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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기미 나루
김 정 한
P교도소의 젊은 간수들 사이에 미인으로 알려져 있는 심속득이는 한편 모범 죄수이기도 했다.
“속눈썹이 긴 고놈의 눈두덩만 보아도 사내 몇 놈 좋이 골병 들이겠던데.”
“게다가 새침 데기라…….”
“여러 여자 사귈 게 있나, 한 번 그러고 그랬더라도―”
“어느 놈처럼 죽어도 좋다는 게지?”
“죽은 넋도 그리 후회는 안 할걸 아마.”
젊은 간수들은 그녀를 두고 곧잘 이런 농지거리를 하였다.
‘뒷기미 나루 살인사건’이란, 검사의 기록에 의하면, 심속득이란 여인은 밀양 땅꼴이 원적지고, 낙동강 상류짬에 있는 뒷기미 나룻가가 현주소로 되어 있다. 나이는 스물다섯.
그녀가 결혼을 한 것은 겨우 열여섯이란 어린 때였다. 집이 가난했던 것이다. 그러나 뒷기미가 고향인 그녀의 남편은 그때 벌써 나이가 서른이 넘었었다. 게다가 직업이 뱃사공이라 얼굴이 몹시 검붉고 몸집도 장대한 편이었다.
이런 경우 시골 사람들은 곧잘 ‘암매 못 배기 낼꾸로…… 좀더 키와야지’ 한다. 그건 어찌 됐든, 속득이는 어미소를 따라가는 애송아지처럼 나이 든 신랑 춘식이를 따라서 고향인 땅꼴을 떠났다. 얼굴을 발갛게 해가지고. 물론 어머니는 울었다.
시가에는 그들 부부 외에는 칠십이 가까운 시아버지 한 분뿐이었다. 시아버지는 멋있게 자란 은빛 수염만 보아도 마음이 너그러워 보였다.
강가 사람들로부터 박노인이라고 불리는 시아버지는 그곳을 근거로 해서 벌써 삼 대째나 강가에 살아 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내처 배를 부리면서.
박노인이 고향인 뒷기미로 돌아온 것은 아들 춘식이가 나던 다음 해였다. 그해 여름의 큰물에, 뒷기미 나룻배를 부리던 춘식이 할아버지가 불행히도 떠내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김해에서 뱃머슴을 살고 있던 춘식이 아버지 박노인이 뒤를 이어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어느덧 삼십 년이란 세월이 홀렀다. 그러나 그의 집은 그의 고달픈 칠십 평생을 설명해 주듯 내처 헐고 빈한 태가 지르르 흐르는 초가삼간이었다.
한때는 박노인도 제법 밭마지기나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외아들 춘식이를 소위 대동아전쟁 때 징용 안 보내기 위해서 죄다 팔아넣고, 남은 거라곤 겨우 모래톱 밭뙈기 하나뿐이었다.
강 건너 사람들이 나룻배를 부를 때 ‘춘식이’ 하고부터, 박노인은 그 모래톱에 가서 채소를 가꾸는 것이 거의 일과처럼 되어 있었다. 아들 춘식이가 벌써 훌륭한 사공 노릇을 했으니까. 이렇게 해서 두 부자는 오래도록 홀아비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속득이가 들어오고부터는 우선 밥을 짓지 않게 된 것만 해도 한숨 놓였다.
나룻배를 타는 손님이 많은 삼랑진 장날 이외에는 박노인과 춘식이 그리고 속득이, 이 세 식구가 모두 그 모래톱에 가 살 듯했다. 그러다가 ‘춘식이’ 하는 소리가 들리면 춘식이는 곧 나루터로 뛰어가곤하였다.
아들 춘식이와 며느리 속득이는 겉으로 보아서는 금실이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같지 않았다. 원체 둘 다 말이 적은 편이었으니까. 그저 모래톱에서 무 배추 따위를 가져올 때, 춘식이 쪽이 바지게가 철철 넘도록 무겁게 해지는 대신, 아내 속득이에겐 조그맣게 뭉쳐 이우고 뒤따르게 하는 걸 보면 말은 안 해도 사이가 무척 좋아 보이기도 했다.
시아버지 박노인은 자식들이 그러는 걸 보고는 어지간히 마음이 흐뭇했던지 곧잘 그 은빛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타작이 끝날 때까지는 언제나 궁한 살림살이였다. 그 당시는 대개 어느 곳 나룻배라도 그러했지만, 같은 고장 사람에겐 뱃삯을 그때그때 받지 않고, 보리 타작이나 추수가 끝난 다음에야 한 집에서 얼마씩 농사 형편 따라 곡식으로 받았다. 그러니까 낯선 손님이라도 지나가는 날은 땡을 잡는 셈이 된다. 배에서 현금 수입이라고는 그럴 때 뿐이니까.
‘흥, 오늘은 한 건 한 모양이지……?’
뱃머리에서 돌아보는 아들의 얼굴에 미소 같은 게 떠 있으면, 박노인은 으레 이렇게 중얼거리기가 일쑤였고, 자기가 그런 땡을 잡았을 때는 암말 않고 번 것을 며느리에게 내주었다. 기껏 십 원 정도를 가지고도,
“아부이 가지시소.”
며느리 속득이가 황송해하면,
“그만 받아 도라. 내가 어데 돈 씰 데가 있어야제.”
이만한 박노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현금이 들어 오는 것은 열흘에 몇 번 있을 둥 말 둥하였으니까.
춘식이 역시 그러한 가욋돈이 생기면 단돈 오 원이라도 꼬박꼬박 아내에게 갖다 맡기는 성미였다. 또 쓸 일이 있어도 어디 가 빌렸음 빌렸지 아내에게 맡긴 돈은 좀처럼 달라고 하지 않았다.
시집온 그해 가을에 속득이는 그렇게 모인 돈으로써 중병아리 몇 마리를 샀다. 이듬해 봄, 암탉 두 마리가 병아리를 깠다. 첫물에 서른 마리에 가까웠다. 며칠 닭가리에 가두어 기르다가 이내 놓아 먹였다. 짐승도 터수를 알아챘던지 모이 같은 걸 주지 않더라도 들을 쏘다니며 곧잘 자랐다. 어느새 노란 장다리밭 저쪽까지 멀리 싸다니기도 했다.
해가 지면 병아리를 부르는 것이 숫제 박노인의 즐거운 일거리같이 되었다.
“구 구구구, 구 구구구!”
박노인은 은빛 수염 속의 입술을 쫑긋하게 오므라뜨렸다. 그의 기다란 수염을 흩날리는 강바람은 ‘구구’ 소리를 멀리까지 싣고 갔다.
삐약삐약 하면서 어미닭을 따라오는 헷병아리들을 하나하나 세는 것이 박노인에겐 성가시면서도 즐거운 일이었다.
길길이 자란, 강 두덕 포플러나무 그늘이 강심에 박히는 그해 늦여름엔 춘식이가 또 돼지새끼 한 마리를 사왔다. 그놈은 곧잘 꿀꿀거렸다.
이래서 뒷기미 나룻가 외딴 집에는 나 어린 며느리가 들어온 뒤부터 집짐승까지 늘어나서 한결 사는 맛이 났다. 게다가 갈대를 엮어 울타리까지 두르고 보니, 제법 더운 김이 나도는 듯도 했다.
이태 만에 처음으로 딸네 집에 들렀던 속득이 어머니도 이젠 울지않고 돌아갔다. 오히려 올 때보다 숙성해지고 영근 딸이 어머니를 울며 보냈다.
속득이가 첫애를 낳은 것은 시집온 지 삼 년 만이었다. 머슴애였다. 아기가 생긴 걸 기뻐한 것은 속득이보다, 남편 춘식이보다 시아버지 박노인이 훨씬 더했다. 그는 벌써 칠십 고개였으니까. 칠십 고개에 첫 손자를 본 박노인은 잽싸게 꽤 떨어진 낙동이란 곳까지 가서 아는 집들 두루 찾아다니며 이내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는 쌀과 쇠고기를 사왔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박노인은, 부엌에까지 들어가서 아들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야야, 첫밥은 아주 푹 무르게 짓는기대이!”
춘식이는 암말도 않고, 아궁이 앞에 두 다리를 쩍 벌려 꺾고 앉은 채 밥솥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밥을 짓는 기술은 그나 아버지나 오랫동안 홀아비 생활을 해왔던 만큼 아낙네 못지않게 능숙하였다.
“고래 구녕까지 쑥쑥 짚이(깊이) 밀어 여(넣)어라. 산모가 있는 방은 쩔쩔 끓어야 좋단다. 너 에미가 너를 낳았을 때도 내가 그랬니라!”
박노인은 이렇게 당부를 하고서 병아리를 찾으러 나갔다. 벌써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었다. 그는 어느새 또 돼지 우리께로 와 있었다.
“이놈의 꿀돼지, 오늘부터는 꿀꿀거리문 안 댄다이!”
