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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과 사연 오가는 일 쉽지 않다 / 방민호
1. 대화 없는 나날
광화문 너머 삼청동에 나갔다 한밤에 세종문화회관까지 걸어 나와 집으로 돌아오던 날, 무슨 일인지 전경들이 늘어서 있었다. 6월 15일이었고, 6·15 공동성명이 어떠니 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던 것으로 보아 ‘진보’ 정당 시위였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정당이 결코 진보 정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보를 표방한다고 진보가 아니고 보수를 표방한다고 보수가 아니다. 이름을 부르고, 이름을 스스로 지으면 정체성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어처구니없는 발상법이 횡행하기 때문에, 그런 착각적인 사유들이 무슨 의미 있는 대화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누가 나를 보고 진보파라고 한다면 나는 그를 위해 웃어줄 것이다. 누군가 나를 보고 보수적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때도 나는 그를 위해 웃어줄 수 있다.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남자도, 여자도, 선생도, 학생도, 이 모든 개념이 거꾸로 서고 뒤바뀌어 서서 원래 자기가 섰던 자리를 되돌아봐야 하는 때가 온 지 몇십 년이다. 그러니 대화는 더 어려워졌다. 말다운 말과 말이 오가기는 더 힘들어졌다. 자기를 자신 있게 규정하고 남을 그 자기 입장에서 만만하게 보는 이들이 힘을 부리고 눈을 부라리는 세상은 끔찍하다. 그리고 그런 힘들이 문단에서 위세를 부린다면 이 나라 문학은 더 끔찍한 가난이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을 향해 진짜 말다운 말을 건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 말이 아주 가끔 내게도 전달되어 오는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차라리 그 말이 너무 소중해서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몰라 답신을 보내지 못하게 되고는 한다. 아주 옛날에는 나에게도 나 자신을 위한 편지가 아니라 남을 위한 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때는 사라져버린 것 같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를 설득해 이끌어 들이느라 진심에 없는 말을 미사여구로 장식하며 긴 편지를 이어가던 시절도 갔다.
지금 내게 말은 하나의 시요, 소설이다. 때로 지금 내가 써나가고 있는 글 같은 것도 말이 되는 때가 없지는 않겠지만, 무엇인가를 일대일 대응 상태로 지시하는 말들을 연속적으로 써나가는 문장이 외연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진심을 함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시는 타인에게 건네는 말, 진심을 담아 남에게 보내는 말다운 말이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는 시도, 소설도 다르지 않다. 왜 ‘나’를 모르느냐, 알아주지 않느냐, ‘네’가 이것을 알겠느냐, 한번 알아보기라도 하려무나, 하는 식의 대화법은 서로의 마음을 진작시켜 주지 못한다. 시는 타인을 향한 성의를 표현해야 한다. 그것은 빛 좋은 말만으로도, 수수께끼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2. 거대한 힘에 짓눌린 사소한 개체의 진실
말과 말이 서로 어긋나는 일은 비단 우리 사회 내부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규모로 전개되기도 한다. 어느 때 우리는 그런 엄청난 규모의 부조리에 놀라 차라리 그런 것과는 다른 차원의 사소한 진실들에나 귀를 기울이려는 겸손함을 길러내기 쉽다. 이런 태도를 논리적으로 합리화해서, 이 포스트모던한 시대에는 ‘거대서사’는 무력하고 진실한 것은 ‘사소사’나 다루어야 얻을 수 있는 법이라고, 제법 깨달은 듯한 목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 오래다. 그러나 ‘거대서사’에 대한 관심이 ‘사소한’ 인간들을 참담한 비극으로 몰아넣은 끔찍한 세계사적 경험들에도 우리는 ‘사소사’에만 우리의 시선을 좁혀 놓을 수 없으니, 그것은 바로 이렇게 겸손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 위를 거대한 불합리가 징그러운 웃음소리를 내며 군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김선향이라는 시인은 이러한 사소한 말들의 시대에 자기 아닌 남을 위해서, 그것도 맑고 명랑한 세계가 결코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 하지 않는 사연을 향해 진심을 담은 말을 건넨 시를 써보였다.
