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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이론과 실재 스크랩 봉우선생의 생애와 사상 - 千古遺恨
이현수 추천 0 조회 323 13.08.15 10: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연구소에서는 금년 3월부터 봉우선생님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기획코너 <봉우사상을 찾아서>를 신설하여 연재합니다. 이곳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봉우선생님의 일화, 미발굴 육필원고, 육성자료, 봉우사상 관련자료 등을 정리되는대로 실을 예정입니다. 독자여러분의 열독(熱讀)과 자료제보를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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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선생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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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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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 1900-1994) 선생의 삶은 한마디로 풍풍우우(風風雨雨)였다. 그가 살아온 시대는 우리에게 유독 파란만장했던 질곡과 고난의 20세기였으며, 동시대의 많은 이들처럼 그 또한 역사의 질풍노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무명야초(無名野草)의 끈질긴 인내와 대지에 우뚝 선 거목의 꿋꿋함으로 시대의 풍파와 어두움을 헤쳐나와 후세인들의 삶을 밝혀주는 큰 등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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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20세기의 벽두 1900년 음력 1월 20일 서울 재동(齋洞)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권중면(權重冕: 1856-1936)으로 대한제국 내부(內部)의 판적국장(版籍局長)과 진도, 평산, 능주 군수등을 역임한 고종황제의 측근이었다. 을사보호조약에 서명했던 친일파 권중현과 형제지간이었으나, 성격이 강직하여 이후 형제의 의를 끊고 모든 관직을 사임한 채 시골로 낙향하여 은둔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에게는 더욱 충의(忠義)에 대한 관념과 처신을 교육하고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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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친은 경주 김씨로서 절충장군 김상호의 따님이었는데, 일찍이 집안에서 내려오는 정신수련법을 수양하여 도학(道學)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봉우선생은 6세때 어머니로부터 전통선도수련법의 근간인 호흡법을 배워 10세 이전에 이미 상당한 체득을 했다고 한다.

? 이렇듯 부친에게는 충의강직(忠義剛直)한 국가와 민족에 대한 관념과 자세를, 모친에게는 도인으로서의 구비조건을 배우고 물려받았던 봉우선생은 13세때 정신계의 스승을 만나게 되고, 이후 19세때 구월산에 입산하여 민족전통 선도(仙道)수련을 체험한다. 선생은 8세때 사서삼경이라는 유교적 교양을 이미 섭렵했고, 10세에 서울에서 우연히 나철(羅喆:1864-1916)선생을 만나 한배검사상을 배우자 곧 단군교에 입교(入敎)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조숙하고 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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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에 충북 영동보통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더 이상 공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이는 일제 식민치하의 신교육을 거부했던 부친의 반대가 주원인이었다. 대신 10대에 2차에 걸친 일본여행을 통해 새로운 서양문명과 사상을 접했다.

20대에는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이 되어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김규식(金圭植:?-1929)장군의 밑에서 무장 게릴라 투쟁을 하였고 중국, 몽골, 시베리아 등 각지로 돌아다니며 민족운동을 계속했다. 이때 상해 임정파의 김구 선생을 비롯한 여러 애국지사들과의 교분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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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김구 주석 영도하의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비좌비우(非左非右)의 민족독립노선으로 외세의존세력 타파에 앞장섰으나 결과는 좌우익 양편에게 탄압만 받았다. 특히 1949년 김구 선생의 암살이야말로 그에게 천고유한(千古遺恨)의 뼈아픈 사건이 되었다.

? 이후 30년 이상을 모든 정치적 활동을 중지하고 은둔의 세월을 보내다가 1984년 소설 ‘단(丹)’의 주인공으로 다시 사회의 전면에 나선다. 독특한 사회현상으로서 ‘단’ 열풍이 이 땅위에 거세게 불어 닥쳤던 것이다. 이 열풍의 중심에 봉우 선생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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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그는 민족선도 수련단체로서 연정원(硏精院)을 서울에 재건하고 나철 선생이 세운 민족종교 대종교(大倧敎)의 총전교가 되어 한배검 정신을 한민족에게 다시 심어주려 노력했으며, 한편으로는 전통 유림(儒林)들의 단체인 유도회(儒道會) 이사장에 취임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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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 소개되는 연대기적 자료들에 드러난 삶의 궤적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봉우 선생은 대단히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도 그 삶의 특징은 우리 겨레의 가장 오래된 묵은 얼이자 존재의 근원이었던 한배검 정신의 현대적 부활과 계승에 평생을 바쳤다는 데 있다 하겠다.