돼지에게 먹이를 주면서 그는 연방 안방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아기가 한 번 더 울어 줬으면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별로 할 일도 없으면서 괜히 혼자 바쁜 듯이 사립을 나갔다 들어왔다 하였다.
아기의 이름은 칠손이라고 지었다. 박노인은 처음엔 건너 마을 훈장을 찾아가서 물어 볼까 하다가, ‘엣다, 내 손자 이름을 내가 와 몬 붙여? 칠십 줄에 본 손자니 그만 칠손이라 카자!’ 하는 욕심으로 이름까지 지었다.
그 칠손이가 얘송아지처럼 무럭무럭 자라났다. 칠손이가 나고부터 할아버지 박노인이나, 아버지가 된 춘식이나, 며느리 속득이는 더욱 더 악바리같이 일을 해탰다.
칠손이는 할아버지의 가슴에 안긴 채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곧잘 할아버지의 수염을 덥석덥석 움키었다. 때로는 따가울 정도로 잡아당겼다. 그러면 박노인은 그 고사리손을 오므라뜨려, 커다랗게 벌린 자기의 입에 갖다 넣을 듯 말 듯하면서 가짓불로 으르대는 것이었다.
“요놈, 할배 쉐미(수염)를 땡기다니? 또 그랄레? 또 그랄레? 웅? 웅?”
하며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어 댔다. 그야말로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하는 격이었다.
그러다가도 며느리가 하는 일이 고되어 보이면, 부리나케 아기를 며느리에게 떠맡기고 자기가 대신 하곤 하였다. 물론 상일일 경우다.
여태 며느리를 나무라 본 적이 없던 그였지법 손자 칠손이로 해서 더러 나무라기도 했다.
“야야, 애기가 울문 얼른 젖을 믹이야지.”
라든가,
“젖먹이를 두고 들에 가서 그래 오래 있음 우짜노.”
따위.
물론 이런 꾸지람은 속득이에게도 그리 언짢은 것은 아니었다.
칠손이는 제 아비를 닮았던지 순타가도 고집을 내면 대단했다. 그럴 땐 얼른 안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강물을 보면 곧잘 울음을 그치었다. 그래도 잘 안 그치면 박노인은 자장가 대신 엉뚱스런 뱃노래를 웅얼거리기도 했다. 입에 익은 탓이렷다.
배 떠난다 배 떠난다
만경창파 배 떠난다
새벽 서리 찬 바람에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강 두덕 길에서 이렇게 손자를 달래다가 청승스런 자기 목소리에 문득 돌아간 자기 마누라의 생각이 되살아나서 괘꽝스럽게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녀는 춘식이가 겨우 세 살 때 세상을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벌써 서른 해가 넘어 되는 셈이다. 칙살맞게 일만 하다가 가버린 년! ……박노인은 갈밭 속 길로 휙 돌아서며, 그런 생각을랑 아예 말자는 듯이 ‘이력샤 이력샤 이력샤!’ 노 젓는 소리를 하면서 칠손이를 들썩들썩 추스르곤 하였다.
춘식이도 나이가 나이라 아들 칠손이를 속으로 무척 귀여워했다. 놈이 앳된 어미의 불어오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걸 보면 어딘지 모르게 든든한 생각이 들어 넓죽한 입가에 웃음이 절로 떠올랐다.
“자아식!”
입이 차게 베물고 있는 젖꼭지를 백줴 쏙 빼버릴라치면,
“그라지 마이소. 또 울릴라꼬!”
속득이는 어쩌다 하는 남편의 장난마저 꾸짖는 것이었다. 숫제 미태를 보여 가며.
그러한 칠손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였다. 칠손이 아버지, 춘식이는 자기를 징용에 안 보내기 위해 아버지 박노인이 헐값으로 팔아 넘긴 모래틉 채마밭 닷 마지기를 강 건너 방앗간 젊은 주인으로부터 사정사정해서 되사들였다. 물론 땅 값은 시세대로 다 쳐준 셈이지만 방앗간의 젊은 주인은 특별한 호의라도 보이듯이 말했다.
“돌아가신 아버님도 혈케 사싰다니까…….”
그러나 그 연자방아의 젊은 주인이 사실은 놓기 싫은 땅을 춘식이에게 쉬 넘겨 준 이면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는 춘식이의 색시 속득에게 늘 특별한 호의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마침 그런 기회가 온 셈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속득이의 만만찮은 미모에 만만찮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건 어찌 됐든, 춘식이로서는 자기 때문에 팔렸던 땅을 자기 손으로 되사들인 것이 여간 기쁘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버지가 늘 맘에 끼고 있던 것을 풀어 드린 것도 같아 한결 후련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박노인도 물론 기뻐했다.
‘흥, 자식 된 구실을 하는구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아도, 되돌아 온 모래틉 언저리를 빙 돌아보는 박노인의 그 숱한 주름 속에는 만속한 빛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강가 사람들이나 강 건너 사람들은 일러 오는 말대로, 그러한 것이 다 박노인이 며느리 잘 본 덕이라고들 말했다. 물론 박노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사실 며느리 땅꼴댁은 인물이 무던한데다, 솜씨가 칠칠하고, 부지런하기가 거의 쉴 틈이 없을 정도였다.
모래톱 밭뙈기를 되사들이고부터 춘식이 내외는 더욱 일손이 바빠졌다. 게다가 강가는 산중보다 봄이 빨랐다.
뒷기미 나루는 삼랑진을 더 거슬러 올라간 낙동강 상류께, 지류인 밀양강이 본류에 굽어드는 짬이라, 다른 곳보다 물이 한결 맑았다. 물이 맑아 초가을부터 기러기떼며 오리떼가 많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많이 모이던 기러기며 오리 등이 간다 온다 말도 없이 훨훨 날아가기 시작하면, 뒷기미의 하늘에 별안간 아지랑이가 짙어 오고, 모래톱 밭들에는 보리 빛이 한결 파릇파릇 놀랄 만큼 싱싱해진다.
춘식이 내외는 더 어름거릴 수가 없다. 날만 새면 호미와 삽을 들고 밭에 가 엎딘다. 춘식이는 나룻배를 부리는 것도 귀찮아졌다. 장날은 하는 수 없었지만, 그 밖엣날은 오히려 성가시었다. 손님이 적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배 떠나요. 어서 오이소―”
낡은 뱃전에 낡은 장대를 짚고 서서 저쪽 벼룻길을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한 번이라도 오가는 횟수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오늘은 와 이리 급하노?”
헐레벌떡 달려온 손님들은 배에 올라서도 연방 씩씩거렸다.
춘식이는 한시가 바쁜 것이다. 되돌아오기가 바쁘게 모래톱으로 달려갔다. 그날은 보리밭 애벌매기도 끝내야 했고, 감자도 심어야 했으니까. 하늘에선 종다리의 우짖음이 요란스러웠지만, 그런 것에는 도무지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다. 묵묵히 밭을 매고 있는 속득이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이 서걱서걱 발고랑을 파 뒤져 댔다.
웬만큼 자란 보리들이 건듯바람에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지나가던 구름조각이 멀리서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강심에 흰 그림자를 머무르게 해도 알 바 없었다.
칠손이는 벌써 할아버지의 손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 손을 잡힌 채 서투르게 모래톱을 아장거리는 그는 제법 말을 익힌다.
“엄마 엄마!”
제 어미가 눈에 뜨인 모양이다.
“오냐 오냐. 에미 저깄다.”
박노인은 말동무가 생겨서 좋았다. 그는 정말 너무나 오랫동안 말동무가 아쉬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점점 잊어먹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찾던 놈이 금방 길가에 쪼그리려고 한다. 발끝에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다. 고사리 같은 손이 그예 그놈을 잠아당긴다. 어미를 닮아서 제비초리짬이 유난히 희다. 꽃을 문질러 들곤 제법 좋아라 한다. 뒤뚱뒤뚱 대여섯 걸음 마음대로 달려갔다. 할아버지 박노인은 일부러 허리블 굽히고서 따라가기가 바쁘다.
“꼬 꼬끼오―!”
주인 없는 그들의 빈 집에서 닭이 한나절을 유창하게 알렸다.
“꼬 꼬끼오―?”
이쪽에서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짜장 안타깝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꼬끼오’를 연거푸 울어 댔다.
그해는 보리 수확이 엄청나게 좋았다. 땅이 댓 마지기 꼴이라는 때문만이 아니었다. 돼지를 치고부터 두엄이 몇 배나 많아겼고, 가꾸기도 잘 가꾸었고, 게다가 박노인의 말마따나 우순풍조로 시절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저녁 늦게까지 타작일을 하고는, 춘식이 내외는 함께 강가로 나갔다. 땀과 먼치로 온통 굴왕신같이 되어 있었다. 행여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 배를 타러 올까 싶어서 일부러 나루터에서 훨씬 떨어진 위쪽으로 찾아갔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 언덕 밑이다.
먼저 물 속에 풍덩 뛰어든 춘식이는 이내 속득이를 돌아보았다.