이제 아득해지는구나. 그토록 무거웠던 생애가 겨우 가벼워지려나 보다. 내 슬픔이 끝나가는구나. 붉디붉은 꽃상여에 태워 열다섯에 떠나온 고향, 꿈결에만 수없이 다녀왔던 그 고향을 한 바퀴 돌아주오. 눈물을 거두고 나를 기억해다오, ‘강덕경’을. 일본군 위안부 ‘하루에’를.
잠꼬대를 다 하네.
가랑이를 벌리고 누워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이―랏―샤―이―마―세―
오늘은 지독한 일요일였어. 불개미 끓듯 쉰 명의 일본 군인들이 내 몸을 짓밟고 지나갔어. 용암처럼 뜨거워진 샅 사이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다리는 붓고 또 부어 일어설 수조차 없네. 시궁창처럼 더러워진 내 몸이 끔찍해 눈을 감았네.
한 달에 서너 차례 606호 주사를 맞아야 했지. 우릴 위한 주사는 아니었지. 차질 없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편였을 뿐. 주사를 거부하다 일본장교의 군홧발에 깔려야 했어. 성병에 걸려 조선 처녀들을 유린한 일본 군인에게 복수하려던 참였지. ‘이 독한 조선년’ 욕설을 내뱉는 그에게 침을 뱉고 동굴에 끌려가 열흘이나 갇혀있었지.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지만 차라리 동굴은 아늑했어. 아아 이대로 눈 감을 수 있다면.
그러니까 1942년 5월, 부산. 우린 하나같이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산더미 같은 배에 올라탔네. 흰 밥을 배불리 먹고 돈도 번다고 했지. 굶주림에서 벗어나 목돈을 들고 고향에 돌아올 날을 꿈꾸며 마냥 행복했어. 시모노세키에 도착해 기차를 탔네. 도야마현의 후지코시 비행기 공장에 도착했네. 소금 뿌린 주먹밥 한 덩이로 하루를 견뎌야 했네. 하루 열두 시간씩 노동했네. 한푼도 주지 않았네.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어 허릴 펼 수 없었네. 마음 맞는 언니와 모의를 했네. 그믐밤, 도주하다 그만 헌병에게 붙들렸네. 나를 트럭에 태웠네.
대여섯이나 되는 군인들이 달려들어 옷을 벗기기 시작했네. (어머니, 제발 도와주세요) 난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네. 두려움에 떨며 울기만 했네. 차디찬 눈물만이 트럭 바닥에 흥건히 고였네. (어머니, 잘못했어요)
그게 시작였네. ‘하루에’란 새 이름을 얻었지. 광동,랑군,라바울,파라오,오키나와…… 머나먼 이국의 땅엔 어김없이 위안소가 있어 우릴 반겨주었네. 자살을 하는 벗들도 여럿 있었지. 하지만 난 살고 싶었네. 고향 바다와 어머니를 떠올리면 난 그저 살아야 했네.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아침, 맑게 씻긴 바다를 들여다보네. 열다섯 처녀인 내 몸을 꿈꾸네. 부질없는 꿈이네.
만신창이가 되어 고향에 도착해 새벽빛 사이로 보았네. 정화수 떠놓고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의 뒷모습.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네. 차마 사립문을 밀고 들어설 수 없었네.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 번 불러보네, 어머니! 나, 그 길로 돌아서야 했네. 울음을 삼켜야 했네.
고향을 등지고 갈 곳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네. 바람처럼 부랑자로 떠돌아야 했네. 안 해본 일이 없었지. 식모살이에 행상에 막노동을 전전하던 어느 해 겨울, 산동네 쪽방에서 한 소녀를 만났네. 면도날로 동맥을 끊고 죽음을 기다리던 소녀를 구했네. 두 목숨을 살려 놓았네.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배 속에선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네.그날 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슬픈 이야길 들려주었네, 다 지난 이야기를, 아니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서로 부둥켜안고 뜨겁게 울었네. ‘할머님 잘못이 아니에요!’ 고요하고 새까만 눈동자가 말했네. 불면에 시달렸던 밤은 끝나고 단잠에 빠져들었네. 모처럼의 평화였네.