? 이 한배검 혹은 단군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이게 하는 민족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코드라 할 수 있으며 수천년 세월과 드넓은 동아시아의 공간속에서 부침을 거듭하며, 때로는 부르한이즘(Burkhanism:천신(天神)사상)으로, 샤머니즘으로, 신선도(神仙道)로, 풍류도(風流道)로, 상고현풍(上古玄風)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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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세기 현대의 벽두에 이 같은 한국의 고유한 선풍(仙風)은 19세기 이래 불어 닥친 외부의 충격으로 그 흐름이 단절될 위기에 처했으며, 그것은 곧 민족정체성의 상실이라는 정신적 혼란 상태를 가져오게 되었다.

? 이러한 20세기말 상황에서 한줄기 서광처럼 우리 정신의 어두운 장막을 거둬내고 원초의 광명함을 회복시켜준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봉우 선생이었다. 그의 삶은 우리 정신의 가장 깊고도 크나큰 뿌리를 드러내는데 모두 바쳐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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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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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선생의 생애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민족주의자이자 세계평화주의자이다. 얼핏 모순된 듯한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사상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봉우 선생은 일찍이 어머니로부터 고유한 한국선도에 입문했으며, 10대 후반에 이미 스승을 만나 황해도 구월산에서 국선(國仙)의 수련과정을 이수하여 그 깨달음을 얻었다. 즉 조선조 말엽까지 수천년 이상 면면히 전승되어오던 한배검 성인의 정신적 가르침, 즉 도맥(道脈)을 몸과 마음으로 전수받았던 것이다. 이후 20대부터 40대 초반 일제치하와 40대 후반 해방공간과 50대초 6.25 전쟁 시기까지 근 30년간을 밖으로는 반외세, 민족 자주독립투쟁에 투신하고 안으로는 끊임없는 정신수련에 몰두하며 절차탁마의 과정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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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써 보면 그는 한국선도의 고유한 전통의 핵심을 구현하고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국이 처한 당대의 현실적 제반문제에 대해서도 온몸으로 뛰어들어 그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던 치열성이 돋보인다. 결국 그는 이러한 적극적 현실참여 자세로 인하여 한국선도의 전통성과 현대적 의미부여 및 미래지향적 좌표를 설정하는 등 선도계의 지평을 확장시켜왔으며 이는 곧 봉우선도(鳳宇仙道)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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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에서 지향하는 민족주의는 결코 닫힌 민족주의가 아니요, 세계인류평화를 향해 늘 열려있다. 봉우 선생은 『한배검론』에서 한배검은 우리 겨레의 첫 조상인 큰 할배로서 인류의 첫 스승이 되는 성인이시며, 인류개벽 초기에 바이칼 호수에 오색인종을 모아놓고 사람의 참도리를 가르쳐 주신 잊을 수 없는 분이라고 언명하였다.

? 즉 우리의 조상과 근원은 한배검이라는 발상에서 민족주의가 출발하고 있으나, 그 귀착점은 인류의 첫 시작이 바이칼호에서 오색인종이 평화롭게 공존했던 것처럼 세계일가(世界一家)를 이루는 평화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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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의 지향점 또한 한배검 정신의 중핵을 이루는 홍익인간 이념의 전지구적 구현으로서 이 홍익인간이야말로 세계평화, 인류공존의 상징적 구호에 다름 아니다.

