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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봉 황보인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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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혼선생 묘를 돌아 나와서 화평옹주 묘를 찾았으나 군 부대 안에 있었으며, 군 부대장을 부대 입구에서 만나서 양해를 구했으나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다고 다음에 허락을 받고 오라고 해서 다음 목적지인 지봉 황보인 묘를 찾았습니다만, 네비게이션으로는 찾기가 힘들어서 포기하려다가 주변에 묻고 물어서 목장 안쪽에 있는 묘를 겨우 찾았습니다. 목장주 말씀으로는 이 곳으로 이장한지가 한 10여년은 된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광나루가 왕릉이나 묘지 500여편 이상 소개하는 중에 황보 인 선생의 묘역 처럼 파주시청의 자료 이외에는 인터넷에서 아무리 찾아 보아도 답사 자료는 물론, 답사 사진 한 장 없는 묘지는 처음 봅니다. 황보 인 선생의 묘비에 '정경부인 이씨 부후'로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선생의 봉분 한 단 위에 있는 봉분이 묘비는 없으나 정경부인 이씨의 묘임은 확인할 수 있으며, 정경부인 이씨의 봉분 10여 미터 뒤에 있는 묘의 상석에는 '정부인 연안 차씨 지묘'라고 쓰여 있는데 정부인이라는 것을 보면 이 묘가 선생의 두 번째 부인인 것으로 추측합니다만... 아시는 분은 꼬리글 달아 주세요... 광나루가 이 정도로 사족을 단 것도 처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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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보인 묘역으로 오르는 계단은 길고 가파릅니다. |
황보인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사겸(四兼), 춘경(春卿), 호는 지봉(芝峰)이다.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임(琳)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가 내자시직장(內l資寺直長)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고, 1414년(태종14)의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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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다 오르면 바로 황보인 선생의 묘역이 나타납니다. |
이듬해 승정원 동부대언으로 발탁되고 좌부대언을 거쳐 1430년에는 지신사(知申事)가 되었다. 이듬해 강무행행 중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마가 살상되자 이에 대한 문책으로 파면되었다가 같은 해 형조참의로 복직되었으며, 이어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1432년 형조좌참판, 병조우참판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10월부터 다음해 1월에는 사은사 정효전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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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묘비(묘역 좌측)는 깨어져서 우측에 새로운 묘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
1441년(세종23) 함길도에 파견되어 종성을 수주(愁州) 강변으로 이치(移置)하면서 종성, 회령, 온성, 경원, 경흥 등지에 소보(小堡)를 설치하여 북방의 방어를 강화하였다. 이후 빈번하여 평안도와 함길도를 출입하면서 김종서(金宗瑞)와 쌍벽이 되어 북변을 개척하고 방어하는데 공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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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보인선생 묘역 정면 및 측면 모습 |
1445년(세종27) 좌찬성으로 판이조사(判吏曹社)를 그뒤 1449년 의정부의 직에서 해임된 뒤 양계축성(兩界築城)의 일에 전념하겠다고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아 우의정에 유임하면서 축성사를 관장하였으며, 같은 해에 좌의정의 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사은사로 부사 김효성과 함께 명나라에 파견되었다가 문종의 고명을 받고 귀환하였으며, 이듬해 영의정부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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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보인선생 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 |
1452년(단종 즉위년) 빈전, 국장, 산릉도감의 총호사(總護使)가 되어 문종의 국상을 총령하였고, 이듬해에 영춘추관사로서 감춘추관사 김종서 등과 함께 『세종실록』을 찬진하였다. 같은 해에 계유정난으로 좌의정 김종서, 우의정 정분, 우찬성 이양, 이조판서 조극관 등과 함께 문종의 유명을 받아 어린 단종을 보필하던 중 피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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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보인선생 바로 뒷편의 한 단 높은 곳에 위치한 정경부인 이씨의 묘 |
오랫동안 신원(伸寃)이 되지 못하다가 1705년(숙종31) 7월 한성부판윤 민진후의 상소를 계기로 김종서와 함께 복관이 논의되었으나 실행되지 못하였다. 그뒤 1719년 후손이 전조(銓曹)에 서록(敍錄)됨으로써 부분적으로 신원되었고, 1746년(영조22) 복관되면서 완전히 신원되었다. 그뒤 1758년에는 충정(忠定)의 시호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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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부인 이씨의 묘 뒷편에 봉분이 하나 더 있는데, 상석에는 '정부인 연안 차씨 지묘'라고 쓰여 있어.... 둘째 부인으로 추측... |
1791년(정조15) 장릉 충신단에 배식되고, 1804년(순조4) 집앞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1807년(순조7) 조상의 묘를 옮기지 않는 부조지전(不祧之典)을 받았다. 영천의 임고서원, 구룡포읍의 경남서원, 종성의 행영사(行營詞)에 제향되었다. 묘소는 법원읍 동문리에 있으며 월계단에 배향되었다. - 파주시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황보인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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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725 화살표 ↑ 상단에 황보인 묘역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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