내 자궁은 폐허였지만 넌 다르고말고. 순결하고 풍요로운 대지야. 내가 지켜주마. 한꺼번에 딸과 손주를 얻어 품에 안았네. 피 한 방울 섞이진 않았지만 우린 그렇게 됐네. 그녀들이 용기를 주었네. 세상이 귀 기울이도록 침묵을 깨라 하였네. 손을 잡아주었네. 뜨거운 손바닥의 힘으로 나는 다시 아프게 읊조리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다 지난 이야기를, 아니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잠꼬대를 다 하네.
가랑이를 벌리고 누워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이―랏―샤―이―마―세―— 김선향 〈진창에서 피어오르는 연꽃〉(《문학의 오늘》 여름호)
이 시가 보여주듯 이 시인은 흔히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시위대의 모습으로나 보기 쉬운 위안부 여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목소리를 빌려 ‘진실’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 지금 이러한 목소리는 억압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은 언론 메커니즘일 뿐만 아니라 시대가 다르니 뭔가 다를 것을 다르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인들의 집합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시를 이렇게 깊은 목소리의 형태로 써 보이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 할머니는 바야흐로 소멸되고 소거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시와 이 시를 닮은 말들이 그와 같은 불행을 당분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3. 당시를 읽는 나날
이상은 발표되지 않은 글들이 모여 있는 일문(日文) 노트 일부를 남겨 놓았다. 이것은 순전히 우연에 의해,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이중의 아주 일부가 오늘에 전해졌다. 그나마 진본은 어디에 다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몇 사람이 번역해 놓은 번역문들만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몇몇 잡지들에 이렇게 저렇게 전하고 있다. 그 가운데 〈얼마 안 되는 변해〉라고 제목 붙여진 글이 있다. 그것은 1931년 1년간에 걸친 일들을 에피소드 몇 개를 몽타주 방식으로 이어가는 방식으로 써나간 것이다. 나는 최근에 이 번역 일문 수필에서 이상의 삶의 변환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얻어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왜 총독부 기수직을 사임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것은 폐결핵에 따른 각혈 때문이었다고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 일문 수필은 그로 하여금 기수직을 그만두게 한 사상의 전환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장석주 시인의 시들을 최근에 여러 곳에서 보았다. 《시로 여는 세상》의 2013년 봄호에도 두 편의 시가 있어서 읽어 보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뜨거운 여름을 보낸 사람의 성찰적인 시선이 담겨 있는 듯했다. 동리와 목월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잡지에도 다시 이 시인의 시가 있어 살펴보니 시적 화자가 보낸 일 년의 일들이 ‘이야기’의 형태로 담겨 있다고도 생각해 볼 만하다.
비린내 나는 계집과는 이별,
벙어리뻐꾸기와도 이별,
이별의 일은 이별의 일로 마무리 짓고
더 이상 피가 소란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은하의 일들은 내 소관이 아니므로
모란은 모란의 일로 바쁘고
모란 옆에 바위는 제 그늘의 일로 바쁘다.
겨우내 동굴에 사는 박쥐에 대해,
눈먼 사람이 꿈꾸는 일과
국수를 먹고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오월 모란이 초란만 한 꽃봉오리 맺을 때
그 여자의 복사뼈와 발뒤꿈치를 떠올린다.
나는 잘못 살지 않았으나
입동 지나 물에 살얼음이 끼고
들칠면조들이 곡식 낱알들을 찾아 들을 헤집는다.
살아오는 동안 두부 몇 모를 먹었던가?
사는 보람이 두부 몇 모보다 더 크지는 않다.
가을이 오고 시 몇 편을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연못 옆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
고라니 배설물을 유심히 쳐다본다.
박쥐들은 멀리 있고,
나무옹이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헤아리는 날들.
숲에는 나무옹이가 있는 나무들과
나무옹이가 없는 나무들이 섞여 서 있다.
겨울이 오자 북풍이 불고
북풍을 타고 돌멩이처럼 핑핑 나는 새들.