? 이러한 기조위에서 우리 민족은 국력을 배양시키되 약육강식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평화공존의 세계 일가주의(一家主義)로 나아가는데 앞장서야 할 필연적 의무가 주어지게 되며, 이는 우리가 한배검의 자손이라는 사실로 볼 때,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 봉우 선생의 독특한 『백두산족론(白頭山族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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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적으로 봉우사상의 핵심은 한배검 정신이자 선도이며 그것은 봉우선도로 귀결된다. 한배검 정신을 바탕으로 한 한국전통선도에서는 중국처럼 황제(黃帝)나 노자(老子)를 그 개조(開祖)로 삼지 않고 대황조(大皇祖) 한배검 또는 단군을 시조로 삼는데, 이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중심사상으로 계승되었으며 구한말이후 근현대까지 중국이나 서구열강들에 대한 반외세, 자주독립의 저항적 의지로 표출되어 왔다. 봉우선도에서는 한배검 정신의 전통적 의미를 더욱 확장하여 현대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로서 그 현실적 방향과 방책까지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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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선생은 이처럼 한국선도의 계승자로서 그 주요한 도맥(道脈)을 이었으며, 당대에 전통적 선인(仙人)의 모습을 구현하였고, 더 나아가 미래 한국선도의 청사진을 제공하였다는 데에서 그 사상적 특성을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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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전통선인들은 당대 사회공동체에 영향을 주고 활로를 열어주는 대사회적(對社會的) 예언을 행하여 왔다. 이것은 바로 선인의 선지자(先知者)적 역할 때문이다. 봉우 선생 또한 많은 예언을 행하며 당대의 민중들에게 희망과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주요 예언으로 남북통일, 소련의 몰락, 중국의 분열, 황백전환(黃白轉換) - 문명사적 전환측면 - , 세계사의 재편, 평화탄의 등장 - 세계 역학구조 개편의 계기 - 등이 있으며, 이들 모두 1920-30년대에 이미 예언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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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선인의 또하나 큰 역할은 민중의 구제자로서의 측면이다. 즉 선인은 민중의 고통스런 질병을 치유하는 의술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봉우선인 또한 당대 민중의 가장 큰 질곡이자 병을 제거하기 위해 젊은 청년기와 장년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개인적으로는 지상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한의사로서 치병행위를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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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위에서 드러난 전통선인의 모습외에 봉우선도의 특성을 보여주는 여러 측면들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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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와 한배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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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선생은 선도의 뿌리는 한배검 정신에서 비롯하였고 그 정신은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녹아들어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경전들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를 촉구하였으며, 자신도 많은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후학들에게 그것을 전달하려 노력하였다. 그의 독특한 홍익인간 이념의 해석은 전적으로 천부경 연구에서 비롯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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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와 정신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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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수련이란 나를 찾는 과정이다. 나를 찾되 나에게서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나는 곧 나의 주인이자 우주와 만물의 주인이기에, 이 나를 찾는 과정이 선도의 시작이요 정신수련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 그럼 나를 찾고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나를 알면 남도 알게 되고 그리하면 만물을 알고 우주를 알게 된다. 따라서 홍익인간도 알게 되고 결국 그것을 행하면 사사로운 작은 나에서 홍익을 행하는 큰 나, 즉 우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여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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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는 정신수련의 텍스트로서 조선 중엽 북창(北窓) 정염(鄭? :1506-1549)선생의 『용호비결(龍虎秘訣)』을 제시하고 있다. 북창선인이야말로 상고시대 선도의 희미해진 도맥을 중세 조선시대에 중광(重光)시킨 중시조(重始祖)라는 정신사적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그 징검다리역을 한 것이 바로 이 『용호비결』이었다고 하였다.