“어서 들오나라.”
그러나 속득이는 내처 기슭에서 어물쩍거렸다. 달빛 이 희부여 그런지 옷을 벗을 때도 돌아서서 벗었다. 검푸른 갈수풀을 배경으로 동그스름한 엉덩머리짬이 한결 뿌옇게 드러나 보인다. 그러나 감히 저쪽을 보라는 말은 못 하고, 손으로 앞을 가린 채 조심조심 물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으레 저만치 떨어진 곳으로 목에서부터 젖가슴께로 바삐 씻어 내렸다.
춘식이는 저만치서 자맥질을 하다간 속득이 곁으로 가까이 왔다.
“등 좀 밀어 주라.”
늘 하는 버릇이다. 그러면서 서두를 새 없이 어린 아내의 두 손을 늘름 낚아채고는 깊은 데로 끌어들인다.¸
“칩 다카이!”
속득이는 마다한다. 해도 소용없다. 뭉그적뭉그적 연방 깊이 빨려들어갔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아이구, 와이카능기요!”
박부득이 매달릴 수밖에 없다. 꽉 다붙는다.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춘식은 아내를 거세게 껴안았다. 그리고선 다시 얕은 곳으로 나왔다.
달이 느티나무 가지 속에 숨어서 그들의 ‘제7천국’을 빠끔히 엿보고 있었다.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낸 뒤에도 춘식이는 머리를 몇 번이나 감아댔다. 아무래도 더부룩한 머리털 속에 그놈의 꺼끄러기가 많이 박혀있는 것만 같았다.
보리 농사를 따라 감자도 불었다. 점심과 참요기에 아쉽잖을 정도로. 칠손이는 악지 세게 제 주먹 세 갑절이나 되는 놈을 해쥐고는 울타리 가에서 낟알을 줍고 있는 할아버지께로 곧잘 뒤뚱거렸다.
아무튼 그해 봄 농사는 속득이가 시집온 뒤로 처음으로 흐뭇한 편이었다. 게다가 시절이 좋았던 만큼 나룻배삯으로 인근동 사람들로부터 거둬들이는 보리는 되밑이 좋았다. 축대 위에 알보리가 몇 가마니 포개지고 하니 우선 됫박질만 안 하게 된 것만드 흐뭇한 일이었다.
물가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다 용왕님의 덕택이라고들 생각하게 마련이다. 시절이 나쁘거나 큰물이 지는 것이 이무기의 용심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그래서 그해 백중날 춘식이의 집에서는 정말 자진해서 용왕님을 깍듯이 데접하려고 들었다. 강아지 한 마리와 보리쌀 한 말쯤을 용왕님이 쉬신다는 푸른 강심에 갖다 넣는 것이 그러한 내림이었다.
그럴 요량으로 속득이는 미리부터 강아지를 사다 길렀다. 누른 강아지였다. 하루 이틀 달라 보일 정도로 무럭무럭 잘 자랐다. 그놈은 또 칠손이의 좋은 동무가 되었다. 쬐깐 꼬리를 욜랑거리며 곧잘 칠손이를 따랐다.
“좋은 황구가 되겠건만…… 황구는 복개란 기라.”
칠손이 할아버지 박노인도 황구새끼를 무척 귀여워했다. 목에만 방울까지 달아 주어 칠손이와 함께 재롱을 떨게 했다. 가끔 강아지의 잔둥을 쓸어 주는 박노인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어두워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러는 것을 보고 또 ‘좋은 황구가 되겠건만…….’ 하던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 춘식이는 언젠가 아내를 보고,
“보래, 저 강아지 말이다…….”
“야?”
감자를 씻고 있던 속득이는 무슨 뜻인지 얼른 못 알아채고 춘식이를 돌아보았다.
“칠손이가 저래 좋아라 카고, 아부이도 쥑이기 싫은 모양이제?”
춘식이는 이렇게 아내의 맘을 떠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속득이는 그러고만 말았다.
그러한 속득이가 다음 삼랑진 장에서 백중날에 쓸 초와 명태, 그리고 뜻밖에 강아지 한 마리를 더 사왔다. 이건 누구에게도 의논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속득이가 강아지를 한 마리 더 사온 것에 대해서는 시아버지 박노인도 남편 춘식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아부이 이걸 용왕님께 바치고 저 누렁이를 집에 두고 키웁시더.”
속득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응, 그라지.”
박노인은 알았노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놈두 밥을 많이 조야지.”
하였다.
먼저 있던 누렁이가 제법 텃세를 하느라고 첨에는 콩콩하고 짖어대더니 이내 어울려 놀았다.
백중이 가까웠다. 속득이는 용왕님께 바칠 보리쌀을 대끼러 강 건너 방앗간으로 갔다.
연자매의 젊은 주인 김씨는 머슴을 불러 대지 않고 자기 손수 일손을 보았다. 일찍부터 속득이의 긴 속눈썹과 해사한 얼굴에 반색을 한 그는 속득이가 방앗일을 올 때마다 그러기를 좋아하는 눈치였다. 말하자면 특별한 호의를 보이려는 속셈이리라. 속득이도 그걸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ㅎᅟᅳᆼ, 용왕님은 복도 많은 모양이죠!”
그는 숫제, 수건을 깊숙이 내려쓰고 있는 속득이의 얼굴을 넌지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속득이는 그걸 느꼈지만, 둥우리에 보리쌀을 퍼담기가 바빴다. 하얗게 대낀 보리쌀이 쌀보다 매끄러웠다.
김씨는 방앗삯을 기어이 받지 않았다. 용왕님께 바칠 것인데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것도 속득이에게 대한 특별한 호의의 하나리라. 그는 속득이에게 무거운 둥우리를 이어 줄 때 이상야릇한 충동을 느꼈다. 앙바틈하게 버틴 무릎을 펴며 일어서는 순간, 자기에게 바싹 다가오는 듯한 불그레한 얼굴!
“백중날 놀러 오이소이!”
속득이는 둥우리를 이자마자 이렇게 수인사를 하고서 패나케 나루께로 향해 갔다.
백중날 박노인의 집에선 어둑새벽부터 바빴다. 모두 목욕재계를 했다. 속득이는 정화수에 머리를 깨끗이 감아 빗었다. 옷도 말끔하게 빨아 다린 것들을 입었다.
박노인은 며느리가 내어 주는 풀이 빳빳한 두루마기까지 걸쳤다. 소싯적부터 내려오는 거라 단이 무릎에 다붙는데다 등바대짬을 비롯해서 군데군데 해진 곳을 꿰매 붙인 것이었다. 물론 머리엔 양태가 우그러진 갓이 얹혔다.
이런 몰골로써 정신을 가다듬는 듯 헛기침을 두어 번 어험어험 하고는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영문을 모르는 강아지는 그의 손등을 핥기만 했다. 누렁이가 따라오는 걸 일변 되쫓아가며, 박노인은 보리쌀자루를 둘러멘 아들과 함께 나루터로 내려갔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배는 고요히 금을 긋듯 강심을 향했다.
드디어 배 앞머리 덕판에 촛불이 켜지고, 춘식이가 든 자루에서 허연 보리쌀이 주르르 물 속으로 쏟아졌다.
“이키!”
하며, 박노인은 눈 딱 감고 강아지를 저만큼 던져 버렸다.
그러고 두 부자는 무슨 못할 짓이라도 한 것처럼 이내 배를 돌렸다.
아득한 물 아래쪽엑 불그레한 동살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나절, 박노인의 집에서는 간소한 술잔치가 벌어졌다. 일년에 한 번씩 용왕을 먹이는 날에는 으레 그러는 것이었다.
춘식이는 강 건너 노인들까지 모셔 왔다. 노인이 아닌 자기 또래도 더러 왔다. 연자매의 젊은 주인 김씨도 물론 끼여 왔다. 이렇게 뒷기미 나룻가 사람들은 일년에 한 번 있는 백중법 춘식이네 집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노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감나무 밑 멍석에 둘러앉은 노인들은 술이 몇 순배 돌자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이럴 때는 대개 음식 이야기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으레 칭찬이다. 그게 시골 사람들의 수인사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날은 정말 칭찬을 들을 만큼 술이며 안주가 입에 맞았던 모양이다.
“박첨지, 이거 찹쌀술은 아이지를?”
찹쌀술을 빚을 터수가 아니다. 그처럼 입에 맞고 잔이 그득해서 좋다나는 거다.
“솜씨지, 솜씨라 ―”
잔올 받아 드는 덥석부리의 맞장구다.
“명태지짐도 그렇고…….”
텁석부리는 무르게 부친 북어지짐이 이가 실찮은 자기에게 꼭 안성맞춤인 돗이 우물거리며 덧붙였다.
“그기 다 이놈 에미 덕분이지!”
찹쌀술 같다고 하던 눈이 좀 튀어나온 노인이, 박노인의 무릎 위에 안긴 칠손이의 턱올 슬쩍 치켜 올리면서 속득이더리도 들으란 듯이 큰 소리를 쳤다.
