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팔려고 비행기서도 전단지 돌렸죠
그와 인터뷰 일정이 잡힌 뒤 동료 기자들에게 그를 인터뷰하게 됐다고 얘기를 했다. 반응은 예상 밖으로 뜨거웠다.
“나도 그 사람 되게 궁금했는데?” “그 사람 나온 CF가 최고 인기여서 코미디 프로에서 패러디까지 하고 있다” 등. 동료 기자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아버지도 그 회사 고객이다. 흑마늘과 산수유를 드시고 있다”라면서 “제품도 좋지만 포장용기가 고급스러워 믿을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천호식품 김영식(金英植·60) 회장이다. 만일 “김영식?”이라는 반응을 보이더라도 그의 독특한 말투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하루에도 몇 번씩 케이블TV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산수유1000프리미엄’의 모델이자 목소리의 주인공. 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데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세우지 않고 회장이 직접 나서 신제품을 대성공시키고 본인도 유명해진 인물. ‘산수유1000프리미엄’ CF는 강한 경상도 사투리, 촌스러운 듯하지만 진실해 보이는 외모,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운 광고 문안이 3중주를 이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강한 경상도 억양 때문에 일부에서는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회의 중 내뱉은 혼잣말이 광고 카피로
천호식품은 부산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본사와 공장이 있다. 2000년 서울 강남 역삼동에 서울 본사 사옥을 세웠다. 수은주가 32도까지 치솟았던 지난 7월 7일 기자는 서울 역삼동 천호식품을 찾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벽면에 ‘welcome! 주간조선 조성관 기자님과 사진기자님의 천호식품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쇄한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천호식품은 외부 손님이 올 때 이런 식으로 환영 문구를 붙이는 것 같았다. 1층은 매장, 2~4층은 콜센터, 5~6층은 임직원 사무실이다. 6층 회장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건강식품계의 떠오르는 강자인 천호식품을 세상에 크게 알린 대박 CF의 탄생비결부터 물어보았다.
“바로 이 방에서 지난 1월 초에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시간을 뒤로 돌려 1월 5일 오후로 가보자.
회장실에 회장, 사장, 전무, 광고대행사 책임자가 참석하는 주간광고회의가 열렸다. 회의 주제는 신제품 ‘산수유1000프리미엄’ 홍보건. 기존의 ‘산수유1000’ 제품에 산수유 원료 비율을 87.5%까지 올려 만든 게 ‘산수유1000프리미엄’이었다. 건강식품 광고는 과대광고를 막기 위해 성분을 말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런 상황을 알기에 김영식 회장은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이게 훨씬 좋은데, 남자들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누군가 지금 그 말을 그대로 광고 카피로 써서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얘기했다. 참석자들은 전원 즉석에서 좋다고 했다. 일단 결정이 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광고대행사 제작진이 회장실에 와서 광고를 촬영했다. 이렇게 제작된 첫 TV광고는 1월 26일 나갔다. 일주일쯤 지나자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수유 1000 프리미엄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졸지에 광고모델로 유명해진 김영식 회장의 자평(自評)을 들어보자.
“아마 인기 텔레비전 스타를 동원했다면 반응이 없었을지 몰라요. 회사 오너가 제품을 만들어 놓고 알릴 방법이 없다고 고민하는 모습이 진솔하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김 회장이 출연한 ‘산수유1000프리미엄’ 광고는 2010년 7월 현재 최고의 패러디 대상이다. TV드라마·오락프로, 스포츠채널, 기업, 정치권 등에서 저마다 조금씩 표현을 달리해 이 광고를 패러디하고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여러 후보 진영에서 천호식품 회장실에 전화를 걸어와 광고 멘트를 써도 되는지를 물었다. 오세훈 후보를 지지하는 UCC에서도 이 광고를 패러디했다. 지난 6월 5일 방영된 KBS의 ‘수상한 삼형제’에서도 그대로 패러디했다.
tvn의 ‘롤러코스트 남녀생활 탐구’에서도 최근 김 회장의 광고를 패러디했다. MBC-ESPN의 ‘Baseball Tonight 야’의 경우 김 회장이 직접 출연해 프로그램을 홍보했다. “‘Baseball Tonight 야’, 야구팬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교통사고 후 달팽이 효과 보고 사업 시작
이쯤 되면 김영식이란 인물이 궁금해진다. 그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경남 고성에 태를 묻었다. 그의 억양은 경남 사투리 중에서도 고성 억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그는 학습지 판매원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일찌감치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 1984년 천호물산이라는 회사를 차려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6년 그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는다. 6개월 이상을 깁스를 하고 지냈지만 이상하게 뼈가 굳질 않았다. 그때 주변 사람이 그에게 달팽이를 한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달팽이를 먹고나서 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결과적으로 교통사고와 달팽이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 되었다. 1989년 달팽이분양 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 천호물산을 천호식품으로 변경한다. 천호(泉湖)라는 이름은 선친이 작명했다. 그는 “깨끗한 샘에서 물이 솟아 큰 호수를 이루어 많은 사람에게 물을 주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천호식품은 1991년 국내 최초로 달팽이엑기스를 개발했다. 달팽이엑기스는 대성공이었다.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현금 부자 100명 안에 들 만큼 돈을 벌었다. 그의 나이 불과 43세.
