었다. 이 모든 난관 앞에서 상진은 당황했다. 세포위원장 영구를 비롯한 핵심 조합원들의 도움을 받아 강한 의지로 난관을 헤쳐갔다. 먼저 조합을 조직적으로 강화하여 나갔다. 그리고 자기만 잘 살려하는 사상, 조합의 재산을 아끼지 않은 개인 이기주의 사상과 그리고 조합의 발전을 일부러 방해하려는 사상과 줄기차게 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상진이는 부족한 축력을 해결하려고 고심했다. 이른 봄의 영농계획서를 짜면서 조합의 첫농사를 혁신하자는 의견이 조합원들로부터 나왔다. 이것에서 상진은 육상모판을 대대적으로 차릴 것과 논에 보리를 심어 이모작을 할 것을 착안한다. 원래 사질이 전혀 없고 찰떡같이 차진 진흙 땅인 이곳의 논에 육상모판을 차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상진은 잘 알고 있었다. 상진이 육상모판을 차리기 위한 계획을 말하자, 조합원들은 반대했다. 핵심조합원인 소영감까지도 주저하였다. 낡은 사고방식으로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테두리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합원들의 보수성을 상진은 지적했다. 필요한 곳에서 온갖 가능성을 찾아냈다. 그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만들기 위하여 육상모 해결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기하였다. 상진의 확신과 고무는 조합 사람들의 가슴에 커다란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 흥분은 노력 투쟁에서 거대한 물질적 역량으로 변하였다. 조합의 선봉부대인 민청원들은 육상 모판을 위한 결수로 파기에 나섰다. 각 작업반에서는 이것을 계기로 하여 ‘5만보 운동’에 나섰다. 육상모판은 설치되었다. 그러나 일은 순조롭지 않았다. 모판의 관리를 맡은 호경 영감의 아들 병두는 아직도 치안대에 가담했던 자기의 죄과를 철저히 뉘우치지 않았다. 조합의 유안비료 한 가마니를 처갓집에 나눠 주기도 하고 자신을 비난했던 일남 어머니가 관리하던 모판의 나래를 거두어 모를 얼어 죽게 한다. 그러나 상진은 이러한 것에 굴하지 않고 조합을 이끌어간다. 조합원들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벼는 알알이 영글어갔다.
김헌순은 「리근영 작품집 ‘첫수확’에 대하여」 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중편 「첫수확」이 발휘하는 예술적 힘은 종래 협동조합을 취급한 적지 않은 작품들이 조합이 조직되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치우거나 혹은 첨예한 갈등을 제기는 하면서도 주어질 결론을 조급하게 서둔 데서 표현되는 안일하고도 만세식 분위기와 자기를 날카롭게 대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자기의 주인공을 시종일관 생활적 난관과 첨예한 계급적 갈등 속으로 내몰면서 낡은 것의 집요한 저항을 밀어 제끼고 힘있게 자라나는 새것, 긍정적인 힘을 예술적으로 확인하려는 진정한 노력을 기울였다.
-김헌순, 「리근영 작품집 '첫수확'에 대하여」,『 조선문학』, 1958.6[『현대문학비평자료집 이북편』 8, 태학사, 1994, p. 201.]
이근영이 「첫수확」에서 ‘예술적으로 확인하려는 진정한 노력’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농민들의 생활 모습을 능숙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모판에는 三五리 밖에서 모래를 실어다 깔고 퇴비와 비료를 묻고, 할 수 있는 정성과 공력을 죄다 들였다. 종자로는 저항력이 강하며 중량이 많이 나가는 은구 六호로 하여 염수선을 거쳐서 호루마린 소득까지 하였으며, 이 지대에는 늦추위가 오래 계속되는만큼 방안에서 미리 싹눈을 틔워서 四월 一二일에 락종한 데다가 햇볕을 흠뿍 받으라고 까만 구들재를 덮어주었다. 차츰 싹이 자라 솟구치는 통에 습기로 죽까풀처럼 된 구들재에 거미줄 같은 가는 틈새가 벌어지고 그리로부터 연록색의 모가 바늘 모양으로 뾰죽뾰죽 돋아 났다. 허실 없이 발아되여 마치 비단천을 깔아 놓은 것처럼 아름답고 탐스러웠다. 그렇게 불안하게 여겼던 륙상모가 이렇게 되자, 조합원들은 상진의 예상대로 정당 평균 四톤 三백을 거두는가 하여 마음이 흐뭇하였다. 그래 조합원들은 닷새마다 서는 장에 나오면 의례 三리쯤 걸어서 모판에 다녀 가군 하였다.
-리근영, 『첫수확』, 조선 작가동맹출판사, 1957, p.119.