“이 사람들, 술 모지래거든 이거 더 가주가게.”
쬐깐 상투를 붙인 노인이 젊은 사람들 쪽을 보고 말했다. 젊은치들은 울타리 곁 가마때기에 모여 앉아서 술을 들고 있었다.
“여기도 있심더.”
연자매의 김씨다. 그러나 사양하는 말인 줄로 들었던지 속득이는 옹배기에 치면하게 술을 더 가지고 왔다.
“술은 많이 있심데이.”
속득이는 벌써 내외를 안 해도 좋을 정도로 그들과 낯이 익어 있었다.
그러구러 술이 여러 순배 돌았다. 저녁 곁들이삼아 감자 삶은 것이 나왔지만, 거긴 손들이 잘 가지 않았다. 역시 술이 좋았고, 그래서 이내 거나하게들 되었다.
시골 노인네들은 취하면 더욱 어린애같이 된다. 입을 모아 박노인의 늦복을 추켜 세우고 또 노래를 청하곤 하였다. 박노인은 기분 좋게 부대끼다가 드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뒷기미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
우리 님 오시는 데 마중 갈까나
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
옛날의 구성진 가락이 용케도 그대로 흘러 나왔다. 한쪽으로 가우듬하게 기울인 고개가 목청따라 청승맞게 떨어 대는가 하면 가락에 맞춰 무릎까지 툭 치는 품이 어쩜 그러한 옛날이 그리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이 좀 튀어나온 노인이 뒤미처 받는다.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리
임을랑 보내고 난 어찌 살라노
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
징용에 끌려간 뒤 소위 대동아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지쳐 눈이 더 비어졌을 게란 이 눈딱부리란 노인은, 마치 자기의 신세타령이라도 하듯 가락이 한결 구슬프게 들렸다.
그래선지 노인석은 별안간 잠잠해졌다. 일제의 사슬에 허덕이던 강건너 동산·백상·명례·오산 등지의 순한 백성들과 그들의 아들딸들이 징용이다, 혹은 실상은 왜군의 위안부인 여자 정신대(挺身隊)다 해서 짐승처럼 끌려서 뒷기미 나루를 울며 건너던 억울한 사연들이 문득 머리에들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 치들은 노래에 맞추어 치던 소반 장단을 그치지 않았다. 방앗간(그들은 연자매의 주인을 그렇게도 불렀다)은 재빠르게 부억 앞 기둥에 걸려 있는 꽹과리를 들고 왔다. 뱃손님을 모을 때 치는 꽹과리다.
방앗간의 손에 잡힌 꽹과리는 마침내 느린 굿거리를 울렸다. 거기 따라 젊은치들은 한꺼번에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꽹과리가 제물에 급한 장단으로 바뀌자 춤도 굿거리에서 되롱춤으로 나아갔다.
“얼씨구 좋다! 타! ……타!”
망석중이처럼 어깨들을 까불어 댄다.
“잘― 한다!”
노인들은 거의들 이가 없는 벌켠 잇몸이 드러나도록 허허야고 웃어 댔다.
부엌 문턱에서 칠손이를 앞세운 채 보고 있던 속득이는 만면에 웃음을 담았다. 얼굴이 함박꽃처럼 밝았다.
젊은이들의 마당놀이는 좀처럼 끝나지를 않았다. 나룻배를 타려고 모여들었던 손님들도 구경에 더 정신이 팔렸던지 별로 잡죄지도 않았다.
꽹꽹 꽹꽹 꽹그랑 꽹꽹!
꽹과리는 마침내 마당밟이 가락으로 변한다.
“여루 여루 지신(地神)아!”
꽹과리를 치는 방앗간이 앞소리를 메긴다. 그러면 꽹과리에 맞추어 복창이 나오고, 손바닥과 양철, 사발 따위가 한꺼번에 울려 댄다. 춘식이는 부엌에서 금이 간 이남박까지 들고 나와 두들겨 댔다.
“잡귀 잡신은 물 알(아래)로ㅡ ”
꽹꽹 특탁 꽹그랑 꽹꽹!
“만복은 이리로―”
퉁퉁 땅을 밟아 대는 다리에 더욱 힘들을 준다.
이렇게 신나게 마당을 밟아 주는 것이 그 댁의 복을 비는 것이라 해서 술값을 하는 거다. 그러는 것이 이 고장 사람들의 오랜 내림이요, 또 예의이기도 했다. 허구한 세월 누구의 덕은커녕 몸서리나게 설움만을 받아 온 그들이었기 버릇된 마음들이었다.
이마마다 번질거리는 땀국은, 그래서 그들만이 서로 이해할 수 있고 ‘만복은 이리로’라고 빌어 주는 성의의 표시인 것이다.
강 언덕 포플러나무에서 극성스럽게 울어 대던 매미 소리는 어느덧 멎고 저녁 그늘이 깔려 오는 뒷기미 뒷산 위에는 곧 백중달이 솟으려는지 다시 노을이 일기 시작했다.
백중날 달무리가 둘려서 그러리라 바랐던 대로, 그해는 가을걷이도 푸짐했다. 큰물이 나지 않은 덕분으로 밭벼도 제대로 영글고 채소도 길차게 자랐다.
그래서 나룻배는 사람 이외에 짐도 훨씬 불어나고 또 자주 다녀야 했기 때문에 춘식이네 집은 일손이 모자랐다. 춘식이는 진종일 노젓기에 지쳐서 밤이 되면 어깨팔이 빠지는 것 같고, 속득이는 또 속득이대로 무거운 볏단이며 채소를 여 나르느라고 목이 온통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그런 일이 요만치도 싫지가 않았다. 한창 바쁠 때는 박노인도, 며느리가 마다해도 바지게를 졌고, 손자 칠손이란 놈도 무청을 한 포기 질질 끌며 그러한 할아버지의 뒤를 따르기도 했다. 요컨대 그들에게는 풍년이 기뻤을 따름이지 노동이 조금도 싫지는 않았다.
나루터에는 춘식이네 배만이 머무르지는 않았다. 두루 시절이 좋았기 때문에 가을철엔 낙동강 상하류를 오르내리는 돛단배들이 부쩍 늘었다. 그러한 뜨내기 배들은 대개 소금이락 미역, 냄비 기타 일용품 등속을 싣고 다니며 강가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해가는 것이 일이었다. 속득이도 그해만은 소금을 가마니째 샀다. 처음으로 백철솥이란 것도 샀다. 보기부터 땔나무가 덜 들어 좋으리라 생각되었다.
볏가리 곁에서 둥글둥글한 박을 타고 있는 박노인은, 정신이 곁에 앉아 재깔거리는 손자놈에게 가게 마련이었다.
“다치겠다. 이놈아!”
칠손이는 자꾸만 톱 등을 붙들려고 했다. 딴은 거들어 보겠다는 것이리라.
“안에 머 있노?”
이렇게 묻기도 한다.
“암 것도 없다.”
“그럼 와 이러노!”
“바가치 할라꼬.”
“두나 바가치?’'
뭘 묻기 사작하면 끝이 없다. 꼬치꼬치 파고드는 통에 그만 진력이 날 판이다.
“응 응!”
박노인은 일부러 고개를 크게 끄떡끄떡해 보이며, 서걱서걱 톱을 느리게 메겼다 당겼다 했다. 그러느라고 지나치게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것이 딴은 우스웠던지 칠손이는 이내 할아버지의 등에 와 붙었다. 업히듯 목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런 대로 박노인은 내처 톱질을 계속하였다. 빨래에 풀을 먹이고 있던 속득이가 보다못해 말을 건넨다.
“칠손아, 할배 된 데 와 그러노?”
그러나 칠손이는 들은 체도 안 했다. 어머니는 약간 큰 소리로,
“그라지(그러지) 마라!”
해도 그만이다. 칠손이는 할아버지의 등에 더욱 매달렸다. 그네라도 타듯 좋았던 모양이다.
“그만 놔도라. 앞에 와서 성가시는 것보다 낫다.”
박노인은 도리어 손자를 두둔하는 말눈치였다. 그는 문득 황금의 박을 탔다는 그 흥부의 얘기라도 생각난 듯이 설거렁설거렁 톱질에 신이 났다.
풍년이 든 것은 낙동강 유역만이 아니었다. 중부 이남은 두루 시절이 좋았다. 곡창으로 알려진 호남지방은 심지어 몇십 년만에 처음이라고들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리 어거리 풍년이 들어도 살아가기가 점점 고되다는 소문들이었다. 물건값이 다락같이 올라가기 때문이라고들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그놈의 ‘중석불 사건’인가 뭔가 때문에 비료값이 무턱대고 올랐고, 그런 걸 따라 다른 물가는 껑충껑충 뛰었으니까. 뒷기미 나루터의 사람들도 뜨내기 배들이 싣고 오는 물건값들을 보아서 그러리라 짐작이 갔다. 우선 소금값 하나만 보더라도 능히 알 수가 있었다.
