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경계도시2’ – 지금 우린 얼마나 다를까
이동진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됐다. 2003년 가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37년만에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자 홍형숙 감독은 3주의 일정 동안 그의 모국방문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를 찍기로 했다. 송교수의 입국이 계속 좌절되는 상황을 다룬 ‘경계도시’를 찍었던 감독으로서, 그의 시선에 담긴 한국사회의 변모라는 테마를 통해 일종의 후일담을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송교수의 입국 후 한국 사회의 온갖 갈등과 모순이 그를 향해 소용돌이치면서 사태는 예기치 못했던 상황으로 급격히 악화되어갔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카메라 렌즈 너머에서 관찰하던 감독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본명선언’ 같은 다큐멘터리들을 통해 인상깊게 활동해온 홍형숙 감독의 신작 ‘경계도시 2’(3월18일 개봉)’는 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의 고백대로, 흡사 공포영화처럼 느껴진다. 송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김철수와 동일인이냐의 여부를 놓고 논란이 시작되고, 이어 그의 노동당 입당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애초 우호적이었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냉각된 후 이데올로기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과정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양심적인 학자에서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으로까지 지탄받기 시작한 송교수는 당혹과 피로를 짙게 드러낸다. 압력에 밀려 노동당 입당 사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독일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선언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완전한 굴복을 얻어내려는 강압이 점점 더 거세지는 상황 속에서 그는 끝없이 벼랑으로 몰려간다. 그리고 남과 북을 넘나드는 ‘경계인’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규정했던 그는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긍정과 총체적 부정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요 앞에서 철저히 능욕당한 끝에 구속된다. (이 영화는 “2008년 대법원은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항소심 결과를 확정하고, 독일 국적 취득 후의 북한 방문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경계도시2’는 대단히 역동적인 다큐멘터리다. 이야기의 전개는 극영화 이상으로 극적이고, 언제나 사건의 중심에서 굳건히 버티는 촬영은 뚝심이 대단하다. 상황의 추이보다 그 상황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는 내레이션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104분의 상영시간 동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드는 밀도높은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송교수를 특별히 미화하지도 않는다. (사실 그는 감추었던 것도 있었고, 휘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것은 무엇을 찍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찍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다. 밖을 향한 손쉬운 단죄 대신 안을 들여다보는 자성을 택한 이 작품의 힘은 감독 스스로의 오류와 혼란까지 허용하는 정직성으로부터 솟아오른다. ‘경계도시2’는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태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 영화는 등장 인물들의 ‘소속’을 자막 등을 통해 굳이 밝히지도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보수와 진보 진영 중 어디에 속하느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홍형숙 감독 스스로가 예측 못했던 충격 앞에서 자신이 찍고 있는 인물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다 자신의 마음 속에 숨어있던 ‘레드 콤플렉스’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참혹한 부분은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는 보수 진영의 총공세 장면이 아니라, 집단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무작스레 희생양을 만들려고 하는 진보 진영의 대책 논의 장면이다.)
그렇게 ‘한국사회라는 리트머스 시험지 위에 떨어진 송두율이라는 민감한 시약’을 다뤄나가던 영화는 결국 익명의 우리(We)을 거울 앞에 모조리 불러세움으로써 모두의 패배를 뼈아프게 기록한다. ‘경계도시2’를 보다보면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오르다가도 종국엔 무겁게 가라앉고 만다. 그리고 스크린을 향해 토해내던 탄식은 결국 관객 자신을 향해 돌아온다.
“송교수의 입장에서 본 한국사회의 변모”라는 ‘경계도시2’의 당초 방향은 급변하는 상황에 따라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컨셉트는 가장 역설적인 방식으로 결국 성취된 셈이다. 왜 2003년의 사건을 주로 찍은 영화가 7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완성되어 개봉되는 걸까. “학문과 사상의 자유, 양심과 표현의 자유 등 이미 한국사회가 성취했다고 믿은 민주주의의 초석들은 송교수 법정에서 허상일 뿐이었다”라고 말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시제는 과연 과거일까.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그리고 우리는 대체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