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생활용품 가운데 숯불다리미가 있었다. 요즘 프라이팬과 같이 가운데가 오목 파인 무쇠로 주조된 다리미다. 예전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은 빨래할 때 절차가 복잡했다. 무명옷 삼베옷을 씻어 풀을 먹여 빳빳하게 하여 다듬이질한 후 마지막 단계가 다리미질이었다. 숯불다리미 모양으로 해발고도가 더 높은 지형으로 둘러싸인 평지를 분지(盆地)라 한다. 화산지대 분화구처럼 생긴 지형이라 해도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분지 도시가 대구다.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여름을 후끈 달구고 겨울에는 추위를 더 탄다. 이런 도시는 가로수를 많이 심어 녹지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분지 농촌은 합천 초계고을을 꼽을 수 있다. 내륙지대 광활하게 펼쳐진 농경지는 이방인에게 별천지로 느껴진다. 내가 사는 창원도 분지에 조성된 계획도시다. 동서로 가로지른 대로 남쪽엔 공단지역이고 북쪽 주거와 업무지역이다.
나는 공단지역 사정은 잘 모른다. 그런데 진해선 철길 따라 개천절에 등산복 차림으로 창곡지구 공단 배후도로를 걸었다. 월림이라 불리기도 하고 공단 조성 전에는 완암 마을이었다. 원주민들은 떠나면서 ‘완암유허비’를 세워놓았다. 완암유허비에서 조금 더 돌아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장복산 북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둔 저수지다만 농업용수 기능은 상실했다. 찾을 때마다 느끼지만 그림같이 물이 맑은 저수지다.
몇몇 낚시꾼들이 보였지만 나하고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숲으로 난 길로 찾아 들었다. 안민고개에서 장복산 올랐다가 이곳으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 이제는 완암 저수지에서 골짜기 따라 장복산을 오를 참이다. 깊지 않은 계곡지지만 개울바닥엔 다슬기가 자랄 만큼 청정지역이다. 이슬이 깨는 길섶에 살이 통통히 오른 민달팽이가 외출을 나오고 있었다. 징그럽기보다 반가웠다. 등산로는 희미하고 인적은 없었다.
어름넝쿨이 잡목을 타고 올라 있었다. 작은 바나나 같이 살진 어름이 군데군데 보였다. 먼저 익어 곰삭아 벌어진 것도 보였다. 잘 익은 것을 따서 입안 넣으니 사르르 녹았다. 깨알보다 조금 더 큰 씨앗은 골라냈다. 길가 손닿는 곳에서만 따도 제법 되었다. 사오십 개 정도는 무난했다. 이웃에 나누어 맛보게 하고 다음날 학교에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상 마주한 동료들에게 산과의 진미를 보여주고 싶었다.
산을 오르다 뒤돌아 굽어보니 창원공단과 저 멀리 아파트도 보였다. 산모롱이 사이로 마산 시가지도 보였다. 바위틈 구절초 하얗게 피어난 자리에 앉아 쉬면서 김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도 배낭엔 어름이 담긴지라 무게가 느껴졌다. 조금 더 오르니 암반이 등뼈로 드러난 장복산이었다. 진해 시가지와 바다까지 시야에 들어왔고 마창대교가 우뚝했다. 산에 들어 처음으로 동창생쯤으로 헤아려지는 산행객 셋을 만났다.
진해 시민회관 쪽으로 내려가질 않고 장복터널 방향으로 내려섰다. 나무그늘 아래 중년부부가 쉬고 있었다. 인공조림 편백나무 숲을 내려오니 옛길 마진터널이 나왔다. 대부분 차량은 지름길로 새로 난 장복터널로 다녔다. 나는 차량이 뜸한 마진터널을 진해 쪽에서 걸어 양곡으로 빠져나왔다. 통영의 해저터널을 걸어보는 기분처럼 산중터널을 걸은 셈이었다. 터널에서 나와 벚나무 가로수 도열한 굽이진 포장길을 걸어 내려왔다.
양곡은 마창대교 접속도로로 복잡했다. 오봉사 입구에서 탄 창원행 시내버스는 공단배후도로를 한 바퀴 돌아 도청과 창원대학을 거쳐 우리 집 앞에 세워주었다. 혼자 떠난 산행에서 민달팽이를 만났고 어름을 땄다. 배낭 속 어름은 장기보관이 어려운 산과다. 어름을 따면서 마음 둔 대로 이웃에다 보내고 학교로 가져가련다. 선인은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어름 따다 나눠 먹고 도시에서 살련다.
첫댓글 또 한 건 하셨구려. 월림 길은 나도 모르는 길입니다. 그 족에 산길이 있다는 얘기는 오늘 처음 알게 되었구려. 언제 만나 정확한 상행길을 알아 두어야 하겠습니다. 으름을 따셨다구요? 우리 집에도 으름 열매가 여남은 개 생겼습니다. 이제막 턱턱 갈라지는군요. 달착한 맛이 참 별미군요. 잘 다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