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신문 출향인 수필, 그 뒷이야기①】
단절됐던 고향 선후배와의 인연 ‘청양신문’이 이어주다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장평면 중추리 출신
“윤승원 씨! 아니, 조카님이신가요?”
고향 선배로부터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는 낯설게 느껴지는데 ‘조카님’이라는 호칭이 다정하고 친근하다. 장삼이사(張三李四)처럼 단순히 안면만 알고 지내온 고향 선배가 아니었다. 항렬이 한 단계 높은 종친 아저씨였다.
교직에서 정년 퇴임한 후로는 경기도 동탄에서 사업을 한다고 했다. 아저씨를 전화로 만난 것은 아마도 50여 년도 넘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로 내게 전화를 한 것일까?
과거 충남 도경(道警)에서 근무할 때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관련하여 고향 어르신들로부터 가끔 전화가 걸려오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공직에서 퇴직한 지 10년도 훌쩍 넘은 출향인이다. 다급한 사정으로 전화가 걸려오는 경우는 드물다.
사연을 들어보니, 종친 아저씨는 청양 출신 여러 지인을 통해 나의 연락처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개인정보를 중시하는 시대인지라 쉽사리 연락처를 알아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평소 왕성한 사회 활동과 인정 넘치는 친화력으로 인적 관계망이 폭넓은 아저씨다. 결국, 전국적인 출향인 네트워크를 통해 나의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아저씨가 나의 연락처를 알고자 한 뜻은 달리 있었다.
또 다른 고향 선배의 부탁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작가 활동하면서 한국풍수지리학회 운영과 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장평면 은곡리 출신 L 선배가 나의 연락처를 꼭 알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L 선배는 돌아가신 나의 셋째 형과 절친하게 지냈던 사이로,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고 남다른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정이 많은 고향 선배였다.
그렇다면 L 선배는 어떤 연유로 갑자기 나의 연락처를 알고자 했을까?
“청양신문에서 윤 작가의 수필 「고향 후배의 장례 성심 공덕 칭송②」(12월 6일 자)을 읽은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나의 글을 읽고 반가움에 꼭 안부 전화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과거 청양신문에 실린 나의 글을 읽고 부산에 거주하는 고향 선배 K 선생님도 따뜻한 공감과 격려 전화를 주신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필자 프로필 난에 작가 연락처를 명기해 놓았기에 이번 고향 아저씨처럼 다각도의 인적 관계망을 통해 알아보는 수고로움을 겪지 않아도 됐다.
L 선배가 말했다.
“청양신문에 실린 윤 작가의 수필을 오려서 스크랩해 두었지요. 그러고 나서 전화를 하려니, 연락처를 몰라 윤 작가와 종친인 B 선생님에게 혹시 아시느냐고 여쭈었지요.”
고향 후배의 ‘장례 성심 공덕(功德)’ 칭송 ① - 청양신문 (cynews.co.kr)
고향 후배의 ‘장례 성심 공덕(功德)’ 칭송 ② - 청양신문 (cynews.co.kr)
뜻하지 않은 고향 후배와의 ‘장례식 인연’이 청양신문에 소개되어 ‘풍수지리학’과 ‘역학’을 전공한 고향 선배와의 단절됐던 인연이 복원된 셈이다. 잊고 살았던 고향 선·후배 사이의 인연이 50여 년 만에 따뜻하게 이어진 것은 순전히 청양신문의 가교 역할 덕분이다.
고향 선배들과 장시간 통화하면서 느낀 게 많다. 어디선가 내 졸고를 읽고 반가움에 연락처를 다방면으로 알아본다는 것, 보통의 성의인가. 고향 선배의 정이 철철 넘치는 사랑과 따뜻한 인정에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까맣게 잊었던 고향 선후배와의 인연을 이어가려면 인적 관계망을 새롭게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마트폰에 이미 저장된 연락처를 수시 정비하고 내가 먼저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2021.12.23.
