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봉~빙봉~", "안녕하세요, 웰컴 투 마이 홈~ 들어오세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울리자 트레이드 마크인 벌어진 앞니를 훤히 드러낸 라돈치치(28)가 시원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한다. 이 집은 라돈치치의 소속팀인 성남 일화 구단이 그에게 마련해 준 곳이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이역만리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가끔 한국을 찾을 때를 제외하곤 늘 조용했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재 이 집에는 네 명의 라돈치치가 있다. 우리가 아는 그 성남의 스트라이커 제난 라돈치치(※라돈치치는 패밀리네임, 성(姓)이다), 그의 동생 제말. 그리고 지난 7월 새롭게 라돈치치 패밀리의 일원이 된 제난의 아내 알미나와 제말의 아내 엘마까지 말이다. 결혼 후 남편의 성을 써야 하는 탓에 그녀들도 알미나 라돈치치, 엘마 라돈치치가 됐다. 형의 도움으로 고국인 몬테네그로 내의 비즈니스 대학을 다니던 제말은 함께 동문수학하던 엘마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그 1주일 뒤인 7월 17일 라돈치치도 알미나를 아내로 맞았다.
 K리그 특급 공격수 라돈치치는 만 18세의 어린 신부 알미나를 맞이해 화제가 됐다 (사진=임시완) |
무릎 부상을 딛고 7개월 만에 돌아와 성남을 위한 중요한 골을 연일 터트리고 있는 라돈치치지만 정작 화제가 된 인물은 ‘몬테네그로댁’ 알미나다. 7월 27일 부산과의 FA컵 8강전에 복귀한 라돈치치는 종료 직전 팀을 승리로 이끈 결승골을 넣었다. 골을 넣은 뒤 그의 시선을 향한 곳은 본부석. 라돈치치는 키스 세레머니를 한 여인에게 보냈다. 그녀가 알미나였다. 알미나의 사진이 공개되자 그의 결혼 소식은 큰 화제가 됐다. 포탈사이트 검색어에 라돈치치를 치면 ‘라돈치치 부인’이 함께 뜰 정도가 됐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의 나이. 알미나는 1993년생, 만 18세로 우리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한다.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에 비유해 보면 가수 아이유, 티아라의 지연과 동갑으로 라돈치치와는 무려 10살 차이다.
어리고 예쁜 신부를 맞이한 죄로 라돈치치는 축구팬들로부터 ‘도둑놈’이라는 별명까지 하사 받기에 이르렀다. 처음엔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Kidnapper(유괴범)를 유쾌하게 돌려서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아냐~ 라돈, 도둑 아냐"라며 큰 웃음을 터트렸다. 결혼 뒤 자신의 에이전트를 제외하고는 처음 방문한 한국인 손님들에게 라돈치치는 커피를 능숙하게 끓여 대접했다. 에스프레소 기계를 직접 살 만큼 일상생활의 일부인 커피는 철저히 라돈치치의 담당이다. 그는 "터키식 커피 어때요? 이 동네서는 우리 집에서 밖에 못 먹을걸요"라며 진한 풍미에 단 맛이 인상적인 커피를 권한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터키식 커피만큼 달콤한 라돈치치 부부의 스위트 홈에서 진행된 그들의 만남, 한국 생활, 미래를 담고 있다.
 자신의 집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한 라돈치치는 직접 끓인 커피를 대접했다. |
부상이 맺어준 8년 만의 재회라돈치치는 지난해 12월 UAE에서 열린 FIFA 클럽월드컵에서 선수 생활 중 가장 큰 부상을 입었다. 브라질의 인터나시오날과 치른 3-4위전에서 왼쪽 무릎의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며 최소 6개월 간은 치료와 재활에 전념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것. 충격을 받은 라돈치치는 한국에 돌아오지도 않고 고향인 몬테네그로로 향했다. 연말을 몬테네그로에서 보낸 그는 1월에 독일 뮌헨의 병원에서 무릎 부위에 관절경 수술을 받고 지루한 재활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힘든 재활 과정 중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는 주말이면 비행기를 타고 1시간 거리인 고향 구시예(Gusinje)를 찾았다. 산악지역에 위치한, 20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그는 가족들과 옛 친구들을 통해 부상으로 지친 마음을 위로를 받았다.
구시예에 봄이 찾아 든 3월의 어느 날, 라돈치치에게도 봄이 왔다. 고향 친구들과 동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라돈치치의 눈에 돋보이는 외모의 여성이 들어왔다. 카페 옆 자리에 앉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라돈치치는 동석했던 동생 제말에게 "누구야?"라고 물었다. "알미나 기억 안나? 우리 집 옆에 살잖아" 그제서야 라돈치치는 옛 기억을 끄집어냈다. 2003년, 세르비아의 명문 클럽 파르티잔의 유망주였던 그가 인천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을 결심하며 한국으로 떠나올 때 알고 지내던 이웃 집의 10살짜리 꼬맹이였던 소녀, 그녀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눈부신 숙녀 알미나였다. 제말을 통해 8년 만에 라돈치치를 소개받은 알미나도 호감을 보였다. 한국으로 건너 간 성공한 프로축구 선수가 된 라돈치치는 고향에선 유명인사였다.
