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를 낚아 올린 겸재의 수묵화 한 점
시는 矛盾이면서 順理다. < 장석남 시인의 평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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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낚시(18세기, 비단에 수묵, 61.2×31.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
습습한 장마가 꺽일 줄 모르는 요즘이다. 눅눅해진 서재 한켠에서 두툼한 화첩을 꺼내 펼쳐보다 눈길의 초점이 석고처럼 멎어버린 수묵화 한점! 겸재 정선의 「낚시」다. 낚시의 즐거움이 어찌 고기 잡는 데 머무를까. 흔들리는 낚싯줄과 오르내리는 찌에 눈이 팔리면 몸에 달라붙은 땀내가 씻기고, 미끼를 건드리는 물고기의 입질이 손끝에 감염되는 짜릿함은 반나절의 무더위를 너끈히 쫓아낸다. 게다가 낚싯바늘에 딸려온 세월은 ‘도락(道樂)’이란 화두까지 떠올리게 한다. 시인도 바람과 습기를 동시에 행간에 담아내는 습습한 詩 한편 쓸수는 없을까? 정선의 저 습습한 시와 같은 수묵화를 만나면서 드는 생각이다. 아니 우주가 한 폭의 그림속에 조용히 들와 앉아 있는 정서다. 이시영 시인은 詩를 아는 것은 우주을 아는 것이라 노래한다.
시인이란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우주의 사업에 동참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언제 나의 입김으로
더운 꽃 한 송이 피워낸 적이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눈물로
이슬 한 방울 지상에 내린 적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손길로
광원을 거쳐 내개 달려온 고독한 바람의 잔등을
잠재운 적 있는가, 쓰다듬은 적 있는가
- 이시영, 「내가 언제」전문
나는 우주를 모른다. 다만 그 모름 속에서 모름을 견디면서 詩를 알아가고자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다. 이 수묵화 속에는 '모름'이라는 물음이 붓끝마다 뚝뚝 떨어지면서 빗물 흥건한 화면을 적시고 있다. 시의 창작을 염두에 두면서 저 습습한 시의 빗물 흥건한 화면 속, 아니 우주 속으로 감상여행을 떠나보자. 그러면 무언가 시 한 수 건질 수 있는 행운을 잡을수도 있으리라.
2.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장맛비 몰아치는 산골짜기가 눈앞에 선하게 펼쳐짐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시인 될 자격이 없지 않을까? 붓이 빗물에 온통 젖어서일까, 화면이 흥건하다. 그림을 둘둘 말아보면 물이 줄줄 흘러내릴지 모른다. 하늘에는 빗길이 비스듬하고, 중턱에는 안개가 가로지르며, 계곡에는 물소리가 콸콸거린다. 이런 비대칭적인 구도는 또 얼마나 공교로운 셈법에서 나온 것인가. 바위에 올라선 사내는 비바람에 아랑곳없이 낚시에 몰두한다. 빗금을 치듯이 내리는 음우(陰雨)는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데, 저 멀리 안개를 몰고 온 바람은 키 큰 나무를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나무의 허리는 꺾여도 낚시꾼의 아랫도리는 꿈쩍 않는다. 챙 넓은 삿갓 아래 풀로 엮은 도롱이가 낚싯줄과 함께 나부낀다.
이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바람과 습기를 동시에 포착하는 화가의 필치가 놀랍다. 저토록 물씬한 먹색을 구사하는 화가의 숙련이 감탄스럽다. 물가 바위조차 미끌미끌한 촉감이 느껴질 정도다. 물기 가득한 효과는 원래 수묵이 가진 잠재력에 바탕을 둔 것이라 봐도 좋다. 수분이 품은 습습한 본색을 먹보다 잘 일깨울 수 있는 물감이 어디 있겠는가. 수묵에 무슨 색깔이 들었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다. 흔히 ‘먹색’ 또는 ‘먹빛’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도 그 속에 색의 기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언필칭 서정시의 숨어있는 색이 아닐까?
3.
옛 사람이 말하는 수묵의 색이 무엇인가. 먼저 ‘흑백(黑白)’이다. 그리지 않은 곳은 백색이요, 그린 곳은 흑색이다. 그다음이 ‘농담(濃淡)’, 즉 진한 것과 옅은 것이다. 다음은 ‘윤갈(潤渴)’이다. 촉촉한 것과 마른 것을 이른다. 흑백과 농담과 윤갈의 마티에르(질감)를 정서적 색채로 우려낼 줄 아는 민족에게만 수묵의 묘미를 표현하는 길이 열리는 법이다. 수묵의 깊은 맛과 곰삭은 정은 우리의 전통미에 눈뜰 때라야 비로소 우러나온다.
그러한 면에서 산수화의 대가인 겸재는 고수답게 기법에서도 남다르다. 습기로 눅눅하거나 장마로 축축한 낌새를 보는 이의 피부에 와닿을 듯이 묘사한다. 여름날 물의 낯빛이 무릇 이러하리라. 겸재는 또 산천을 묘사하는 데 익숙한 붓놀림을 자랑한다. 붓을 가로로 뉘여 마치 쌀알 같은 점을 콕, 콕 찍어나간 산의 몸뚱어리를 보라. 돌보다 흙이 많은 산을 묘사하는 데 이처럼 걸맞은 솜씨는 찾기 어렵다. 빗줄기는 먹물을 연하게 풀어 그림 밑바탕에 자연스레 스며들게끔 처리했다. 스쳐 지나가는 비안개는 여름 산중의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뒤편의 버드나무는 부들부들 떨고 바위 곁에 물풀은 오종종 자란다. 그림의 요모조모가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이다.
4.
수묵화는 물과 먹으로만 붓질하는 ‘순수묵’을 일컫지만 때로는 투명하고 맑은 색을 살짝 가미한 ‘수묵담채’를 아우르기도 하는 용어다. 수묵의 미학은 번거로운 걸 싫어한다. 그저 단순하고 간결하다. 담백하되 심원하고, 우아하되 단정하다. 때로는 초월을 감행하기도 한다. 먹물이 만든 진면목이 겸재 정선의 여름 풍경에서 새뜻하게 피어나고 있다.
그렇다. 정선의 「낚시」 한 폭은 저 먹물이 만든 산수의,우주의 진면목이 곧 새뜻하게 피아나는 한 폭의 말없는 시다. 행간에 흥건하게 베어 흐르는 여백의 배면에는 감추면서 드러내는 먹물의 습습함이 먹먹하기까지 하다. 장석남 시인의 말처럼 조금씩 조금씩 드러내면서 덮어가고, 조금씩 조금씩 덮어가면서 드러내는 모순 속의 순리!!! 그러므로 적어도 정선의 「낚시」야 말로 수묵화가 아니고 詩 자체라고 말 할수 있으리라. 단언컨데, 겸재는 천재시인이다.
< 悳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