?『용호비결』의 가장 중요한 특색은 선도수련의 나를 찾고 깨닫는 방법으로서 조식호흡법(調息呼吸法)을 강조하였다는 데 있다. 이 호흡법이야말로 백두산족 정신수련법의 대종(大宗)이자 옛 성인 한배검의 진정한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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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는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즉 봉우선생은 <연정16법(1928년)>과 <호흡법 소서(1954년)>를 통하여 고대 한배검의 가르침인 지감(止感), 조식, 금촉(禁觸)의 3법 가운데 정신수련법의 핵심인 ‘조식법’을 계승한 <용호비결>을 더욱 발전시켜 조식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심신의 발전 상태를 호흡초수로 분류, 단계적으로 상세히 설명하는 등 전인미답의 독창적인 이론체계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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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와 천문(天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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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배검 정신의 원전(原典)인 『천부경』에 이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사상이 제시되어 있다. 그 삼재의 현실적 투영이 바로 상통천문(上通天文: 위로 하늘의 뜻에 통함), 하달지리(下達地理: 밑으로 땅의 이치를 온전히 앎), 중찰인사(中察人事: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은 연후에 중간자적 존재인 사람과 만물의 실정을 정확히 파악함)라는 메시지이다. 이는 곧 우주인인 선인들이 지녀야 할 가장 대표적 항목들이 되어왔다. 그중 가장 첫 목표이자 중시되는 대상이 하늘이요, 뭇 존재의 근원인 이 하늘의 참된 의미를 천문(天文)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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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과 땅위에 존재하는 만물의 이치와 그 실상을 알기 위해서는 천문의 관측과 해석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정신수련을 통한 고도의 정신력과 안력(眼力)배양, 주역의 수리적 연구 등이 병행되었다.

? 봉우 선생은 평생 천문관측을 통하여 수많은 예언을 행하였다. 또한 역대 선학들이 용사(用事)하던 천문점성서인 『선기수(璿璣數)』를 후학들에게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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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와 지리(地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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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선생은 땅의 이치를 논하기에 앞서 먼저 땅에 투영된 하늘의 뜻을 살피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곧 전통 풍수지리학의 전문가들인 지사(地師)들이 땅의 이치는 땅에만 있는 줄 알고 천문은 도외시한 채, 수많은 이론들을 남발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 천문을 모르고서 지리를 논한다함은 어불성설이라 하였다.

특히 현대에 들어와 도학(道學)과 심종(心宗)의 전통이 쇠미해져서 정신수련을 통한 혜안(慧眼)의 각득(覺得)이 없이 이론서만을 연구하여 지리를 관찰하려는 풍조만이 남아있음을 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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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지리를 논한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계룡산의 지리를 논한다면 계룡산이 천문의 무슨 성수(星宿)자리인지는 알아야지. 천문을 모르고 지리를 논한다는 것은 말이 안돼. 서대산하고 계룡산이 하늘의 중심인 자미원(紫微垣)의 동서로 자리하고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이 서대산으로 서자미(西紫微)이고 동쪽에 있는 계룡산이 동자미야. 서대산에는 서자미 칠성(七星)의 원혈(元穴)이 있고 계룡산에는 동자미 구성(九星)의 원혈이 있는 것이지. 이렇듯 성수가 뭔지도 모르고 지리를 안다고 하는 것은 모두 가짜들이란 소리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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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1989, 정신세계사, P.308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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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은 전통지리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소위 음택풍수의 명당설과 길흉화복론 등에 두지 않고 국가나 사회의 공동체적 의미가 담긴 국도론(國都論)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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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도론이란 나라의 수도를 결정하는 지리론(地理論)으로서 고대 지리학에서 가장 중요시되어 왔다. 국도론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점은 국민들이 정치, 경제, 문화의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는 국가의 중심부에 수도가 위치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도시의 여러 기능에 비추어서 한군데로 몰리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도론은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감안하여 적어도 미래 천년후의 천문과 인사까지 꿰뚫어 보는 혜안이 필요한 거대담론으로서 역사적으로도 나라가 바뀔 때마다 수많은 도인과 선지자들이 이 문제에 개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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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선생은 『북계룡론(北鷄龍論)』을 제시하여 미래 우리 민족의 지리학적 진로를 밝혔다. 즉 우리나라는 남북통일 이후 서울이 잠시 통일국가의 수도가 되었다가 신의주 바로 위 단동과 심양사이에 있는 북계룡 2000리 분지로 수도를 옮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약 500년후에 다시 북만주 장춘(長春)으로 옮겨서 장춘을 북경, 북계룡을 남경으로 하면 된다고 예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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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밖에 『장백산조종론(長白山祖宗論)』을 통해 우리나라를 세계지리의 중심으로 놓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 『봉우선인의 정신세계』, 2002, 정신세계사, P.44-4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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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와 의약(醫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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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시아 의약학의 기원은 도교(道敎)에 있고, 도교는 신선사상에서 비롯하였으며, 신선사상이란 상고(上古)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던 우리 겨레의 고유한 정신세계였다.

