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봉 이시성
[생졸년] 1598년(선조 31)~1668년(현종 9) / 壽 70歲
-------------------------------------------------------------
기봉 선생 묘갈명
공(公)의 휘(諱)는 시성(時省)이요, 자(字)는 자삼(子三)이며, 호(號)는 기봉(騏峰)이십니다. 그 선대는 경주인(慶州人)이시니, 태사(太師)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이십니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상국(相國)은 공의 종조부(從祖父)가 되십니다. 할아버지는 광복(光福)이시고 아버지는 태남(泰男)이신데, 두 분 모두 현감(縣監)을 지내셨습니다.
공은 만력(萬曆) 무술년(1598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슬기롭고 영민하셨으며, 나이 열두 살에 백사 선생을 따라『사기(馬史)』를 배우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서적을 널리 섭렵하셨고, 글을 지으면 필력이 웅건하고 뛰어 나셨습니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것이 세 번이고, 대과(大科)의 전 단계에 합격한 것이 열두 번이었는데 그중 네 번이나 수석을 차지하시어, 천거를 통해 침랑(寢郞) 관직을 제수받으셨습니다. 만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시어 공조와 예조의 정랑을 거치고 春秋館 기주관을 겸임하셨습니다.
또 문신 정시(庭試)에 발탁되시어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내셨고, 통례(通禮)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에 오르셨으며, 품계가 겹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임명되셨습니다. 무신년(1668년)에 돌아가시니, 향년은 일흔한 살이셨습니다.
공은 천성이 맑고 소탈하며 담박하셨고, 집안에서의 행실을 돈독히 하셨으며, 독서를 즐기셨습니다. 평생을 글과 술로써 스스로 즐기시며, 쌀독이 자주 비어도 안연자득하셨습니다. 후학들이 많이 찾아와 공에게 학업을 물었습니다.
부인 김씨(金氏)는 부족한 제 할아버님이신 지천공(遲川公)과 내외종 남매간이 되십니다. 슬하에 6남 1녀를 두셨으니, 아들은 명홍(命弘)·명징(命徵)·명원(命元)·명번(命繁)·명임(命任)·명언(命彥)이고, 딸은 생원(生員) 송상적(宋相廸)에게 시집갔습니다. 안팎의 손자가 모두 쉰 명이었습니다.
아! 공의 문장력으로 만년에야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크게 드러나지 못하셨으니, 어찌 이른바 ‘문장가가 궁박하다’는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관직으로 붉은 도포를 하사받으셨고, 가쁜 나이인 고희(古稀)를 넘기셨으며, 자손들이 또한 번창하였으니, 당나라의 맹교(孟貞曜)가 끝내 차가운 현위 자리에 갇혀 곤궁하게 지내다가 후사도 없이 죽은 것과 비교해 본다면 어떠하겠습니까? 공의 손자인 집경(集慶)이 찾아와 비석에 새겨 겉으로 드러낼 글을 청하였습니다.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최석정(崔錫鼎) 지음.
통훈대부 행홍문관교리 지제교 이경양(李敬養) 씀.
------------------------------------------------------------------------------------------------------------------------------------------------------
[역주]
◇從祖(종조): 할아버지의 형제, 즉 종조부를 의미함. 여기서는 백사 이항복이 이시성의 항렬상 할아버지 뻘인 친척 어른임을 나타냄.
◇馬史(마사):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를 뜻함. 사마(司馬)씨의 역사서라는 의미에서 ‘마사’라 약칭함.
◇發解(발해): 당·송대 지방 시험에 합격하여 중앙으로 추천되던 것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여기서는 조선 시대科擧의 각 단계별 초시(初
試) 또는 회시(會試) 합격을 의미함.
◇魁(괴): 우두머리 괴 자로, 과거나 시험에서 전체 수석(장원)을 차지했음을 뜻함.
◇寢郞(침랑): 능침(陵寢)을 지키는 종육품 관직인 영릉랑(英陵郞) 혹은 참봉 등을 천거를 통해 제수받았음을 의미함.
◇庭試(정시): 국왕이 전정에 친림하여 치르던 특별 과거 시험임.
◇甔石屢空(담석누공):『항아리(甔)와 섬(石)에 곡식이 자주 빈다』는 뜻으로, 가난한 삶을 의미함.『장자(莊子)』및『사기(史記)』, 도
연명의「오류선생전」등에서 유래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은유임.