반면 오르지 않는 것은 곡가뿐이었다. 아니 채소값도 그랬다. 채소 따위는 도시에 가져가더라도 운임을 빼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다는 얘기들이었다. 요컨대 농민들이 지은 물건들만이 유독 값이 헐했다.
그러나 아무리 헐값이라 하더라도 안 낼 도리가 없었다. 가을되면 으레 덮쳐 오게 마련인 비료대며 영농자금, 그리고 그 무서운 고리채를 안 갚고 배겨 낼 재간이 없는 그들이었다. 제때 안 내면 마구 차압 딱지가 붙고 현물을 싣고 가는 판국이었으니까. 춘식이네 나룻배에도 그런 일을 하러 다니는 양복쟁이가 하루에도 몇 패씩 지나갔다. 행여 가을철을 놓칠세라 바삐 서두르는 것 같았다.
한번은 농사 빚 받이에 소를 차압해 가는 패도 있었다. 명례 마을에 사는 건들바우란 노인이 나룻가까지 그러한 사람들을 따라와서 사정사정 하여도 양복쟁이들은 끝내 들어 주질 않았다.
“조합 돈이 나랏돈인데 그걸 안 갚고 되겠소?”
양복쟁이들은 소를 억지로 배에 끌어 올렸다.
춘식에게도 안면이 많은 건들바우 영감은, 그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어린애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춘식이도 속이 뭉클했지만 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저 영감 옛날에는 아이(애) 징용 보내면서 저렇게들 울어 쌓더니……!”
배 위에 있던 한 노인이 누구 들으랄 것도 없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춘식이는 노를 젓는 팔에 별안간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소는 소랄까, 무슨 영문인지는 모른 채 낯선 사람에게 끌려가면서도 눈은 여전히 표정 없는 퉁방울 같기도 했다. 다만 강심을 지날 때만은 시퍼런 물이 딴은 무서웠던지 축 늘어뜨린 얼굴에 박힌 눈알 빛이 번쩍번쩍 물빛을 닮아 갔다.
그런 일을 하고 다니는 양복쟁이라 해서 모두 그 의기당당하다든가 명랑한 표정만은 아니었다. 터놓고 말은 안 했지만.
“지―기랄, 나도 사공질이라도 했음 좋겠다.”
어ㄹᅟᅥᆫ 치도 있었다. 죄밑이 돼서리라.
이것저것 다 떼이고 난 농촌에는 옛날엔 없던 ‘풍년 기근’이란 묘한 말이 유행했다. 그러나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은 결코 농촌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살기 좋다는 도시에서도 못 살겠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소문들이었다. 정치가 어떠니어떠니 하고…….
농촌에서는 그렇게 값이 폭락하고 또 혼하게 나도는 쌀도, 잇속을 노리는 장사치들이 재빠르게 손을 뻗쳐서 어둔 데로만 사재는 바람에 도시에는 물건도 흔찮을 뿐 아니라, 시세도 그다지 내리진 않았다. 반대로 식성에 맞지도 않는 밀가루는 그럴수록 제 세월인 듯이 값이 올라갔다.
“세상은 요지경 속이라 카이!”
나루를 건너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 인구가 많은 도시 같은 데서는 벌써 인심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렸다.
그러한 어느 날―
비까지 퍼붓는 오밤중에 별안간 춘식이네 집 사립문을 혼들어 대는 사람이 있었다. 웅성거리는 기색이 한두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누고 ―?”
박노인과 춘식이는 한꺼번에 고함을 내질렀다. 바깥은 억수였다.
“어서 좀 나오소! 배 좀 타야겠소.”
난데없는 밤손님들은 벌써 봉당에까지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무슨 일인데 온…….”
춘식이는 잠결에 얼떨한 채 윗도리를 더듬어 입었다. 우장도 걸쳤다,
“빨리 좀 갑시더.”
밤손님들은 춘식을 재촉해서 부랴부랴 배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배 위에는 어느덧 스무 명도 더 올라 있었다. 폭우와 어둠 속에서 얼굴들은 알 수 없어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젊은 사람들인 것 같다.
“빨리 좀 저어 주소!”
하는 통에, 춘식이는 무슨 영문인가를 물어 볼 엄두도 안 났다. 짐작에 한 사오 분 지났을까?
“이 새끼들 배 세워라!”
벼락 같은 소리가 그들의 뒤통수를 때렸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배가 겨우 강심께쯤 이르렀을 때였을까?
춘식이는 질겁을 했었지만 자기로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어리둥절한 뿐 굽도 접도 못할 판국이었다.
“빨리 빨리 저어소!”
밤손님들은 도리어 독촉이 성화 같았다. 말소리는 비록 낮았지만.
그러자, 춘식이가 이제 막 배를 떼내 온 나루터에서는 여러 개의 앙칼진 목소리가 뒤섞여 울려 왔다.
“배 안 세울 테야?”
“안 돌리면 쏜다!”
“쏜다!”
드디어 총소리가 두어 방 꽝꽝 났다.
필유곡절이리라. 춘식이는 주춤했으나, 밤손님들은 계속 재촉을 했다.
“그대로 저으소. 서면 다 죽는다.”
춘식이는 연방 정신을 잃었다. 그가 잡은 노에는 다른 손이 덥석 와 붙었다. 어름어름하다가는 그들 말대로 자기도 영락없이 죽을 것만 같았다.
급기야 총성이 콩 튀듯 울려 왔다. 어둠을 짜개는 총알 소리가 핑핑 머리 위를 스쳐갔다. 더러는 뱃전 가까이 픽픽 떨어지기도 했다.
“악!”
바로 곁에서 다급한 비명 소리가 나며 배가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이내 철버덩 물을 치는 소리가 흘렸다. 뱃전에 앉았던 누군가가 총알을 맞은 모양이었다.
그러자 겁들을 먹고 지레 물 속으로 풍덩풍덩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옷을 입은 채 과연 어느 정도 헤엄에 자신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빨리 저어. 빨리!”
춘식이 곁에 지켜 선 사내는 내처 우악스런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가 춘식의 귀에 제대로 들어올 리 만무하였다. 그는 벌써 정신을 잃고 있었으니까. 노를 잡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견한 배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가는 알 턱이 없었다.
그러다가 퍽! 소리와 함께 춘식이도 제 자리에 쓰러졌다. 비록 어둠 속이라 해도 노를 잡은 채 내처 서 있는 것이 총알받이가 되게 마련이었으리라.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고, 이내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러고부터 배는 억수 속을 더욱 지향없이 흘렀다. 한결 물급이가 사나워지는 강하류 쪽으로 이내 뒤집힐 듯 맞모금을 긋기 시작했다.
정신 없이 나루터에 쓰러져 있는 박노인의 귀에는 이상한 소리가 울려 왔다.
“이놈의 영감, 아까 뭐랬지? 총질을 말아 달라고? 사공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그래 폭도를 도망시키는 놈이 폭도와 뭐가 다르단 말이냐? 이따 너희 집에 불을 놓아 줄 테니, 어디 두구 봐라!”
노인은 폭도가 뭔지 알 턱이 없었다.
탕, 탕, 탕!
다시금 총소리가 뒷기미 뒷산에 메아리쳤다.
“명천 하느님요, 지발 우리 칠손이 아부지 살리 주소!”
아까부터 물이 오금에 닿는 강기슭까지 들어가서 가슴을 할딱거리던 속득이는, 비가 쏟아지는 캄캄한 하늘을 향해, 시종 두 손을 모으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이튿날 아침.
씻은 듯이 갠 뒷기미 나루터에는 인근동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모두들 지난밤 일이 궁금해서 눈이 휘둥그래 가지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더구나 박노인의 집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궁금증들을 내었다.
“우째 댔노, 배도 사람도 말카 다 없어졌이니?”
“그리키 말이지……?”
이러는 사람들은 그 콩 볶듯한 총소리를 들은 사람들이고,
“무슨 일이 있었소?”
하는 건, 먼 데서 나룻배를 타러 온 사람들이었다.
강 건너 둑 위에도 마치 시위 구경할 때처럼 사람들이 허옇게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나룻배가 없어졌으니까 이쪽으로 오지는 못하고 그저 소리만 내질렀다.
“대관절 어째 댔소? 사람들은 있소, 없소―?”
이쪽 사람들은 대답 대신 손만 내저어 보였다. 그러고는 모두들 멀리 강 아래쪽만 바라다보았다.
위에서 내려오는 뜨내기 장사치 배들에게 물어도 까닭을 알 수 없있다. 그저 쉬쉬하고 손을 내젓거나, 더러는 기껏 한다는 소리가,
“우대에 난리가 났대요!”
하는 정도였다.
사람들은 아래서 올라오는 소금배를 기다렸다. 소금배는 애가 타게 더디었다. 된 하늬를 거슬러 오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금배는 강 건너편에 먼저 대었다가 이쪽으로 왔다. 그 배에 나룻배를 타려던 손님이랑, 별일도 없이 연자방아 주인 김씨며 몇몇 젊은 사람들도 얹혀 왔다.
