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역 북쪽에 온수동과 궁동이 합쳐져 생긴 수궁동이 있다. 북단의 신정로, 남단의 경인선 철도, 궁동저수지를 동서로 나누며 수궁동의 복판을 가로지르는 궁골길로 인하여 수궁동은 공(工) 자 모양으로 구획되어있다. 2009년에서 2011년 사이에 이 동네를 돌아다녀본 경험을 바탕으로, 남서쪽 끝 온수골에서 출발하여 북동쪽의 불당골까지 걸어서 답사하는 길을 구성하여본다.
[온수골에서 도당재 넘어, 삭새 지나, 원각사까지]
온수초등학교 올라가는 길 온수역 8번 출구를 나서면 길 건너 쪽 고지대에 온수초등학교가 있다. 학교는 높이 91미터 산 위에 있는데, 경인선 쪽 산자락이 워낙 많이 깎여나가서, 산 위가 아니라 절벽 끝에 서 있는 듯 보였다. 시루를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라 하여 산은 시루봉, 동그란산, 벽산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철길이 생기면서 산은 철마산(鐵馬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철마에 길을 내 주느라 본래의 모습이 심하게 훼손된 산이 이름마저 철마산으로 바뀐 것이다.
도당재에서 부천 방향을 바라보면 온수골에 들어선 공단과 역곡의 아파트가 보인다. 온수역 5번 출구 앞이 온수골에 만들어진 온수공단 입구다. 왕이 알고 찾아올까 귀찮아 동네사람들이 온천을 발견하고도 묻어버렸다는 살기 좋은 동네 온수골은 영등포기계공업단지 관리공단, 온수산업단지, 온수공단 등으로 불리는, 1960년대 말 기준으로는 꽤 큰 공단지대로 변모하였었다. 수도권의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사하는 추세인 21세기 초, 온수공단은 다시 옛날에 온천이 솟던 온수골로 돌아가, 온수역 역세권 웰빙 주거지역으로 각광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당재 아래 갈말에 들어선 온수 힐스테이트 아파트 온수역 5번 출구 앞 온수공단 입구로부터 버스 종점, 새마을금고, 수궁 치안센터를 지난 후, 오른쪽을 살피며 걷다보니, 온수아파트가 안쪽에 보이는 길이 있었다. 온수아파트 지나 청암사라는 절 간판을 왼쪽에 두고 산을 오르니 온수배수지가 나왔다. 그곳은 도당재 고개 자리이다. 이 고개는 온수골에서 삭새 또는 갈골이라는 곳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삭새 고개라고도 불렸단다. 이곳에는 잡귀를 물리치고 마을의 평안을 비는 도당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흔적이 전혀 남아있질 않고, 온수골에는 공장과 주택들이, 도당재 고개에는 온수배수지가, 갈골에는 온수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도당재 고개의 남쪽에 높이 102미터 도당산 정상이 있었다.
갈매의 가을 풍경
도당재고개 북동쪽에 있는 이정표. 왼쪽은 개통을 기다리는 까치울역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갈골 자리 온수 힐스테이트 아파트로 이어진다. 온수 힐스테이트 아파트를 둘러싼 철망을 따라 갈대 무성한 도당재 고개로부터 북동쪽을 향해 걸으니 서울정진학교가 나오고 곧이어 온수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나왔다. 이 일대에 갈대가 무성하여서 도당산은 갈매, 삭새는 갈골이라 불리웠단다. 그래서인지, 아파트의 공원 이름이 갈매였고, 인근의 어린이공원 이름은 삭새였다. 삭새어린이공원은 주택의 담장을 허물어 공간을 여유 있게 활용한 녹색주차마을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원각사 미륵불상이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원각사 산령각에는 호랑이를 탄 산신령이 계시다. 삭새어린이공원, 우신중학교 담장, 세종과학고등학교 정문과 담장을 지나, 구로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옆 담장이 나오기 전, 왼쪽 오르막길 위에 있는 별장빌라 쪽으로 길을 잡아 오류고등학교 옆 담장이 끝나는 곳까지 가니 원각사 안내판이 보였다. 1960년대 초, 와룡산(臥龍山)에 있던 오래된 절터에 원각사가 지어졌다고 한다. 산령각(山靈閣)이 열려있어서 산신도 속 호랑이를 타고 앉은 와룡산 할아버지 산신령을 여유 있게 구경할 수 있었다. 미륵불상이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방향을 보고 서 있었다.
[정선옹주 묘와 궁동저수지 생태공원]
안동 권씨 묘역 정선옹주 묘 앞 석등 원각사에서 돌아나오니 서서울생활과학고등학교와 구로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사이에 안동 권씨 묘역이 있었다. 그 안에 정선옹주(貞善翁主) 묘가 있다. 정선옹주는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의 7녀로 안동 권씨 권대임(權大任)과 결혼하여 지금의 구로구 궁동 67번지 일대에서 궁궐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현재 궁동이라고 하는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옛날에 궁이라 불렸던 큰 집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고,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 즉 금계포란형(金鷄包卵型)의 명당자리라는 안동 권씨 묘역도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대신 궁동저수지 생태공원과 비닐하우스 가운데 등산로 입구 자투리땅으로만 남아있었다.