윗글은 모판을 설치한 뒤 종자를 심고, 그 종자를 싹 틔우고 육상모를 기르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농촌 현지 생활과 치밀한 관찰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이근영은 평안남도 문덕군 동림리 원동마을에 가서 현지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근영, 「농촌현실의 기적에 대하여」, 『조선문학』, 1958. 10.) 오랜 농촌 현지 생활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작품을 쓰는데 커다란 자산이 되었던 것이다. 북한에서 농민작가라는 칭호를 얻은 이근영은 『첫수확』에서 일남 어머니와 같은 인간형들이 지니고 있는 구시대적 의식은 척결되어야 하며 새 시대에는 상진이와 같은 새로운 인간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김헌순은 이근영의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형상 창조의 성과는 물론 농촌 현실의 진실을 탐구하려는 작가의 진지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이와 함께 그에게 이미 갖추어져 있는 훌륭한 예술적 솜씨- 작중 인물의 정확한 초상과 개성적이요, 순탄한 대화, 인물 대화에서 사투리의 효과적이고 능숙한 이용, 짤막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삽입하고 있는 자연 풍경 묘사, 침착하고 간결한 필치 등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김헌순, 앞의 논문, p. 207.
봉건잔재의 청산과 사회주의 이상향 건설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 「첫수확」은 농악과 축제 장면으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면서 결말을 장식하고 있다. 첫수확의 분배가 끝난 다음의 농악과 축제 장면은 「당산제」와 「고향사람들」의 결말 부분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이근영이 해방 전에 발표한 농민소설들과 북한 체제에서 발표한 농민소설들이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4. 결 론
본고는 그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소외되어 왔던 이근영의 작품 세계를 농민소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해방 전 작품인「고향 사람들」, 해방공간의 작품인 「고구마」, 그리고 월북 후 북한에서 발표한「그들은 굴하지 않았다」와「첫수확」을 중점적으로 분석했다. 현실의 모습을 비판하고 개인적 삶의 의미를 묻는 비판적 리얼리즘 단계에 머물러 있던 이근영의 소설이 응집된 집단과 공동체적인 신념에 초점을 둔 사회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이상적 사회의 건설을 향해 매진하는 인물들의 행동을 형상화 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지향점에 와 닿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첫수확」은 작가가 여러 해에 걸친 현지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써서 북한 농민들의 생활 모습을 능숙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본고는 농민들의 투쟁을 그린 3부작 장편소설 『청천강』 등을 평가하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고, 작품 분석에 있어 정치한 분석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출전 , 김종성, 「이근영 농민소설의 변모 양상」, 김종회 편, 『북한문학의 이해』 , 2, 청동거울, 2002, pp. 385〜402.
*『한국문학사 Ⅴ』(미출간) 1950년대 북한의 소설에 요약되어 삽입된 내용의 원본이다,
필자 소개
김종성(金鍾星)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하여 삼척군 장성읍(지금의 태백시)에서 성장.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및 고려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4년 「한국현대소설의 생태의식연구」로 고려대에서 문학박사 학위 취득.
1984년 제8회 방송대문학상에 단편소설 「괴탄」 당선.
1986년 제1회 월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검은 땅 비탈 위」 당선.
2006년 중단편집 『연리지가 있는 풍경』(문이당, 2005)으로 제9회 경희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
연작소설집 『마을』(실천문학사, 2009), 『탄(炭)』(미래사, 1988) 출간. 중단편집 『연리지가 있는 풍경』(문이당, 2005), 『말 없는 놀이꾼들』(풀빛, 1996), 『금지된 문』(풀빛, 1993) 등 출간. 『한국환경생태소설연구』(서정시학, 2012), 『글쓰기와 서사의 방법』(서정시학, 2016), 『한국어어휘와표현Ⅰ:파생어ㆍ합성어ㆍ신체어ㆍ친족어ㆍ속담』(서정시학, 2014), 『한국어 어휘와 표현Ⅱ:관용어ㆍ한자성어ㆍ산업어』(서정시학, 2015), 『한국어 어휘와 표현Ⅲ:고유어』(서정시학, 2015), 『한국어 어휘와 표현Ⅳ:한자어』(서정시학, 2016), 『글쓰기의 원리와 방법』(서연비람, 2018) 등 출간. 『인물한국사 이야기 전 8권』(문예마당, 2004년) 출간.
'김종성 한국사총서 전 5권' 『한국고대사』(미출간), 『고려시대사』(미출간), 『조선시대사Ⅰ』(미출간), 『조선시대사Ⅱ』(미출간), 『한국근현대사』(미출간), ‘김종성 한국문학사 총서 전 5권’ 『한국문학사 Ⅰ』(미출간),『한국문학사 Ⅱ』(미출간), 『한국문학사 Ⅲ』(미출간), 『한국문학사 Ⅳ』(미출간), 『한국문학사 Ⅴ』(미출간).
도서출판 한벗 편집주간, 도서출판 집문당 기획실장 , 고려대출판부 소설어사전편찬실장, 고려대 국문과 강사, 경희대 국문과 겸임교수, 경기대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 강사,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 및 동 인문정보대학원 강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