“우째 탰(됐)능기요?”
연자방아 주인 김씨가 맨 먼저 이런 말을 하며 둘러보았으나, 누구 하나 시원스런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도리어 궁금해하는 이쪽 사람들에게 뱃사람들이 저쪽에서 하던 말을 되풀이할 따름이었다.
“저 물 아래쪽 삼랑진 어구께 웬 사공 없는 목선이 한 척 떠내려 와 있더구만, 그기 암매(아마) 여기 밴지도 모르지…….”
소문이란 게 기껏 이런 정도였다.
연자매의 김씨는 춘식이네 집 울안을 휘뚜루 살펴보았다. 사람이 없어진 것밖에는 아무런 다른 점이 없었다. 우리에 갇힌 돼지가 전과 같이 꿀꿀거리는가 하면 황구 새끼는 천연스럽게 축대 끝에 누워 있고, 누가 닭의 장문을 열어 주었는지 닭들도 어제처럼 울타리 밖 빈 채마밭을 쏘대고 있었다.
‘짐승이란 건 역시 무정지물인 모양이지!’
연자매의 김씨는 가벼운 한숨을 지으면서 사립문을 도로 밀어 붙였다.
박노인과 속득이가 소금배에 실려서 뒷기미로 돌아온 것은 한나절이 거의 되었을 무렵이었다. 물론 칠손이도 속득이의 허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소금배의 꽁무니에는 춘식이가 부리던 나룻배가 빈 채로 끌려왔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강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반색을 하거나 어떠한 수인사도 선뜻 하지 못했다. 그런 건 아예 주저하면서 묵묵히 그들을 맞이했다.
박노인은 하룻밤 사이에 십 년이나 더 늙은 듯 움푹 들어간 눈을 하고는 아무 말 없이 배에서 내렸다. 허리가 늘어지게 칠손이를 업은 속득이의 얼굴도 문자 그대로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그들은 벌써 표정을 잃은, 죽은 사람 같은 얼굴들이었다. 사람들은 묵묵히 그들의 관념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이야긴즉, 춘식이가 부리던 나룻배는 삼랑진 아래께까지 흘러가 밀려 있었고, 총을 맞은 시체도 두 구 그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는 거다. 물살 따라 더러는 더 떠내려 갔으리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했다.
박노인과 속득이는 밤새 배를 찾아가느라 허둥댔지만 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또 탔던 사람들이 어찌 되었는지 알 턱이 없었다. 물론 춘식이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재간이 없었다. 강가에 꺼내 놓은 시체가 다행히 춘식이가 아닌 것을 알았을 때, 속득이는 그래로 일루의 희망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희망이었다.
가뜩이나 급작스레 밀어닥친 불행인데 엎친 데 덮친다는 격으로, 이웃 사람이 와서 지어 주는 아침 겸 점심 식사도 채 끝나기 전에, 난데 없는 청년 두 명이 불쑥 들이닥쳤다.
“박춘식이 집이죠? 춘식이는 어디 갔소?”
어느 기관에서 나왔다는 말도 없이 그들은 첫말부터 위협조였다. 이 첫말부터 그렇게 나오는 사람들에게 무슨 변명인들 통할 리가 없었다.
“이리 나와요…….”
뒤미처 호통을 치듯 했다. 박노인과 속득이는 어리둥절한 채 불려나갔다. 무슨 영문인지 똑똑히 알지도 못했다. 물어 볼 용기조차 없었나. 그저 떨리기만 할 뿐이었다.
박노인은 벌써 말을 잊은 채 멍청이처럼 돼 있었다. 며느리 속득이도 마찬가지였다. 순적백성인 그들은 그저 끄는 대로 끌려갈 따름이었다. 다만 속득이의 잔등에 업힌 칠손이만 악을 쓰머 울어 댔다. 그것이 마치 그들 가족의 하소연이라도 되는 듯이.
박노인 일족은 마을 뒷산 후미진 모롱이짬에서 검정 지프차에 실렸다. 검정 차라면 웬일인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그 안에 갇히 듯 하고 보니, 속득이는 더욱 가슴이 철렁했다.
벼룻길은 자갈이 많고 위험했다. 자갈이 많고 위험한 벼룻길을 차는 줄곧 기우뚱거리며 내달렸다. 강물에 반사된 저녁 햇빛이 가끔 차안에까지 비쳐 왔다. 강 건너 먼 산 위에는 이런 것과는 관계없이 햇님이 뉘엿뉘엿 졸고만 있었다.
그러나 속득이는, 그러한 벼룻길이고, 강물이고, 햇님이고를, 아니 그보다 이내 자기 폼에 닥쳐올 듯한 어떠한 두려움마저 잊어버린 채, 오직 한 가닥 간 곳이 없어진 춘식이의 일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골똘히, 골똘히.
차는 이윽고 소란스런 번화가로 들어섰다. 그러나 박노인의 식구가 끌려간 곳은, 어지간히 낡은 검은 무슨 창고 비슷한 집이었다. 그들은 무슨 창고 비슷한 집의 어두컴컴하고 널찍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들을 데리고 간 청년 하나가 자기의 윗사람인 듯한 키다리 앞에 나아가 무어라고 지껄이고 돌아오더니,
“바른 대로들 불어! 거짓말하면 죽어 나가니까…….”
이런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그 어두컴컴하고 널찍한 방안에는 박노인의 식구 외에도 벌써 여러 사람이 붙들려 와 있었다. 아주 험악한 공기였다.
조사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방 안쪽을 둥지고 몇 개의 테이블에 버티고 있는 품이 흡사 염라대왕같이 느껴졌다. 더러는 그들에게 조사를 받고 있고 대부분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중죄를 지은 사람들처럼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박노인의 차례는 비교적 빨랐다. 속득이는, 훨씬 떨어진 곳에서 조사관을 향해 돌아서 있는 시아버지의 초라한 뒷모습을 보았을 때 목이 메는 것 같았다. 후줄근한 입성, 허옇게 이고 있는 백발, 그리고 힘없이 늘어져 있는 허연 구레나룻…… 며느리의 눈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키다리는 나이 대접을 함인지 처음에는 조용조용히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 분도 채 못 가서 호통 소리가 터지고…… 박노인의 몸은 픽! 쓰러졌다.
“아이고 ― ”
속득이는 칠손이를 밀어 버리듯 하고 시아버지께로 달려갔다.
“이 × ×.”
불은 속득이의 뺨으로 옮았다. 속득이는 이를 악물었다. 우르르 어미에게로 울며 달려오는 칠손이를 곁에 있던 사람이 얼른 안고 나갔다.
키다리의 호통은 대단했다.
“그 늙은이를 딴 방으로 옮겨! 요…… 닦달을 해야겠다. 바로 서!”
키다리는 속득이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속득이가 얼굴을 들지 않으니까 결국 그녀의 정수리를 쏘아본 셈이다.
“서방님은 어디 있지?”
“모릅니더.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
속득이는 분해선지 슬펴선지 몸을 와들와들 떨어댔다.
“뭐,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른다고? 그래, 집에 나쁜 놈들이 자주 찾아왔지?”
상대방은 언성을 약간 낮추었다 속득이는 그제야 말눈치를 대강 알아채었지만, 사실 그러한 일은 전연 없었던 것이다.
“나릿배 손님밖에는 움 일이 없심더.”
그녀는 명백히 말했다.
“뭐, 나룻배 손님밖엔 온 일이 없다고?”
묻는 쪽의 대답은 다시 높아졌다. 그 몸서리나는 소리로써만은 아니었다……속득이는 이내 정신횰 잃었다.
“갖다 × 넣어!”
이 말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도 시아버지가 끌려나간 방으로 나갔다. 칠손이는 울며 그녀를 따라갔다.
다음날도 같은 내용의 심문이 있었다. 박노인에게는 그다지 심하게 대하진 않았지만, 속득이에게는 역시 가혹했다.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무 밑에 섰다가 날벼락 맞는 격이랄까. 그녀의 ‘인간’은 여지없이 짓밟혔다. 그러나 역시 모르는 일은 모르는 일이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문초를 당한 내용은 (박노인도 마찬가지였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는 남편 춘식이의 행방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는 어떤 폭동사건에 관한 일이었다. 비 오던 날 밤의 그 공칙스런 일로 미루어, 춘식이가 필연 그 일로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지나친 억측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춘식이가 없어진 것이 심히 미심쩍고 메스껍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드, 어쩜 마구 뒤집어씌울 듯한 수작은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나 속득이로서는 별 도리가 없었다. 참을 수밖에. 그녀는 마음속으로 남편의 이름만을 몇 번이고 계속 불렀다. 그리고 이겨 냈다.
박노인의 식구들은 꼬박 나흘 만에 풀려 나왔다. 뭐라고 적은지도 모르는 서류에 박노인과 속득이는 지장을 눌렀다.