? 봉우 선생은 동북아시아 의약학의 비조로 불리는 신농씨(神農氏)나 황제(黃帝), 모두 역대 단군들로 보았으며, 따라서 침(鍼), 약(藥), 맥(脈)이라는 전통의약학의 주요 부문에 대해서도 우리나라가 발원지였다는 민족의약학적 견해를 강조하였다. 특히 우리의 전통의약은 병이 오기전에 미리 대처하여 건강을 지키는 예방의학적 정보가 아주 풍부하여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함을 역설하고, 선도의 민중구제적 전통을 이어받아 의약적 측면에서도 대중들이 알기쉽게 활용가능한 정보들을 모아 널리 공유하도록 국가가 나서야 할 것을 제의하였다.

? 또한 동서의학이 함께 공존하여 서로의 장단점을 잘 보완하고 확장시켜 새로운 의학으로 거듭 나야한다는 관점에서 『전통의약론』을 설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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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선생은 현재 우리의 전통의약계가 봉착해 있는 여러 난점들과 불합리한 문제점들을 개선한다면, 그 자체의 역량만으로도 얼마든지 현대 서구의약의 한계를 극복하여 세계최고수준의 의약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를 위하여 보건부 산하에 『전통의약연구소』같은 국가기구의 설치와 운영이 시급함을 이미 40년 전에 역설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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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P.3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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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와 복서(卜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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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에 대한 전통적 예측방법을 의미한다. 예나 지금이나 도인과 선인(仙人)들의 주요 기능은 당대의 공동체에 대한 미래예측이었다. 선도에서도 국가나 사회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삶의 진로나 방책을 제시하기 위한 미래예측이나 예언은 아주 중요시 되어왔다. 상고시대에는 물질문명수준은 낮았으나 대신 정신문명의 수준이 매우 높은 도인들이 많았으므로 이들은 복서라는 형식으로 민중들을 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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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선생은 일정한 정신수련과정을 통하여 얻은 정신력 혹은 도력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천문관측법, 점성술, 수학적 계산법인 추수법(推數法) 등을 통하여 미래를 예측하였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천문점성술로는 『선기수』가 있고, 미래, 현재, 과거의 삼세(三世) 투시법으로 『원상법(原象法)』이 있으며, 수리계산법으로 『사시산(四時算)』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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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비전 정신수련법』, 1992, 정신세계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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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이와같은 각종 방법들을 통해 미래예측을 하였고, 그 정보들을 사회에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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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통일 예언: 2014년까지 완수됨.

??? (1991년 8월 14일자 〈세계일보〉와의 특별대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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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산운화론(白山運化論):?

??? 지금부터 3000년전 고대 상(商)나라와 주(周)나라가 교체되던 때로부터 지속되어 온, 성주(聖主)가 아닌 영웅호걸들의 각축장인 일치일란(一治一亂)의 소강(小康)시대의 운세가 끝나고 지난 1984년 갑자년부터 세계평화운이 돌아왔으며, 이는 어느 일부지역에 국한된 흥망성쇠가 아니라 이 우주, 이 세계의 공통된 천지대운이요, 대동홍익운(大同弘益運)으로서 이같은 인류평화건설의 주역을 우리 민족이 맡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1984년부터 2044년까지 60년 동안에 남북통일완수, 만주와 바이칼호수 동쪽지역과 몽골로의 평화적 진출 등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로써 우리 백두산족의 오천년 미래대운이 시작된다고 예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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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백전환론(黃白轉換論):

