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할머니가 최초의 누룩인 주모(酒母)를 살펴보고 있다. 주모는 대마 막걸리의 향과 맛을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남도의 민속주 영광 대마 막걸리-톡 쏘는 시원한 맛 “카아∼”
따사로운 봄햇살이 내리쬐는 영농철.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분주한 손놀림으로 모내기하는 농군들. 멀리 논두렁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아낙네들의 새참 행렬이 정겹다. 땅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토향(土香)을 안주삼아 형님, 아우 하며 입안에 털어넣는 막걸리 한사발은 봄의 꽃내음보다 더욱 향기롭다. 어느새 터져나온 한바탕 웃음소리가 논 한가운데 가득하다. 과거 우리 농촌에서 흔히 바라볼 수 있던 풍경이다.그만큼 막걸리는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막걸리(탁주)는 예로부터 가주(家酒), 제주(際酒), 국주(國酒), 농주(農酒) 등 종류 뿐만 아니라 붙여진 이름도 다양했다.
전남 도내 각 지역마다 생산되는 막걸리의 수는 일일이 가늠키 힘들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서도 영광군 대마면 원흥리 영광탁주제조장의 ‘대마 막걸리’는 유독 눈에 띈다.
지난 90년 생산되기 시작해 영광군민의 입맛을 사로잡은 대마 막걸리는 이숙여(81) 할머니의 작품이다. 이 할머니가 막걸리를 처음 만든 것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서 가용주 비법을 배우면서 부터라고 한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 이 할머니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 막걸리 맛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용돈벌이 삼아 술을 만들어 팔곤 했다. 그러던 중 7살 난 큰 딸이 방안에 놔둔 누룩 항아리 안에서 잠이 들었다 유독가스에 목숨을 잃으면서 술 만드는 일을 그만뒀다.
“큰 딸을 잃고 나서 절대로 막거리를 맹글지 않겄다고 다짐했는디, 사람 일이란 게 맴 먹은대로 되지를 않더란 말이시….”
막내 아들인 정덕진(38)씨가 지난 90년 군대를 제대하고 마을 주조장을 인수해 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정씨는 2∼3년간 막걸리를 내다 팔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 때까지도 이 할머니는 막내아들의 주조장 일에 전혀 관여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보다못한 이 할머니가 막걸리 만드는 일에 직접 뛰어들면서 대마 막걸리는 영광을 대표하는 명주(名酒)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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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여 할머니가 아들 정덕진씨와 함께 막 쪄낸 꼬두밥을 정성스럽게 손보고 있다. 꼬두밥을 가는 채를 이요해 걸러낸 뒤 누룩을 만들게 된다. | |
대마 막걸리 제조 과정은 옛날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꼬두밥을 술통에 찐 뒤 종국균을 파종해 누룩을 만든다. 여기에 쌀과 소맥분을 혼용해 주모(酒母)를 만들고 감초, 계피, 오미자, 당귀 등 9가지 한약재를 섞어 3일간 숙성시키면 완성된다.
정씨는 “어머니께서 전수해주신 방법대로 만들긴 하지만 그 깊은 맛은 따르지 못하고 있다”며 “어머니의 장인정신과 정성을 그대로 술에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대마 막걸리의 특징은 크게 청량감과 부드러운 목넘김, 깨끗한 뒤끝 3가지다.
사발에 한가득 따라놓은 대마 막걸리는 흡사 콩물국수의 진한 국물처럼 뽀얗다. 맛 또한 진하면서도 톡 쏘는 시원한 맛이 독특하다. 그런데도 목넘김은 부드러워 여러 잔을 들이켜도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현재 대마 막걸리 하루 생산량은 3천ℓ, 그날 그날 영광 지역에서 전량 판매될 정도로 영광군민의 입은 이 술에 길들여져 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막걸리 최대 성수기인 영농철이 다가온다. 대마 막걸리는 힘든 농삿일에 지친 농민들에게 작지만 큰 선물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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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시적에 집에서 막걸리 담을려고 고두밥 쩔서 누룩과 버무리기전에 어머님께서 한 뭉처 주셔서 먹을때 그맛 그추억이 아직도 세록세록입니다
지도 그~맛 압니데이...
그맛 지도 알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