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현대사 비극 중 한 가지는 ‘386주사파’ 출현이다. 소위 주체사상파, 김일성주의는 80년 광주사태를 거치며 탄생한, 대한민국의 정당성과 정통성 자체를 뒤집는 類似(유사) 민주화 운동이었다.
386주사파는 이미 해방된 북한과 달리 남한은 아직 美帝(미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지 않았다며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을 외쳤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지만, 북한은 항일투쟁-친일청산-반미자주의 길을 걸은 그럴싸한 나라로 보았다.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남북한이 사회주의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 필연적으로 親北(친북)·反韓(반한)·反美的(반미적) 본질을 띄었다.
386주사파는 민주화의 외투를 걸쳤을 뿐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역의 이데올로기였고 김일성 왕조의 노예로 전락한 북한의 동족을 외면하는 패륜적 패러다임이었다.
이들은 20대의 강렬한 인상을 교정할 재학습 과정을 겪지 못했다. 자신들은 젊고 썩지 않았다는 도덕적 긍지도 있었고 투옥의 경험이 만들어 낸 상처와 분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태생적 완악함과 강퍅함 그리고 지적인 게으름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진 뒤에도 親北·反韓·反美적 색채는 바뀌지 않았다. 30여 년 시간이 흘러간 뒤에도 從北(종북)으로 탈바꿈해 지나간 망령과 공생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 대해선 약간의 흠집도 인정치 않지만 북한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고 더없이 자비롭다. 이제는 거대한 기득권 그룹을 만들어 여전히 “투쟁!”을 외친다. ‘민주’를 팔고 ‘평화’를 팔고 ‘화해’를 팔고 다닌다. 80년대 약간의 義憤(의분)도, 俠義(협의)도 간 데 없다. 생계를 위해 구차한 거짓과 천박한 선동을 일삼는다. 가련한 인생이 되었다.
2.
18일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任鐘晳(임종석) 前의원 역시 386주사파 그룹 중 대표적인 ‘전국대학생총연합회(전대협)’출신이다. 전대협은 주사파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대표적 공개조직이다. 87년 결성된 대학생 조직인 전대협은 공식적으로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연방제통일이라는 북한의 對南노선을 추종했다. 전대협의 실제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안전기획부의 전대협 수사결과를 담고 있는 ‘주사파에 장악된 전대협의 실체 수사결과’, ‘전대협 유인물과 북한방송 대비분석’, ‘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 ‘전대협의 조직실체’ 등 복수의 공안문건들은 주사파 지하조직, 이른바 언더서클의 전대협 장악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기록은 “전대협이 1987년과 1988년 ‘전국사상투쟁위원회(전사투위)’와 ‘반미청년회’의 배후조종을 받은 데 이어 1989~1990년에는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의 배후조종을 받아왔고, 1991년 이후에는 ‘반제청년동맹’, ‘조통그룹’ 등 주사파지하조직에 장악됐었다”며 “전대협은 항상 김일성과 한민전(북한의 對南선전매체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약자)을 추종하는 지하혁명 조직에 의해 움직여 왔다”고 적고 있다.
이들 기록은 과거 열린우리당 의원인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등 당시 전대협 1기, 2기, 3기 의장들이 모두 주사파 지하조직원이라고 적고 있다. 그 중 ‘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1987년 5월 전대협 제1기가 결성된 이후 1991년 6월 현재 전대협 제5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전대협 의장은 모두 주사파 지하혁명 조직에서 파견한 지하 핵심조직원임이 그 동안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음.
전대협 제1기 의장 이인영은 1986년 12월 고려대 중심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결성한 주사파 지하조직 전국사상투쟁위원회(전사투위)가 ‘전대협’의장 감으로 사전물색,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킨 후 의장에 당선시킨 자이고,
전대협 제2기 의장 오영식은 1988년 1월20일 주사파 지하조직 ‘반미청년회’ 출신이며,
전대협 제3기, 제4기, 제5기 의장 임종석, 송갑석(전남대), 김종식(한양대) 등도 주사파 지하조직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이 전국 학생운동을 주도, 장악하기 위해 전대협에 침투시킨 지하조직원들이었음》
<“김일성수령님 만세” 충성 맹세했다는 기록>
이들 기록은 전대협 내부에서 김일성에 대한 충성의식도 행해졌다고 적고 있다. 예컨대 한OO라는 전대협 조통위 위원장의 자술서 등에 따르면, “1991년 4월 하순 경희대 총학생회실에서 전대협 조통위 정책실장 손OO 주재로 개최된 정책주체전국회의(전대협 정책실원 5명과 전대협 각 지구 조통위 실무자 11명 참석) 후 참석자 전원이 “김일성주석의 건강을 위하여”라고 건배한 후 “김일성 수령님 만세” 삼창 후 회의를 종료”하는 등 전대협 간부들이 회의·집회·시위·MT 후 김일성에 대한 충성의식을 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전대협을 장악한 주사파 지하조직 중 하나인 자민통은 1990년 8월 중순 한탄강 소재 민박촌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장 등에 출마할 88학번 6명(한OO, 최OO, 천OO, 강OO, 김OO, 박OO)과의 MT에서 김일성에 대한 충성맹세를 했던 것으로 나온다.