윤승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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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신문 출향인 수필, 그 뒷이야기②】
고향 선배와 나누는 유익한 삶의 이야기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장평면 중추리 출신
50여 년 만에 연락이 닿은 고향 선배와의 전화 통화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를 통하여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향수 어린 옛 고향 이야기며, 오늘날 손자녀를 키우는 가정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다.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의 내력을 엿볼 수 있는 자기소개 형식의 글도 오갔다.
그러다가 아직 미혼인 아들도 있다고 언급했더니, 선배는 즉시 아들의 ‘사주(四柱)’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다. 선배가 누구인가?
과거 충남 청양 시골에 살 때, 20대 청년 시절에 이미 주역(周易)을 통달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서당에 함께 다닌 나의 셋째 형이 선배의 명석한 두뇌와 남다른 학구열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본명은 이원장(李源長). 아호는 ‘주형(周炯)’이다. 아호에 ‘주(周)’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주역(周易)’이라는 전공 학문과도 연관된 것으로 짐작된다.
대학에서 풍수지리와 미래 운명학을 강의한다고 한다. 시와 수필, 소설도 쓰는 등단 작가이기도 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한국 풍수지리 연구학회 운영과 미래운명학회 이사장이란 직함도 갖고 있었다. 주요 저서로는 사주추명학의 완결판 《미래운명학》과 《풍수지리특강》, 《명리강론》 등을 펴냈다.
▲ 주형(周炯) 이원장(李源長) 작가의 저서
하기야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단순히 민속신앙으로 볼 일이 아니라 한 가족의 평안과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다.
가족사에서 뜻하지 않은 불행을 겪었던 나의 부모님과 장모님은 생시에 특별한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따지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일찍이 홀로 되신 장모님은 뜻하지 않은 불행을 피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집 앞에 잡귀를 물리친다는 속설을 가진 커다란 엄나무가 서 있었다. 저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얼까? 나는 장모님의 심정을 이해했다.
일진(日辰)이며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엄격히 따지면서 ‘가리고 삼가는 일’도 많았다. 먹는 것, 물건 사는 것, 심지어 장거리 출타할 때도 ‘좋은 날’을 따졌다. 나의 부모님은 이엉과 용고새(용마름)를 지붕에 올릴 때도 아무 날이나 하지 않았다. 꼭 ‘손 없는 날’을 택했다.
아무런 부담 없이 고향 형님처럼 친숙한 마음으로 아들의 사주를 문자로 보냈더니 곧바로 답이 왔다. 결혼 운이 들어 있는 해(시기)를 자상하게 짚어 주었다. 그러면서 ‘궁합을 꼭 봐서 장가를 보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웃음이 나왔다. ‘궁합을 봐서 장가를 보내라’는 조언이 먼저가 아니라 ‘배필 찾기’가 먼저 아닌가. 아무튼, 아들 중매문제는 인적 관계망이 넓은 선배가 신경을 써 보겠다고 약속하고 대화는 일단 거기서 끝냈다.
이튿날이었다. 핸드폰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산소가 보이고, 밭이 있고, 그 아래 진입로에는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은곡리 선영인가요? 산소 주변에 세워진 바위는 시비 같아 보이는데요, 저도 고향 방문길에 선배님 선산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선배는 겸손하게 답했다.
“선친 산소 아래에 세웠는데, 객기가 묻어나는 글입니다. 웃으면서 봐 주십시요.”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산소 주변을 가족 공원처럼 잘 가꾸고 자손들이 그 자리에 모여 조상님 은덕에 감사하는 일은 뜻있는 일입니다. 시비 문장은 후손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내가 답글을 보내자 선배는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시비를 이곳에 세우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한국문학기념물 조성위원들이 대부분 시인인데, 보령 앞바다에 있는 섬을 하나 인수해서 기념비식으로 한다고 하기에 나는 고향인 은곡리 아버님 산소 아래에 세우는 게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사연을 듣고 보니, 글을 쓰는 작가로서, 또한 풍수지리와 명리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의미 있는 사업이라 느껴졌다.