??? 앞서 『백산운화론』과 같은 맥락의 예언으로 서기 2044년까지의 기간안에 한국, 중국, 인도가 주축이 되어 동아시아 모두가 번영을 누리며 백인중심의 서구문명이 황인종 중심의 동양문명권으로 그 주도권이 전환되며 그 선두역할을 우리나라가 한다는 문명사적 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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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성취두론(五星聚斗論):

?『백산운화론』이나 『황백전환론』등을 뒷받침하는 천문현상을 의미하며, 봉우 선생은 1982년 처음으로 오성이 우리나라가 속한 두성(斗星)분야에 모두 모인 오성취두 현상을 63년전인 1919년에 이미 추수법(推數法)으로 계산해 놓았다. 이 오성취두의 천문은 대길조의 현상으로서 우리나라가 세계중심국으로 부상하는 제일 첫째 조짐이라는 것이다. 지난 세계사 천년동안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된 칭기스칸 또한 당시 오성이 취규(聚奎: 규성분야 - 몽골에 해당 - 에 모임)하고난 뒤 출생하였다는 전례가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앞으로 세계평화운에 적합한 대도인이 출생하여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가 될 것이라 한다. 어쨌든 이 『오성취두론』이야말로 전통선도를 계승한 봉우선인의 독특한 미래예측 사례라 하겠다. 선생은 여기에서 고대 성인들이 예언한 간도광명(艮道光明), 간도중광(艮道重光), 성시성종(成始成終)의 실체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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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인의 정신세계』, 2001, 정신세계사, P.115-12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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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선도와 체술(體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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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도(神仙道)로 표상되는 우리의 고대문화에는 높은 수준의 정신문화뿐 아니라 강인한 체력을 연마하는 고유의 체력단련방법인 『체술』이 있었다. 곧 신선도란 정신과 육체의 단련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상들의 심오한 지혜로 개발되어 전승되어 온 체술로 평소 생활속에서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왔던 고대의 우리 민족은 주변 외세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용맹스레 물리쳤던 강력한 상무국가(尙武國家)로서의 면모를 지녀왔으나, 신라의 반민족적 삼국통일이후 지도층의 사대주의 풍조만연으로 인하여 점차 그 자주적 상무정신과 국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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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선생은 우리 고대문화의 참얼을 단군 한배검 이래의 고유 신선도에서 되찾아 현대에 다시금 회복시키기 위해 평생 심혈을 기울였다. 그 과정으로서 맨먼저 한배검 정신의 회복을 주창하였고, 이를 위해 민족의 성경(聖經)인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연구하였으며 여기에 드러난 정신의 실천과 깨달음을 위하여 『용호비결』의 조식(調息) 호흡법을 수련하고 천문, 지리, 의약, 복서, 경세(經世)의 제반 분야들을 섭렵해왔다. 이러한 정신문화적 접근외에 체육문화적 전통을 복원하는 차원에서 고유체술을 실제로 연마하며 연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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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선생의 정의에 따르면, ‘체술’이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몸을 놀려 행할 수 있는 체력단련술법을 말한다. 상고시대부터 전해내려온 이 체술이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로 정립하면서 각국마다 독특한 성격을 지닌 완연한 무예(武藝)의 형태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또한 빈번해진 삼국간의 전쟁과 외세로부터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전국민적 국방개념의 확립이 절실해졌으므로 민족고유의 체술도 일부 무술전문가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에게 국책으로 보급되었던 것이다.