감자를 심었으나 수확은 보잘것없고
당시를 읽는 일도 진도가 느렸다.
바람이 물을 밀며 나가는 날들이 지나간다.
— 장석주 〈박쥐와 나무옹이〉(《동리목월》 봄호)
그 일 년 동안 이 시의 화자에게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비린내 나는 계집과는 이별”, 더 이상 피가 소란스럽지 않기를 바란다는 이 화자의 목소리는 뜨거운 여름의 삶을 과거로 떠나보내고 삶을 자연이라는 새로운 좌표 위에 올려놓은 화자의 심경 세계를 담담하게 펼쳐 놓는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화자의 삶의 풍경들은 스산하면서도 고요하다. 이 시에서 어딘지 모르게 세계와, 자신을 아는 이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바라는 시인 자신의 새로운 마음을 읽어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를 ‘암시된 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려는 외재적 독해의 오류를 범하는 것일까. 그러나 최근 십 년 사이에 이 ‘암시된 저자’가 열심히 부활하는 중임을 잊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4. 의사소통 장애를 앓는 세대
《시인동네》 2013년 봄호를 보니 ‘젊은’ 시인들 다섯 명이 방담을 했다. 백상웅, 김이강, 박준, 황인찬, 이헌호 등이 그 주인공들인데, 시시껄렁한 대화 내용이 재미가 져서 여간해서는 잡지에 실린 글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성미를 이겨 놓고 말았다.
신용카드 대금이 밀려서 돈 걱정이 태산이라는 너스레에 카드깡을 하며 연명하던 30대 중반의 나날이 떠올라서였을까. 자기 시집이 얼마나 팔렸느냐고 인터넷 서점 사이트들을 떠돌아다니며 지수를 살펴본다는 ‘고백’에 마음이 열려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젊은 마음으로 박근혜 시대를 살아가는 심경을 ‘대담하게’ 드러낸 것에 한 표를 얹어주고 싶어서였을까.
한겨울에 자기들끼리 술집에 모여 자기들끼리만의 고민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헤어지는 이들에게서 의사소통 장애를 앓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을 무시하는 언사가 되는 것일까.
요즘 시 잡지들 중에 《시인동네》는 장정도, 기획도 신선해 보이고, 《신생》은 잡지에 수록되는 시들 수준이 고르다는 느낌이 든다. 《신생》에 앞서 언급한 백상웅 시인의 시가 있어 읽어 보는데, 역시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변상증〉이 뭔가? 요즘 ‘젊은’ 시인들 시풍이다. 또 하나, 이와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해 볼 만한 시가 《유심》에 한 편 실려 있었으니, 이제야 시인의 〈0g 씨의 신체검사〉가 그것이다. 도대체 ‘0g 씨’는 어떤 사람인가?
(가)
얼굴을 보았다. 어둠 깔린 벽에서,
벽에 걸려 흘러내리는 코트에서
이마에 대못이 박힌 얼굴을 보았다.
얼굴은 사소한 일에도 미간을 찌푸렸다.
눈썹 사이와 이마에 굵은 금이 갔는데.
나는 구부러졌으니까 망치질을 하고,
헐거우니 야밤에도 다시 못을 박으며
침실 벽에 끊임없이 얼굴을 걸었다.
떠나간 얼굴도 그리운 얼굴도 있었다.
살아남으려고 언제나 얼굴을 먼저 보았다.
언젠가 내가 아파 누워 있을 때,
얼굴은 고개 돌려 컴컴하게 함께 흐느꼈다.
나는 이마를 벽에 대고 서늘하게 눕는다.
내가 그간 두드린 저편의 진동이 찾아온다.
얼굴은 끝내 하나의 얼굴을 닮아갔다.
