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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에 던지는 넋두리 모처럼 아침 햇살이 침실까지 가득하다. 창을 연다. 꽃망울보다 먼저 온 황사에 꽃샘추위까지 3월의 셋째 주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천마산 어깨 위로 퍼지던 금빛 까치노을이 어느새 집 앞 교문초등학교 운동장을 환하게 비춘다. 일기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느 아침처럼 오늘도 화장실 전쟁을 치른다. 6시부터 2시간 동안은 세 딸아이들이 등교준비로 늘 바쁘다. 대학생, 고3, 초등 5학년, 거기다 아내까지 가세하니 급하게 볼일이 보고 싶으면, 씻던 아이를 불러내어 대충 해결하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아이들이 한껏 멋을 내고 화장실을 떠난 뒤에는 늘 흔적이 남는다. 배수구 망에 돌돌 말린 머리카락. ‘녀석들 한번만 허리를 구부리면 될 텐데….’ 아쉬움은 있지만,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주어 버리면서 구분하는 재미에 잠시 빠져본다. 길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둘째, 짧으며 굵고 짙은 색이 나는 것은 큰 녀석, 오늘은 머리를 감지 않았으니 셋째의 것은 없을 것이고, 갈색은 아내의 것. 오늘 그 머리카락 뭉치를 바라보면서 생전의 할머니가 떠오른다. 며칠 후면 할머니의 12주기 기제가 돌아오니 더욱 그러하다. “할머니. 고추 달린 애가 자라고 있어요. 증손자 고추는 만져보셔야지요.” 라며, 새끼손가락 한마디 반을 가리키고는 아내의 볼록한 배에 대보기도 했다. 생의 끈을 아직은 놓지 말라는 애교 섞인 말과 행동이었으리라. 뱃속 아이의 성별은 불확실하였지만 문중의 종형으로 할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 여겼다. ‘증손자 고추’는 할머니의 이승의 숨 고름을 3개월 넘게 연장시켰다. 할머니가 나비가 되어 중천(中天)에 계실 때 태어난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니, 아이의 나이와 할머니의 저승 나이는 늘 같다. 지난 일요일 아침 밥상머리에서 유난히 할머니를 닮은 둘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도 하고, 당사자인 셋째의 숟가락질에 눈을 맞춘다. 두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본다. 그리곤 잠시 할머니에 대한 상념을 가져본다. 마침 골목 안에서 두부장수의 종소리가 들린다. 그 종소리 사이로 ‘머리카락 팔아요. 금이빨이나 은수저 팔아요.’ 소리도 겹쳐 들린다. 잠시 유년(幼年)으로 돌아간다. 할머니의 참빗, 동백기름, 정안수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참빗으로 머리를 다듬고는 빗살에 걸린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작은 상자에 보관했다. 그렇게 모은 머리카락은 방물장수의 저울에 달리고 할머니 손에 동전 몇 닢이 쥐어진다. 그 동전은 복조리에 두었다가 결국 우리 남매의 주전부리 대가로 지불된다. 할머니께서 이만큼의 머리카락을 모으려면 한참이나 걸렸는데…. 어머니도 할머니의 머리카락은 아니지만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한다. 이를 우리는 ‘내리사랑’이라 한다. 내리사랑을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자식에 대한 부모사랑, 손자에 대한 조부모의 사랑’이라 한다. 내리사랑의 말뜻에 가장 어울리는 풀이는 당신의 자식에게 주고 남은 마지막 정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그 자식의 자식인 손자, 손녀에게 베푸는 것이라 하겠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은 주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손자, 손녀들이 건네준 작은 정성에도 감탄하고, 일부러 친구들을 만나 꺼내 보이며 입이 부르트도록 자랑하는 것 또한 내리사랑이다. 반면 자식이 윗사람에게 드리는 사랑을 치사랑이라 한다. 언제부터인가 가족의 구성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연스레 잊혀지곤 한다. 내 자신도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대수롭지 않게 오랜 시간 여겨왔듯이 말이다.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할머니의 내리사랑을 느낀 것은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아이들에게 틈나는 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가족은 윗사람의 내리사랑과 아랫사람의 치사랑이 공유해야 가족간 사랑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내리사랑은 치사랑을 감싸며, 오늘도 봄 햇살로 집안 구석구석을 따스하게 비치고 있다. 한철수/시인·좋은아버지가되려는사람들구리모임직전회장 기재일 : 2006.0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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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 어릴 적에 저 참빗 많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