邯鄲之夢(한단지몽)
盧生(노생)이 邯鄲(한단)의 장터에서 도사 呂翁(여옹)의 베게를 베고 잠들어 있는 동안 일생의 경력을 모두 꿈꾼 고사에서 나온 말로, 인간 일생의 榮枯盛衰(영고성쇠)는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沈旣濟(심기제)는 당나라의 傳奇作家(전기작가)로 唐代(당대)전기소설의 대표작인 枕中記(침중기)를 저술하여, 명나라 湯顯祖(탕현조)의 희곡 邯鄲記(한단기)의 바탕이 되었다. 다음은 침중기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다.
당나라 玄宗(현종) 때의 일이다. 도사 여옹은 한단으로 가는 도중 주막에서 쉬다가 노생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山東(산동)에 사는데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산다며 내내 신세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하였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속에서 점점 커지는 베게 구멍 속으로 들어가 보니, 고래등 같은 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 명문가인 그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후 10년간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게 되었다. 노생은 포박당하며 ”내고향 산동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벼슬길에 나갔던가,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거닐던 때가 그립구나. 라고 말하며 자결하려 했으나, 아내와 아들의 만류로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수년 후 모함이었음이 밝혀져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 노생은 모두 고관이 된 아들 다섯과 열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그런데 노생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노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매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이 들지 않았을 정도의 짦은 동안의 꿈이었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노옹은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네” 라고 웃으며 말했다. 노생은 한바탕 꿈으로 온갖 영욕과 부귀와 죽음까지도 다 겪게 해서 부질없는 욕망을 막아준 여옹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한단을 떠났다.
이 이야기에서 “한단지몽”이란 말이 되었으며, 인간의 부귀영화나 인생의 영고성쇠가 다 꿈같이 부질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