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기숙사학교(Residential School)의 잔학사
“손자손녀 사진을 보이려면 1달러씩 내라.” 못 말리는 자식자랑으로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할머니들에게 하는 농담이다. 얼마나 귀여우면 돈을 내고라도 보여주고 싶을까.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5, 6살 짜리가 품에서 떨어져 멀리 갔다면? 애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면서 10여 년을 지낸다면? 눈물이 마를 새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일이 캐나다에서 150년간 지속됐다. 이는 백인 문화민족, 기독교 민족임을 자부하는 땅에서 원래의 땅주인 인디안은 물론 이누잇(‘에스키모’)이나 메티스(백인과 인디안 혼혈)를 서양문화에 동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인디언 문화는 열등하다, 그러므로 빨리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캐나다역사의 최고의 오점을 남겼다. 유태인들에게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면 캐나다원주민들에겐 기숙학교가 있었다. 잔혹의 정도 차이는 달라도 근저에 깔린 인종차별적 사고는 50보, 100보다.
한 번 입학하면 15세가 될 때까지 집으로 단 하루도 돌아가지 못하고 먹고 자고 공부하는 학교. 부모는 자녀들이 어딜 가서 뭘 배우는지 모른다. 학교 규율은 지독했다. 영어대신 원주민 말을 실수로라도 입밖에 내면 짐승우리 같은 감옥에 갇힌다. 좁은 공간에서 3-4일을 혼자 버틴다. 그동안 하루 종일 오트밀만 먹는다. 부모는 모르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브랜트포드 근처 학교에 다닌 모학Mohawk원주민은 학교에서 도망 나갔다가 다시 잡혀왔고 그 대가로 ‘홀로’ 감방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그도 일주 내내 푸석푸석한 오트밀만 먹었다. 어떤 여학생은 병이 나서 숙제를 못했다는 이유로 선생으로부터 여러차례 뺨따귀를 맞았다. 웬만한 실수를 한 아이들은 그날 굶어야 했다. 주먹세례와 함께. 창문 없는 암흑의 독방이 있었다. 심하게 얻어맞는 것은 그나마 잊을 수 있지만 성욕 해소의 희생이 된 학생들은 그 상처를 지우긴 힘들다. 성폭행 사건은 지금까지 무려 3만1천 건이 있었다. 어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불임수술을 강제했으니, 이런 죄과는 누가 어떻게 치유해 줄까. 학교를 다녀온 15만 명 중 절반은 타계했고 8만 명은 아직 생존했다. 원주민을 내쫓고 땅을 빼앗은 것만도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이 땅에서 원주민의 씨를 말려 소멸시키겠다는 의도는,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기독교 원리를 편리하게 외면한 것이었다. 선생들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대수상 존 맥도날드는 이렇게 말했다. ‘원주민 학교를 인디안 마을에 설치하면 아이들이 야만인(‘Savage’) 부모밑에서 또 하나의 야만인이 된다. 그러므로 애들을 가능한 부모에게서 멀리 떼어내야 한다.” 이것이 기숙학교의 시발점이었다. 1920년 인디언담당 장관은 철폐 주장론자들에게 “학교는 이 땅에서 인디안이 한 사람도 없어질 때까지 존립한다.”라고 천명했다. 6.25때 인민군이 서울 길거리에서 젊은이들을 의용군으로 잡아가듯, 백인이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오듯, 들과 벌판을 마음껏 뛰어 노는 인디안 애들을 데려다가 교육하는 원주민학교는 1883년부터 1996년까지 전국에 139개교가 섰다. 많은 학생들은 심한 형벌과 문화차이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었다. 일부는 자살로 어린 생을 마감했다. 어떤 학교의 학생사망률은 한 때 60%에 달했다는 기록도 최근 발견됐다. 그동안 약 6천 명이 교육 중 죽은 것으로 추산하는데 사망기록이 있는 학생은 절반인 3천2백 명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죽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어디에 묻혔는지 기록이 없다. 부모들이 아이들 뼈라도 수습할 길을 완전 막아버렸다. 백인들에게서의 흑인 노예처럼 백인 교육자들에게 인디안 학생들은 인간이이하였던가 보다. 사망기록을 보면 주로 폐병이 원인이었다. 기타 독감, 폐렴 등 병사도 있었지만 학교건물 화재로 아니면, 숲에서 얼어죽거나 자살 등 사고사도 적지 않았다. 학교의 비인간적 면모를 치열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물론 학교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것은 여러 학교에서 이름없는 많은 무덤들, 때로는 집단매장지 같은 것들이 발견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존자들은 결과적으로 원주민어를 완전히 잊어버렸고 고유문화를 잃었다. 교육목표가 성공한 것이다. 서양문화 맛을 보고 돌아온 자녀들은 부모와 문화적 갈등을 빚었다. 부모의 인디언말과 자녀의 영어가 소통을 막았다. 한편 학교는 오전수업 뿐이어서 대학에 진학할 실력과 점수가 안됐다. 대학진학을 제도적으로 막은 것이다. 또한 취업의 길을 가르치지 않아서 생계방법이 제한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젊은이들은 자포자기로 술이나 마시면서 인생을 방황했고 , 차라리 빨리 죽기를 바랐다. 인디안들에게 알코올중독자가 많고 자살율이 높은 것은 이런 제도의 모순과 동화정책의 결과다.
