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안하구나, 그래도 함께 노래부르자 -
오늘 이렇게 마주 서서 보니
50여 년 전 내 어릴 때 생각이 나는구나.
낮이면 산으로 들로 쏘다니다가
이 무렵이면 이미 새카맣게 그을린 몸으로
해 저문 저녁이면 등잔불 밝히고 숙제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다가
아홉 시도 되기 전에 그대로 쓰러져 잠들던그 때,
그 때는 몰랐다.
지금 보니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웠는지
단지 가난하여 배불리 먹지 못하고 겨울이면 추위에 떨었던 일이 괴로움이었지만
돌이켜 살펴보니그 또한 질병에 대한 면역력과 저항력이
그래서 생겼던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 때의 그 가난이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님을 알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렇게 서서 지난 날을 돌이켜 본다.
그로부터 50여 년
우리 나이쯤 된 사람들은 거의 하나 같이
잘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며 달리고 또 달렸는데
그럭저럭 살게는 되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잃거나 놓치거나 못쓰게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잘 살아야 한다는 탐욕 때문에
계속해서 짓뭉개지고 흐트러지고 깨어지고 더럽혀지는 우리 생명의 터전인 지구,
여기까지 헤아리고 나니 너희들 앞에서 드는 생각 딱 하나
미안하구나.
이렇게 엉망이 된 지구를 너희들에게 무거운 짐으로 남길 수밖에 없으니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구나.
지금 다른 곳에서는 온통 축제로만 가득한 어린이날 행사가 열리지만
그건 정직하지 못한 어른들이 벌이는 또 다른 장사꾼 놀음이 대부분,
우리도 오늘 즐거운 일이 많겠고 틀림없이 축하해야 할 어린이날이지만
현실이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분명히 함께 생각하지 않는다면
잔치는 그저 허망한 놀음으로 그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면서 너희들 얼굴 하나 하나를 살펴본다.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구나.
또랑또랑한 눈망울이며 야무져보이는 얼굴이
너희에0게 주어진 짐을 넉넉히 지고 언덕도 넘고 물도 건널 수 있을 것 같으니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좀 뻔뻔스러운 제안을 한다.
뒤늦게라도 정신이 들어 나처럼 부끄럽고 미안해 하는 어른들을 용서해 주렴.
그리고 함께 손잡고 우리 꿈을 꾸자.
더불어 어깨동무하고 노래를 부르자.
어우러져 춤추며 미래를 준비하자.
오늘 여기서 펼쳐지는 어린이날을 나는 축하할 필요가 없구나.
저기 빛나는 해와 맑게 개어 푸른 하늘이며
너희들 생명의 빛깔처럼 피어나고 있는 5월의 연두빛 산과 들
그리고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여전히 흐르고 있는 시냇물이며 살랑이며 부는 바람이
너희들의 세상을 이렇게 축하해주고 있으니
내가 축하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여기서 열리는 너희들의 세상을 내가 본다.
오늘 너희가 마음껏 누리며
이 잔치에 나와 같은 어른들을 초대해 준 것이 너무 고맙고 고맙기만 하다.
너희 있어 이 몸살 앓는 지구가 기지개 켜며 환하게 웃을 수 있겠구나.
너희를 믿는다.
그래서 사랑한다.
부디 지구를 너희 손에 부탁한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