“춘식이가 나타나면 곧 얄려야 돼!”
하는 걸 보아서는, 아마 그런 내용의 서약서인 것 같기도 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칠손이를 차례로 업어 가며, 넋잃은 얼굴들을 하 걸었다. 얼굴이나 걸음걸이가 모두 몹쓸 중병이라두 겪고 난 사람들 같았다. 그렇게 진종일 걸었다.
기미 나루터 가까이 왔을 때, 뜻밖에도 친정 어머니가 와르르 달오는 걸 보자, 속득이는 뛰어지진 않고 그만 울어 버렸다.
“아이고 내 새끼야…….”,
딸을 와락 껴안는 어머니는 딸보다 더 흐느꼈다(그녀는 그런 변고가 있은 다음 날부터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뛰어와 있었던 것이다)
속득이는 그날부터 자리에 누웠다. 어머니는 딸의…… 까무러질 듯했다.
“분하고도 답답해라! 난리를 일으킨 놈들이 잘못이지, 밤낮 없이 나릿배나 부리는 느그들(너희들)에게 무슨 죄가 있일 끼라고…….”
병든 새끼를 핥는 짐승처럼 어머니는 딸의 전신을 쓰다듬더니,
“늬 사내가 냉캄 돌아와서 이 원수를 갚아얄 낀데…….”
어머니의 주름 덮인 표정은, 옛이야기에 나오는 고수레할멈처럼 굳어져 갔다.
“원수싸 갚든지 우짜든지 살아나 돌아왔으문!”
속득이는 가늠 없는 시선을 허공으로 보냈다. 핏발 선 눈알이 한결 커 보였다.
박노인은 드디여 말을 잊어먹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웃마을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위로를 해줘도 그저 정신나간 사람처럼 덤덤할 뿐이었다. 며느리 속득이 이상으로, 그의 긴 일생의 꿈이 하루 아침에 깡그리 무너진 듯한 표정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글씨(글쎄)·●….’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침만 먹으면 곧잘 어디론지 나갔다. 나가면 으레 밤이 돼서 들어왔다. 주로 강쪽으로 많이 가는 모양이었다.
나룻배는 연자매 김씨네 머슴이 임시로 부리고 있었다. 박노인이 끌려간 뒤 곧 압수가 되었던 것을 그곳 유력자인 연자매 김씨가 일부러 당국에 찾아가서 강가 사람들의 불편을 말하고 사정사정해서 각서인가 뭔가를 써 바치고 되부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룻가 사람들은 물론, 박노인을 위해서도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도 어데 가시네요?”
김씨네 머슴은 박노인이 배에 오를 적마다 이렇게 물었다.
“집에 있임 소용이 있나.”
입을 다문 듯한 박노인도 이 김씨네 머슴한테만은 가끔 그런 대답을 하였다. 밤늦게 혼자 건널 때는,
“미안하구마!”
하고 먼저 말올 건네기도 하였다.
“영감님 매일 어데 가시는지 내 알아맞히 보끼요? 칠손이 아부지 찾아가시지요? 금덩어리 같은…….”
김씨네 머슴은, 박노인의 집에서는 온 가족이 서로 구렇게 여긴다고 소문이 퍼져 있는 ‘금덩어리’란 말까지 일부러 써가며 슬쩍 넘겨짚어도 보았다.
“글씨…… 있는 데나 알아야 말이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온!”
박노인은 이러다가도 때로는,
“자넨 무슨 소리 더러 몬 들었는강?”
하기도 했다. 물론 혼자서 그러고 다니자니 애가 타서 하는 말이었다
춘식이는 내처 소식이 없었다. 생사조차 감감했다. 물길이라든가 그날 밤의 사정으로 보아서 대개 어디쯤에 배가 갔으리란 억측들도 있었지만, 확실치 않았다. 몇 사람이나 죽고 몇 사람이나 살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춘식이가 살았더라도 배를 내준 죄밑이 돼서 아마 같이 따라갔으리란 희망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것도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 콩 볶듯 한 총질과 물결에 죽은 사람이 우선 시체가 드러난 두 사람만이 아닐 게고 또 살아서 달아난 놈들도 가까운 곳에 숨어 있을 리 만무하니 그야말로 함흥차사나 마찬가지였다.
무던히 찾아다녔지만 결국 도로에 끝나자, 박노인은 드디어 문을 걸고 들어앉았다. 거의 매일같이 나타나던 기관원들도 발이 뜸해졌다. 아마 자기네들도 기진맥 진했던 모양이다.
그러구러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났다. 그래도 깜깜 무소식이었다.
‘암만해도 죽었는갑다…….’
속득이는 생각다 생각다 거의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갔다. 죽지 않고서야 무슨 꾀를 부리더라도 이날 이때까지 그냥 있을라 그렇게 그녀는 믿어 왔다.
그러나 도저히 단념만은 할 수가 없었다.
‘천만에, 칠손이 아부지가 죽다니!’
그녀는 줄곧 마음을 내리덮는 불길한 생각을 떨어 버리기라도 하듯, 하루에 몇 번씩이나 머리를 저었다. 때로는 기나긴 겨울 밤을 곧추 앉아 새우기도 하였다. 요컨대 날이 갈수록 춘식이가 사무치게 그리웠던 것이다. 그 어질디어진 눈매가 미칠 듯이 보고 싶었다.
‘못 오더라도 좋으니 제발 어데서라도 살아만 있었으문……’
속득이는 꿈속에서도 이렇게 빌었다.
칠손이도 늘 아버지를 찾았다.
“아빠 오데 갔노?”
아직 말은 서투르다.
“저 먼 데 갔다.”
“와 안 오노?”
“설 대문(되면) 올 끼다. 니 고까신 사가주고.”
“설이 뭐고?”
“설? 고까옷 입고 고까신 신는 날이다."
“엄마 신도 사오나?”
엉뚱스런 소견도 낸다.
“응, 엄마 신도 사올 끼다.”
속득이는 속으로는 울면서도 그러한 칠손이로 하여 시름을 잊기도 하였다. 세상 살 정이 없다가도 칠손이를 위해서는 굳세게 살아야만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연자방아 주인 김씨가 굳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나루질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약한 여자의 힘으로써는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된 일을 그녀는 이를 알물고 해냈다.
인근동 사람들이나 손님들은 그녀의 용기에 놀랐다. 대신 더러 노를 저어 주는 이도 있었다. 방앗간 일이 없고 뱃손님이 많은 날은 김씨가 곧잘 머슴을 보내서 그녀를 도와 주었다. 속득이는 김씨의 그러한 호의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 괴롭기도 했다.
그러나 연자매의 김씨는 속득이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옛날처럼 어색하게 슬금슬금 쏘아보는 티는 거의 없었다. 아마 남편이 없어진 뒤의 속득이의 생활태도가 더욱 의젓하고 앙칼진데 감복을 한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씨는 춘식이가 있을 때보다 비교적 그의 집에 자주 들렀다. 그러나 속득이를 대하기를 더욱 어려워하고, 농 같은 말은 씻은 듯이 없어졌다. 박노인을 위로하구 돌아서다가 속득이와 마주치면,
“바쁜 날은 뱃일을랑 우리 머슴한테 시키이소.”
라든가,
“아직 소식 없지요? 나도 이리저리 알아는 봅니더만…… 그러나 너무 걱정 마이소. 워낙 날래기도 날래거니와 힘이 장산데 어데…….”
이렇게 위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설이 가까워도 춘식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못 했는지도 모른다. 내내 소식조차 없었다. 칠손이의 꼬까신도 속득이가 사왔다. 그녀는 먼 장에서 제사에 쓸 물건들을 사오면서 생각했다. 명절이 돼도 아무 기별이 없는 걸 보면?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득히서 흰 나불을 물고 번득이는 강물을 보면 더욱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강물을 보면 눈물이 절로 나오고, 그 눈물 속에 춘식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눈물을 거두며 부정했다. 물에서도 그렇게 날래고 또 힘이 세다고 일러 주던 연자매 김씨의 말을 억지로라도 믿으려 했다.
설날 차례는 박노인 혼자서 모셨다. 그래도 예의범절을 갖추느라고 풀죽은 도포까지 걸치고서, 제상 앞에 구부정하게 선 박노인의 코끝에는 말간 콧물이 눈물처럼 댕그라니 달렸다. 집사 겸 제주가 된 그는 혼자서 초헌에서부터 중헌까지 올리면서 오래도록 머리를 들지 않았다. 춘식이가 곁에 있으면 으레 또, 혈혈단신으로 그곳에 들어와서 나루질을 해서 없던 집도 마련하고 배도 모아 부리다가 시위에 휩쓸려 간 이녁 아버님의 고생담을 할 법했지만(그는 그러면서 곧잘 울었다) 그날은 시종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
속득이도 철상을 하기 전에 술을 한 잔 따라 놓고는 마룻바닥에 이마를 대고 조아렸다. 역시 약간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설날 조상 앞에서도 남편 춘식이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차례가 막 끝났을 무렵이었다. 한동안 뜸했던 사복 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복이라 해도 특별한 표시가 없는, 그저 미군 잠바니까 그것만 보아서는 확실한 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내처 돌아다니기만 하니까, 어떤 사람은 그저 무슨 기관의 앞잡이라고도 하고, 더러는 땃벌떼라는가 뭔가 하는 어마어마한 단체의 간부급들일 게라고도 했다. 그러나 아무튼 보통 국민 이상의 힘을 가진 것만은 사실이었다(속득이는 바로 그것을 경험하였으니까).