기숙학교는 정부지원으로 가톨릭교회(60%), 성공회(앵그리칸교회 30%), 연합교회(10%)가 맡아서 운영했다. 신부, 수녀, 수도사, 목사, 장로들이 운영한 학교에서 왜 이런 잔인한 일들이 일어 났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없다. 노예들을 짐승인양 잡아오고, 물건처럼 사고팔고, 소 말처럼 부려먹던 백인들과 인디언문화 ‘학살’ 주도자들의 본성은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아야 할 지.
헌법에 인권헌장이 포함된 이후 기숙학교가 법률상의 문제로 부상하자 문제를 축소 평가하던 고집불통 스티븐 하퍼 연방수상은 2008 년 원주민들에게 공개사과하면서 19억달러를 보상금으로 내놓았다. 가톨릭교단과 정부는 일정금액을 내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 를 구성, 종합보고서 작성을 법조계와 전문가들에게 의뢰했다. 위원회는 지난 5년 간 생존자중 약 7천 명의 증언을 청취한 보고서를 지난 주 발표했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1년 안으로 로마 가톨릭교황의 사과를 요망했다. ‘문화적 학살(Genocide)’에 대한 죄가의 일부라는 것이다. 시민들은 “왜 과거사를 현재 우리가 책임지는가” 하면서 반발한다. 이에 대해 양식있는 사람들은 ‘성숙한 사회는 과거의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거기서 배우며 고칠 것을 고친다.’고 답변했다. 일본인들에게도 이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과연 앞으로는 인종차별이 없는 도덕적이고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인가?
첫댓글 현대에도 그 아픔이 연장되고 있다합니다. 술과 마약에 중독된 부모가 있으면 자녀들을 백인입양가정에 보내버립니다. 그러면 그나마 남아있는 약간의 민족정서와 친부모와의 공감이 사라집니다. 정부에서 인디언에게 지불되는 생계비는 추장에게 전해져서 분배되기 때문에 추장은 차를 타고 들어가는 대저택에 살면서 그 지역주민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것을 싫어하고 혹시 깨어나면 힘으로 제압하고 흩어버리고 추방한다 합니다. 그래서 원주민 선교는 파고들기도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답니다. 재작년 인디안선교를 청년들이 할 때 도우러갔다가 들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골격이 크고 튼튼해보였고 유순해보였습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큰 개들도 순해보였습니다. 여름성경학교를 열면 아이들은 시간관념이 없어서 늦게 오곤 했는데 해가 갈수록 참여도가 커지고 있다 합니다. 술과 마약이나 방탕한 부모들에게 방치된 아이들이 일찍 담배와 술과 성에 노출되어 함께 망가져가며 애정에 굶주린 아이들이 한국젊은이들에게 안기고 업히는 것을 좋아해서 거기 다녀온 청년들은 한동안 허리를 앓을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사람을 무척 좋아합니다.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해 주어서 일을 할 필요도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들었는데.....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선생들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신자였음에도... ‘독실한’ 기독교신자였음에도... 기독교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도 어린이집마다 cctv를 설치합니다.
어린이집 원장들중에는 기독교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라는 종교가 하나님과 무관하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의 하나를 봅니다. 미국은 안그랬습니까. '청교도들'이라고 기록된 이들이 본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을 토끼사냥하듯 토벌했던 소위 미국의 개척시대 서부영화의 단골 메뉴가 인디언사냥 아니었습니까. 그런 미국의 기독교도들이 한국 땅에 소위 '복음'이라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이 정녕 살아계신 하나님의 '산 복음'이었을까요?... 제게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사용설명서'로 읽히웁니다. 성령이 그들의 복음 전하는 일에 역사하셨다구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숙학교 지원이 카톨릭이 60%를 차지 했다는 부분이 좀 눈길이 갑니다. 그밖의 성공회나 연합교회등도 카톨릭과 친한관계를 유지하는 교파라는 것을 볼때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특히 교육을 통한 취업지원이나 대학 진학률이 낮았다는 것은 제도적으로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도시 안에 있는 인디언거주지역에 카지노를 세웁니다. 정부에서 엡오리지널=토착민들에게 구역 안에서 직업없이 살면 생계에 넉넉한 월급을 주니까 주민들은 건전하지 못한 데 사용하면서 삶이 소비적이고 목적의식.문제의식없이 살게됩니다. 술먹고 카지노에 다 갖다바치곤 하지요. 대량학살에 이은 교활한 멸종작전이지요.
저도 그 이야기를 들어서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는데...물질이 풍요롭게 제공되고 생각없이 목적없이 산다는것이 정말 무섭군요
원주민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와 함께 목적의식을 함양시키고 직업교육이나 대학교육 과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추장세력이 기득권을 놓지않으려해서 새로운 건전한 변화는 어렵다봅니다. 청부에 의한 살인사건도 난다는군요. 복음이 퍼지고 그들 세력에 의한 의식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새로운 세대가 바르게 자라서 그들을 다시 가르치고 민족문화를 살리고 자생능력이 생겨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하와이 해변에 집들을 지어놓고 just 1달라에 직업갖지않는 조건으로 원주민에게 월급까지 주니까 매일 고기잡고 수영하고 뚱뚱할수록 자랑이 되는 삶을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도 그런 정책인 듯 합니다. 목적없이 돈이 넉넉하면 부패하고 황폐해짐을 잘 아는 야비한 사람들입니다. 원주민문화는 우리 생각보다 높고 자연조화적이고 훌륭한데 대량학살하면서 철저히 파괴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