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정부 정책에 활용해 보는 건 어떨까?”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 생활공감 주부모니터단이 벌써 3년차다. 지난 16일 경기도 제3기 주부모니터단의 심화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교육장에서 두 명의 주부모니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광주시 초월읍 모 아파트 단지에 사는 심은숙(47)씨는 마을 이장이다. “의미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성격 탓에 반장에서부터 부녀회장, 그리고 이장까지 동네의 주요직책을 도맡아 온 그녀에게 최근 또 하나의 직함이 생겼다. ‘경기도 주부모니터’.
주부모니터란?
주부모니터는 온라인상에서 경제, 사회복지, 교육·문화·체육, 생활안전 분야의 ‘생활공감정책’ 과제를 발굴하고 현재 실시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이나 사업을 모니터링해 개선할 사항을 제안하는 활동을 한다. 또한 오프라인에서 교육, 세미나, 워크숍 등 활동에 참여하고 국정 및 시·도정 모니터링과 행사, 지역 내 봉사활동에 참가한다.
여기서 생활공감정책은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어려운 여건이지만 조금만 개선하면 생활에 바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지만 가치 있는 정책’을 말한다.
지금까지 살림의 지혜와 일상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키워온 주부들을 대상으로 정부는 ‘생활공감주부모니터’라는 직책을 부여해 수동적인 정책수혜자가 아닌 친서민 정책발굴을 위한 정책 프로슈머로 거듭나길 기대하고 있다.
※. 2009년 제1기 주부모니터단이 출범한 이후 2010년 제2기, 2011년 제3기가 구성돼 현재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음.
이장 회의 때 주부모니터단 모집 소식을 접한 심씨는 읍사무소 직원의 권유에 따라 올해 3기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주부모니터는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현재 수행하고 있는 이장의 특성을 잘 살려 지역과 주민들의 목소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소통 창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장 일을 하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는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었습니다. 이제 제가 그 창구가 되면 되겠다 싶었어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문구를 잘 작성해서 올리면 잘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주민들에게 희망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심은숙씨는 마을 이장답게 정책제안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다. 4월과 5월 두 달간 2건의 제안을 올렸는데, 모두 공감대를 살 만한 수준급 내용이다.
그 중 4월에 올린 제안을 살펴보면 노인복지와 영유아복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내놓은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어느 아파트나 마찬가지겠지만 노인정에 가보면 어르신들이 화투나 치며 시간을 소진하시는 걸 보게 돼요. 그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는데 마침 영유아를 둔 엄마들이 생각난 거에요. 영유아의 경우 엄마가 거의 붙어서 생활해야 하는 난점이 있잖아요. 대다수 부모들이 잠시 몇 시간이라도 아이를 누군가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노인정에서 어르신들이 안심할 수 있게 맡아주는 그런 방법을 생각해봤죠.”
노인들에게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고 영유아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생기니까 두 가지 문제를 연계해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한 것이다. 현재 관련 부서에서 심사 중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앞으로도 이장님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 주부모니터는 이처럼 생활 속에서 발견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사이트에만 올려놓으면 정책 제안에 대해 관련 부서에서 심사 후 결과를 통보해 주는 시스템이다.
구리시 교문2동에 사는 최현자(39)씨. 평범한 가정주부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녀에게 요즘 작은 변화가 생겼다. 트레이닝복을 벗어 던지고 정장차림의 ‘워킹맘’으로 변신하는 날이 부쩍 많아진 것이다.
“회사 다니는 엄마 같아서 좋아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누구보다 반기는 건 초등학생 딸이다. 그녀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가정에서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생각에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최현자씨는 경기도 주부모니터단 구리시 대표다. 지역 봉사단체에서 틈틈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차에 공무원으로부터 주부모니터 권유를 받게 됐는데, 선정되고 활동을 하자마자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주부모니터는 자존감과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가져다 줬다.
“집에서만 있던 사람이 활동을 하게 되면서 깨인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전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도 한 번 더 쳐다보고 생각하게 되고, 경기도 정책에 대해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됐거든요. 예를 들면 평생학습 e러닝서비스인 홈런을 알게 돼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주변에도 많이 소개해줬죠.”
지역 대표로서 하는 일은 뭐가 다를까. 기본적으로 대표 모임에 참석하는 등의 활동이 있지만 최씨는 주부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역할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주부모니터단 회원분들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본인의 활동만 하면 되겠지만 저와 같은 대표들은 그분들이 모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리드를 해야 하는데요. 활동 잘 안하시는 분들도 참여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최씨는 주부모니터의 매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꼽았다. 자신의 작은 제안이나 민원으로 인해 뭔가가 변화된다면 그러한 영향력 자체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매력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현재까지 연말정산 소득공제 관련 두 건의 정책제안을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채택은 되지 않았지만 “언젠간 더 나은 정책을 반영할 수 있다”는 희망에 그녀의 미소는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정책제안을 하면 항상 채택된다는 것보다 이런 게 있어서 여론이 조성되고 그 담당부서에서 이런 여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진화하고 도약하는 경기도 제3기 주부모니터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에 따르면 심은숙씨와 최현자씨를 비롯한 경기도 제3기 주부모니터단은 현재 전국 16개 시·도중 가장 많은 1,736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점점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올해부터는 주부모니터의 역량강화를 위해 맞춤형 교육에 중점을 두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지난 3월에는 경기 남부와 북부지역에서 약 200여명의 제3기 주부모니터들이 모여 기초교육을 받았는데요. 주부모니터에 대한 의식교육과 생활공감 홈페이지 및 사이버 카페 활용 방법에 대한 강의가 진행됐다고 하는군요.
또 4월에는 약 50여명을 대상으로 멘토 양성을 위한 멘토 교육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멘토들은 앞으로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정책 모니터링 관련 이슈를 발굴해 정책제안에 관련한 학습모임을 주관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번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6일에는 소모임 활성화를 위한 팀학습 기술 및 집단 의사결정 방법에 대해 심화교육을 진행했다고 하네요.
연구원은 또 올해부터 정책자료실과 해피라이프(정책제안 사이트) 활동에 대한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카페 ‘생활공감 경기도 주부모니터단 사이버 아카데미’ 운영을 시작함과 함께 페이스북, 트위터를 개설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오늘(19일) 오후 1시 30분부터 경기도 문화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제23회 경기도 주부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고 하는데요. 2부 행사로 장기자랑과 초대가수 공연 등이 열린다고 하니 도내 주부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글·사진 박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