◇逌如(유여): 마음에 구속됨이 없이 자유롭고 안화(安和)한 모양을 뜻함.
◇不佞(불녕): ‘재능이 없다’는 뜻으로, 자기를 낮추어 부르는 1인칭 겸칭임. 여기서는 찬자(撰者)인 최석정이 자신을 가리킴.
◇遲川公(지천공): 최석정의 할아버지이자 인조 대의 명상(名相)인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을 지칭함.
◇中表兄妹(중표남매): 고모의 자녀(고종사촌)나 이모의 자녀(이종사촌), 또는 외삼촌의 자녀(외사촌) 사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임.
◇文窮(문궁): ‘문장가는 운명이 기구하여 궁해지기 쉽다’는 동아시아 전통의 문인명운론(文人命運論)인 ‘문인다궁(文人多窮)’을 의미함.
◇孟貞曜(맹정요): 당나라의 시인 맹교(孟郊, 751~814)를 가리킴. ‘정요’는 그의 시호임. 평생 가난과 고독 속에서 하급 관직인 현위(縣
尉)를 전전하다 자식도 없이 고단하게 생을 마감한 대표적인 ‘문궁(文窮)’의 상징임.
◇官錫緋(관석비): 당상관(정3품 통정대부 이상)에 올라 붉은색 관복(비포)을 하사받았음을 뜻함.
[부주]
본 묘갈명은 조선 후기 소론(少論)의 영수이자 대문장가인 소론 최석정(崔錫鼎)이 찬한 글로, 경주 이씨 가문의 일원인 기봉 이시성(李時省)의 일대기와 인품을 기린 명문입니다. 문체와 가치 평가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명확한 학술적 의의를 지닙니다.
문인명운론(文人命運論)의 변주와 지족(知足)의 미학: 최석정은 이시성의 탁월한 문장력에 비해 판서나 정승 같은 극현(極顯)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을 두고 전통적인 '문궁(文窮)'의 논리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이에 머무르지 않고, 당상관의 품계(官錫緋)를 얻은 점, 고희를 넘겨 장수한 점, 그리고 수많은 자손을 두어 가문을 번창하게 한 점을 들어 당나라 맹교의 비극적 삶과 대비시킵니다.
이는 명예와 관직의 높고 낮음만이 인간 삶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연속성과 개인의 안연 자득함 역시 '천명이 부여한 원만한 복'이라는 사대부 사상의 원숙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조선 중·후기 사대부 혼반 및 학문 네트워크 확증: 본문을 통해 백사 이항복으로 이어지는 학문적 수수(授受) 관계가 드러나며, 동시에 최명길 가문(전주 최씨)과 기봉 선생 가문 간의 중표남매(고종·외종사촌)라는 인척 관계가 명확히 확인됩니다. 이는 조선 후기 명문가들이 혈연과 학연을 통해 어떻게 결속하고 소통했는지를 실증하는 귀중한 1차 사료입니다. <끝>
---------------------------------------------------------------------------------------------------------------------------------------------------------
[原文]
騏峰集附錄 墓碣
公諱時省,字子三,號騏峰。其先慶州人,太師謁平之後。白沙李相國恒福,其從祖也。祖曰光福,考曰泰男,俱縣監。公生于萬曆戊戌。幼而岐嶷,年十二,從白沙受《馬史》。旣而博觀諸書,爲文筆力雄拔。司馬試發解者三,大科發解者十二,而四居魁,用薦者授寢郞。晩擢文科,歷工曹禮曹郞,兼春秋館記注官。又擢文臣庭試,爲淮陽府使,以通禮陞通政,累拜僉知中樞。卒于戊申,享年七十一。公天性淸疏淡泊,篤於內行,嗜讀書,平生以文酒自娛,甔石屢空,逌如也。後生多從公問業。夫人金氏,與不佞祖遲川公爲中表兄妹。有六男一女。男命弘、命徵、命元、命繁、命任、命彥。女適生員宋相廸。內外諸孫五十人。
噫!以公之文,晩得科而位不顯,豈非所謂文窮者歟?然官錫緋,壽踰稀,子姓且蕃,其視孟貞曜卒困寒尉,又無嗣者,何如也?公之孫集慶,來請文以爲表。 <끝>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崔錫鼎撰。
通訓大夫行弘文館校理知製敎李敬養書。
騏峰集附錄。
출처> 명문경주이씨종친회 카페 ㅣ 이상훈
기봉 이시성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