유명조선 길성군 권대임지묘 정선옹주 부좌 라고 쓰여있다
눈동자가 새겨져있고 손에 들고 있는 홀이 각지게 조각된 것이 이 문인상의 특징
평행선 테두리 속에 새겨진 꽃은 모란일 듯 정선옹주 부부 합장묘를 포함한 무덤 여섯 기(基)가 산기슭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치우친 남쪽 방향으로 일렬로 앉아 있었다. 묘역의 제일 위에는 권대임의 할아버지인 권협과 전주 최씨의 무덤이 있다. 그 아래 권대임과 정선옹주, 그 아래 권대임의 아버지인 권신중과 전주 이씨, 그 아래 권대임의 아들 권진과 남양 홍씨, 그 아래 조선현감 권이경과 초계 정씨, 그 앞에 조선군수 권아무개와 안동 김씨의 무덤이 있다. 권이경, 초계 정씨, 권아무개, 안동 김씨라는 이름은 무덤 앞 상석에 새겨져 있었는데, 권아무개의 이름 글자는 읽기 어려웠다. 아들 권대임의 묘가 아버지 권신중의 묘보다 위에 있었다. 권협, 권신중, 권대임, 권진 부부 합장묘의 비석들에서는 ‘명나라의 제후국인 조선’이라는 뜻의 “유명조선(有明朝鮮)”, ‘명나라 숭정황제 돌아가신 후’라는 뜻의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라는 문구가 보였다. 권대임 부부 합장 묘 즉 정선옹주 묘에는 문인상이 없고, 석등이 있고, 호석이 묘를 감싸고 있었다. 권진 부부 합장 묘 상석에는 무덤의 깊이[혈심(穴深)]와 방향[좌향(坐向)]이 새겨져있었다. 제일 아래쪽 같은 평면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권이경 부부 합장 묘와 권아무개 부부 합장 묘 상석에는 피장자의 신상 정보가 새겨져 있었고, 묘비가 없었다. 또한 그 두 묘의 석물 조각에는 왕궁 석물 조각에 보이는 평행선 새김이 보였다. 그것들은 아마도 조선의 망국 이후에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왕실이 건재하였을 때는 왕실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왕실의 상징을 버젓이 사용하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묘역과 저수지 사이에는 권협과 권대임의 신도비가 있고, 신도비의 내용도 번역 요약 소개되어 있다.
수궁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는 궁동저수지 생태공원의 서쪽
토끼와 거북이 안동 권씨 묘역의 동쪽에는 궁동저수지 생태공원이 바로 붙어있다. 안동 권씨의 위세가 쇠퇴한 후 안동 권씨 묘역 바로 옆에 생겼던 것으로 보이는 저수지는 궁골길이 생기면서 동서로 나뉘었다가 생태공원으로 변모한 것 같았다. 묘역 옆 서쪽 호수에는 수궁정(水宮亭)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호수 안에는 토끼와 거북이 조각이 있었다. 온수동과 궁동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수궁동이라는 동네 이름과 용궁[수궁]을 무대로 하는 별주부전의 두 주인공을 연관시킨 점이 재미있었다.
궁동저수지 생태공원의 동쪽 [관음사와 전의 이씨 집성촌을 거쳐 불당골까지] 서쪽 호수에서 동쪽 호수로 길을 건너 SONOGONG[손오공?]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건물과 궁동종합사회복지관 옆 공터 사이의 길을 들여다보면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가 보인다. 그 학교 뒤를 찾아 궁동5길을 따라가니 그 길의 끝에 관음사가 있었다. 관음사는, 궁동저수지 생태공원을 둘로 나누는 궁골길 동쪽에서, 궁골길 서쪽의 원각사와 마주보며 지어져 있었다. 1970년대에 세워진 동쪽의 관음사 미륵불상은 서쪽의 원각사 미륵불상을 마주보며 서 있었다. 그러니 수궁동은 두 미륵이 동서에서 굽어 살펴주는 복된 땅인 셈이다.
관음사 미륵불상이 서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증통훈대부통례원좌통례 행승의랑 광릉참봉 이공괄지묘 증숙인 청주한씨지묘. 내려쓰기지만 왼쪽부터 읽어야한다. 관음사 뒤 매봉산 기슭에 멀리서 보기에도 규모가 제법이며 꽤 오래되어 보이는 묘소들이 있었다. 묘비를 읽어보니 광릉 참봉을 지낸 이괄과 청주 한씨,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광형과 완산 이씨의 합장묘였다. 묘표는 오래된 것이었고, 묘표의 내용을 다시 까만 돌에 새겨서 세운 묘비는 새 것이었다. 봉분에 호석을 두르고 새 묘비를 세우는 등 후손들은 재력과 정성을 들여 조상을 기리고 있었다.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광릉 참봉 이괄 묘소 새 묘비의 비명이 세로쓰기이면서도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줄부터 읽도록 조각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묘소들과 안동 권씨 묘역의 묘소들을 하나하나 비교하며 살펴보는 것은 조선시대 역사 공부의 훌륭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역을 나와 관음사 앞으로 내려서서 궁동5길을 되짚어 걷다가 전의 이씨 궁동 화수회, 전의 이씨 부정공파 종문회관 등의 자판이 걸려있는 건물을 발견하였다. 이괄과 이광형도 전의 이씨인 듯하였고, 그곳은 전의 이씨의 집성촌이었던 듯하였다.
서울전파관리소 궁동저수지 생태공원까지 길을 되짚은 후, 서울전파관리소 동쪽에 있는 금속 분류 작업장 앞길을 지나, 불당골로 접어드니, 옛날에 있었다는 큰 절의 흔적은 찾을 길 없었으나 따가운 가을 햇살을 피하기에는 충분한 나무들이 있었고, 벌을 치고 꿀을 파는 양봉장도 있었다.
글, 사진 이유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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