? 이 삼국시대야말로 역사상 가장 상무정신이 제고되었던 시기였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외부에서 우리나라를 명실상부한 강국으로 지칭한 사실이 역사적으로 기록된 유일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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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 몽골 울란바토르 교외에 있는 투르크(돌궐)제국의 창건자 빌게 카간(可干)의 비문에는 빌게 카간이 죽었을 때 조문사절을 보내온 각국의 명단이 보이는데, 여기에 고구려는 ‘뵈클리(Boekli) 카간’ 이란 명칭으로 나온다. ‘카간’이란 최고의 군주를 나타내는 투르크어로서 한자로 황제에 비견되는 칭호이다. 투르크제국에서는 당태종 이세민을 천카한(天可汗)이라 불렀으니, 역대 중국사서에서 역사를 왜곡했듯이 고구려나 돌궐제국이나 한낱 북방의 오랑캐가 아니라 당당한 유라시아 제국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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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술은 신체를 아주 민첩하게 놀리고 힘도 기르는 민속법(敏速法)들로서 대략 30여가지가 전한다. 삼국시대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남녀노소 공통으로 즐겨가며 행하는 놀이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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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 선생은 고대체술의 현대적 계승 및 복원을 위한 연구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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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고유의 전래체술을 근본적으로 연구해서 국민보건향상을 위해 보급시킨다면 유도나 태권도, 공수도, 레슬링, 합기도, 권투 등의 기존 격투기 종목과 동일한 훈련기간내에 이들 종목보다 월등히 나은 실력으로 용이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비록 체계가 서지 못하였으나 이 고대체술 기본만은 여러 사람에게서 조정하고 연구함으로써 다시금 완성된 형태로 전승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 화랑의 무리들이 산중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는데, 그들이 어떻게 신체를 단련하였는지 편모(片貌)도 볼 수 없으니 무엇으로 그들의 전모를 더듬어 볼 것인가. 다만 한조각씩이라도 민간에 흩어져 전해오는 야담과 일화속에서 걷어내어 심사숙고하는 도리밖에 없고, 또는 정신수련으로 회광반조(回光返照)해서 고대를 추상하는 데에서 비로소 그들의 전모가 비쳐나오는 것이다. 간간이 흩어진 책속에서 고인(古人)들의 진의(眞意)를 엿볼 수 있고 글자 몇마디에서 옛 조상들의 진제(眞諦)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니, 중국의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나 일본의 무사도 전통만 배우지 말고 우리 고대문화속의 체술을 돌이켜 생각하여 거기에 깃들어 있는 선인들의 정신을 다시 살려서 백두산족 고유의 무예로 계승, 활용해 주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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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P.372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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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체술의 종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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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씨름, 2) 난장치기, 3) 줄넘기, 4) 중(中)방울받기, 5) 제기차기, 6) 수박(手搏), 7) 박치기, 8) 팔매(원근법), 9) 걸치기, 10) 제발 붙이기, 11) 택견(托肩), 12) 무릎치기, 13) 도약(跳躍), 14) 난간치기, 15) 지압(指押: 점혈법), 16) 악법(握法), 17) 배법(排法), 18) 추법(推法), 19) 인법(引法), 20) 소법(掃法), 21) 팔굽혀 펴기, 22) 축법(蹴法), 23) 권법(拳法), 24) 격지타(隔紙打), 25) 격타(隔打, 신궁), 26) 수배(手背) 치기, 27) 족배(足背) 치기, 28) 손 치기, 29) 허리 굴신법(屈伸法), 30) 어깨 치기, 31) 둔고법(둔固法), 32) 속보법(速步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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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어(結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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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으로 봉우 권태훈 선생의 삶과 사상에 대해 간략히 서술해 보았다. 그는 그가 살았던 동시대의 수많은 민족지사, 사상가들이 그러했듯이 쓰러져가는 나라와 불운한 형세에 휘말려 근본을 잃고 방황하는 불쌍한 인민들을 사랑했다. 그리하여 일찍부터 모순된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에 뛰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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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개화기에서 다른 이들처럼 서양의 신학문을 정규적인 틀안에서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우리 얼의 전승자들과의 인연을 통해 남다른 정신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이러한 우리 얼에 바탕을 둔 학문세계와 그것의 축적으로 심신을 연마한 그는 이후 격랑과 광풍의 현실에 몸을 던지고 그 역사적 모순들과 부단히 싸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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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과거 우리 고대문화의 자양분들을 몸소 섭취하고 소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현재적 정황과 미래에까지 계승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즉 우리 것은 다 좋은 것이라는 복고주의적 고루함은 없었다. 그는 망상가가 아니었고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늘 생각하는 지극히 겸손하고 실질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그의 사상적 특성인 한배검 정신과 선도의 부활이란 주제에 있어서도 그는 이러한 주제가 종교적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몹시 경계하였다. 한배검 정신과 선도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종교로 다루어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이전에 우리의 공기와 같은, 뿌리와 같은 선험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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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봉우 선생은 뿌리를 잃고 방황하는 21세기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많은 유용한 정보와 도움을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화의 시대에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더욱 더 모색해야 하는 자기모순적 시대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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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 권태훈 선생의 삶과 사상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지나간 고대 우리 선인들의 고유한 얼의 세계와 그 실재를 시공을 초월하여 받아들이고 깨닫게 된다. 특히 이야기책에서나 보는 신선, 선인(仙人)이란 독특한 인간의 존재양식을 20세기 현대에서 다시금 생생히 접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그가 후대인들에게 주고 간 가장 큰 인류학적 선물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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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사유방식이자 체계였던 국선(國仙) 화랑의 도(道)에 관한 한 그는 도무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너무도 당당하고 용감하게 그 도를 얘기하고 전파했으며 실제 그들 국선처럼 삶을 보냈다.