속득이는 육감에, 설이고 하니 필시 또 무슨 눈치를 살피러 온 게로구나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잠깐 어설프게 울안을 기웃거리는 듯하더니, 대뜸 춘식이의 소식부터 묻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핑 가버렸다.
이틀 후 그들 중 얼글이 길쭉한 편이 이번에는 혼자서 불쑥 나타났다. 속득이가 구류간이란 데 들어앉아 있을 때, 같이 있던 사람들이 냅대가리라고 일컫던 중년 가까운 말상을 한 사내였다.
“어떻소, 설 쉰다고 걱정이 많았겠지요?”
그는 뜻밖에 이런 뚱딴지 같은 말을 얼버무리면서, 앉으란 말이 없는데도 청 끝에 시부저기 걸쳤다. 역시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속득이는 이내 속이 뭉클했다. 동시에 두 볼이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속옷을 무작하게 잡아 찢길 때의 분함과 알몸뚱이를 마구 드러냈을 때의 부끄러움 같은 것이 한꺼번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고생이 많으신 모양이죠?”
무슨 수작을 하려는 건지 말대가리는 이런 말공대까지 했다.
속득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그는 혼자서 지껄여댔다.
“그럴 테죠. 약한 여자의 몸으로 나룻배까지 부리면서…….”
이렇게 자문자답을 해가면서 그는 줄곧 베거리를 하려고 들었다.
그러면서도 흘끔흘끔 남의 귀밑때기를 이상스럽게 엿보는 것 같아서 속득이는 더욱 기분이 나빴다.
그러다가 자리를 뜰 때 말대가리는 뜻밖에 칠손이에게 십 원짜리를 몇 장 쥐어 주면서,
“이놈 아버지야 무슨 죄가 있겠소. 괜히 그놈의 폭도들 바람에 온…….”
그는 칠손이에게 ‘안녕!’까지 해보이며 일어섰다.
속득이는 세뱃길을 다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를 강 건너까지 실어다 주었다. 그녀에게는 설도 설 같잖았다. 세배 손님들을 실어 나르느라고 오히려 더 바빴다.
바로 그날 밤의 일이었다.
아무리 명절이라고는 해도 밤이 너무 늦었는데 강 건너 상남면 쪽에서 뜻밖에 나룻배를 부르는 소리가 야경스럽게 들려 왔다. 속득이가 문을 열고 나가 보니까,
“칠손아― 배 좀 돌려라―!”
하는 소리가, 정녕 연자매의 김씨의 목청이었다.
‘오밤중에 무슨 일일꼬……?’
속득이는 사립 밖까지 나가서 누구시냐고, 다짐삼아 맞소리를 처보았다.
“내요― 방앗간 김이오!”
김씨가 틀림 없었다.
속득이는 다소 불안스런 생각도 들긴 했지만― 설마 그이가…… 그보다 무슨 긴한 소식이나 곡절이 있으려니 싶어서 서둘러서 배를 저어 갔다.
강 건너 나루터에 나와 있는 것은 연자매의 김씨만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미안합니다!”
한 건 분명히 김씨가 아닌 다른 목소리였다.
“자, 그럼 들어가시오. 수고했소.”
이렇게 김씨를 따돌려 보내며, 비슬비술 배에 오른 건 뜻밖에도 낮에 자기가 건네 준 그 말대가리란 사내가 아닌가!
속득이는 댓바람에 가슴이 섬뜩했다. 연자매 김씨에게 들렀을 것은 짐작이 되나 도대체 진종일 어딜 돌아다니다가 이 밤중에 또 어디로 질벅거릴 작정일까? 아무리 따져 봐도 꺼림칙했다. 게다가 술냄새가 뭉클거리지 않는가?
“조심해 가이소이!”
누굴 보고 했는지 김씨의 이 말이, 속득이의 귀에는 마치 자기에게 내한 당부인 듯이 들렸다.
“염려 마시오!”
말대가리는 또 자기에게 하는 수인사로만 들은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아지메(아주머니), 미안합니대이, 빨리 좀 갑시더.”
밉다 하니, 그곳 말 흉내까지 내었다. 그러지 않아도 속득이는 잽싸게 노를 저었다. 배가 기슭에서 멀어질수록 속득이는 마음이 더욱 초조하고 불안스러웠다.
사내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지, 등뒤에서 계속 성냥을 그어 댔다. 속득이는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배는 어느새 강심께 와 있었다.
“아지메, 배 좀 시(세)우소. 다, 담뱃불 좀 붙이게.”
등뒤에서 별안간 혀 꼬부라진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속득이는 못 들은 척하고 계속 노만 바삐 저었다.
“그렇게 바쁘다면 내가 좀 거, 거들어 드리지.”
말대가리는 어설픈 결음으로 비틀비틀 속득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위태로우니 말라 해도 듣지 않았다. 결국 속득이에게 몸이 닿을 정도로 바투 다가섰다.
“내가 도와 준다는데 왜…….”
시큼한 막걸리내가 속득이의 코에까지 와닿았다. 그녀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순간, 말대가리는 속득이가 젓고 있는 노를 덥석 덮치려고 했다.
‘노를 주었다간 큰일난다!’
속득이는 날쌔게 사내의 손을 뿌리쳤다. 허방을 짚은 사내의 손은 숫제 허공을 더듬듯 하더니, 속득이의 가슴께를 뒤에서 얼른 껴안았다.
“이 양반이!”
속득이는 질겁을 하면서 한 손으로 그걸 뿌리치려 했지만, 사내의 팔은 거머리같이 더 죄어들었다.
“개 같은 놈!”
속득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한껏 꼬꾸라뜨리며 사내의 징그러운 팔오금짬을 끊어져라 물었다.
홍감스런 비명을 치며 사내는 일단 떨어졌다. 그러나 이내 희광이처럼 덮쳐 왔다.
겁결에도 정신을 가다듬고 있던 속득이는 날렵하게 몸을 피했다. 반동으로 배는 기우뚱하고 발을 헛디딘 사내는 제물에 풍덩 배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잘코사니! 미처 따라올 새도 없었거니와, 속득이는 노야 날 살려라 하고 자기 집 쪽으로 바삐 저어 갔다. 말대가리의 생사 따위 알 바 아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 온 속득이는 자꾸만 커지는 불안 속에서 뜬눈으로 그 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사연을 얘기하고서, 제 발로 삼랑진까지 걸어가서 경찰에 자수를 했다. 그러고는 내처 돌아오질 못했다. 말대가리란 사내의 시체가 용케 낙동 다리 부근에서 떠올랐다는 이야기도 구류간 안에서 들었다. 그리고 시체검증을 할 때 그것을 보고 놀랐다.
그녀에 대한 조사는 간단했다. 이실직고를 했으니까. 그런데 웬일인지 그 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편 춘식이의 행방을 새삼스레 자꾸 캐묻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그때까지도 아직 춘식이의 생사가 알려지지 않았었다).
박노인이 뒷기미 뒷산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달아 죽은 것은, 속득이가 억울하게 살인죄로 몰려 가혹한 형을 받게 된 사오 일 뒤의 일이었다.
사위도 딸두 없는 딸네 집에 와 있던 속득이의 친정 어머니는 칠손이를 업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기 무슨 일고……!”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벌써 나올 눈물이 없었다.
박노인의 늘어진 시체를 직접 보고 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의 커다랗게 열린 채 뒤집힌 눈이 나루터 쪽을 무섭게 내려다보고 있더란 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죽으면서도 필시 그의 엄청난 오막살이를 그렇게 지켜보았으리라는 둥, 혹은 벌써 몇 달이 되어도 생사조차 모르는 아들과, 백 번 사람 구실을 하고서도 죄인이 되어 옥에서 썩어야 하는 며느리 속득이를 그렇게 기다리며 못 잊었으리란 얘기들이다.
게다가 또 하나 기적 같은 사실은, 목을 매달아 죽은 사람은 열이면 열이 다 혀를 빼물고 있는 법인데, 이상스럽게도 박노인은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약방 노인도 거짓말이리라는 이 사실을, 그만큼 그가 어쩜 세상을 저주했으리라들 해석하기도 했다.
박노인이 그렇게 목을 매달아 죽은 날도, 위에서 밀려 내리는 강 물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검푸르기만 했다.
(『김정 한소설선집』, 창작과비평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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