알미나와의 만남 후 구시예를 방문하는 라돈치치의 빈도는 잦아졌다. 주중에는 뮌헨에서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고 주말에 휴식을 취할 때면 구시예로 넘어왔다. 어느새 둘은 이웃사촌, 동네 오빠 동생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때마침 동생 제말이 여자친구인 엘마와 결혼을 결정하자 라돈치치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라돈치치는 "오랜 타지 생활로 인해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축구를 통해 성공하는 데 집중했지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뒤에 그걸 유지하기 위한 안정과 서포트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결혼한다고 하니까 나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알미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상태였지만 지금이 아니면 그녀를 놓칠 지도 모르겠다고 결심한 라돈치치는 5월에 프로포즈를 했다. 알미나의 가족을 찾아가 설득했고 곧바로 약혼식을 치렀다.
 자신들의 침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라돈치치와 알미나 |
4박 5일의 결혼대작전알미나와의 결혼을 위한 라돈치치의 준비는 치밀(!)했다. 약혼식을 마친 뒤 곧바로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알미나를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여권을 신청해야 하는데 몬테네그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18세 이하의 미성년자의 경우엔 부모가 동반하거나 결혼을 했을 경우에 여권과 비자 발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라돈치치는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법적으로 알미나의 남편이 됐다. 5월 말 약속한 대로 성남으로 복귀해서 마무리 재활을 해야 했던 라돈치치는 알미나를 확실한 자기 여자로 만든 것이다. 그는 "알미나는 아직 어리고 순수한 여자다. 내가 확신을 심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흔들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라돈치치는 이미 결혼날짜까지 정해놓고 한국으로 온 상황이었다. 동생 제말이 결혼하고 1주일 뒤인 7월 17일로 날짜를 잡았다. 원래는 함께 결혼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집안 어른들이 반대를 했다. 몬테네그로의 전통과 양 집안이 믿는 이슬람교의 교리 상 형제자매가 같은 날에 결혼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관문은 신태용 감독과 성남 구단을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부상과 재활로 인해 5개월 넘게 팀을 떠나 있던 선수가 회복을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휴가를 달라고 하니 반대는 불 보듯 뻔한 입장이었다. 게다가 당시 성남은 K리그에서 심각한 부진이 이어지던 터라 주포인 라돈치치가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동료 선수들과의 형평성을 생각할 때도 쉽게 허락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알미나는 "외국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남편을 믿었다"고 말했다 |
결혼을 전후한 4박 5일간의 휴가를 요청한 라돈치치는 결정권자인 신태용 감독과 1대1 면담에 나섰다. 감독은 "정말 지금 가야겠냐?"고 물었고 라돈치치는 "꼭 가야 한다"고 사정했다. 다행히 신태용 감독은 젊은 지도자답게 이해심이 많고 쿨했다. "라돈, 갔다 오면 더 잘해야 돼? 약속해!"라는 말과 함께 특별 휴가를 보내줬다. 라돈치치의 에이전트인 EG스포츠의 지승준 팀장은 "사실 나도 라돈치치가 구단에 그런 요청을 했을 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 팀이 몬테네그로에 다녀올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행히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신태용 감독님이기에 가능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결혼 이틀 전 한국을 떠난 라돈치치는 몬테네그로식 전통혼례를 치렀다. 이틀 간 진행되는 몬테네그로식 결혼은 한국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결혼 전날에는 한국의 함들이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100여명에 가까운 신랑의 가족과 친척들은 신부의 집으로 가서 선물과 음식을 잔뜩 건네며 "신부를 내놓으라"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비슷한 수의 신부의 가족들은 "쉽게 내줄 수 없다"며 역시 노래와 춤을 부른다. 지근거리인 양 집안의 행사 때문에 고향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다. 신부 집안이 마지못해 허락을 하는 듯 하면 신랑의 가장 친한 형제자매가 신부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온다. 라돈치치는 친형과 친동생이 그 역할을 했다. 그렇게 신부를 집으로 데려오면 함께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신부의 집으로 가서 결혼식과 파티를 연다.
결혼식 행사를 마친 다음날 라돈치치는 알미나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고향에 남겨둔 채 처음으로 외국 생활을 하게 된 알미나는 "외국에서 살 거란 생각은 못했다. 그것도 이렇게 먼 한국에서 축구 선수의 아내로 살 지는 몰랐다. 힘들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난, 그리고 그의 가족들과 함께 할 거란 믿음에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이들 커플은 꽉 잡은 손을 놓지 안았고 서로를 늘 믿음의 눈으로 바라봤다.