? 그로 인하여 수천년 내려오던 신선의 삶은 이제 더 이상 박물관의 박제품으로서가 아닌 현실에서 새롭게 부활하였다. 그의 삶과 사상은 우리 국학의 근원을 더욱 풍요롭게 했으며, 역동적인 미래로 이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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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봉우 선생님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고, 도인으로서 생의 마지막을 예언했던 65세 시(詩)를 다시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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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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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漠天地無門牆

往來有形無形中

自古聖眞神哲輩

橫說竪說作經傳

滄海粟身百年後

俯仰無愧是亦難

石火光陰瞬息間

三立餘痕千古存

人生大評功與罪

維善維惡二字分

六洲五洋五色族

東西古今同一理

執心正大常知足

誤入私慾常不厭

無字有字宇宙史

如此如彼繡文章

可笑艸露人生事

於焉六十五年春

長則三十短二十

眼光落地何可免

水逝雲捲本來面

營營苟苟何所益

淸香一柱茶一杯

默坐回光返照時

靑山白雲閒自適

流水晝夜空自忙

到老平心敍氣坐

天地無恙一如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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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천지엔 문도 담장도 없어

유형 무형으로 오고 가는데

옛부터 성인 진인 신인 철인들

종횡으로 경전을 지었네

바다위 좁쌀알 같은 인생 백년

하늘 땅 부끄럼 없이 삶 또한 어렵네

부싯돌 불꽃처럼 지나간 세월인데

삶의 자취 길이 남았네

일생을 크게 공과 죄로 평하니

선과 악의 두 글자로 나뉘네

온 세상의 모든 이

예나 지금이나 하나같은 이치 있어

마음을 집중하여 정대하면 늘 만족할 줄 알았고

잘못 삿된 욕심에 빠져도 늘 싫증내지 않았지

있음과 없음의 우주사

제 나름대로 생의 문장을 수놓네

가소롭구나 풀잎이슬 같은 인생사

어느덧 예순다섯일세그려

길면 서른 해, 짧으면 스무 해 (봉우선생님은 95세로 환원하심)

눈빛 땅에 떨어짐 무엇으로 면할까

물 흐르고 구름 걷히니 본래면목이라

애써 무엇을 이루려 하니 무슨 이로움 있으랴

맑은 향 한 대, 차 한 잔

잠잠히 앉아 빛을 돌이켜 비추일 때

푸른 산 흰 구름은 한가히 절로 있고

흐르는 물 밤낮으로 괜시리 분주하네

늙은이 되어 마음편히 기운 풀고 앉았으니

하늘과 땅 태평하여 바다와 하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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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5월, 봉우일기 2권 p157~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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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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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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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정신문화연구원 편찬)에 실린 봉우선생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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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2 : 정재서, <鳳宇 權泰勳과 韓國 道敎 簡論 1>, 봉우선인의 정신세계, 2001

?????? ????? 정재서, <鳳宇 權泰勳과 韓國 道敎 簡論 2>, 봉우선인의 정신세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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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3 :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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