화창한 날
화창한 날은 그냥 온 게 아니고 창성한 대기업도 그냥 된 게 아니라네 한 많은 사람들이여 날씨 변화의 이치 알면 인생이란 것도 알게 된다네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나니 날씨는 더욱 화창하네 인생이란 게 바로 그렇다네 힘든 날을 보내고 나면 화창한 날이 돌아온다네
지금 이 순간 어렵다고 어려움이 계속되는 건 아니라네 힘든 날을 보내고 나면 화창한 날이 돌아온다네 화창한 날이 돌아온다네
- 주형(周炯) 이원장
인생의 소리
산골짜기 흘러내리는 물과 같이 흐르는 세월도 소리 없이 가네. 시냇물 졸졸졸 흘러내리듯 흐르는 세월 속에 인생도 가네.
흐르는 세월 소리 흘러가는 인생의 소리 알게 되는 날 세월의 흐름 알고 인생도 알게 된다네.
세월의 흐름 알고 세월의 소리 듣는 순간 그대는 이미 그대 인생 황혼길 접어들었다네
바라노니 흘러가는 세월 소리 인생의 소리 황혼이 오기 전에 깨닫기를
그대는 나 같고 나는 그대 같고 인생이란 게 다 그렇지 않던가
- ‘화창한 날’과 함께 시인(詩人) 등단 작품 -
*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 - 사아디 고레스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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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한 군데도 없다. 대중가요처럼 누구나 외우기 쉬운 문장으로, 물 흐르듯 술술 읽힌다.
글의 행간에 고향 선배의 순수한 인생 철학이 녹아 있다. 명절 또는 기일에 성묘하러 온 자손들이 가슴으로 음미하게 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바윗돌에 ‘근(勤)’ 자와 ‘성(誠)’자도 새겼다. ‘부지런하고,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자’라는 선배의 평소 인생철학과 좌우명이다.
가문의 전통과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다.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바람직한 생활 철학과 삶의 풍부한 지혜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후대에 가르침으로 이어간다는 것, 소중한 가정교육현장이다.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인 숭조 돈목(崇祖 敦睦) 정신도 가풍과 선대의 반듯한 가르침에서 나온다. 후손의 무궁한 번영과 평안을 기원하는 고향 선배의 남다른 정성이 읽힌다. ■
2021.12.27.
윤승원 소감 記
■ 고향 선배 이원장 작가의 답글(이메일 2021.12.27.)
존경하는 윤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거듭 드립니다. 나의 속마음을 거울 보듯이 훤하게 밝혀준 사람은
내 아내나 형제자매나 자식들이 아니고 오로지 존경하는 윤 작가님 뿐이었습니다.
사실 나의 속마음은 나의 후손들만이 아니고 고향의 선후배 여러 분들과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려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였습니다.
불초한 이 사람도 시의 내용과 같이 단칸 셋방살이부터 열심히 살아온 결과 지금은 편히 잘 살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 주형 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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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1.12.18.09:00
인간의 ‘인연의 고리’ 중 의미 있는 내용을 잘 읽었습니다.
장천 윤승원 작가와 주형 이원장 작가 두 분이 고향의 별이 될 것입니다.
좋은 글이기에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존경하는 정 박사님을 비롯하여 최근에 50여 년 만에 반갑게 연락이 닿은
이원장 고향 선배님 등 저는 훌륭한 인품의 고향 선배님들과 이렇게
귀한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큰 영광입니다. 따뜻한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윤 선생님.
글로써 고향과 끈이 이어지고
일가친척, 선.후배와도 인연이 돈독하니
문인으로서 보람이고 자산입니다.
타고 난 문재에 노력을 더 한 윤 선생님의 홍복입니다.
문향 가득한 글, 끊임없이 빚으시기 바랍니다.
가 선생님 따뜻한 격려 댓글이 과분하지만 제 가슴엔 감동입니다. 잘 빚은 도공의 명품 도자기처럼 언제나 정제된 언어로 잘 직조된 명문 댓글 옥고는 쉽게 만날 수 있는 문장이 아닙니다. 저는 참으로 복이 넘칩니다. 훌륭한 고향 선배님들과의 인연을 잇는 것만큼이나 가 선생님 명문 격려 댓글은 따뜻한 행복감에 젖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