자민통 조직원들이 당시 “김일성 수령님 만세! 김정일 지도자 동지 만세! 한국민족민주전선 만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만세!”를 부른 후 선언했던 결의문과 맹세문은 아래와 같다.
《위대한 수령님 김일성 동지와 우리의 지도자 김정일 비서의 만수무강과 한민전의 영도 아래 이 한 목숨 끊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 결단으로 나아가자(강령 中)...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사수하며 조국과 민족이 완전히 해방되는 그날까지 열사 헌신하겠습니다(규약 中)》
전대협 간부들의 김일성에 대한 강한 충성심은 1991년 전대협 수사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수사결과에 따르면, 제O기 전대협 의장 S씨는 “김일성을 존경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김일성이 TV화면에 비칠 때면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에 흐뭇함을 느낀다. 북한은 정의와 자주권이 보장되어 있는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정부이며 북한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제O기 전대협 의장 K씨는 “김일성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수령관에 동의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김일성 주석은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했고 더 나은 사회주의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 지금의 북한을 훌륭하게 건설했다.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치적 자주, 경제적 자립, 군사적 자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위수김동, 친지김동 김일성·김정일 추앙”>
전대협의 주체사상 추종은 전향 주사파 지식인들에 의해서도 잇따라 제기돼 왔다. ‘反帝(반제)청년동맹’ 등에서 활동한 국가인권위원 홍진표씨는 “1980년대 이후 학생운동 지도부는 주사파가 장악했다. ‘주사파는 극소수 학생만이 추종했던 이념’이라는 전대협 출신들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2004년 10월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사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소위 김일성 원전을 읽고 한민전을 청취하며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주사파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진심으로 추앙했다》
주사파에서 전향한 <시대정신> 편집위원 최홍재씨는 ‘잃어버린 세대 386’이라는 논문에서 “4.19세대와 1970년대 민주화운동세력은 민주화 자체가 목적이념인 반면 386에게 민주화는 사회주의나 북한의 통일로 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사회주의 운동이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경과하며 주사파NL그룹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대표적인 사회운동도 이런 입장을 지니게 된다.(…)주사파는 대중조직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전대협(1987년)과 한총련(1993년)을 조직하게 되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1990년을 전후하여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연쇄적으로 붕괴하면서 PD그룹은 급격하게 쇠락하게 된다》
<“전대협을 주사파가 장악한 게 아니라 주사파가 전대협을 만들어”>
전대협 連帶(연대)사업국장(연사국장) 출신으로 주사파에서 전향한 이동호 북한민주화포럼 사무국장은 “전대협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했으며, 한민전의 투쟁방침을 따랐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학생운동그룹은 1987년 반미청년회·조국통일그룹·관악자주파 등을 결성했고, 이 과정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같은 해 8월 전대협을 건설했다. 전대협을 통해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반미청년회 등은 모두 한민전 지침아래 주체사상과 북한식 투쟁노선으로 무장했다. 반미청년회 등은 自派(자파)출신을 총학생회장에 당선시키거나 활동가를 전대협 내부에 침투시켜 자신들의 지도를 관철시켜왔다. 대중조직인 전대협은 합법조직을 지향, 사상이나 투쟁노선을 대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대협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그룹에 의해서 지도됐기 때문에 그들의 노선과 자료 등 곳곳에서 주체사상과 투쟁노선이 나타나 있다》
반미청년회 핵심맹원이었던 강길모 프리존뉴스 대표는 “전대협은 주사파에 장악됐던 것이 아니라 주사파가 만든 것이 전대협이며, 주사파가 아닌 전대협 간부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9월20일 서울프레스센터 자유민주주의학회 세미나, 2006년 12월 <월간조선> 등을 통해 열린당 내 주사파출신 정치인들을 거명하기도 했다.
《金日成주의 조직이었던 反美청년회 등이 1987년 만들었던 것이 전대협이다. 현재는 盧武鉉 정권 실세 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정치인들이 내가 속한 조직에서 교양됐다. 전대협 출신 열린당 의원 우상호·오영식씨, 청와대 제1부속실장 문용욱씨, 前제2부속실장 이은희씨, 前청와대 대변인 김만수씨, 前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여택수씨 등.(…)우리는 ‘위대한 수령 金日成 동지’를 찬양했다》
그는 또 이렇게 증언했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과거 공안사건은 99.9% 사실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증거가 아닌 자백에 의존하려다 보니 고문이나 가혹행위가 빈번하게 이뤄졌고, 이것이 ‘조작설’의 빌미가 되곤 했다. 주사파 운동권에서 북 공작원을 만나는 일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북과 직접 커넥션이 있다는 것은 운동권 내에서 자신의 권위와 서열을 단번에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첫댓글 북한을 모방한 한국지방 빨갱이들이 득실거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자기 패거리를 만들려고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넘들을 꼬실려 선동하고 불법집회를 이용해 세를 불려가고있는데 큰일입니다
투위터에만 온신경이 다가있어네요 죄송 해요 제에 회원이 3000명이 넘어네요 중양에서 여론조사에서
하는것 열심히 참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