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집 『겨울방학』 (민음사, 2022) 중 「겨울방학」을 읽고
최진영 작가는 2006년에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소설집 『팽이』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 작가 소개에서
소설집 『겨울방학』은 “폭력과 고통의 세계를 거침없이 펼쳐 보였던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자세와 눈빛으로 우리의 아홉 살을, 열두 살을, 그리고 현재를 바라보는 소설”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 단편소설이면서 긴 시간을 배경으로 했으며, 인물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방식과 인물과 인물 간의 관계를 그려나가는 방식, 소설 속에서 서사의 힘과 문장의 힘을 이해하는 것이 이 작품을 읽는 포인트라고 한다.
「겨울방학」은
아홉 살 이나가 겨울방학 동안 고모와 지내게 되는 이야기다. 이나는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 형태에서 살았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단지 안이나 근처에 있었다. 겨울방학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아파트가 아닌 고모의 삶과 동네, 또 다른 세상을 알아가게 된다. 고모는 이나와 생활하는 동안 최대한 이나에게 맞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며 아이처럼 행동했다.
이나는 자기가 살던 집과는 대조적으로 좁고, 없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푸르지오가 얼마나 따뜻하고 크고 예쁜 곳인지를 깨닫게 된다.
어린 이나의 눈으로 봐도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고모집이었는데, 이나가 왜 없느냐고 묻는 말을 할 때마다 정작 고모는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한다. 그 부분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자기 나름의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정신이 말쑥하고 단정한 사람이 떠올려졌다.
“모든 게, 정말 모든 게 달랐다.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p55)
어른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아이의 말을 통해서 가난한 상황을 말하고 있는 인물 묘사가 작가의 의도인 것 같다. 이나는 속으로 고모 집에 없는 것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텔레비전도, 시계도, 신발장도…
고모가 아이의 철없는 질문에 친절하게 하나하나 대답해 준다. 고모가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이나는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한다. 이나의 말은 보편적인 어른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하겠지만, 이나는 말로 한다. 직접 말하게 하려고 어린아이를 등장시켰다. 어린이이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아홉 살 아이가 순수해서 말하는 것들을 고모는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작가가 아이의 입을 통해서 편하게 하고 싶은 말들을 표출해 내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편견과 아집, 배려 없음으로 인해서 하고 싶은 말을 스스럼없이 뱉어버리기도 하지만, 아홉 살 조카는 계산적인 생각 없이 자기의 마음을 표현한다.
좁고 작게만 느껴졌던 고모 집이었지만, 이나는 고모 집에 적응해 간다. 고모가 이나와 놀기로 한 순간부터 이나는 고모가 좋았다. 고모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만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삶을 보여준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물건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읽었던 차지선 님의 『미니멀 라이프』을 읽었을 때는 몇 가지 물품들을 정리하기도 했었고, 음료수 병을 챙겨 다니고, 실리콘 랩을 사용하는 조그만 실천도 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도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고모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이나를 함께 사는 인격체인 한 사람으로 대우해 주었다. 고모의 입장에서 어린 조카이지만, 최대한 존중해 주고 배려해 주었다.
색칠노트, 색연필, 할리갈리, 젠가 등을 사서 함께 놀았고, 피아노도 함께 배우기도 한다. 코인노래방, 스케이트, 보드게임, 카페에도 갔다. 사물이 없었다. 이야기에서 고모와 함께했던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고모는 아이처럼 질문하고 웃고 어지럽혔다. 어른처럼 침묵하고 치우고 늦게 잤다.” (p74)
서로에게 동화되어 함께 했던 시간이 끝나가는 아쉬움에 젖어 있었던 건 아닐까. 겨울방학 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고, 고모의 삼을 통해 자기 삶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욕망은 끝이 없어서 소비를 향해 욕망을 채우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쉼 없이 일해야 한다. 진짜 자기를 위한 삶일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삶의 연속이 진정한 행복일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