— 백상웅 〈변상증〉(《신생》 여름호)
(나)
유품함을 열었다
―자, 무엇이 남았나요
―없어요. 빈손으로 떠났나 봐요
―만져지는 것 뭐든 말해보세요
헤헤이일수우없이 수마아않은
―8번 트랙의 게으름이요
29, 30, 30, 30, 30일
―12월 달력의 건망증이요
물컹,
잡고 놓칠 때마다 손이 시렸다
―유품함 문이 안 닫혀요
―꾹꾹 열심히 눌러 닫으세요
손을 씻으며 생각했다
빈방 집들이를 해야지
— 이제야 〈0g 씨의 신체검사〉(《유심》 5월호)
두 시에 어떤 공통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두 화자가 모두 신체 이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평범한 지적일까. (가)에서 변상증이란 무엇이냐. 《두산백과》를 살펴보면 파레이돌리아(pareidolia)의 번역어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파레이돌리아란 무엇이냐. 그것은 설명이 좀 길다. “다양한 구름의 형태를 보면서 동물이나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처럼 불분명하고 불특정한 현상이나 소리, 이미지 등에서 특정한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심리 현상, 혹은 그러한 심리 현상에서 비롯된 인간의 인지와 사고에서의 오류와 착각을 나타내는 말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이 무작위적으로 나타난 현상들에 일정한 유형의 규칙성과 연관성이 있다고 인식하는 ‘아포페니아(Apophenia)’의 한 유형이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는 그리스어에서 ‘나란히, 함께’ 등을 의미하는 ‘para(παρά)’와 ‘이미지, 형태’ 등을 의미하는 ‘eidolon(εἴδωλον)’에서 비롯되었으며, ‘잘못된 연상에 의한 이미지나 인식의 형식’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렇군. 그러니까 이 시는 “얼굴”과 “코트”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시인 듯하다. 물론 더 깊이 생각하면 더 많은 것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무튼 이 시의 화자는 “얼굴”이 상했다. 그리고 얼굴은 내면세계의 표상이다. 이상에게도 자화상이 있고 숱한 화가들이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이제야 시인의 〈0g 씨의 신체검사〉도 신체 이상 증상을 내보이고 있다. 일단 신체가 0g이니 이런 이상한 신체가 있을 수 있나. 이런 신체 이상 증상을 앓았던 시인이 하나 있으니 그가 바로 이상이다.
그의 소설이나 수필에 이 신체 이상 증상을 꼭 그대로 보여주는 문구와 문장이 있음을 지적해 둔다. 그게 어디고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그것은 수수께끼니 맞춰 보라고 말해 두고 말련다. 그러나 내가 쓴 논문 어딘가에 바로 그 해답이 있다는 것쯤은 밝혀줄 수도 있다.
신체가 0g의 무게밖에 갖지 못한 이는 오로지 관념과 의식으로밖에는 삶을 살아가려 하지 않는 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미 현세인이 아니고, 또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미 죽은 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이 이 세계를 고통스러워 했던 이유의 한가운데에 바로 그 육체성이 있다. 이상은 자신의 육체를 거부하고 오로지 정신성만으로 살아가려 했다. 그런 불합리한 시도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문학에서는 종종 이것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고 초극을 위한 시도라고 한다.
나는 이상의 시들에 대해서 여간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섣부른 분석을 시도하지 않는다. 전체적 구조가 해명되지 않는 시를 즐겨 언급하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이상은 이 수수께끼 놀이에서 소설로 나아갔는데, 그것은 알레고리의 유통 가능한 수준이 어디쯤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던 그의 지혜 때문이었다.
자, 시와 소설은 다들 대화다. 비평도 대화다. 대화는 어차피 서로 다른 위상을 가진 사람들, 서로 겹쳐서 포개질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타자를 향한 비약이다. 나는 백상웅이나 이제야 같은 ‘젊은’ 시인들이 보여주는 대화 장애를 유심히, 주의 깊게 살펴보고 싶다. 그러나 지금 그런 여유는 없다. 다만 이들의 의사소통 장애가 확실히 집단적, 집합적 증상이며, 여기에는 확실히 사회적, 문학사회학적 근거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훌륭한 시인은 언제나 그러한 사회학을 뛰어넘는다. 또 그런 의미에서 결코 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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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rady@snu.ac.kr
문학평론가·시인. 서울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4년 《창작과 비평》(평론), 2001년 《현대시》(시)로 등단. 저서로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문명의 감각》 등과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가 있다. 유심작품상, 김환태평론상 등 수상. 현재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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