 10살 연하의 아내를 맞이한 라돈치치는 가족의 힘으로 더 강해졌다고 말한다. |
부족한 2%를 채워줄 내 인생의 금메달인구 70만명의 작은 나라인 몬테네그로는 한국 이상으로 보수적인 나라다. 국민의 19% 가까이가 믿는 이슬람교의 율법 탓이기도 하다. 중동의 나라들처럼 강경한 입장은 아니지만 가족에 대한 집착은 특히 강하다. 평소 늘 즐겁고 장난기 심한 라돈치치도 가족에 대한 입장과 계획은 분명했다. 그는 "동생의 와이프는 비즈니스 스쿨을 다녀서 아마 일을 하게 될 거다. 하지만 나는 알미나가 집에서 오직 나를 위한 서포터 역할에만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빨리 라돈 주니어도 낳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라돈치치가 가족에 집착하는 것은 그네들의 역사적 아픔 때문이기도 하다. 몬테네그로는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 반도의 작은 나라다. 2006년 완전히 분리되기 전까지 신 유고 연방(세르비아-몬테네그로)과 구 유고 연방이라는 복잡한 국가 시스템 속에서 살았나. 민족적, 종교적 갈등으로 빚어진 여러 내전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라돈치치와 알미나의 가족 모두 90년대 말 고향과 맞닿은 코소보 사태로 인한 전쟁과 혼란의 충격을 경험했다. 코소보 사태 직후 한국으로 떠나온 라돈치치가 보수적인 기준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데 집착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이해할 만한 당연한 모습이기도 하다.
라돈치치는 말한다. “결혼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이젠 운동하는 시간 외에는 늘 집에만 있어야 된다. 알미나를 집에 남겨두고 어떻게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겠어.(웃음) 내 인생은 앞으로 가족만 생각하고 내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채워져 있다. 원정 경기를 위해 집을 떠나 있을 때면 걱정이 들 정도다.” 지금은 운전도 가능하고 한국 생활도 몇 번 경험해 본 동생 제말 부부가 함께 생활한다. 9월 말 그들이 떠나면 라돈치치의 어머니가 올 예정이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알미나의 가족도 한국으로 초대할 계획이다. 팀 동료인 사샤와 동유럽 출신은 마토, 스테보의 가족도 한국이 낯선 알미나가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2세 계획을 묻자 라돈치치는 "어서 아이들을 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처음 한국에 와서는 둘이 1주일 동안 집 밖으로도 안 나갔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어서는 "나는 형제가 다섯 명이고, 알미나는 언니만 있다. 아이들을 몇이나 낳게 될 지는 모르겠다. 되는 대로 낳을 거다. 알미나가 외로울 수 있으니까 빨리 아이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아마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은 한국에서 낳고 싶다. 일단 내가 옆에 있어야 하고 시설도 한국이 훨씬 좋으니까"라며 자신들의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이미 두 차례나 귀화 의사를 밝힌 바 있는 라돈치치는 최근 한국인이 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국적을 얻는 것에 대한 결심은 섰다. 자신의 가족들도 라돈치치가 한국에서 얻은 것들이 얼마나 큰 지를 이해하며 귀화에 동의했다. 한국어 능력은 역대 K리그를 거쳐 간 외국인 선수 중 가장 탁월하다. 라돈치치는 "선수 생활도 큰 문제가 없는 한 이곳(한국)에서 마칠 것 같다. 그 뒤에 한국인으로서 내가 이곳에서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몬테네그로로 돌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것 같다. 그때는 알미나와 심각하게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2004년 K리그에 데뷔한 이래 반년 간 일본으로 임대를 다녀온 시기를 제외하면 K리그 8년 차를 맞지만 라돈치치는 무관의 제왕이다. 2005년 리그 준우승(인천), 2009년 리그와 FA컵 준우승(성남)까지 매번 우승 일보 직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작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인해 결승전 출전이 좌절되기도 했다. 다행히 라돈치치 없이도 성남이 우승을 차지하며 우승 메달을 받았지만 끝 맛이 개운하진 않았다. 올해도 성남은 우승 기회를 얻었다. 라돈치치가 돌아온 뒤 FA컵 8강전과 4강전에서 부산, 포항을 꺾으며 결승까지 올랐다. 상대는 2009년 그들에게 FA컵 우승을 뺏어갔던 수원. 가족을 꾸리며 책임감이 더 강해진 라돈치치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힘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그에겐 이미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우승이 자신의 곁에 있다.
"라돈은 이미 우승했어. 내 옆에는 알미나가 있으니까. 알미나가 내 인생의 골든 메달이야."
 라돈치치가 네이버스포츠 독자들에게 보내 온 메시지와 그의 결혼 사진들 (사진=임시완) |
라돈치치 부부가 네이버스포츠에 전하는 한가위 메시지(동영상=LightBox)