자금력이 생기자 욕심도 커졌다. 그는 건강식품 외에도 다각도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서바이벌 게임사업, 찜질방 체인사업, 황토방 체인사업 등.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흉내낸 것이다. 부산과 서울의 직원도 200명으로 늘어났다. 1997년 말 한국 경제가 IMF관리체제에 들어갔을 때 천호식품 역시 결정타를 맞았다. 돈줄이 끊겼다. 회사와 집에 은행에서 경매 통보가 날아왔다.
결혼반지 맡기고 월세 사무실 얻어
“1998년 1월, 내 재산은 결혼반지 하나만 남았어요. 나는 신사동에 있는 영화사전당포를 찾아갔습니다. 결혼반지를 맡기면서 최대한 돈을 많이 쳐달라고 간청해 13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서랍에서 전당포 신세를 졌던 결혼반지를 꺼내 보여줬다. 결혼반지를 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역삼동에 월세 60만원짜리 사무실을 얻고 여직원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여직원이 사무실이 초라하니까 자꾸 나가려고 해서 월급 40만원을 선불로 줬죠. 20만원으로 쑥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며 쑥을 팔았습니다. 강남역 2번 출구에 서서 올라오는 사람에게 ‘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흑백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가끔 부산에 내려갈 때도 비행기 안에서 전단지를 돌렸죠. 그랬더니 승무원이 뭐라고 그래요. 그래서 대답했죠. ‘나는 쑥 장수다. 쑥을 못 팔면 나는 죽는다.’ 승무원이 ‘알았어요’ 하고 묵인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뛰니까 강화사자발쑥 제품이 팔리기 시작했다. 1998년 1월 1100만원을 기록한 매출이 4월에는 9800만원으로 뛰어올랐다. 1999년 6월에는 매출이 9억8000만원을 찍었다. 그는 1년11개월 만에 은행빚 22억원을 갚았다.
“IMF를 맞아 천애의 거지가 되어보고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죠. 아무리 돈이 많아도 비전문 분야로 뛰어드는 순간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본업이 아닌 일에 절대 손을 대지 않았지요.”
한번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가 재기하자 김 회장은 더이상 실수하지 않았다. 사업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2000년에 시장에 내놓은 산수유환이 크게 히트하면서 천호식품은 정상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이후 성장환(2001년), 다시마환(2002년), 석류액·구운마늘환(2003년), 통마늘진액(2005년) 등 연속히트상품을 출시했다. 통마늘진액은 4년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87.5%라는 높은 재구매율을 자랑한다. ‘내가 먹지 않는 것은 남에게 팔지 않는다’는 철학으로 제품의 질을 관리한 결과였다. 매출액은 2004년 180억원, 2005년 225억원, 2006년 300억원으로 성장해 지난해에는 800억원을 기록했다. 2010년의 목표 매출액은 1500억원.
정부와 사회단체에서 그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이어졌다. 복지부장관상, 대통령표창, 국세청장상, 중소기업인대상, 브랜드대상, 사회공헌대상 등이 주어졌다. 김회장은 어떤 상을 받았을 때 가장 기뻤을까.
“국세청장상 받은 거죠. 세금을 성실하게 냈다는 뜻 아닙니까? 국세청장상 받고 나니까 공항귀빈 주차장도 쓸 수 있고 여러 가지 혜택이 많데요.”
직원들 부자 만들어주는 회사로
그는 우리나라 기업가 중 부산을 가장 많이 왕복하는 CEO에 속할 것 같다. 일주일에 평균 두 번 부산을 다녀온다. 김 회장은 지갑에 있는 대한항공 항공권을 보여줬다. 항공권에는 ‘1728times, 1315746miles’라고 찍혀 있었다. 이제까지 대한항공을 이용해 부산을 1728번 다녀왔고 비행거리는 131만5746마일이라는 뜻이다.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한 것까지 합하면 횟수와 거리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그는 2010년 부산에서 개인종합소득세를 많이 낸 10명 안에 들었다.
김 회장은 2008년 11월 보건복지부에 의해 출산친화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앞서 2001년 사회복지기여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김 회장은 현재 셋째 자녀 출산장려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저서 ‘10미터만 더 뛰어봐’의 인세, 강연료, 회사 출연금으로 조성한 5억원을 출산지원기금으로 내놓았다.
직원의 경우 셋째 아이를 낳으면 장려금으로 500만원을 지급하고 월 30만원씩 24개월간 총 1220만원을 지원한다. 다음카페의‘뚝심이 있어야 부자가된다’를 통해 신청하고 셋째자녀를 출산하면 1인당 20만원을 10개월간 지원받게 된다.
김 회장은 “우리 회사는 매년 신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천호식품은 건강식품 전문기업으로 선두주자가 되었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꾸준히 신장했다는 것은 직원들에게 그만큼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부터 10년 뒤인 2020년, 천호식품은 어떤 회사로 성장해 있을까? 김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CEO로서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즐겁게 해줄까,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부자로 만들어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부산공장 여직원들은 얼굴마사지를 공짜로 받습니다. 회사 내에 황토방도 만들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요. 헬스장은 물론 당구장도 있지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무조건 1인당 25만원을 지급합니다. 4년 뒤에 천호식품이 상장합니다. 직원들에게 500만원씩 투자해 우리사주를 사라고 합니다. 저는 10년 뒤 주식 가격을 100배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출처 : 주간조선(조성관/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